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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12-14 21:31:57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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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산 부윤 장원평은 의자의 등받이에 몸을 뉘였다.

수하들을 전부 물리고 방 안에 홀로 남은 상황이었다. 갑작스런 풍파를 겪기라도 했는지 심력 소모가 큰 듯했다.

정사품의 고관이다. 한 도시를 다스리는 부윤이라면 조정에 굳건한 연줄을 두세 개쯤은 가지고 있기 마련.

그가 다스리는 도시에서는 웬만한 대문파도 그의 눈치를 살피며 함부로 날뛰지 못했다.

고위 지방관이라는 뜻이다.

허나 산전수전 다 겪은 그가 지친 기색을 대놓고 드러냈다. 공무로 눈코 뜰 새 없었을 시각인데도 수하들을 물리고 심신을 가다듬고 있었다.

“…….”

그는 흘깃, 황태자가 보낸 전서를 살폈다.

몇 번을 읽어봐도 적혀있는 내용이 바뀌지 않았다. 그렇기에 더욱 믿기 힘들었다.

황태자가 어떤 사람인지 악산 부윤은 잘 알았다. 냉혹하고 칼 같은 사람이다. 부친의 패왕과도 같은 기질을 그대로 물려받았다.

민초들에게는 명군이나, 신하들에게는 폭군이다. 신임하는 환관이 비리를 저지르자 눈도 깜빡하지 않고 삼족을 멸한 일화는 유명했다.

또한 몹시 오만하고 거침없었다. 대리청정한 기간이 십 년은 족히 넘었다.

약관이 되기도 전에 후계 구도를 완전히 확립했다. 그의 형제들은 촌구석을 다스리는 친왕이 되었다.

반발했던 황족들은 전부 군부에게 끌려가 참수당했다. 문무백관은 물론이고, 황제가 공인한 일인지하 만인지상의 위치였다.

그런 인물이 벗이라는 단어를 입에 담았다. 방금 전까지 조찬을 함께했던 여인을 칭하는 단어였다.

심기를 거스르지 말라는 말도 덧붙였다.

황태손은 물론이고, 태자비에게도 무심했던 황태자답지 않았다.

“…….”

별 생각이 다 들 수 밖에 없었다.

내색하지 말라는 말이 있었기에 목울대를 치고 오르려는 공대를 가까스로 참아냈다. 사정하여 가까스로 조찬을 대접하고 돌려보냈다.

더 잡아두고 싶어도 그럴 수 없었다. 조찬 중에도 불편한 기색을 숨김없이 드러냈기 때문이다.

일월상단이 운남으로 편히 향할 수 있도록 통행증을 뚫어주니 그제서야 호흡이 편해졌다.

‘참으로 힘들었다.

최선을 다해 처신했다. 초반에 권태로운 기질을 드러내지만 않았더라면 완벽했을 것이다.

이후는 하늘에 맡기는 것 말고는 별다른 수가 없다.

‘어사라도 되는가.

설마 진심으로 벗이라 생각하여 그리 말했을 거라 생각하지는 않았다. 황태자로부터 막중한 임무를 받은 신하라 판단하는 것이 합리적이었다.

운남은 전쟁터와 직접적으로 맞닿아있다. 온갖 사마외도가 발호했고, 점창파는 자신들의 영역을 막아내기에도 급급했다.

순간 악산 부윤의 뇌리에 일월상단의 목적지가 스쳐지나갔다.

옛 대리국이 있던 땅으로 가는 중이라 했다. 점창산(點蒼山)이 코앞이었다.

‘……설마?

천명검 대주들의 신상은 극비다. 정2품 총독 정도는 되어야 그들의 용모파기를 직통으로 받아볼 수 있다.

천명검이 무림인과 부패한 관리들의 사신으로 군림할 수 있게 된 가장 큰 이유다.

공식 석상에 모습을 드러낼 때도 얼굴을 가리고 있는 경우가 적지 않았다. 성별조차 밝혀지지 않은 대주가 대부분이었다.

악산 부윤은 눈을 감고 가능성을 따져보았다.

“…….”

평범한 대주를 벗이라 칭했을까? 차기 단주감이 아니고서야 그럴 수 없는 노릇이었다.

사실 천명검의 힘을 생각하면, 단주 한 명은 너무 적었다. 기존 단주를 원로원으로 이동하고, 새 단주를 임명한다고 해도 이상할 것이 없었다.

당장 음혈종 장로를 상처 하나 없이 살려서 추포해오지 않았던가.

‘자칫 목이 잘릴 뻔했구나.

악산 부윤은 괜히 목을 가다듬었다. 대주들이 가졌다는 즉결처분권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면사 너머의 외모를 보지 못했기에 할 수 있는 생각이었다.

그랬다면 황태자비를 갈아치운다고 착각했을테니, 맘 편히 잘 수도 없었을 터였다.

그 편보다 지금이 훨씬 나았다.


옅은 눈발이 몰아쳤다.

눈이 잔뜩 쌓인 산길을 거니는 인파가 적지 않았다. 다들 걸음을 바삐 옮겼다.

“사천 땅에 들어온지 한참 지났는데, 이제는 괜찮은 것 아니에요? 다리가 너무 아파요. 마을 어르신들도 한참 전에 뒤쳐졌잖아요.”

“운남에서 난리가 났다더니, 참말이었나보다. 피난민들이 끝도 없이 쏟아지는구나.”

“점창파의 도사들은 대체 무얼 하길래 사마외도들이 날뛰는 것을 방조하고 있는 것이오?”

“방조는 무슨. 산하 문파들이 죄다 패사했다는 소문이 이미 파다해. 점창산에 틀어박혀 방어에 집중하고 있다던데.”

“그러다 멸문이라도 하는거 아닌가 모르겠네.”

온갖 이야기가 들려왔다.

날이 바뀔 때마다 운남에 관한 소문이 흉흉해졌다. 피난민들의 수가 그를 증명했다.

비단 사마외도로 인한 것만은 아니다. 안 그래도 땅이 척박한 운남이었다. 흉년까지 겹치자 버티지 못한 민초들이 사천으로 피난한 것이다.

“황군이야 전쟁을 치르느라 바쁘다고 쳐도, 천명검은 대체 무얼 하고 있는건가? 손가락만 빨고 있지는 않을 것 아닌가.”

“대부분이 장강 이남으로 향했다더군. 그쪽은 완전히 피바람이 불고 있는 모양이야. 운남은 그에 비하면 안전하지.”

“사마외도들도 영악해. 민초들만 건들지 않으면 황군이 나서지 않는 것을 아는 것이지. 교묘하게 점창파만 노리고 있다더군.”

스윽.

서연은 자잘한 나무토막을 쥔 손목을 움직였다. 마차에서 조각을 하고 있는 것이다.

주변에서 들려오는 말소리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묵묵히 조각칼을 움직일 뿐이었다.

근래 들어 검을 뽑는 일이 잦았으나, 어디까지나 그녀의 본은 조각이었다. 화련도 조각을 가르치려 제자로 들였던 것 아니던가.

‘얼추 감이 잡힌다.

일행이 근처 객잔에서 저녁을 해결하러 떠난 도중에도 서연은 조각을 계속했다. 새로운 초식을 창안하기 위함이었다.

일월상단이 가지고 다니던 서책들을 참고하여 비연천공을 마저 완성하는 것도 함께였다. 최소한 이번 여행이 끝나기 전까지는 심공을 완성할 생각이었다.

사아악―

조각을 계속하다보니 깨달은 사실이 하나 있었다. 각예에는 찌르기라 할만한 동작이 거의 없었다.

전부 베는 동작이다. 검을 들고 펼치는 도법이라고 불러도 할 말이 없을 정도였다.

재료를 나무로 한정했을 때에는 그러했다. 범위를 암석까지 넓혀야 가까스로 찌르기가 모습을 드러냈다.

횡베기, 종베기, 찌르기를 합쳐서 삼재검법이라 했다. 기초에 해당하는 것을 빼먹을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돌로 하는 각예도 가르쳐야겠구나.

서연은 눈을 감은 채로 심상 속에서 유검(遊劍)을 펼쳤다. 유랑하며 만든 검이라 하여 유검이라 이름 붙였었다.

일전에 당소소를 구할 때 펼쳤던 검술이 유검의 첫 번째 초식이었다.

팍!

곧 들고 있던 나무조각에 부월을 올려친 듯한 궤적이 새겨졌다.

‘검으로 초식을 펼치면 이런 검흔이 남는구나.

단검으로 펼치면 어떻게 될지 의문을 느꼈다. 곧바로 조각칼로 검흔을 새겨보았다.

검을 다룬 세월보다 조각칼을 다룬 세월이 압도적으로 길었다. 기상천외한 기예가 손끝에서 자유자재로 펼쳐졌다.

스악!

나무조각을 겉면에 만개하는 꽃과 같은 검흔이 새겨졌다. 심상 속에서 나타난 녹림오호가 부법을 제대로 펼치기도 전에 쓰러졌다.

‘이것도 고절하기는 한데.

길이가 짧아서 그런지 검을 사용할 때보다 위태롭다.

서연은 심상 속에서 검법을 보완하고자 했다. 한 손에는 검을, 다른 손에는 쥘부채를 든 채였다. 쌍검이나 다름없었다.

본디 쌍검은 무기를 하나만 다루는 것과는 격이 다른 난이도라 했다. 허나 서연에게 해당되는 일은 아니었다.

결심하기 무섭게 두 자루 신병이기가 날개처럼 움직였다.

쥘부채가 일으킨 바람이 검이 나아갈 길을 열어준다. 덕분에 검이 반 호흡 빠르게 나아간다.

심상 속의 녹림오호는 반응조차 하지 못하고 반으로 갈라졌다.

‘제이초는 파풍유영(破風遊影)이라 해야겠다.

그렇게 새로운 초식을 창안하면, 눈을 뜨고 심상 밖으로 빠져나와 나무토막과 서책에 차례로 새겼다.

검흔이 순식간에 늘어났다.

무림의 고수들이 어찌하여 심상 수련에 열을 들이는지 알 것 같았다. 무학을 창안하는 데에 있어 이만한 것이 없었다.

‘직접 싸워보면서 보완도 해야겠지만.

서연은 아쉬운 얼굴로 나무토막을 응시했다. 흑단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다섯 초식을 채 견디지 못했다.

‘빨리 운남에 가고 싶다.

성인 남성의 몇 배는 되는 대리석들이 널려있다고 했다. 그것으로 조각을 하면 필히 깨달음을 얻을 수 있을 것 같았다.

막 마차 밖으로 나가려던 그때 문이 열렸다. 음식을 잔뜩 싸들고 온 당소소가 놀란 얼굴로 서연을 주시했다.

“아, 은공.”

“음?”

당소소의 뒤에서 따라오던 화련도 놀라는 표정을 지었다.

“스승님, 밖으로 나가시게요?”

이제보니 같이 먹으려고 객잔에서 음식을 여기까지 싸온 듯했다. 서연은 기특하다는 미소를 지으며 음식들을 건네받았다.

“뭘 이렇게 많이 싸왔어? 그렇게 배가 고팠니?”

“무엇을 좋아하실지 몰라서 다 준비했다고 해야 할까요.”

당소소는 웃으면서 마차 가운데에 탁자를 깔았다.

“스승님은 가만히 계세요.”

“그래.”

화련이 물잔, 젓가락 등을 챙겨서 서연의 앞에 내려놓았다. 그동안 연습이라도 한 것인지 행동이 매우 능숙했다.

“송월 어르신은 객잔에서 드신다니?”

“네. 마차 뒤편에 탁자가 있으니 가져다 쓰라고 하셨어요.”

“돈은 소소가 냈니?”

“상단주께서 대주셨습니다.”

“감사하다고 말씀은 드렸고?”

“예.”

서연은 고개를 끄덕였다.

“역시 소소는 예의가 바르구나. 당가주께서 아주 잘 가르치셨어.”

당소소는 무표정한 얼굴로 꾸벅이면서 음식을 마저 차렸다. 꽤 큰 탁자였는데도 음식으로 가득 찼다.

서연은 음식을 나르는 당소소와 화련을 보았다.

“잘 어울리는구나. 사저와 사매라고 해도 믿겠어. 입문 시기를 생각하면 소소가 사매가 되겠지. 하여간 난 운이 좋구나. 맛있는 음식도 챙겨다주는 제자도 있으니 말이야. 이제 얼추 된 것 같으니 들어오렴.”

가까운 노점상에서 당과라도 하나 챙겨오려던 화련이 자연스럽게 방향을 전환했다.

“네, 네.”

서연은 죽립과 면사를 벗으며 말했다.

“앉으렴.”

“예.”

서연은 둘 앞에 놓인 잔에 물을 따라주며 말했다.

“화련이도 소소 옆에 앉고.”

“네.”

어느새 마차 안이 향긋한 음식 냄새로 가득 찼다. 뭐라고 더 말을 하려다가, 웃음이 절로 나와서 그럴 수 없었다. 당소소와 화련의 표정을 봤기 때문이다.

“화련아, 소소야.”

“네.”

“예, 은공.”

서연은 끝내 웃음을 참지 못하고 한 마디를 던졌다.

“서로를 사형제로 삼는 것은 어떠니?”

순간 당소소가 토끼처럼 눈을 크게 뜨고, 화련은 이렇게 될 줄 알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의 얼굴에는 질투의 기미조차 없었다.

오히려 제 밑에 누가 생긴다는 사실이 기꺼운 듯했다.

서연은 얼굴이 발갛게 달아오른 당소소를 보며 즐거이 웃었다. 여태껏 그녀가 보였던 그 어떤 표정보다도 극적인 감정 변화였다.

“저는 소소 사매가 마음에 들어요.”

화련이 눈치껏 말하자, 서연이 시원하게 웃음을 터뜨렸다.

서연은 이번에 당소소에게 물었다.

“소소는 어떻게 생각하니?”

당소소는 달아오른 얼굴의 열기를 느끼며 더듬더듬 답했다.

“저도, 좋습니다.”

서연은 환히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이제 먹자꾸나.”

스승이 으레 할법한 정겨운 말을 덧붙이면서.

“……제가 독이 있나 먼저 살피겠습니다. 스승님께서는 염려하지 마십시오. 화련 사저도요.”

서연은 그 모습을 바라보며 미소지었다. 기미(氣味)라도 하려는 듯 보였는데, 긴장한 탓에 음식이 입으로 들어가는지 코로 들어가는지도 모르는 듯했다.

“사매, 독 없어? 이제 먹어도 돼?”

“…….”

당소소는 곧장 답하지 못했다. 한 번에 너무 많은 음식을 집어넣었기 때문이다.

음식들을 겨우 삼킨 당소소가 숨이 찬 목소리로 답했다.

“드셔도, 됩니다.”

이유는 알 수 없었으나, 그 말이 끝나기 무섭게 모두가 웃음을 터뜨렸다.

셋은 해가 질 때까지 웃으며 떠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