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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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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동처럼 번져나간 바람이 진기로 이루어진 꽃잎들을 사방으로 흩날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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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산의 매화와도 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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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돌아 도망치던 좌중은 멈춰선 채로 침묵했다. 경외와 흥분, 상황을 명확하게 인지하지 못한 이들부터, 편린이나마 읽어내고 경탄하는 이들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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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체로 홀린 것처럼 미풍을 타고 대리석으로 가득했던 바위산이 도화로 물드는 것을 바라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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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금 전까지 죽음을 피해 다급히 도주하던 군중들이라고는 믿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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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인으로서의 감흥을 드러내는 호위들과는 달리, 늙은 상인들은 덜덜 떨리는 손으로 제 발치에 살포시 떨어진 꽃잎을 집어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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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아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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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이 닿는 순간 환상처럼 흩어진다. 주름으로 가득한 눈동자가 일순 동심을 머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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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파의 도인들이 신선과 같은 취급을 받는 시대다. 세상의 때로 찌든 상인들이라지만, 그들도 순수했던 시절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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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이들은 상기된 표정이다. 채석장 내부로 들어오지 못하고 울타리 바깥을 얼쩡거리던 이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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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중에는 부모를 따라 놀라온 소년 소녀들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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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나는 제대로 못 봤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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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아름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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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 아버지를 따라서 화산파에 가본 적이 있었는데, 그때도 이런 건 못 봤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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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타리에 팔을 걸터 서서 자기들끼리 이야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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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장한 관인들은 아이들을 제지하지 않았다. 그들조차 도화로 가득한 능선을 보며 침음을 삼키고 있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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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문파의 장문인이나 보일 법한 무위였다. 경악하지 않는 자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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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장로 급이라더니, 이건 그 수준이 아니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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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장 구파가 십파가 되어도 이상하지 않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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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대적으로 약소한 문파가 밀려나겠지. 구파는 그대로 구파로 남을거요. 신녀문이 거기에 추가될 뿐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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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걸 검격이라고 볼 수 있소? 술법에 가깝다고 봐야 할 듯한데. 순수한 공력의 발경만으로 이만한 일대에 영향을 미친다는 건 아무리 생각해도 말이 되지 않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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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을 차리고 상황을 냉정히 분석하는 사람들이 하나둘 생겨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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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그들은 돌가루와 먼지로 가득한 재해의 가운데를 향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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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청난 신위를 드러냈다고는 하나, 신녀문주의 안위는 또 다른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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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해에 맞서다 회생 불가의 상처를 입었다고 해도 이상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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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 둘 환상처럼 흩어지는 도화경이 그러한 생각을 이끌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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묘한 느낌의 적막이 맴돌았다. 그런 생각을 품은 이들이 늘어나기 시작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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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도 그럴 것이, 일대를 완전히 물들였던 도화색 진기가 완전히 사라졌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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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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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관 범화는 홀로 다른 생각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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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이 자리에서 서연이 절세고수임을 알고 있는 유일한 외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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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의 공부가 대단하구나. 이 와중에도 힘을 조절하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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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해로부터 민초를 지키기 위해 전력을 드러내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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힘을 드러내지 못해 안달이 난 무도한 무림인들과는 그 결부터 달랐다. 실로 도인이라 칭하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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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태 속세와 떨어져 살았던 것도 이해가 되었다. 타고난 성품 자체가 도사들의 이상향에 가까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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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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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녀문주가 납검하는 소리가 선명하게 울려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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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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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대를 뒤덮고 있던 흙먼지가 한순간에 흩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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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초들은 고개를 들고 앞을 바라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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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포를 흩날리는 여인이 시야에 들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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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해에 죽립이 휩쓸리기라도 한 것일까, 어깨 아래로 길게 내려간 머리칼이 잔잔하게 물결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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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화경의 선녀들이라고 한들 저리 아름다울까. 연홍발의 고아한 자태가 돌산에 홀로 피어오른 수련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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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못에서나 피어나는 꽃이 돌산에서 피어오르다니. 있을 수 없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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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데 모두가 그런 생각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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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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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탄하지 않는 이가 없었다. 등지고 서있어 얼굴을 보지 못했는데도 그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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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태만으로도 고아함이 드러났다고 해야할까. 자리한 대부분이 산전수전을 겪은 상인들이라 망정이지, 민초로 가득했다면 선녀라 추앙했을 것이 훤히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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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죽했으면 관인들조차 그 사실을 부정하지 못할 정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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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파식을 여는 순간 천하가 진동하겠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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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파가 다시 한번 고강해지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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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화검법의 원류라도 되는가. 어찌 저리 고강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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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히 아류라는 말을 입에 담지 못했다. 경지에 이른 검법을 온전히 읽어낼 만한 고수가 한 명도 없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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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켜보는 이들 가운데에는 개방의 거지들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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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만 개방도라고 하였다. 천하에 그들이 자리하지 않은 곳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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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해에 닿지 않을 암벽 위에 여유롭게 퍼질러 앉아 있던 그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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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부 너덧개의 매듭을 가지고 있는 고수들이었다. 최소 호법, 높은 이들은 총타주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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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병들이 상주하고 있었기에 대놓고 접근하지 않았다. 멀찍이 떨어져서 구경하듯 자리했던 것은 그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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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부 휩쓸려 죽을 줄 알았건만. 저건 순 괴력난신 아닌가. 어찌 여인의 몸으로 저만한 존재감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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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지 하나가 감탄하듯 말했다. 매듭이 다섯 개가 달린 총타주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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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면 천명검단주가 도착하기 전까지 시간을 끈 사람이 신녀문주였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드는군요. 종주들을 상대로 승리를 거머쥘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수세로 일관한다면 버티기는 어렵지 않을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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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비에 치중된 검법인 듯한데. 종남의 천하삼십육검과 우위를 겨루면 볼만하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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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목만큼은 웬만한 무림인보다 나은 그들이었다. 맨몸으로 천하를 주유하며 온갖 것들을 마주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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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문만 무성한 작자들의 실체를 마주하고 실망한 적이 적지 않았다. 신진 고수에 대한 평가가 박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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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에도 종남의 절세무공에 견줄만하다는 말을 입에 담았다. 박하게 평가했는데도 그 정도라는 의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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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문파의 장문인과 세가의 가주, 팔천의 종주, 마교의 칠마, 그리고 천명검의 대주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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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은 사람이 아니다. 신선이나 재해로 봐야 마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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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금의 신녀문주도 그들과 같은 선상에 올릴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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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하가 격변하겠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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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의 시선 끝에는 신녀문주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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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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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연은 잔해로 가득한 산에서 사뿐히 내려섰다. 중간에 파편에 스치기라도 한 것일까. 오랫동안 쓰고 다녔던 죽립을 잃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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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나 서연은 그런것에 신경쓰지 않았다. 일전에 펼쳤던 절초를 되새기느라 정신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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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완할 점이 많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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뺨에 생긴 생채기만 보아도 그랬다. 완벽한 검법이라 부르기에는 무리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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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을 꿰뚫었던 점창 장문인의 검법을 떠올렸다. 그라면 어떻게 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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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수에 꿰뚫지 않았을까. 어쩌면 지반에 거대한 구멍을 뚫어내 재해를 막아냈을 수도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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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번 겨뤄보면 확실히 알 듯한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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뭇 고수들이 대련이나 도장깨기 따위를 하고 다니는지를 이해했다. 실전에서만 얻을 수 있는 깨달음이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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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나 아쉬움보다 향상심을 먼저 느꼈다. 명백한 변화였다. 그녀도 모르는 사이에 강호인의 사고방식을 체득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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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 스승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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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련이 다가와 옷자락을 붙잡고 나서야 현실로 돌아왔다. 어린 제자가 걱정이 가득한 얼굴로 저를 올려다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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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에는 죽립을 든 채였다. 근처 사람들에게서 받아온 모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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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맙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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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연은 화련의 머리카락을 쓰다듬으며 죽립을 썼다. 그림자로 얼굴을 가리는 것이 고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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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화색 머릿결은 여전히 그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었다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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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나라의 서시(西施)가 저러했을까. 면사로 가린 이유를 알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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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추시대의 경국지색을 입에 담았다. 그만큼이나 현실감이 다소 멀어지는 자태였다. 무인들이 힐끗거리는 것도 무리가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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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관을 하루에 몇 번씩이나 놀래키시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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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관 범화가 그리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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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남에 적을 두셨다고 들었습니다. 언젠가 정식으로 개파를 선언하신다면, 그때 찾아 뵙고 싶을 정도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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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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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변 상인들이 경악했다. 북경의 실세라는 수련궁교두다. 동창에게 규화보전을 가르치는 고수가 바로 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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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이가 개파식에 참석하는 것을 언급했다. 상대를 대문파의 장문인으로 대하지 않고서는 불가능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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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혜를 입었습니다. 재해에 휩쓸려 죽어야 했을 관병들도 온전하고, 오랜 세월을 들여 재건해야 했을 채석장도 지켜냈으니, 재화로 갚을 수 없을 정도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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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야할 일을 했을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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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말에 범화의 미소가 더욱 짙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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겸양이 아니라 진심으로 말한 것을 읽어냈기에 그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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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에도 거절하시면 본관은 후안무치(厚顔無恥)한 사람이 됩니다. 호의가 아니라 응당한 대가를 받는 것이라 생각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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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손짓하자 옆에 있던 시종들이 서연에게 무언가를 건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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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받아주시겠나이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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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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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금 전에, 교두께서 말씀하셨던 사항들을 적은 문서입니다. 특상품의 대리석과 실내 경매장의 출입 권한, 고르신 물품들을 대신 결제하고 신녀문주께서 원하는 곳에 운반하겠다는 서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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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까부터 급히 무언가를 적고 있나 했더니, 이것을 작성하고 있었던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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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사태가 코앞까지 다가오고 있는 상황이었거늘, 이 정도 담력이 있어야 황실에 머무를 수 있는 것일까. 다른 의미로 경외심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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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연은 이번에는 거절하지 않았다. 이렇게라도 은원을 정리하는 편이 더 낫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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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연을 지켜보며 고개를 가볍게 끄덕이던 범화가 입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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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종들을 남겨놓고 가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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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 가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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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적들을 잡아야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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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화가 자연스럽게 발을 비튼다. 천천히 몸을 비틀면서 관군들을 이끌고 가는 모습. 명백한 고위 관료의 모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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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 다시 뵙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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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경매장 바깥으로 걸음을 옮기자, 그새 무장을 마친 무관들이 그를 뒤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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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대에 자리하던 무관들이 사라진 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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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연은 제자들의 어깨에 손을 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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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망치지도 않고 스승을 지켜보던 과분한 아이들이다. 기특한 감정과 미안함이 동시에 솟구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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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하루종일 각예를 하자꾸나. 일단 마음에 드는 재료부터 원없이 고르려무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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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시에 제자들에게 전음을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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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법도 배우자꾸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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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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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제자의 얼굴에 한순간에 이채가 돌았다. 당소소야 본래가 무림인이었으니 그렇다 쳐도, 화련마저 무학에 이 정도로 관심을 보일 줄은 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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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에는 조각보다 무학을 자주 드러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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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자들은 스승의 등을 보며 자란다 했으니, 무학에 지대한 관심을 보이는 것도 어찌보면 당연한 일이라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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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연 일행은 어느새 시종의 안내를 따라 내부 경매장으로 들어섰다. 생각보다 넓었는데, 재해가 일어난 직후라 그런지 내부에 사람은 한 명도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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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해를 틈타 황실의 물건을 훔치려는 도적들이 생기기 마련. 현재 이곳에 자리한 무관들은 보화와 함께 산사태에 휩쓸리기를 각오한 자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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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나 사람인지라 죽음을 기꺼이 받아들였을 리가 없었다. 신녀문주를 은인이라 생각하는 자들이 적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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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도 마땅히 들어갈 권한이 있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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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으로 들어가게 해주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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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허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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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기에 더욱 열성적으로 입구를 통제했다. 최대한 신녀문주의 편의를 봐주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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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연을 안내하던 시종도 멀리 물러나 있었다. 서연을 방해하지 않기 위함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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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승님,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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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소소였다. 그녀는 이전보다 약간 굳은 얼굴로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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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당문의 도반삼양귀원공(導反三陽歸元功)을 익혔습니다. 양기 계열의 세 가지 독기를 몸에 담는 심법이지요. 스승님의 심법은 분명 막대한 도기를 품고 있을텐데, 제자의 오성이 부족하여 완전히 제어할 자신이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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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를 독인으로 만든 심법이기도 했다. 그때도 주화입마를 겪은 탓에 사경을 헤맸다고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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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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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지않게 머리와 고개를 축 늘어뜨렸다. 화련이 자그마한 손으로 그녀의 등을 툭툭 두드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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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매, 스승님이 해결해주실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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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련은 그리 말하며 서연을 올려다봤다. 똘망똘망한 눈동자가 제 말이 맞지 않느냐고 묻는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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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연은 고개를 끄덕였다. 전신을 맥동하는 심공의 기운을 온전히 느끼면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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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면 충분할 거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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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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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뒤, 신녀문주의 소식이 북경에 닿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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