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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12-14 21:31:57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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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속 장소는 지난번과 같은 오피스텔.

나는 한 손으로 거대한 콘트라베이스 케이스를 옮겼다.

근육 하나 없는 몸임에도 불구하고 이 정도는 별로 무겁지도 않았다.

지금까지 차곡차곡 쌓아온 올스텟 보너스 때문.

내가 지금 한 손인 이유는 간단했다.

이 브로커는 내가 한 손이 없는 줄 알고 있기 때문이다.

장례식장에서 고인이 부활해버리면 서로 난감할 뿐.

나는 미리 손을 모래로 만들어 주머니에 고이 챙겨두었다.

띵동-

초인종을 누르자, 얼마 지나지 않아 철문이 열렸다.

문 뒤에는 여전히 험상궂은 얼굴의 브로커가 서 있었다.

떡 벌어진 어깨와 팔뚝의 문신. 눈을 가리는 선글라스까지.

브로커는 나를 보자마자 미간을 찌푸렸다.

“들어와.”

차갑고 건조한 목소리.

텔레그램에서 온갖 이모티콘을 남발하던 다정한 삼촌의 모습은 어디에도 없었다.

이 극명한 온도 차이에 어지럼증마저 느껴질 지경이었다.

“이번엔 또 무슨 위험한 짓을 하고 온 거지?”

그의 하드보일드한 말투가 이어졌다.

조폭처럼 생긴 주제에, 말투가 마치 범죄자를 취조하는 형사 같았다.

나는 어깨를 으쓱했다.

“위험한 건 전혀 없었는데.”

“그럼 그건 뭐냐.”

브로커의 시선이 내 손에 들린 거대한 케이스로 향했다.

나는 케이스를 열어 내용물을 보여주었다.

“….”

전투 도끼가 모습을 드러내는 순간, 브로커의 표정이 굳었다.

은은하게 새어 나오는 불길한 기운.

그 또한 이게 보통 물건이 아니라는 것을 한눈에 알아본 모양이었다.


‘이건….

브로커는 속으로 혀를 찼다.

불길한 기운이 줄기줄기 흐르는 전투 도끼.

말을 들어보니 아니나 다를까 유니크 등급 아이템이었다.

이런 물건을 대체 이 어린애가 어떻게 손에 넣었단 말인가?

브로커는 잠시 침묵하더니, 전보다 한층 더 낮아진 목소리로 물었다.

“이걸 어디서 구했나?”

“10층 보스 잡고 얻었는데. 왜?”

눈앞의 소녀는 별것 아니라는 듯, 퉁명스럽게 대답했다.

그 대답에 더 이상 아무것도 묻지 않았다.

10층 보스라….

그가 생각하기에, 눈앞의 아이가 탑에 들어간 것은 사실이 맞는 것 같았다.

이 정도의 아이템은 훔칠 수 있는 물건 따위가 아니니까.

하지만 이 아이가 진짜 헌터라고 해도 문제가 생긴다.

이 애가 10층 보스를 혼자 잡았을 리가 없었다.

아니, 그건 누가 와도 불가능하다.

‘하지만 이 애가 파티에서 아이템 우선권을 가져갔을 리는 없지….

브로커의 고민이 깊어졌다.

어떤 파티여도, 이런 아이에게 유니크 아이템을 선뜻 주진 않을 것이다.

그는 헌터라는 작자들을 잘 알았다.

돈벌이를 위해서라면 무엇이든 할 수 있는 초인 깡패들.

자기 몸을 지킬 힘이 없다면? 아이템 배분은커녕, 역으로 가진 아이템을 빼앗기고 죽지나 않으면 다행이다.

탑에서 죽으면 시체도 남지 않는다. 살인멸구하기엔 최적화된 장소인 셈.

‘대충 알겠군. 어떤 상황이었는지.

곧 그의 머리가 한가지 해답을 내놓았다.

눈앞의 아이는 분명 운 좋게, 혹은 운이 나쁘게 10층 공략 파티에 끼어들어 갔을 것이다.

‘처음부터 보상을 나눠줄 생각은 없었을거고. 적당히 고기방패로 써먹을 생각이었겠지.

하지만 탑 공략은 생각대로 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이 보스층이라면 특히나.

‘그리고 그 파티는 전멸했을거고.

파티 전복의 이유는 뭐든 될 수 있다.

혹은 공략을 정상적으로 끝내고 나서도, 아이템 분배에서 문제가 생겨 서로 죽고 죽였을 수도 있다.

브로커는 내심 후자의 가능성이 더 크다고 짐작했다.

‘어쨌든 보스를 잡은 것까진 확실해 보이니까…. 그 후에 내분이 일어났을 가능성이 높아. 그래, 이게 정답이군.

유니크 아이템.

조무래기 C급, D급 헌터에겐 잭팟이 터진 셈이다.

이런 아이를 팀에 넣어서 굴리는 파티가, 배분을 똑바로 하려고 할까?

브로커는 고개를 저었다.

겨우 보스전에서 살아남았더니, 이어지는 것은 서로가 죽고 죽이는 참혹한 현장.

이 아이는 그 현장에서 무엇을 생각하고 느꼈을까?

‘살아야겠다고 생각했겠지.

브로커의 머릿속에 한 편의 그림이 완성되었다.

양패구상의 형태로 흘러간 내전.

이 아이도 헌터. 10층까지 올라가며 온갖 험한 꼴을 보았을 것이다.

마지막 한 명이 남은 그 순간, 자신이 살길은 단 하나밖에 없다는 것을 깨달았을테지.

하나밖에 없는 손으로 조심스럽게 단검을 쥐고 다가가 그 등을 찔렀을 것이다.

그다음 동료들의 시체를 뒤지고, 이 도끼를 챙겼으리라.

‘끔찍한 일이군.

선글라스 너머로 소녀를 살폈다.

며칠이나 잠을 설친 듯한 짙은 다크서클. 차갑고 퉁명스러운 태도. 불법에 발을 걸치고 있는 자신에게 찾아온다는 무모함.

분명 그런 일들을 겪고 난 후유증일 것이다.

선글라스에 가려진 눈에 슬픔과 안쓰러움이 스쳐 지나갔다.

그가 무거운 한숨을 내쉬며 화제를 돌렸다.

“일단 값을 매겨보지.”

브로커는 도끼를 조심스럽게 감정하기 시작했다.

소녀는 소파에 앉아 평가를 기다렸다.

얼마 지나지 않아, 그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역시 유니크 등급이군. 옵션도 좋고…. 내가 여기서 바로 값을 매길 수 있는 물건이 아니야.”

아이템의 등급은 일반, 레어, 유니크, 레전더리 순으로 나뉜다.

유니크 등급이라면 상위 헌터들도 군침을 흘릴 만한 물건이었다.

“못 사주겠다는 말?”

“아니, 나한테 맡겨라. 경매에 내놓는 게 더 많은 돈을 벌 수 있을 거다.”

경매.

확실히 그편이 더 비싼 값을 받을 수 있을 터였다.

하지만 소녀는 선뜻 대답하지 못했다.

이 험상궂은 아저씨를 어떻게 믿고 못 해도 수천만 원은 나갈 물건을 맡긴단 말인가.

소녀의 불신이 가득 담긴 눈빛을 마주한 브로커는 또다시 속으로 측은함을 느꼈다.

‘어린 나이에 얼마나 험한 일을 겪었으면… 사람을 이렇게까지 믿지 못하게 된 걸까.

브로커는 아이답지 않은 그 모습에서 깊은 상처와 배신의 흔적을 읽었다.

그가 진지한 목소리로 말했다.

“네 정체는 철저히 비밀에 부치겠다. 약속하지.

그리고 선금을 미리 주마. 5천만 원. 어때?”

“뭐? 오천…?”

상상도 못 한 금액이었을까. 아이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애써 태연한 척을 하고 있지만, 입꼬리가 멋대로 올라가는 것을 막을 수는 없었다.

그 모습을 본 브로커가 속으로 미소를 지었다.

‘역시 아직 아이는 아이로군.

자신이 값을 후려치려는 속셈이었다면 어쩔 뻔했나?

역시 아이들 곁에는 어른이 필요하다. 자신처럼 착실한 어른이.

브로커는 다시 한번 자신의 역할에 대한 사명감을 다졌다.


다음 날, VIP 아이템 경매장.

나는 브로커가 보내준 실시간 영상을 통해 경매 상황을 지켜보고 있었다.

화면 너머로 보이는 경매장은 상위 헌터들과 길드 관계자들로 북적였다.

다들 한가락 하는 인물들인지, 값비싼 정장과 화려한 장신구들이 눈에 띄었다.

경매는 이미 한창 진행 중이었다.

“다음 물건입니다! 20층 대에서만 서식하는 스톤 골렘의 핵! 레어 등급 재료 아이템입니다! 시작가 천만 원!”

사회자의 외침과 함께, 단상 위로 투박한 돌덩이가 올라왔다.

곧바로 여기저기서 패들이 올라갔다.

“천이백!”

“천오백!”

나는 별 관심 없이 그 광경을 지켜봤다.

당장 장비 아이템도 없는 나였다.

재료 아이템은 내게 아직 먼 이야기.

경매는 빠르게 진행되었다. 스톤 골렘의 핵은 2천만 원에 한 탱커에게 낙찰되었다.

이어서 다양한 아이템들이 무대 위를 스쳐 지나갔다.

투명화 기능이 붙은 레어 등급 망토. 일정 시간 동안 스탯을 올려주는 비약.

심지어는 몬스터를 애완동물처럼 길들일 수 있다는 희귀한 계약서까지.

하지만 그 어느 것도 내 관심을 끌지는 못했다.

“이번 물건은 마법사 여러분들이 주목하셔야겠군요! ‘고요한 현자의 로브’입니다!”

“뭐? 마법사?”

사회자의 말에 내 눈이 번쩍 뜨였다.

단상 위로 올라온 것은 은은한 푸른빛이 감도는 망토였다.

“레어 등급 방어구! 마나 회복 속도를 소폭 상승시켜주는 아주 귀한 옵션이 붙어있습니다!”

‘마나 회복이라….

보자마자 탐이 났다.

개안을 한 뒤, 내 마나통은 몇 배로 커졌다.

하지만 지난 오크 대족장과의 전투에선 마지막 한 방에 MP를 모두 소모했다.

만약 오크 대족장에게 2페이즈가 있었다면?

도망칠 기력도 없는 나는 그대로 리타이어했을 것이다.

저런 아이템이 있다면 훨씬 안정적으로 전투를 이끌어갈 수 있을 터.

“아니, 사실 옵션은 상관없는 거 같기도….”

솔직해지자.

어쩌면 난 그냥 마법사 아이템이 가지고 싶을 뿐일지도 몰랐다.

언제까지 맨몸 등반을 해야 한단 말인가?

사람들 눈에 띄지 않기 위해선 평상복이 제일 좋긴 하다지만, 가방 안에 잘 구겨 넣으면 되지 않을까?

나도 멋있는 로브 휘날리고, 커다란 스태프 휘두르면서 폼 좀 잡아보고 싶었다.

…거기엔 로망이 있으니까.

“시작가는 5천만 원입니다!”

“오천오백!”

“팔천!”

하지만 가격은 내 예상을 훌쩍 뛰어넘었다.

순식간에 내 전 재산을 뛰어넘는 금액이 나와버렸다.

나는 어처구니가 없어 중얼거렸다.

“아니, 법사가 5명밖에 없는데 왜 이렇게 경쟁이 쎄게 붙어….”

그냥 희귀해서인가?

궁금해서 인터넷을 찾아보니 거기엔 다른 이유가 있었다.

마법사 아이템을 입고 다니면, 마법사로 각성할 확률이 높아진다는 미신이 퍼져있었기 때문이었다.

“완전히 가능성이 없는 이야기는 아니네….”

글쎄, 흙 먹다가 각성한 사람도 있는 판인데 뭘.

그렇게 경쟁이 과열되던 순간, 한 여성이 무심하게 패들을 들어 올렸다.

“3억.”

금발의 여성의 한마디에 경쟁자들이 조용해졌다.

결국 로브는 3억원이라는 거액에 그녀에게 돌아갔다.

“어? 저 사람도 여기에…?”

화면 속 여자의 얼굴은 나에게도 익숙했다. 나는 눈을 크게 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