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삭월이 떠오른 밤이다. 달이 완전히 가려진 탓에 밤하늘은 칠흑과도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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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수들이 가장 활발히 움직이는 때이기도 했다. 허나 대방파의 수장이라도 되지 않는 이상, 북경의 무사들을 뚫고 내성에 당도하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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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태자의 침소는 늦은 밤임에도 빛을 뿜어내고 있었다. 침상 대신 탁자에 앉은 그의 손에는 근시일에 처리해야 할 문건들이 자리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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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더미처럼 쌓인 문건들을 보고도 평온하기 그지없는 얼굴을 짓는 황태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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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실의 무공을 극성까지 익힌 그였다. 일반인과는 차원이 다른 체력을 지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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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수한 혈통도 한몫했다. 그의 부친이 여든이 훌쩍 넘은 나이에도 전장을 휩쓸 수 있는 것도 그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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붓을 바삐 움직이던 황태자가 뒤도 돌아보지 않고 입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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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어오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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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 전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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곧 문이 열리면서 약관에 불과한 듯한 외모를 가진 사내가 모습을 드러냈다. 뾰족하게 튀어나온 귀가 청목족이라는 사실을 가감없이 드러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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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제의 어린 시절 스승이자, 현 태자의 조언자인 한림원 대학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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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무를 말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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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미건조한 음성이었다. 공기가 빠르게 메마르는 듯했음에도, 대학사는 내색하지 않고 고개를 조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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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검대주가 서신을 보냈사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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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급이라는 말은 굳이 꺼내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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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십 년을 부친을 대신하여 국정을 도맡은 탓에, 한 마디를 듣고 열가지 속뜻을 깨닫는 경지에 다다랐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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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무를 겸비한 고관대작들조차 노련하기로는 황태자에 미치지 못할 정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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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창의 일을 끝맺은 모양이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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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태자가 중얼거리며 서신을 건네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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좁혀진 미간 너머로 권태로움이 더없이 드러났다. 서신을 읽어 내려가다 다시 느릿하게 입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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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상이 천명단주와 처음 마주했을 때의 일화를 아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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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자기 그 이야기를 꺼내는 진의가 무얼까. 대학사는 그런 의문을 품는 대신 대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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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신도 그 자리에 있었습니다. 당연히 기억하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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늙은 황제가 아직 어린 황자였을 시절의 이야기다. 청목족인 대학사를 제외하고는 그때의 일을 기억하는 이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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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머지는 전부 입에서 입으로 전해들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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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대자들이 절대자가 아니었을 시절의 이야기니만큼, 당연히 듣고 싶어하는 이들이 많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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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이야기를 가장 많이 들었던 사내가 눈 앞의 황태자였다. 막 말문이 트였을 때부터 부친과 황실 보검의 인연에 관한 이야기를 즐겨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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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어린 나이부터 충신에 대한 동경을 품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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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싯적에는 천명단주를 따라다녔지. 황상을 뒤따라 황위에 오르면 그때 나의 검이 되어달라고 부탁하고 다녔다. 그때는 그것이 부끄러운 일인 줄도 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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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태자가 서신을 읽어내려가며 작은 미소를 지었다. 어딘가 마음에 드는 구절이라도 있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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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는 이해가 가지 않았지. 체면을 깎아서 천명단주의 충심을 얻을 수 있다면 이득이라고 생각했으니. 허나, 세상일이라는 것이 그리 간단하지 않더군. 그는 황실의 검이기 전에 황상의 검이었지. 하루는 내 면전에서 충신불사이군(忠臣不事二君)의 고사를 입에 담더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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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신은 두 임금을 섬기지 않는다는 일화. 제나라의 충신 왕촉이 연나라의 대장군인 악의의 권유에도 항복하지 않고 목을 매달았다는 일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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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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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개 황자의 말이라 무게가 담기지 않아 그리 말했으리라 짐작했다. 허나 형제들을 몰아내고 다시 가서 물어도 대답은 변하지 않았지……. 그때서야 깨달았다. 언젠가 황위에 오르더라도 천명단주는 나의 검이 될 수 없겠노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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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태자의 말이 이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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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파, 세가, 사마련, 마교……. 고수들은 두 손으로 담을 수 없을 만큼 많으나, 절세고수는 고작 다섯이다. 한 번 출수하여 천하를 대적할 수 있는 이들 중에 하나조차 품지 못한 자가 어찌 황제라는 단어를 입에 담을 수 있을까. 당장 자존심 높은 호족들부터 인정하지 않겠지. 천하가 인정하게 하려면 결국 뜻을 함께하는 절세고수가 있어야 한다. 아니면 아예 황상과도 같은 힘을 가지거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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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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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혹에 가까운 세월을 살아오며 어린 시절의 순수를 잃었던 황태자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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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에는 자조하는 듯 하였으나, 들을수록 아니라는 것을 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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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제가 되겠다는 포부를 드러낸 것이나 다름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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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하, 암검대주가 무엇을 적어 올렸는지 소신이 확인해봐도 되겠나이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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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나 태자가 고개를 가로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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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언을 구하려면 보여주어야 마땅하나, 그러고 싶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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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말하며 서신을 정성스럽게 다시 포장하여 품 속에 집어넣었다. 짙은 미소를 품은 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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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제의 피를 짙게 이어 수많은 이들을 숙청한 황태자와 동일인이라고는 믿을 수 없을 정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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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저리 극단적으로 바뀔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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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생에 가까운 세월을 살아온 대학사도 경험하지 못한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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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 같아서는 뇌옥의 온갖 죄수들을 사면하여 내보내고 싶은 심정이다. 황상께서도 이러한 심정이셨을까. 아니지, 그 때의 천명단주는 이만한 고수가 아니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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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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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세고수중 하나가 충성을 맹세하기라도 한 것일까. 허나 마땅한 이가 떠오르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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혈사를 겪은 남궁가주는 가문을 지키기 위해 맹주 자리조차 거절하고 안휘에 남은 인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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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당의 검선은 장문인 자리에서 벗어나 천하를 주유하기 바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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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마련주와 마교주는 말할 것도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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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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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태자는 생각에 잠긴 대학사의 얼굴을 보며 미소를 띄웠다. 신하가 속으로 무엇을 상상하고 있을지 짐작이 갔기에 더욱 즐거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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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을 주어야 할까. 이런 적이 없어 조심스럽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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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마련의 악적들을 몰아내며 천명검을 자처했다 들었다. 참으로 과분한 선물을 받았다. 어찌 갚아야 할지 가늠이 가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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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초를 대하는 인품도, 재물을 탐하지 않는 심성도 마음에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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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렵구나. 어려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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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나 그러한 고민을 하는 것조차 즐거웠다. 황태자는 제가 어떤 표정을 짓고 있는지도 모른 채로 입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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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사는 이만 나가 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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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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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사는 그 자리에서 돌아섰다. 오늘 일을 입 밖으로 내서는 안된다는 결심을 한 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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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관대작이기 전에 황실의 신하였다. 다음 황제가 될 것이 확실시된 태자의 심기를 거스를 이유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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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태자의 침소는 아주 오랫동안 불빛을 내뿜었다. 나중에 시비들에게 전해 듣기를, 그날 해가 뜰때까지 불이 꺼지지 않았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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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통 신공에 해당하는 무학은 익히기가 매우 복잡하고 까다롭다. 오성과 재능은 당연한 것이고, 뛰어난 스승까지 뒤따라야 겨우 대성할 수 있었다. 그조차도 십 수년은 족히 전력을 다해야 하는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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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공이라 칭하기에 부족함이 없는 심법이었다. 비연천공을 읽은 당소소는 그 사실을 곧장 깨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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움직이면서 운기할 수 있으니 동공이요, 법가와 도가의 깨달음을 담았으니 구파의 무학에 견줄 만했다. 또한, 정종무공이라 믿기 어려울 정도로 토납 역시 신속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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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일한 단점은 너무 어렵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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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뜻이 너무 심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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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결 한 문장을 깨치기가 너무 복잡했다. 나름 사천 제일기재라 불렸는데도 그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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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전이 전신에 있는 것처럼 생각하라니. 스승님은 상중하 단전에 구애받지 않기라도 하시는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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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만한 심공을 하루 만에 입문할 수 있다는 것이 도저히 믿겨지지 않았다. 해봤자 구결의 해석을 도와주는 것이 전부라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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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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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미혈(鳩尾穴)을 중심으로 전신에 원을 그린다고 생각하려무나. 익숙해질 때까지 반복할 터이니, 전신 세맥의 흐름에 집중하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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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연이 곧장 진기도인부터 시작하자 생각을 바꿔먹을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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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대주천부터 하자꾸나. 기의 흐름을 온전히 느껴야 한단다. 옥침혈부터 선환혈, 백회혈, 인당혈, 단중혈……. 되었으면 조금씩 범위를 넓혀가자꾸나. 십이정경, 기경팔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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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소소는 전신 세맥을 흐르는 스승의 진기를 느끼면서 경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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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전이 실시간으로 커지고 있다. 말이 진기도인이지, 실상은 격체전력이나 다름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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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디 격체전력은 타인에게 기운을 전가하는 수법이기에 엄청난 체력 소모는 물론이고, 자칫하면 경지 하락으로 직결되는 위험천만한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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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도 서연은 자신의 독기를 통제하는 수준을 넘어, 운기의 경로로 온전히 이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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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수가 된 아이의 전신을 허공섭물로 통제하여 억지로 걷게 하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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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를 언급했던 이유를 그제서야 이해했다. 천치라고 해도 이와 같은 방식이라면 심공의 묘리를 깨칠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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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네가 해보려무나. 아니지, 거기서는 명문혈(命門穴)을 더 굳건히 해야 한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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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연은 당소소의 어깨에 손을 얹은 채로 움직이는 기운을 주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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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그렇지. 완전한 원을 이루면 외압으로부터 벗어나 온전히 신체를 관조할 수 있게 된단다. 그때가 되면 타인의 진기가 감히 네 육신을 침범할 수 없게 될 것이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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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중수법이 통하지 않는 육체가 된다는 말을 들은 직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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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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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소소의 심장이 울리며, 체내의 기운이 크게 회전했다. 폭포에 놓인 수차와도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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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기가 회전하며 체내의 수차를 돌리고, 그 수차가 다시금 정기신에 힘을 불어넣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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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성하면 네가 기운을 불어넣지 않더라도 홀로 회전할 것이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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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공을 운용하는 것만으로도 정기신이 나날이 강해진다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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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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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나 당소소는 대답하지 못했다. 수백 개에 달하는 전신 세맥의 흐름을 하나하나 의식해야 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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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 순간 막대한 정보를 처리해야 했다. 도가와 법가의 따스한 기운이 아니었더라면 뇌가 타버렸을지도 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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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걸 스승님은 매 순간 펼치고 계신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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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의 경지라 믿기 힘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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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중수법이 통하지 않는 육체가 된다는 것도 이해가 되었다. 전신의 흐름을 온전히 의식하고 있는데, 어찌 타인의 진기 따위가 스며들 수 있단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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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가락도 못 움직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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압도적인 정보량이 쏟아지는 탓이다. 손가락 하나 움직이기 위해 통제해야할 세맥과 근육이 이렇게 많았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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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승님의 제자가 화련 하나뿐이었던 것도 이해가 되었다. 이건 천하에 이름을 날릴 기재여야만 입문할 수 있는 무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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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렸을 때부터 독을 다루며 육체 공부를 성실히 했기에 망정이지, 아니었더라면 십 년이고 백 년이고 입문하지 못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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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승님, 너무……. 너무 어려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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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을 연 것은 화련이었다. 놀랍게도 서연은 제자 둘의 진기도인을 동시에 하고 있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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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련에게는 전음으로, 당소소에게는 육성으로 구결을 해석해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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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기서 한단계 더 나아가 타인이 엿듣지 못하도록 주변에 기막까지 펼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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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보다 할만하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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놀라운 것은, 그 모든 과정을 어렵지 않게 해냈다는 것이다. 서연조차 스스로의 능력에 놀랄 정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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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도 대문파의 장문인은 될 듯한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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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백히 비교해볼 대상이 없으니 그리 추측할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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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삼십 년을 더 몰두해야 절세고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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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순히 깨달음만으로는 오를 수 없는 경지인 듯했다. 그것이 아니라면 천하에 다섯밖에 없는 것을 설명할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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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 스승님. 일으켜 세워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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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련이 양 손을 겨우 뻗으며 그렇게 말했다. 서연은 그런 화련의 손을 부드럽게 잡고 끌어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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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승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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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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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만 멈춰도 될까요. 생각할게 너무 많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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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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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이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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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제서야 화련이 한숨을 푹 내쉬며 몸을 부르르 떨었다. 전신이 땀으로 가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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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연은 혹시나 하여 당소소를 응시했다. 화련보다 상단전이 덜 발달했던 탓일까. 당소소는 입을 여는것조차 벅차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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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을 깜빡이는 것이 고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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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연은 마치 구조신호를 보내듯 다급히 깜빡이는 눈동자를 보며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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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소도 멈춰도 된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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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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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대로 뒤로 자빠졌다. 맨땅인 것을 신경쓰지 못할만큼 지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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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연은 반쯤 탈진한 제자들을 보며 다시금 자신의 재능이 얼마나 엄청난지를 깨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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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 안휘성 근처 산에 틀어박혔을 때만 생각해도 그랬다. 누가 가르쳐주지도 않았는데 무의식 중에 신공으로 호흡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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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기에 열반을 깨달은 육체라는 무극지체까지 더해졌으니, 당장도 깨닫지만 못했을 뿐 무의식 중에 펼치고 있는 무학이 참으로 많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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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생각하면 무위를 찾아간다는 표현이 완전히 틀린 말은 아니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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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그것보다는 빨리 절세고수가 되야 할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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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십 년은 길어도 너무 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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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머니가 다 되어 고수가 되고 싶지는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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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연은 양 손으로 제자들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그런 생각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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뭇 초고수들이 들었다면 주화입마에 들고도 남을 소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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