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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을 그렇게 열심히 쓰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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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련의 물음에 서연은 손에 든 빈 서책과 붓을 내려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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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금 무어라 했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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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를 그렇게 열심히 쓰시나 궁금해서요. 스승님께서 객잔에서 글을 쓰시는 모습을 처음 봐서 그랬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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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연은 화련의 말에 간략하게 대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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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 썼던 책을 수정하고 있단다. 들어보니 추가해야할 내용이 많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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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사나불과 관련된 책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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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연은 가볍게 고개를 끄덕인 다음 종이를 옆으로 치웠다. 마침 음식을 잔뜩 든 점소이가 방문을 열고 들어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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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식사부터 하자꾸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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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문석굴에서 빠져나온지 꽤 오랜 시간이 지난 시점이었다. 서연 일행은 근처의 객잔에서 늦은 점심을 먹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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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래 들어서는 사람들의 눈을 피해 따로 방을 잡고 식사하는 일이 잦았다. 혹여라도 자신을 알아보는 이가 있을까 염려한 탓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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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연은 문득 하남 땅에 처음 발을 들였을 때를 떠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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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는 눈에 띄지 않도록 문 가까운 자리에 앉아 소면 한 그릇에 만두 몇 점만 시켜 놓고는 주위를 살피기 바빴다. 일이 벌어지면 가장 먼저 달아나기 위함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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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를 떠올리니 감회가 새로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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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는 상상조차 어렵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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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경험을 통해 자라난다는 말에 틀림이 없었다. 명문 정파와 세가에서 위험을 감수하면서라도 어린 제자들을 세상으로 내보내는 이유를 알 듯했다. 성장하려면 풍파를 견뎌내야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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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남에만 있었다면 이를 알지 못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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확실히 운남과 낙양의 분위기는 천지 차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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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양의 거리는 운남에 비해 훨씬 정갈했고, 사람들의 얼굴에도 칼날을 마주할까 두려워하는 기색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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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장 객잔에서 칼을 찬 무인을 고용하지 않은 것만 봐도 차이가 명확했다. 관부의 철저한 치안과 더불어, 무림의 태산북두인 소림이 인근에 자리한 덕분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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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로부터 하남은 사마외도들이 발붙일 엄두조차 내지 못하는 곳으로 알려져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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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림 나한들의 법력 무공이 그들에게는 절대적인 상성으로 작용했기 때문이다. 천하를 놓고 보면 소수에 불과한 소림 나한들이 명성을 떨치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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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연천공을 노사나불을 만드는 도중에 창안했던 탓일까, 서연은 제자들의 숨결에서 법력 무공 특유의 신령스러운 경파를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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겉으로는 도가의 기운이 먼저 드러나는 탓에 평범한 무인들은 알아채지 못할 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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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허 스님도 언젠가 찾아뵈어야 할 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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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직 법력만을 타고난 무공을 새로 만들어 익히게 한다면, 훗날 제자들을 강호로 내보낼 때 큰 도움이 될 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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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제자들과 식사를 하면서, 중간중간 새로운 심득이 있을 때마다 복원록을 적어가며 시간을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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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복도 저편에서 시끌벅적한 소리가 들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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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이 다 찼다고? 오늘 점심은 꼭 이 집에서 먹으려 했건만. 자네도 알지 않는가. 이 집이 국수를 잘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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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허, 실망이네 주인장. 우리가 여태 올려준 매상이 얼만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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껄껄거리는 웃음소리가 몇 번 울릴 때마다 정명한 기도가 문틈으로 흘러들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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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연의 기감이 과거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예민해진 결과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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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 후, 주인장이 조심스러운 얼굴로 방문을 두드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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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손님. 혹시 식사 다 하셨습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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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슨 일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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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희 가게의 귀인 분들이 오늘 생신이라고 하셔서 말입니다. 혹 식사를 마치시면 알려주실 수 있으시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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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연은 고개를 옆으로 돌렸다. 화련이 입을 크게 벌린 채 마지막 남은 만두를 꿀꺽 삼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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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로 입가심만 하고 나가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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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고, 배려해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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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장은 연신 고개를 조아리며 물러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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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찻잔을 조용히 기울이던 당소소가 마침내 입을 열었다. 용문석굴을 다녀온 후 처음 하는 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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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찌하여 권세가들이 각예품을 집에 들이는지 이제야 알 것 같습니다. 개안한다는 감각이 이러할까요. 스승님의 제자가 아니었더라면 머리를 깎고 비구니가 되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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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도 충격에서 완전히 헤어나오지 못한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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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련은 노사나불을 복원 중에 몇 번 마주했던 적이 있었지만, 당소소는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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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고난 안목에 더해 스승이 서연이라는 사실까지 더해져 더욱 큰 충격을 받은 모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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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매……? 아미파로 가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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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정도로 충격을 받았다는 뜻이었습니다. 아미파에는 저만한 위용을 풍기는 노사나불이 없겠지요. 감상을 말하다 보니 스승님이 예전에 만드셨다던 삼신세불도 보고 싶군요. 자그마치 여드레를 선 채로 조각을 이어나가셨다는데, 신녀라는 말이 참으로 옳습니다. 소림이 금녀의 원칙을 내세우지만 않았더라면 당장이라도 찾아갔을텐데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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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연이 점소이를 불러 계산을 할 때까지 당소소는 감상을 읊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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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스레 옆을 스쳐 지나가는 사내 무리 속에서 익숙한 얼굴이 눈에 띄었다. 금룡상단의 셋째, 금진송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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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양에 처음 당도했을 때부터 큰 도움을 주었던 사내였다. 화련에게도 친절했던 기억이 남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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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소리가 낯익다 했더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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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진송의 생일인 듯, 그의 일행은 생일을 축하하며 시끌벅적했다. 서연은 잠시 축하를 해줄까 망설였지만, 가볍게 목례하는 것으로 대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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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으, 은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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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시선이 마주친 금진송이 서연을 발견하고는 허겁지겁 다가왔다. 왠지 모르게 얼굴이 한없이 붉어져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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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으로 오랜만에 뵙습니다. 한동안 뵈지 못해 걱정이 되었습니다만, 잘 지내시는 모습을 보니 마음이 놓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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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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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진송과 함께 있던 이들이 의아한 눈으로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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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들어가 있게들. 할 일이 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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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갓집 규수를 소개시켜준대도 코웃음만 치더니. 이유가 있었군 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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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헛소리들 말고 들어가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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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내들은 껄껄대며 웃다가 이내 방 안으로 들어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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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진송은 민망한 듯 헛기침을 반복하다 입을 열었다. 어째서인지 시선을 맞추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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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추태를 보여 죄송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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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혈기왕성한 나이니 그럴 수 있지요. 이해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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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정도는 웃어넘길 만한 장난이었다. 애초에 목적부터가 금진송을 놀리는 것이었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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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 어디로 가시는 길인지 여쭤봐도 되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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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진송이 조심스레 물었다. 맨땅을 보고 그리 묻는 것이 퍽 요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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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룡상단으로 가려고 했습니다. 수령해야 할 물건이 있는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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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디 낙양에 온 목적부터가 수련궁교두에게 받은 대리석들을 수령하기 위함이었다. 금룡상단이 물건들을 보관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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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진송의 얼굴에 순간 화색이 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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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친구들이 기다리고 있어 직접 동행하지는 못하겠지만, 제 시종을 붙여드리겠습니다. 면식이 있으시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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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교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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옆에 서 있던 여인이 얌전히 고개를 끄덕였다. 과거에 용문석굴의 안내를 맡았던 여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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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 호위 살수 일을 했었다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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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는 무림과 연이 없다 여겨 신경쓰지 않았으나, 지금은 또 다르게 느껴졌다. 살수들은 몸을 어떻게 짜냈을지도 궁금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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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연은 교교의 몸을 가볍게 흝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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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육이 단기 결전에 맞춰 짜여 있구나. 품에서 비수를 꺼내 내지르면 웬만한 고수들도 받아내기 힘들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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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통의 살수로 보기 힘들었다. 한창 때에는 어느 정도 이름을 떨치지 않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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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긴, 금룡상단의 적자에게 어찌 범상한 인물을 붙였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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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현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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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선을 느낀 교교가 떨떠름한 얼굴을 지었다. 과거 그녀가 서연에게 가졌던 감상은 지금과는 사뭇 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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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전수전을 다 겪은 내가고수, 본 실력을 숨긴 채 도련님께 접근한 철면피, 젊은 목소리와 외양으로 방심을 일으켜 일격을 먹이는 계산적인 인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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맨 얼굴을 목도하고 나니 평이 한순간에 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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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진송 역시 어디가서 꿀릴 외모는 아니었으나, 서연에 비할 바는 아니라 여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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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정하고 수작을 부리려 했으면 끝까지 금룡상단에 남았을 터. 미련없이 떠나갔던 순간부터 오해였음을 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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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시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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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에서 느껴지는 강렬한 시선을 애써 무시했다. 언젠가 책잡힐 일을 했나 괜한 오해를 하면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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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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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을 끝으로 일행은 마차에 탑승했다. 본래 금진송이 타고 왔던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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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은 객잔에 꽤 오래 남아있을 예정이니 나중에 마차를 돌려보내주기만 하면 괜찮다고 했다. 탑승하면 괜한 검문을 생략할 수 있다는 말도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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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연은 그의 호의를 기꺼이 받기로 했다. 언젠가 각예품을 만들게 되면 금룡상단과 거래해야겠다는 생각을 품은 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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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가에 방문하신 적이 없으신 걸로 압니다. 가문의 규율로 문을 넘어서부터는 마차를 탈 수 없는지라, 얼굴이 드러나실 겁니다. 미리 가릴 물건을 가져올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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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교가 조심스레 물었다. 과거 서연이 면사까지 쓰고 다녔던 것을 기억하고 있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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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괜찮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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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맨 얼굴을 드러내는 것도 익숙해져야 할 터였다. 일문의 문주로서 언제까지고 얼굴을 감추고 다닐 수는 없는 노릇이었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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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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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윽고 쿵 소리와 함께 문지기들이 거대한 대문을 열어젖혔다. 금룡상단의 본가에는 처음 방문하는 서연이었다. 과거에는 금진송의 별장에서만 머물렀던 탓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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큼지막한 마당을 바삐 오가는 시종들과 한 켠에 줄서있는 상인들이 눈에 띄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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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륙에서 세 손가락에 꼽힌다는 상단이라는 사실을 실감했다. 섬서에서도 몇 번 보지 못했던 색목인들이 주변을 자유로이 왕래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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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켠에 자리한 작은 연못에서는 온갖 사람들이 술잔을 든 채로 풍류를 즐기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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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진송의 측근에 속하는 교교를 보고도 전혀 동요하지 않는 태도에서 그들의 위세를 짐작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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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상단에서 맡고 있다는 대리석을 눈에 띄지 않을 정도로만 융통해줄 수는 없겠는가? 이번에 호광에서 참으로 좋은 조건을 제시해서 하는 말이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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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허, 이 사람이! 안 된다니까 그러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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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석에 손사래치는 사내가 유독 눈에 띄었다. 주변에 아름다운 여인들을 끼고 웃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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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량처럼 보이는 품행. 사람 자체가 굉장히 느긋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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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가의 둘째, 금진명(金振明) 도련님이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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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교가 조용히 중얼거렸다. 작금의 상황이 익숙한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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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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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금진명이 고개를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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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빨리 지나치려는 서연 일행을 흘깃 보더니, 들숨 소리가 커졌다. 매우 크게 놀란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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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가에 침어(沈魚)가 찾아오셨구려! 교교가 안내하는 것을 보니 아우의 손님이신 듯한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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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쪽을 향해 손을 번쩍 들었다. 옛 경국지색을 언급하며 펼치는 동작이 퍽 과장스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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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슨 일로 오셨는지 알려주실 수 있겠소? 본 공자가 성심성의껏 도와드리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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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새 가죽신을 신고 이쪽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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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취한 듯 보였는데도 발걸음에서 단련된 무인의 기도가 흘러나왔다. 품위가 느껴졌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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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든지 주기(酒氣)를 흩어낼 수 있는 무인임을 깨달았다. 명문가의 자제다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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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태 살아오며 마주한 여인 중에 그대가 둘째로 아름답소. 참고로 첫째는 본인의 모친이올시다. 혹 그대는 진송 아우의 연인이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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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진명 도련님, 언사가 과하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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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교가 서연의 앞을 가로막듯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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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가에서 받아가셔야 할 물건이 있어 찾아오신 분이십니다. 또한 금진송 도련님께서 은공으로 모시는 분이시기도 한 바, 이 이상의 무례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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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다, 알아. 찾아온 용무 정도는 물을 수 있지 않느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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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진명이 웃으며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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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면 혹 그대도 본가에서 보관하고 있는 운남산 대리석을 얻어가기 위해 찾아온 것이오? 그랬다면 헛걸음 했다고 할 수 있소. 그건 이미 주인이 있는 물건이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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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어보니 방금까지 연못에서 나누던 대화 역시 이와 관련된 이야기인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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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진명은 천천히 앞으로 나서면서 입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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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나, 그대가 부탁한다면 내 친히 부친께 찾아가 일 할 정도는 떼어달라고 말씀드려 보리다. 듣도보도 못한 문파의 문주에게 건네주는 것보다야 천하절색인 그대에게 주는 편이 낫지 않겠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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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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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연은 입을 다물었다. 두 제자 역시 마찬가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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