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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설련(韋雪蓮)은 하얀 얼굴에 검은색 비단으로 지은 의복을 입은 여인이었다.
천하삼대술사의 차녀이자, 모산파의 현 후계자이기도 했다.
후계 수업에 전심을 다한 탓일까, 이제는 모산파 내부에서도 그녀를 후계자로 인정하는 분위기가 만연했다.
작년까지만 해도 상상도 할 수 없었던 일이다. 그때까지만 해도 그녀의 언니가 후계자 자리를 공고히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헌데 한순간에 땅 속으로 꺼진 사람처럼 사라져버렸다. 그녀와 함께 모산을 떠났던 수하들만 되돌아왔다.
―대공녀께서 이것을 전해달라 하셨습니다. 당신께서는 돌아가지 못하시겠다고 하시면서…….
태음양정단을 받는 대가로, 영물의 범주를 넘어선 짐승들에게 사로잡혔단다. 그만한 존재들이 거리를 대놓고 활보한다는 말이 믿겨지지 않았다.
내단 겉으로 드러난 세찬 기운만 아니었더라면 허언이라 생각했을 것이다.
그렇게 모산파 대공녀의 소식은 그날부로 뚝 끊겼다.
모산파의 방사(方士)들이라고 처음부터 대공녀를 포기했던 것은 아니다. 온 수단을 동원하여 그들의 후계자를 되찾고자 했다.
허나 그때마다 비보만 들려왔다.
“대공녀를 추적하던 혼령들이 모두 소멸했습니다.”
“산군……! 산군을 보았습니다! 시선이 맞닿았을 뿐인데 술법이 한순간에……!”
일을 맡았던 방사들이 혼절하는 일이 적지 않았다.
일평생 인외의 존재들을 상대했던 이들이다. 웬만한 무림인들보다 담력이 뛰어나 전쟁통에서도 꿈쩍도 하지 않는 경우가 허다했다.
그런 이들 중에서 추리고 추린 방사들이 죄다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그들이 부리던 식신(式神)조차 감히 대적할 생각을 품지 못했다고 했다. 산군과 마주한 순간 납작 엎드려 벌벌 떨었다던가.
내로라하는 방사들조차 힘으로 굴복시켜야 했던 식신이다. 당장 놈에게 희생되었던 민초가 수십이 넘었다. 쉽게 믿기지 않았다.
허나 한둘도 아니고, 수십 명의 방사들이 죄다 같은 이야기를 반복하니 믿을 수밖에 없었다.
모산파의 후계자가 위설련으로 바뀌게 된 것은 그때부터였다.
인생만사 새옹지마라던가. 그렇게 잘 나가던 언니가 한순간에 영물들의 한끼 식사가 될줄 그 누가 예상했을까.
그녀의 모친을 비롯한 몇몇 장로들은 언니가 살아있을 것이라고 굳게 믿었지만, 위설련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언제고 잡아먹혀도 이상하지 않다고 생각했다. 신수라고 다 선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경지에 오른 인간들이 어딘가 비틀리는 면이 생겨나듯, 신수가 된 이매망량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당장 구미호 달기(妲己)조차 은 왕조를 멸하지 않았던가. 언니를 붙잡아간 놈 역시 감언이설에 통달한 존재라 여겼다.
시간이 조금 흘러서는 언니의 이야기를 꺼내는 이들조차 사라졌다.
“소림사에 새로 불상이 들어왔다던데, 참으로 현묘하다고 들었소. 귀기조차 씻겨내려간다고 하더이다. 한 번쯤 확인해보는 것이 좋을 것 같소.”
“낙양 일대에서 혼백을 찾아보기 힘들 지경이오. 죄다 성불하기라도 한 것인지…….”
“용문석굴 근처는 가지 마시게. 왜냐고? 부리던 식신들이 한순간에 성불했다니까는! 인간의 기예가 아니란 말이외다! 단순한 석상으로 봐서는 안되오! 필시 교룡의 후예가 개입했을 것이오!”
“근래 모산으로 찾아오는 이들이 줄었소. 본래 억울한 원혼들을 성불시키는 것이 우리의 일인데, 다들 소림으로 몰려가니…….”
“하, 하남 땅에 산군이……! 성불당한다……!”
“섬서 녕강과 석천 인근에서 산적들의 시체가 떼거지로 발견되었다고 하오. 원혼이 생길 가능성이 농후하니 빠르게 다녀오겠소.”
“광동진가의 막내가 목숨을 보전했다던데. 우리가 먼저 발견해서 무림맹에 제보하면 예산에 여유가 생기지 않겠소?”
모산파의 산문에서 들려오는 대화였다.
원체 폐쇄적인 문파였다. 도문치고 방문객을 받지 않는 것만 봐도 그랬다.
모산 전체에 펼쳐진 진법 덕에 위치조차 알지 못하는 이들이 태반이었다. 매일같이 산을 오르는 심마니들조차 그들의 존재를 알지 못했을 정도였으니 오죽할까.
무림의 고위층들이나 황실 정도만 그들을 명확히 파악하고 있었다.
그럼에도 왁자지껄했다. 정파에 속하는 방사의 태반이 이곳에 속해 있다고 봐도 좋았다.
‘나중에 언니를 만나면 내가 성불해줘야겠지.’
위설련은 산문을 거닐면서 그런 생각을 했다. 솔직히 아직도 후계자가 된 사실이 믿겨지지 않은 날이 많았다.
언니에게 빚을 진 느낌이 강하게 들었다. 모친을 위해 목숨을 바쳤다. 누구라도 쉬이 행하지 못할 일이었다.
나중에 대성하여 성불시켜주고자 했다. 방사가 취할 수 있는 최고의 예우였다.
위설련이 생각하기에, 그들 자매는 사이가 좋은 편에 속했다. 후계 다툼 같은 것을 벌인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언니는 산문 바깥으로 나갈 때마다 당과와도 같은 주전부리를 싸들고 와서 자신에게 건넸다. 특유의 퉁명스러운 언행을 가미한 채였다.
―길 가다가 주웠단다. 이거나 먹고 이빨이나 썩으렴. 나도 먹으라고? 헛소리하지 말고 술법이나 익히러 가. 성취가 미진하면 나중에 쫓아낼지도 모르니.
어렸을 때의 일인데 지금도 생생했다.
세 살 터울인 언니는 자신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어른스러웠다.
물론 위설련은 단 것을 그리 좋아하지 않았기에, 언니가 건넸던 주전부리들을 전부 먹지 않고 자그마한 함에 고이 넣어두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눈 앞에서 한 번 정도는 먹어볼 걸 그랬나 하는 후회가 컸다.
그런 생각을 하던 도중에, 웬 산새가 날아들었다.
주변을 맴돌다가 정확히 위설련의 어깨 위에 앉았다. 이제 보니 발에 자그마한 쪽지가 묶여 있었다.
연서라도 되는 것일까. 처음 겪어보는 신박한 방식이었다.
희미한 추측을 끝으로 쪽지를 풀어 내용을 확인했다. 펼치는 순간 익숙한 필체가 드러났다.
단정하기 그지없는 글씨였다. 양갓집 규수나 쓸 법한 고아한 서체였다.
[사정을 봐주셔 안부를 전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어머니께서는 잘 지내시지요? 저는 잘 지냅니다.
자식으로서 마땅히 얼굴을 비추어야 하나, 그럴 수 있는 사정이 아님을 용서하세요.
혹여 오해를 하실까 다시 덧붙이자면, 저는 매우 건강합니다. 후계자로 지내다 갑자기 시종으로 지내려니 어려운 점이 많지만, 그래도 어머니를 구할 수 있던 덕에 더없이 기쁘기만 합니다.
딸이 보고 싶으셔도 찾지는 말아주세요. 보이기 부끄러운 모습을 하고 있는 탓에, 어머니를 뵐 자신이 없습니다.
저는 아직 젊습니다. 십 년은 금세 흘러가겠지요.
그때 다시 뵙겠습니다.
장녀 위화련.]
위설련은 입을 다물었다. 종이의 겉이 희미하게 삭아 있었다. 족히 일 년은 산새의 다리에 매달려 있던 듯했다.
“…….”
언니를 붙잡아간 영물의 소행이 분명했다. 편지를 보낼 수 있게 해준다고 안심시키고, 한참 뒤에 도착하도록 수작을 부렸을 것이다.
참으로 간악하구나. 뒤편에 서 있는 수하들을 아랑곳하지 않고 뇌까린 위설련이 다시 입을 열었다.
“……어머니를 뵈러 가야겠다. 지금 당장.”
운남에서 떠나는 날이 밝았다. 신녀문주를 마중하기 위해 거리로 나선 이들이 적지 않았다.
점창파의 도사들은 물론이거니와, 무림맹의 후기지수들도 있었다. 지난 사흘간 신녀문주에게서 많은 가르침을 받았기 때문이었다.
일월상단의 사람들도 있었다. 그들은 신녀문주가 운남을 떠날 때까지 상행을 나가지 않고 기다리는 것을 택했다.
산사태로부터 송월 노인을 구했다는 이유에서였다. 상행보다 은인을 대접하는 것을 더 중히 여겼다.
송월 노인 역시 서연에게 정중한 작별인사를 건넸다.
“언젠가 하남에서 다시 뵙기를 고대하겠습니다. 그때까지 건승하십시오.”
“어르신도 먼 상행길 평안히 다녀오십시오.”
서연 역시 마주 포권을 취했다.
위치가 이전과 달라진 탓인지, 주변 사람들은 그조차도 겸양으로 여겼다. 어떤 대문파의 장문인이 노인에게 고개를 숙이겠는가.
“그동안 감사했습니다.”
이번에는 남궁설화였다. 그녀는 더없는 진심을 담아 서연에게 허리를 숙였다.
“제가 신녀문주님께 참으로 많이 배웠습니다. 언제고 남궁세가로 찾아오시면, 그때처럼 가문의 귀빈으로 모시겠습니다. 부친 역시 문주님을 기쁘게 맞이하실겁니다.”
절세고수의 이름이 언급되자 뭇 사람들의 시선이 달라졌다. 허나 남궁설화는 아랑곳하지 않고 공경한 자세로 허리를 숙였다.
“각패는 그때 받도록 하겠습니다.”
그러면서 생그럽게 웃는다. 마지막까지 각패를 받지 않겠다는 당돌한 기세를 드러내면서다.
‘많이 얻었구나.’
첫 여행의 종착점이다. 떠나기 전까지만 해도 온갖 결심을 해야 시도할 수 있었던 것들이, 지금 와서는 아무렇지 않게 되었다.
더없이 성장했다. 산 구석에서 나무 따위를 깎던 여인은 이제 일문의 문주나 가질 법한 마음가짐을 지니게 되었다.
서연은 걸음을 뗐다. 그녀의 뒤로 화련과 당소소가 뒤따랐다.
‘제자들이 복이구나.’
이번 여행에서 얻은 것이 많았다. 제자들을 위해서라도 허울뿐인 문파의 문주가 될 수는 없었다.
‘하남으로 돌아가면, 적당한 부지부터 알아봐야겠다.’
언제까지고 산 속에서 제자들을 키울 수는 없는 노릇이었으니 말이다.
‘천천히 돌아가자. 여유롭게.’
점창 속가를 뒤로하고 떠났다. 겁 많던 여인의 처음이자 마지막 여행은 그렇게 끝났다.
서연 일행은 사천으로 향하지 않았다. 당소소의 부탁 때문이었다.
“가문을 떠나서 절기를 배워오겠다고 그리 엄포를 놓았는데, 두어달 만에 돌아오면 세가 사람들이 저를 놀릴겁니다.”
“사천당문 사람들은 다 착하던데. 아, 혹시 남동생 때문에?”
“예. 스승님 앞에서 남매끼리 다투는 추한 모습을 보이고 싶지는 않군요.”
당소소와 화련이 앞서 걸어가며 마주 대화를 나눴다.
이제는 걸으면서도 비연천공을 펼칠 있게 된 그들이었다. 서연이 도와주기는 했지만, 그들 스스로가 엄청나게 노력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아무튼, 서연은 당소소를 배려하고자 중경 방향으로 걸음을 돌렸다.
“스승님이 살던 곳을 듣기만 했지, 직접 가보는 것은 처음입니다. 참으로 떨리는군요.”
“그렇게 대단하지는 않단다.”
“사저에게 듣기로는, 하루만에 오두막을 지으셨다고.”
“그건 옳은 말이지.”
“그래서 궁금한 겁니다. 가문의 목수들이 들었다면 말도 되지 않는 일이라고 온갖 미사여구를 덧붙였을겁니다.”
답지 않게 눈을 반짝반짝 빛냈다.
그런 당소소를 응시하던 화련이 천천히 입술을 뗐다.
“스승님, 혹시 검선과도 연이 있으신가요?”
“음? 갑자기 왜 그런 생각을 했니?”
“스승님이 가시는 곳마다 온갖 높으신 분들을 다 뵈는 것 같아서요. 중경을 넘어서면 호북인데, 거기에는 무당파가 있잖아요. 검선을 뵐 수도 있는 것 아니에요?”
어린아이나 보일 법한 기대 가득한 얼굴로 스승을 올려다본다.
서연은 미소지으며 어린 제자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인연은 없지만, 운이 좋으면 뵐 수도 있겠구나.”
어린 제자의 기대에 부응하고자 말만 그렇게 했다.
검선은 무려 전전대의 무당파 장문인이었다. 구파의 장문인들조차 감히 입에 담을 수 없을 정도로 배분의 차이가 압도적이라는 것이다.
청목족 정도는 되어야 검선에게 말을 놓을만했다.
그런사람을 길가다가 만나는 것이 가능하겠는가.
“그치만, 걸식하고 돌아다니신다던데…….”
“화련아. 그런 말을 함부로 하면 안된단다.”
“넵.”
갈수록 제자의 말투가 가벼워지는 것을 느꼈다. 억지로 어른스러운 척을 하던 과거보다야 지금이 훨씬 보기 좋았지만, 걱정되지 않는 것은 아니었다.
‘사춘기가 이르게 찾아오면 어찌할까.’
나이 많은 사매에게 당과 심부름을 시키며 패악질을 부리지는 않을까 걱정이 되었다.
그전에 확실히 버릇을 잡아두어야 할 듯싶었다.
'하지만 어찌?'
화를 내고 싶지는 않았다.
과분할 정도로 총명한 아이다. 자신의 실수로 정서에 삿된 영향을 끼치고 싶지는 않았다.
잠시 고민하던 서연이 입술을 뗐다.
“화련아.”
“네.”
“언젠가 어머니를 뵈기로 하지 않았니. 그때가 되면 네 행적을 고스란히 전해드려야 할텐데, 그때를 위해서라도 신녀문의 대사저에 걸맞는 언행을 가지는 것이 좋을 듯하구나.”
순수한 걱정에서 한 말이다.
날때부터 부친을 여의고, 병으로 모친마저 떠내보낸 아이다.
그런데도 이렇게 잘 자랐다.
앞으로도 지금처럼만 커줬으면 하는 마음이 강했다.
곧 화련이 입술을 다물었다.
십 년 뒤에 돌아가기로 약속했던 것을 그제서야 떠올린 것이다.
“……가기 싫은데요.”
땅에 기는 듯한 목소리로 말했다.
십 년이면 스승님의 무학의 일부조차 제대로 배우지 못했을 것이 훤히 그려져서 그랬다.
옆에서 사레들린 소리가 들렸다. 당소소였다.
눈을 크게 뜬 채로 화련을 응시하다가 급히 어디론가 달려갔다. 곧 당과 하나를 사들고 돌아왔다.
“사저, 이거 드시고 힘내십시오.”
“…….”
바람을 타고 유혼의 웃음소리가 들리는 것은 기분 탓일 것이다. 화련은 괜시리 미간을 좁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