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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화루의 으뜸은 단연 회화루주였다. 그렇다면 그 다음가는 2인자는 누구일까.
저마다 지닌 재주가 다르다 하나, 예화는 매 각주를 2인자라 여겼다. 인망은 두말할 나위 없었고, 당장 회화루주를 제외한다면 회화루에서 가장 강한 사내가 바로 매 각주였기 때문이다.
헌데 그런 매 각주가 허리가 끊어져라 굽신거리니, 자연스레 서연에게 경외심이 솟아날 수밖에 없었다.
저게 진짜 여고수라는 생각이 절로 들 정도였다.
이런 표현이 적절할지는 모르겠으나, 저리 펑퍼짐한 옷을 걸치고서도 도드라지는 굴곡을 숨기지 못하는 데에서 예화는 넘을 수 없는 벽을 느꼈다.
회화루에서 그런 방면으로 명성이 자자한 손 부인을 데려와도 상대조차 되지 않을 듯했다.
괜한 패배감을 느끼며 사다리를 오르자, 고관대작이라도 묵을 법한 화려찬란한 방이 그 모습을 드러냈다. 예화는 회화루에서 오랜 세월을 보냈지만, 이런 방이 있다는 것은 오늘에서야 비로소 알게 되었다.
주변을 조심스럽게 살피던 매 각주가 입을 열었다.
“바로 위층에 회화루주가 있습니다.”
서연은 예화가 완전히 올라서는 것을 확인한 후 입을 뗐다.
“이만한 현이라면 필시 관아(官衙)가 있을 터인데.”
“……허면 관아로 가서 포쾌들을 불러올까요.”
매 각주는 그렇게 말하면서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눈치껏 대답하기는 했지만, 흑도에 몸담은 무인에게 관아로 가라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모르지 않았기 때문이다. 허나 화양현의 관리들은 대부분 회화루주가 건넨 뇌물을 받아먹은 탓에 자신이 간다 한들 쉽사리 움직이지 않을 터였다.
자칫 심기를 거스를 수도 있었기에, 매 각주는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변명처럼 들리실지 모르겠으나, 저희 루주께서 포두에게 바친 돈이 적지 않아 관아에서도 선뜻 나서려 하지 않을 겁니다.”
자신이 가봤자 무의미하다는 말을 돌려 말한 것이었다.
권위적인 어투를 사용하는 것은 꽤 낯설었지만, 흑도를 상대로 굳이 얕보여 좋을 것은 없다 결론 내린 서연이 입을 열었다.
“무림맹이 오고 있다는 말을 덧붙인다면 나서지 않고는 못 배길 것이다. 화양현에 닿기 전에 이미 말을 끝내 놓았으니, 진위 여부를 확인하는 것도 어렵지 않겠지. 이해했나?”
“……이해했습니다.”
매 각주는 눈을 질끈 감았다 떴다. 어차피 거절하면 죽음뿐이다. 뇌옥에 들어가는 순간 흑도 인생도 끝이 나겠지만, 죽는 것보다는 훨씬 나을 듯싶었다.
도망치는 것도 불가능했다. 저만한 실력자라면 오히려 자신이 도망가기를 기다리고 곳곳에 함정을 파놓았을지도 몰랐다. 애초에 무림맹이 오고 있다면 섣불리 도망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아무리 관의 영향력이 하늘을 찌른다지만, 화양현 같은 작은 현의 관아보다는 무림맹의 위세가 더 높았다. 무림맹원들이 권위의식을 발휘하여 다툼을 일으킨다면 모를까, 웬만한 상황이라면 관아에서도 협력하려 할 것이다.
“……가보겠습니다.”
서연은 도로 비밀통로로 내려가는 매 각주를 응시했다.
어차피 흑도는 믿어서도 안되고, 믿을 수도 없는 족속들이다. 매 각주가 진짜로 관아로 가서 포쾌들을 불러올 가능성은 낮다고 여겼다. 어쩌면 주변 흑도들에게 도움을 요청할 수도 있겠지만, 서연은 그래도 충분히 감당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발소리가 멀어지자, 예화가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저는 여기 있는 편이 좋을까요?”
“같이 올라가는 편이 나을 거에요. 인질로 잡힐 수도 있어서.”
비수에 맞을 위험이 있기는 했지만, 그 정도는 충분히 막아낼 자신이 있었다.
“방해 안 되게 납작 엎드려 있을게요.”
예화가 서연의 등 뒤에 달싹 달라붙고, 서연은 검집에 손을 얹은 채로 방 밖으로 나섰다.
꽤 넓은 복도가 한눈에 들어왔다. 방은 꽤 많았는데, 저 안에 납치당하거나 뭣도 모르고 잡혀온 여인들이 한둘씩 들어차있을거라 생각하니 속이 뒤틀렸다. 화련이가 자신을 만나지 못했으면 이렇게 됐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문득 이대로 올라가 회화루주만 쓰러뜨리면 나머지 흑도 놈들이 문제를 일으킬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인질도 잡고, 어쩌면 다른 지역으로 도망가서 또 똑같은 짓을 벌이고…….
서연은 잠깐 눈을 감고 생각했다. 몇 명까지 감당할 수 있을지 가늠하려는 것이다.
위층으로 올라가자, 시종으로 보이는 놈들이 소리를 내지르며 이쪽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서연은 아랑곳하지 않고 검을 뽑은 다음, 옆에 있는 기둥을 벽채로 갈라놓고 다시 떨거지들을 응시했다.
종잇장처럼 갈라져 나뭇조각을 뱉어내는 벽과 기둥, 그리고 서연의 분위기가 맞물렸다.
당장이라도 달려들 것 같았던 떨거지들은 눈빛을 교환하더니 좌우로 비켜섰다. 서연은 떨거지들을 지나치며 하려던 말을 뱉어냈다.
“썩 꺼져라. 못난 얼굴을 보니 기분이 참 더럽다.”
떨거지들은 서연의 눈치를 보다가, 계단 아래로 후다닥 달려 내려갔다.
침입자가 나타났다, 여인 홀로 쳐들어왔다, 루주님이 위험하시다 등등. 온갖 외침이 아래쪽에서 울려퍼졌다.
‘더 많이, 더 많이 와서 봐라.’
그렇게 생각하면서 문을 열자 무언가가 서연의 관자놀이를 향해 날아왔다.
쐐액!
서연은 암기의 정체를 확인하기도 전에 검을 뽑아 그대로 튕겨냈다. 두꺼운 장침 비슷한 것들이 속절없이 튕겨나가 바닥과 벽에 꽂혔다.
회의 중이었는지, 회화루주의 곁에는 간부 셋이 나란히 서 있었다. 서연은 회화루주의 분위기를 살폈다. 일전에 심상 속에서 만났던 응격검의 조사(祖師)에 훨씬 못 미쳤다.
“예화부터 죽여라. 저 년이 기어코 사달을 냈구나.”
회화루주가 무심하게 말했다.
세 간부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곧바로 땅을 박찼다. 서연은 각자 다른 방향에서 쇄도하는 간부들을 응시했다. 각자 들고 있는 무기가 달랐다. 누군가는 도끼, 또 누군가는 검, 또 누군가는 도(刀).
“꼴에 사내라는 것들이 삼대 일이라니.”
예상하지 못한 말에 간부들의 호흡이 흐트러졌다.
서연은 그 틈을 놓치지 않고 회풍무류검의 초식을 펼쳤다. 광풍이 몰아치며, 달려들던 간부들이 황급히 뒷걸음쳤다.
“……!”
서연은 멈추지 않고 검격을 내질렀다.
점창의 검법은 섬전처럼 쾌속하면서도 무겁고 강맹하다. 극쾌의 묘리를 살리기에 찌르기에만 목숨을 거는 것이다.
쩌엉!
서연의 검에 꿰뚫린 도끼가 그대로 산산조각났다. 검격은 거기서 멈추지 않고, 기이한 각도로 뒤틀려 기어코 적의 옆구리를 찍었다.
“카학!”
검면에 후려치듯 맞은 적은 그대로 튕겨나가 담벼락에 부딪혔다. 벽에 처박힌 적은 덜덜 떨다가, 각혈하며 그대로 쓰러졌다. 호흡할 때마다 뚜둑 소리가 울려퍼지는 것이, 일격에 온 몸의 뼈가 부러진 것처럼 보였다.
소강상태가 일었다.
아래층에서 무기를 치켜들고 다급히 올라온 졸개들도, 남은 간부들도, 그리고 회화루주마저.
모두 아무 말도 못하고 경악어린 시선으로 서연을 응시했다.
상대가 몇 수는 앞서는 고수라는 사실을 알아챈 것이다.
가장 정신을 빨리 차린 것은 회화루주였다. 그는 손가락을 치켜들고 수하들에게 명령했다.
“쳐라!”
곧 검을 들고 있던 간부가 재빠르게 나섰다. 서연은 달려드는 적을 날카로운 눈으로 응시했다.
삼류 흑도의 무공에는 보통 이름이 없다. 제대로 된 무공을 익힌 이가 없기 때문이고, 또 지역마다 이름이 다를 정도로 제멋대로이기 때문이다.
저것도 마찬가지다.
잠깐 보기만 해도 검이 어디로 움직일지 알 것만 같았다.
‘어쩌면 지역에서 손에 꼽을 재능일 수도 있겠다.’
서연은 제 재능에 대한 평가를 약간이나마 상향 조정했다. 신체능력은 모르겠지만, 오성만큼은 후기지수(後起之秀)들과 어깨를 나란히 할 만하다 여겼다.
‘시험해봐야겠다.’
문득 육체가 어디까지 따라와 줄지 궁금해졌다.
‘섬광분운(閃光分雲).’
예측 불가능하고 연속적으로 몰아치는 회풍무류검과는 성격이 다르다. 구름마저 가를 정도로 빠르게 움직이는 검. 점창파 독문검법인 사일검법(射日劍法)에 미치지는 못할지언정, 섬광분운검도 신속하기로는 사일검법에 뒤지지 않았다.
간부가 한 걸음을 채 딛기도 전에 서연의 검이 아홉 번 움직였다.
근육이 찰나에 수축하고 펴지는데도 막힘이 없었다.
“아……!”
곧 어디선가 탄식이 들려왔다. 간부는 벌벌 떨다가 벌집처럼 구멍이 난 검을 놓치곤 뒷걸음쳤다.
서연은 도주하려는 간부의 머리를 그대로 내리쳤다. 짓이겨지는 소리와 함께 머리가 뭉개진 간부가 바닥에 처박혔다.
쩌억!
폭발한 경파가 강풍을 터뜨렸다. 다시금 침묵이 깔렸다.
서연은 고개를 돌려 회화루주를 응시했다.
“사내라면 당당히 나서라.”
“…….”
회화루주는 대답하지 않았다. 수하들은 빠짐없이 자신을 쳐다보고 있었다. 도무지 나설 자신이 없었기에, 회화루주가 나서서 서연을 상대해주기를 바라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섣불리 도망칠 수도 없다. 여태껏 쌓아온 것을 전부 버릴 자신이 있다면 모를까.
마침내 회화루주가 입을 열었다.
“가장 먼저 공격한 놈에게 금은을 하사하겠다.”
아무도 나서지 않았다. 회화루주가 다시 입을 열었다.
“여자도 주마.”
순간, 몇몇 졸개들이 움찔했으나 여전히 나서려는 이가 하나도 없었다. 얼굴이 붉어진 회화루주에게 서연이 말했다.
“인망도 없고, 사내다운 패기도 없구나. 한심한 놈.”
차라리 매 각주가 백 배는 나았다.
“너 같은 놈한테는 검을 쓰는 것도 아깝다.”
서연은 그렇게 말하며 납검했다.
이쯤 되니 회화루주도 발끈할 수밖에 없었다. 회화루주는 허리춤에 매여있던 검을 뽑아든 채 앞으로 나섰다.
“개같은 년. 무기도 없이 나를 상대할 수 있을 것 같더냐?”
서연은 회화루주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도약으로 빠르게 거리를 좁혔다. 그리고는 전신의 공력을 실어 좌장을 내밀었다.
회화루주는 다급히 검을 들지 않은 손바닥을 내밀었다. 검을 휘두르기에는 거리가 너무 짧았기 때문이다.
쩌어엉!
곧 기파가 갈라지는 소리가 울려퍼졌다. 본디 장법(掌法)이란 타격 범위가 넓어 적의 내부를 뒤흔들고 진탕시키는 데에 그 목적이 있었다. 그렇기에 장력의 겨룸은 곧 내공이 깊은 자가 유리할 수밖에 없었다.
회화루주는 눈을 부릅떴다.
‘무슨!’
마주한 순간 손바닥의 감각이 사라졌다. 마치 수백 장(丈)이 넘는 거대한 기암괴석을 홀로 마주한 듯한 기분이었다.
눈 한 번 깜빡이지도 못할 찰나의 순간, 팔꿈치에서 뼈가 부러지는 섬뜩한 소리가 터져 나왔다.
우두두둑!
“……!”
고통을 채 느끼기도 전에 서연의 강맹한 내력은 회화루주의 신체를 타고 올라 어깨마저 산산조각 냈고, 그것으로도 모자라 그의 오장육부를 모조리 진탕시켰다.
압도적인 내력 차이에 회화루주는 무기력하게 튕겨 나가 벽에 처박혔다. 금이 간 벽은 폭포처럼 먼지를 쏟아냈고, 그의 몸은 벽에 박힌 채 축 늘어졌다.
“끄…….”
회화루주는 입에서 죽은 피를 끝없이 흘려댔다. 살아는 있었으나 몸에 성한 곳이 단 한 군데도 없었다. 차라리 죽는 것이 나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처참한 몰골이었다.
서연은 기절한 회화루주의 머리칼을 쥐어잡았다.
“루주의 복수를 하고 싶으면 오라.”
남은 간부들은 피만 줄줄 쏟아내는 회화루주의 꼴을 보며 저도 모르게 움찔거렸다. 그들의 눈에는 두려움과 경악이 뒤섞여 일렁였다.
침묵 속에서 무기들을 놓치는 소리가 유난히 크게 울려 퍼졌다.
졸개들은 도망칠 생각도 하지 못하고 제자리에 엎드려 절했다.
“사, 살려주십시오.”
서연은 검집을 든 채로 고개를 끄덕였다.
“죽이지는 않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