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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변을 둘러보니 일정한 간격으로 수많은 석상들이 도열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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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을 알현하러 가는 길을 지키는 근위병처럼 입구에서부터 왕좌까지 길게 이어져있는 석상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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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만 그 모습이 조금 이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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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구 근처에 있는 석상들은 하나같이 땅에 엎드려 기는 자세를 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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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가까이 다가가 그중 하나를 자세히 살펴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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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를 닮은 주둥이와 앙상한 팔다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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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볼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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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 층대 초반의 폐광에서 지겹도록 봤던 몬스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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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이곳의 코볼트 석상들은 어딘가 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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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의 얼굴에는 고통이 가득해 보였다. 마치 영원한 노역을 선고받은 죄수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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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을 향해 기어가며 용서를 구하고 있는 듯한 자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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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고개를 갸웃하며 왕좌를 향해 계속 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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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묘한 변화가 눈에 들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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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에 가까워질수록 석상들의 모습이 점차 변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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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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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에는 미미한 변화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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땅에 바짝 엎드려 있던 코볼트가 허리를 조금 펴더니, 다음 석상은 무릎을 꿇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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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었던 주둥이는 조금씩 짧아지고, 앙상했던 몸에는 점차 근육이 붙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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덥수룩한 털 대신 굵고 뻣뻣한 수염이 턱을 덮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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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침내 왕좌에 가까워졌을 때, 석상의 모습은 완전히 달라져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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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지만 다부진 체격과 강철 같은 근육. 무엇보다도 풍성하고 길게 땋아 내린 수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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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의 손에는 곡괭이 대신 거대한 전투 망치와 날카로운 전투 도끼가 들려있었고, 금방이라도 뛰쳐나갈 듯한 자세를 취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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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그제야 20층의 주인이 누구인지 깨달았다. 그들은 전사이며 동시에 장인인 종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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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워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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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걸음을 멈추고 그 변화의 흐름을 눈으로 좇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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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구의 코볼트에서, 왕좌 앞의 당당한 드워프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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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치 하나의 종족이 겪는 진화를 보여주는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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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긴 복도는 하나의 역사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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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워프들이 어떻게 비천한 코볼트로 변해버렸는지를 보여주는 연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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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간, 19층의 유적에서 보았던 벽화가 뇌리를 스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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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프들에게서 본 것과 비슷한 현상이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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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층대 후반, 세계수를 잃고 타락하여 다크엘프가 되어버렸던 엘프들의 이야기가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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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이것도 같은 맥락일까? 이들도 탑 때문에 이런 모습이 된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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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워프들 중 일부가 코볼트가 된 건가? 그다음 전쟁이라도 벌어진 거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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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주머니에서 휴대폰을 꺼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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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광경은 그냥 지나칠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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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홀의 전경부터 시작해서, 코볼트가 드워프로 변해가는 석상의 모습을 카메라에 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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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사람은 몰라도 냉장고는 좋아하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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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을 찍는 데 정신이 팔려 있을 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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끼이이이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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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찰음과 함께 홀 전체가 미세하게 진동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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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방의 벽과 기둥에서 숨겨져 있던 문이 열리며, 그 안에서 수십이 넘는 골렘들이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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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휴대폰을 주머니에 넣으며 혀를 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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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위기 파악 못 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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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어깨 위에 있던 초호기를 바닥에 내려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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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닥에서 모래가 솟아올라 모래 분신들을 만들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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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호기, 저놈들 좀 막아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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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호기는 내 말에 고개를 끄덕이더니, 자신의 가슴을 통통 두드렸다. 문제없다는 듯한 자신감 넘치는 몸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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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29층에서와 마찬가지로 녀석의 몸집을 키우고, 방패와 창을 쥐여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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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구구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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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렘들이 육중한 몸을 이끌고 달려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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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호기와 양산형 분신들이 방패를 앞세우고 그들과 정면으로 부딪혔다. 굉음과 함께 불꽃이 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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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그 소란을 등지고, 망설임 없이 앞으로 나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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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런 잡몹들은 내 상대가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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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시선은 오직 홀의 가장 높은 곳의 왕좌에 고정되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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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짜는 저기 있을 것만 같거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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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직감이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 이 모든 이야기의 중심에는 저 왕좌가 있을 거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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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연, 내가 계단을 오르기 시작하자 왕좌가 스스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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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기기기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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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좌가 거대한 소음과 함께 그 형태를 바꾸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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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걸이가 팔로 변하고, 등받이가 몇 번 접히더니 상체가 되었다. 다리와 엉덩이 부분이 갈라지며 다리가 되어 바닥을 짚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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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그 광경을 넋을 놓고 바라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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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좀 멋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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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모르게 감탄사가 터져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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합체 변신 메카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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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남자의 로망이 눈앞에서 실현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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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신 도중에 해치워도 되지만 그것은 도리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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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녀석의 변신을 끝까지 기다려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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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치 어릴 때 보던 변신 로봇 영화의 한 장면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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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와 조금 다른 점이 있다면 그 멋진 기계 사이사이에 그로테스크한 것들이 박혀 있다는 점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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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틀거리는 살점 덩어리들. 고통스럽게 일그러진 채 비명을 지르는 듯한 수십 개의 얼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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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워어어어어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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녀석이 비명과 고함 사이에 있는 소리를 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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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이제는 꽤 익숙해진 다이아 커터를 만들어 녀석을 일도양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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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대한 기계 괴물이 무너져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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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가볍게 손을 털었다. 생각보다 싱거운 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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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어도 주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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녀석이 무너져 내린 잔해를 밟고 서서 주변을 둘러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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홀을 가득 메웠던 골렘들은 초호기와 분신들에 의해 하나씩 정리되고 있는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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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이고 탐색을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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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궁이니까 보물 같은 것도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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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워프 하면 역시 보물. 게다가 여기는 왕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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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곳을 빈손으로 떠나는 것은 예의가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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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홀을 어슬렁거리며 벽을 두드려보거나 석상들을 밀어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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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어디에도 굳게 닫힌 비밀 공간은 없는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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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이, 역시 없는 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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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실망하며 중얼거리는 순간, 손가락의 반지가 미세하게 진동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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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샌드웜은 당신의 방식이 비효율적이라고 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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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뭐 다른 방법이라도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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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샌드웜은 드워프들이 보물을 숨기는 방식에는 규칙이 있다고 설명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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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샌드웜은 저쪽 벽을 확인해 보라고 조언합니다. 왕관을 내려놓은 왕의 석판을 찾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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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녀석이 가리키는 방향으로 걸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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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많은 드워프 영웅들의 일대기가 조각된 벽면. 나는 그중에서 샌드웜이 말한 석판을 찾아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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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관을 쓴 왕이 스스로 그것을 벗어 대장장이의 모루 위에 올려놓는 장면이 묘사되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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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인으로 돌아가겠다는 상징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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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샌드웜은 드워프의 수염을 당기라고 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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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거 진짜 맞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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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반신반의하면서 석판의 표면을 만졌다. 딸깍, 하는 소리와 함께 석판이 움직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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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판이 안으로 들어가더니 숨겨진 공간이 나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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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간 안에는 룬 문자가 빼곡히 새겨진 검은 석판 하나만이 덩그러니 놓여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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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석이나 스킬북 같은 것은 어디에도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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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게 다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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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석판을 꺼내 들었다. 고대 문자처럼 보이는 룬들은 도무지 해독할 수 없었다. 그림인지 글자인지도 분간하기 힘들 지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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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거 어떻게 읽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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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샌드웜은 그것이 고대 드워프의 언어이며, 자신이 해석할 수 있다고 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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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시 이럴 때는 든든했다. 나는 석판을 샌드웜이 보기 편하도록 들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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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 침묵이 흘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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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샌드웜은 이 내용이 너무나 방대해서, 이런 방식으로 이야기를 전달하기는 힘들다고 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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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샌드웜은 당신이 빨리 격을 높여 자신과 대화가 통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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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 격이 더 낮다는 거야? 너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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샌드웜이 그 머리를 위아래로 끄덕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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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그럴 리가 없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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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샌드웜은 당신의 그런 모습을 이해합니다. 받아들이기 쉽지 않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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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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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문이 막혔다. 완벽하게 패배한 기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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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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콰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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홀 저편에서 마지막 남은 기계 골렘 하나가 초호기의 창에 머리가 꿰뚫리며 쓰러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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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와 동시에, 내 가슴팍에서 강렬한 빛이 터져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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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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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깜짝 놀라 가슴을 내려다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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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은 목에 걸고 있던 펜던트에서 나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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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수의 잎사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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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층에서 얻은 이후로 한동안 계속 잊고 있던 아이템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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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야, 이건 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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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어리둥절해하는 사이, 눈앞에 시스템 메시지가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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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수의 잎사귀가 당신의 위업과 공명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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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러운 난쟁이들을 학살하고, 그들의 왕궁을 범한 당신의 영웅적인 행동에 세계수가 응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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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 학살? 난 그런 짓 안 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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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드워프는 만난 적도 없다. 왕궁은 그저 조사를 좀 했을 뿐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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억울하기 짝이 없는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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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속마음과는 상관없이 시스템은 제 할 말을 계속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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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템이 진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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펜던트에서 뿜어져 나오는 빛이 더욱 강렬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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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둣빛이 감돌던 나뭇잎이, 이내 에메랄드빛으로 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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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치 방금 세계수에서 꺾어온 것처럼 영롱한 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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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수의 되살아난 잎사귀’가 ‘세계수의 영롱한 잎사귀’로 진화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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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템의 등급이 ‘에픽’에서 ‘유니크’로 상승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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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수 능력: ‘생명의 기운’이 추가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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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착용자의 생명력이 대폭 증가하며, 모든 종류의 저주와 상태 이상에 대한 저항력이 생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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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수 칭호: ‘엘프의 영웅’이 추가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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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엘프의 오랜 숙원 다섯 중 둘을 해결했습니다. 모든 엘프들은 당신에게 절대적인 존경과 호의를 표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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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멍하니 시스템 창과 영롱하게 빛나는 나뭇잎 펜던트를 번갈아 쳐다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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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워프의 도시 한가운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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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다 보니 엘프의 영웅이 되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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