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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12-14 21:31:57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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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리가 오랜만에 북적거렸다.

길을 오가는 행인 열 중 아홉이 상인이었다. 본디 대리석 채석장은 재물을 좇는 자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 법이지만, 보름 만에 열린 경매에 그 열기는 더욱 뜨거웠다.

“이번에 발견된 석맥(石脈)이 그렇게 크다고 들었소만.”

“산 전체가 대리석으로 가득하다고 하더이다.”

인부들이 굵은 밧줄로 큼지막한 대리석을 묶고, 통나무를 깐 바닥 위에서 구령을 외치며 한 치의 오차 없이 돌을 날랐다

성인 남성의 몇 배는 되는 질 좋은 대리석이 산처럼 쌓여갔다. 외지인들에게는 그것조차 큰 구경거리였다.

“이번에는 서역인들도 많이 참여했군요.”

대화 소리가 어찌나 큰지, 송월 노인의 목소리가 겨우 닿을 정도였다.

곳곳에 칼과 창을 든 무관들이 경계를 서고 있었다. 애초에 대리석은 시장에서 흔히 사고팔 수 있는 물건이 아니었다. 가장 큰 거래처인 황실의 눈을 피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행색이 추레한 이들은 접근조차 못했다. 채석장 주변을 기웃거리는 이들만 족히 수백이었다.

“나리! 제발 들여보내 주십시오! 소인은 저 멀리 절강에서 왔는데…….”

“투옥하기 전에 물러가라. 두 번 말하지 않겠다.”

경매장을 오가는 상인들은 모두가 부호라 칭하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그들의 행색 자체가 곧 신분이었다.

자연스레 그들을 호위하는 무인들의 수준 또한 높을 수밖에 없었다. 검집에 손을 얹고, 여차하면 출수할 듯한 기세를 내뿜는 자들이 적지 않았다.

신분 확인은 오죽 철저한지, 들어가지도 못하고 쫓겨나는 상인들이 삼 할에 달했다. 사마련 팔천이 패퇴한 지 달포가 겨우 지난 시점이다. 이처럼 철저한 검문은 당연한 일이었다.

하지만 그런 이들이 서연 일행은 단번에 들여보냈다. 신녀문주의 위명이 관에까지 퍼진 덕분이라 짐작했다.

‘온갖 시선이 다 끌리는구나. 어찌하여 절세고수들이 두문분출하는지 알겠다.

경외와 호승심, 그 둘이 반반으로 갈려 모든 이들의 눈빛에 깃들었다. 명색이 상단의 호위 무인들이었으나, 그들조차 기세를 감추지 못했다.

주변의 행인 태반이 남성이었던 탓도 있었다. 여인만 셋인 서연 일행에게 시선이 끌리는 것은 당연한 노릇이었다.

“여인만 받는 문파라도 되는가? 아미파처럼?”

“저만한 무인이 어찌하여 이런 곳에 나타났단 말인가?”

“예술에 취미라도 있나보오.”

그들이 생각하기에 신녀문주는 정파의 초고수였다. 그중에서도 도가에 속하는 자였다.

일반적인 도인들이 사치와 거리가 멀다는 것을 생각하면, 작금 신녀문주의 행보는 그들이 알던 통념 속 도사와는 사뭇 달랐다.

허나 감히 그 사실을 입 밖에 내는 이는 하나도 없었다. 서연의 행보가 도사치고는 패도적이라는 소문을 익히 전해 들은 까닭이었다.

―일문의 장문인 정도는 나서야 우위를 점할 수 있다고 하던데.

―당장 점창파의 벽호검이 자신보다 몇 수 위라 판단했다 하더이다. 장문인 급은 몰라도, 최소한 대문파의 대장로보다 윗줄로 봐야 마땅하겠지.

다들 서연의 눈치를 보며 전음으로 대화를 나누기 바빴다.

서연은 그런 그들의 시선을 아무렇지 않게 받아넘겼다. 어떤 크기의 대리석을 사야 할지 고심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바빴기 때문이다.

‘기왕이면 하남까지 가져가고 싶은데.

그래도 명색이 문파인데, 그럴듯한 조각품이 하나쯤은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했다.

야외 경매장에 놓인 대리석들은 크기와 가격이 천차만별이었다. 가장 하품의 대리석조차 금자 열 개를 거뜬히 넘었다.

상상을 뛰어넘는 가격이었다. 안 그래도 암석 중에 최고로 치는 대리석이다. 모든 대리석을 통틀어 이곳 대리에서 나오는 대리석을 최고로 쳤다.

‘여태 모은 돈을 오늘 전부 쓸 지도 모르겠구나. 자금이 아슬아슬하겠다.

수 장에 달하는 거대한 대리석을 구매하려던 당초의 계획을 곧장 철회했다. 적당히 장정만한 크기의 대리석을 구매하는 것으로 타협하기로 마음먹은 순간이었다.

“근래에 위명이 자자하신 문주님을 이리 뵙는군요.”

미성이 가득 담긴 목소리가 장내를 울렸다. 고관이나 쓸 법한 고풍스러운 말투가 자연스럽게 흘러나왔다.

화법 자체가 굉장히 능숙했는데, 목소리를 듣고도 성별을 헤아리기가 힘들었다.

환관이었다. 일전에 악산 부윤에게 황태자의 전서를 건넸던 장본인이었다.

명백히 고관으로 분류되는 그가 이곳을 방문한 연유가 무엇일까.

서연을 보고 눈웃음을 짓던 환관의 시선이 당소소와 화련에게로 옮겨갔다. 옷태 너머로 드러난 육체의 결을 흝어보고는 감탄사를 토해냈다. 무학의 수준을 가늠한 것이었다.

서연 역시 그러한 눈길을 느꼈다.

‘환관들은 저런 것도 할 수 있구나.

불편함보다 먼저 놀라움을 느꼈다. 범상치 않은 안법임을 직감했기 때문이다.

작정하고 전신을 살폈다면, 그들이 익힌 무공의 운용법까지 짐작했을 법했다. 허나 환관은 제자들의 손만 가볍게 훑어보고는 그만두었다.

“본관은 범화(范華)라 합니다. 수련궁교두(修練宮敎頭)의 직책을 맡고 있지요.”

“신녀문주, 서연입니다.”

서연은 담담히 포권했으나, 부복하지는 않았다. 상대가 자신을 일개 무인이 아닌 문주로 대했기 때문이다. 여기서 몸을 굽혔다가는 오히려 상대를 무시하는 꼴이 될 수도 있었다.

곧 범화는 서연을 향해 눈웃음을 지었다.

“제자분들의 자질이 너무 훌륭하여, 본의 아니게 기도를 훑는 실수를 범했습니다. 이를 어찌 만회해야 할지…….”

동창의 안법으로도 무학을 제대로 흝을 수가 없구나. 범화는 그렇게 속으로 뇌까렸다.

기껏해야 당랑암화에게서 당가의 무학 몇 가지를 읽어낸 것이 전부였다.

황태자의 전서를 사천 일대에 전달하고 운남에 도달했다. 신녀문주가 황실의 보검을 자처하는 듯한 말을 꺼냈다는 이야기를 전해 들은 후였다.

황태자가 그 말을 전해 듣고 어떻게 반응할지, 범화의 눈에 선했다.

그는 수십 년이 넘는 세월 동안 황실을 섬겨온 충신이었다. 당연히 신녀문주에게 호의를 느낄 수밖에 없었다.

허나 명분도 없이 호의를 건넸다가는 신녀문주의 성정상 당연히 거절할 터. 그렇기에 안법으로 제자들의 육신을 훑는 무례를 저질러 억지로 흠을 만들어내고자 하였다.

무림인들의 관점으로 보면 엄연한 무례였다.

헌데 제자들의 실력조차 제대로 가늠하지 못할 줄은 몰랐다. 검법을 익히고 있다는 사실만 얼핏 알아냈을 뿐이었다.

‘검법까지 새로 창안했단 말인가……?

일인지하 만인지상에 위치한 황태자가 절세의 심공이라는 말을 입에 담았다. 황족들이 익히는 심공에 준한다는 뜻이나 다름없었다.

그것만으로도 대종사라 부르기에 부족함이 없거늘, 한단계 더 나아가 검법까지 창안한 듯했다.

범화는 장차 뒤바뀔 천명검의 편제를 짐작하며 서연의 호의를 사기 위해 다시금 입을 열었다.

“이곳에 찾아오신 것을 보면 필시 대리석을 구하기 위함이라 봐야겠지요. 특상품 이상의 대리석들은 이곳이 아닌 실내에서 거래된답니다. 고관대작들이나 출입할 수 있지요.”

범화의 어조는 나긋나긋했다. 무엇보다 말투에 호의가 가득했다. 주변에서 힐끗거리는 행인들조차 그것을 느낄 수 있을 정도였다.

“특상품의 대리석은 기름 묻힌 천으로 닦지 않아도 광이 나지요. 그 중에는 불순물 한 점 없이 목련처럼 하얀 것들도 있답니다.”

“…….”

“아니면, 채석장에서 원하는 크기와 형태로 잘라가실 수 있도록 본관이 말을 해놓지요.”

“혹시 운반도 해주실 수 있겠습니까?”

“되다마다요. 다만, 크기가 다섯 장이 넘어가면 운남 밖으로 이동하는 데에만 보름이 넘게 걸린다는 사실만 알아주셨으면 해요. 그 이후에는 배에 싣고 장강을 따라 이동하겠지요.”

그야말로 청산유수와 같은 말솜씨였다. 천하에서 심계가 가장 깊은 자들만 머문다는 북경의 환관다웠다.

‘단순히 내가 신녀문주라서 이러는 것만은 아닌 것 같구나.

대가없는 호의처럼 보이지 않았다. 받지 않는 것이 마땅했다.

황실이 구파나 세가의 무인들을 사사로히 부렸다는 소문을 들어본 적은 없었으나, 조심하여 나쁠 것은 없어보였다. 그리 결론 내리고 입을 연 순간이었다.

“마음만 감사히 받도록 하겠습…….”

후두둑.

서연의 말이 멎었다. 온 산에서 돌부스러기가 떨어진 직후였다.

뒤이어 산맥 전체가 뒤흔들리는 듯한 굉음이 일었다.

콰과과광! 쩌저저저적―!

발밑의 진동을 느낄 것도 없었다. 당장 정면에서 바위산 자체가 산산히 부서져 내려오기 시작했다.

“산사태! 산사태다!”

“병장기를 챙길 시간에 물러나라! 휩쓸렸다간 시체도 못 찾는다!”

“호, 호위……! 나를 버리고 가면 어찌하는가!”

경사가 일반적인 바위산보다 몇 배는 가파랐다. 대리석을 캐는 것을 몇 백년 동안 반복했던 탓이다.

본래 토양과 섞여 황토색을 띄어야 할 분진이 돌가루와 같은 잿빛만을 토해내는 것만 봐도 그랬다.

서연은 곧장 제자들부터 살폈다. 화련을 업고, 소소를 옆구리에 끼고, 송월 노인을 등에 업히면…….

생각이 멈췄다.

황급히 도망가려다 넘어지는 이들이 눈에 밟혔다.

‘저러다 다 죽겠구나.

놀랍게도 범화는 아직 도망가지 않은 채였다. 실력에 자신이 있는 것일까. 그렇다기에는 실력이 뒤떨어져보이는 시종들 역시 그의 곁에 자리하고 있었다.

“……벽력탄이라도 터뜨린 듯하군요. 대명의 유능한 관리들이 이를 계산하지 않았을 리 없을진대.”

산 꼭대기를 바라보며 미간을 강하게 좁혔다. 일전에 사람 좋은 미소를 지었던 사람과 동일인이라고 믿기 힘들 정도였다.

본래 화약은 황실에서 엄중히 통제하는 물건이었다. 시중에 저리 풀리는 일이 있어서는 안된다는 뜻이다.

역적이라 칭해도 모자람이 없었다.

“물러나야겠군요. 신녀문주도 제자들을 데리고 속히 피신하는 것이.”

분노를 삭이려는 듯, 범화의 목소리가 낮게 깔렸다. 허나 그는 끝내 말을 끝내지 못했다.

"……!"

옆에 서 있던 신녀문주가 사라졌기 때문이다.

그녀는 어느새 무너지는 산사태의 정면으로 나아가고 있었다.

재해라 부르기에 부족함이 없다. 산사태를 코앞에 둔 서연은 그런 생각을 했다.

생각하기 전에 몸이 먼저 움직였다.

십 장이 아득히 넘는 기암괴석들이 능선을 따라 빠르게 추락하고 있었다. 앞으로 수 초면 자신을 덮칠 것이다.

“스, 스승님……!”

제자의 다급한 외침을 뒤로하고 의식을 가다듬었다. 일전에 범화가 보였던 안법을 되새기는 것이다.

우웅.

근래 들어, 빈약한 상상력이 재능의 한계를 제한하고 있다는 생각을 자주 했다.

내로라하는 강자들을 상대하면서도 힘에 부쳤던 적이 한 번이 없었다. 자만할 것이 두려워 본신의 강함을 온전히 받아들이지 못했다.

정작 그러면서도 능력의 한계를 알아볼 노력조차 하지 않았다. 자만하지 않는 가장 좋은 방법이 그것이었는데도.

범화가 보였던 경맥의 흐름을 재현한다. 전신 혈도에 흐르는 기운이 양 눈에 집중되며 인지를 가속했다.

화악!

암석들의 추락이 더뎌졌다. 이전보다 세상이 느리게 보이는 것이다.

부족했다.

마음 속으로 직접 창안한 심공의 구결을 외웠다.

‘정중견진 보시자비(靜中見眞 普施慈悲).

소란에서 벗어났다. 사방을 가득 메웠던 소음이 한순간에 잦아들었다.

그리고 찰나에 내면을 관조하기 시작했다.

다음으로는 심공의 이름을 떠올렸다.

비연(飛鳶)의 연은 맹금을 뜻했다. 기러기처럼 세상을 자유로히 거닐기 위해서는, 먼저 솔개와도 같은 힘을 가져야 하기 때문이다.

여기서 말하는 세상은 하늘이다. 그렇기에 천공(天功)이다.

‘아.

깨달음이 사방에서 번뜩였다. 다룰 수 있는 진기의 양이 한순간에 늘어났다.

오죽했으면 강해지는 것이 아니라, 강함을 되찾아간다고 느꼈을 정도였다.

영겁과도 같은 찰나가 지나갔다. 눈꺼풀을 다시 들어올렸을 때, 기암괴석들은 이전보다 아주 조금 가까워져 있었다.

풍경이 한계까지 느려졌다. 얼핏 보면 멈췄다는 착각이 들 정도였다.

‘막을 수 있을까.

이번에도 고민하기 전에 손이 먼저 나아가고 있었다.

어느새 뽑혀나온 잔향이 도화를 머금었다.

다음 순간 서연의 팔이 흐릿해지더니, 산사태와 정면으로 충돌했다.

콰아아아아아앙!

산사태가 쏟아졌을 때보다 지면이 거세게 흔들렸다. 휘청이고 쓰러지는 이들이 적지 않았다.

파사삭!

잔향에 닿은 기암괴석들이 무수히 작은 조각으로 쪼개졌다. 먼지처럼 흩어지는 조각도 있었다.

사아아―

서연은 밀려나기는 커녕 오히려 한 걸음씩 나아가기 시작했다.

한 합에 거석들이 산산조각나는 광경이 서연의 시야를 느리게 스쳤다. 개중에는 뺨이나 머리에 실선을 새기는 것도 있었다.

서연은 당황하지 않았다.

제 한계를 목도하기 위해 다시금 잔향을 내질렀다.

도화와 맞닿을 때마다 돌가루와 꽃잎이 이지러졌다.

완성되지 않았던 무학의 절초가 그녀의 손끝에서 완전히 발아했다.

등을 돌려 도망치던 사람들이 벌떡 일어선 채 같은 방향을 응시했다.

"……!"

다시금 울려퍼진 굉음과 함께 산맥이 발악하듯 성벽과도 같은 기암괴석을 다섯 개나 토해내고.

촤아아아―!

서연의 검끝에서 피어오른 도화경이 일대를 통째로 집어삼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