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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켜보던 송월 노인이 탄성을 터뜨렸다. 얼굴 위로 드러난 감탄을 숨기지 않았다.
주변에 있는 음혈종의 잔당들을 살펴보니 다들 반쯤 넋이 나간 상태였다. 혈면수라는 호흡하는 것조차 어려워 보였다. 실력이 유독 뒤떨어지는 잔당들 중에는 손발을 떠는 이도 있었다.
하강한 선녀인 듯 사뿐히 바닥을 딛고 서 있다.
장포가 펄럭이며 초월적인 분위기를 더했다.
그 와중에 서연은 혈면수라를 내려다보았다. 단전을 파할 필요도 없었다.
간질에 걸린 사람처럼 감히 서연을 쳐다보지도 못하고 부르르 떨고 있었다.
서연은 그를 붙잡은 채로 걸음을 디뎠다. 연화비형보가 펼쳐지며 순식간에 음혈종의 잔당 앞에 도달했다.
누구도 움직이지 못했다. 서연에게 압도된 것이다.
서연은 눈 앞의 음혈종 무인에게 고했다.
“죽음조차 자비다.”
“…….”
“평생을 후회하며 살도록.”
음혈종 무인은 입을 열지 못했다. 서연의 어조에 감정이 묻어나오지 않았다. 그렇기에 더 두려웠다.
꽈악―
자신의 머리를 틀어쥐는 손바닥을 보며 아무런 저항도 하지 못했다.
다른 잔당들 또한 입을 다문 채로 그 광경을 지켜보았다.
역지사지.
평생 남에게 빼앗을 줄만 알았던 짐승들이 처음으로 천적을 만났다.
짧은 비명. 일순간에 범인만도 못한 존재로 변한 짐승이 주저앉는 것은 그 다음이었다.
“…….”
혈공 진기는 어떻게든 서연에게 달라붙어 있으려 했다. 천하에 둘도 없는 자질임을 느낀 것이다. 무학의 창시자보다 서연이 나았다.
구결을 깨달은 순간 세뇌당하는 무공이다. 음혈종이 쉽게 세를 불린 것은 그 덕이었다.
허나 서연은 담담히 혈공 진기를 떨쳐냈다. 마치 먼지를 털어내는 듯했다.
“어, 어째서…….”
민초 수백에게 강탈한 진기가 무로 화해 사라졌다. 음혈종 무인은 망연자실한 얼굴로 그 광경을 바라보았다.
쩌적!
전신이 말라붙는다. 타인의 것을 갈취하여 억지로 그릇을 키워왔던 이들이다. 혈공 진기를 빼앗긴 순간 육신을 구성하던 것들이 그릇째로 망가졌다.
그들은 살아만 있게 되었다.
서연은 다른 음혈종 무인에게로 나아갔다. 그들에게는 서연이 마치 저승의 염라처럼 느껴졌다.
“으, 으으으……!”
이제는 서연이 손만 살짝 뻗어도 부르르 떨 정도였다.
“차라리 죽, 죽여주……. 컥!”
몇 번 반복하다 보니 흡정의 구결을 깨달았다. 분명 흡성대법(吸星大法)이라는 말로 표현할 수 있을 것이다.
타인의 진기를 강탈할 수 있다면, 그 반대도 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흡성대법을 펼쳐 혈공 진기를 빼앗는다. 그 다음 금진(金津)혈과 옥액(玉液)혈에 억지로 정순한 진기를 심어놓았다. 효과는 즉각적이었다.
혀를 깨물어 자진하려던 사내가 눈을 부릅떴다. 상극의 진기가 혈자리에 단단히 자리잡은 탓에 안면 근육을 움직일 수 없었다.
턱과 혀가 축 늘어졌다. 서연보다 더 뛰어난 내가고수가 나타나서 진기를 해소해주지 않는 한, 평생을 저리 살아가야 할 것이다.
‘앞으로도 이렇게 하면 되겠다.’
평온하게 한 걸음을 내딛는다. 서연의 걸음이 멈출 때마다 적발의 짐승들이 색을 잃었다.
도망치는 이들은 없었다. 음혈종의 무인들은 혈세 천하를 믿었다. 서연이 펼치는 흡성대법을 보고 그녀를 자신들을 징치하기 위해 하늘에서 내려온 진혈의 사도라 여겼다.
서연이 혈공 진기를 취했다면 오히려 기뻐했을 것이다. 허나 하잘것없이 내다버리는 것을 보고 절망을 금치 못했다.
제가 믿던 신에게 버려졌다. 차라리 죽는 것이 나았다.
돌이킬 수 없는 심마를 입어 각혈하는 이들이 적지 않았다.
“아아아…….”
“어찌하여 저희를 벌하시나이까…….”
서연은 아랑곳하지 않고 혈공 진기를 취한 다음 내다버리기를 반복했다.
모든 음혈종 잔당들을 처리하는 데까지는 일각도 걸리지 않았다.
“어르신. 관아에 먼저 들를 수 있겠습니까?”
본래 상행을 하던 중에 방향을 바꾸는 것은 말도 안되는 일이다. 허나 송월 노인은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오히려 그렇게 말하기를 기다리고 있었다는 기색이었다.
“그래야지요. 포박을 돕겠습니다.”
송월 노인이 손짓하자 상단원들이 하나 둘 나타나 포로들을 포박하는 것을 도왔다.
새외를 넘나드는 상단이라 그런가, 생사가 위태했던 사람들 답지 않게 다들 담담해 보였다.
허나 서연을 보는 눈동자에 경외를 품었다.
“스, 스승님……!”
화련이었다. 놀란 얼굴로 달려오는 와중에 연화비영보를 능숙하게 펼쳐냈다.
반짝반짝 빛나는 눈동자를 보니 서연이 마치 선녀처럼 보이는 듯했다.
‘다행히 다치치 않았구나.’
백호가 돕는 것을 보았다. 덕분에 걱정 없이 혈면수라를 상대할 수 있었다.
나중에 날을 잡아 빗질이라도 해줘야겠다고 생각했다.
“……은공은 존재 자체로 음혈종의 재앙이나 다름없겠습니다.”
당소소는 폐인으로 전락한 무인들을 보며 그리 말했다. 무던해보이는 목소리 틈 사이로 경탄이 드러났다.
상극의 기운으로 혈공 진기를 제압한 것까지는 이해했다. 서연이 설마 흡정했으리라고는 생각지 못했다.
나름대로 각오를 했는데, 중간부터는 서연을 지켜보는 것 말고는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
“정파 놈들이……괴물을 숨겨두고 있었구나…….”
붙잡혀있던 혈면수라가 그렇게 중얼거렸다. 도대체 언제부터 첩자를 심어두었단 말인가?
도가의 기운 너머에 흡성대법을 숨겼다. 저 뒤에 무엇을 더 숨기고 있을지 알 수 없었다.
찰나에 구결을 분석하여 파훼했을 것이라고는 생각지 못했다. 고금에 둘도 없을 재능이 다른 편에 섰다는 것을 믿기 힘들었다.
“은공을 보고 괴물이라니. 피를 탐하다 보니 안목마저 망가진 모양입니다.”
당소소였다. 그녀가 손끝으로 몽혼독을 퍼뜨리자 혈면수라가 버티지 못하고 고꾸라졌다. 모든 힘을 잃은 힘없는 늙은이다. 수마를 견뎌낼 수 있을 리가 없다.
상단원들은 포로들을 마차에 짐짝처럼 실었다. 곧 마차가 도시가 있는 방향으로 나아갔다.
힘을 잃고 영락(零落)했다 한들, 사마련 팔천의 장로라는 사실은 변하지 않았다. 동네 관아에 맡기고 떠날 수 없는 존재임이 분명했다.
결국 일월상단은 악산부의 부윤이 머무는 곳에 직접 찾아갈 수밖에 없었다.
이른 아침이었다. 부윤이 막 등청했을 시간이다. 때 이른 방문객을 박대해도 이상하지 않을 때였다.
“……음혈종 혈귀들을 잡았다고.”
관모를 쓴 남성이 입술을 뗐다. 악산 땅에서 가장 권세가 높은 자다. 권태로운 자세로 앉아있는 것이 이상하지 않았다.
“내 용모파기를 외우고 다니지는 않으나, 혈면수라가 저렇게 힘없는 노인으로 영락했다는 말을 도저히 믿을 수 없다. 사실을 대조해야겠으니, 한쪽에서 대기하라.”
부윤이 심드렁하게 대꾸했다. 피로한 기색이 역력했다. 이런 일에 시간을 쏟기 싫다는 생각이 행동으로 드러났다.
“일월상단, 하남에 적을 둔 상단이구나. 이름도 제대로 알려지지 않은 상단이 사천까지 몸 성히 왔다는 것을 믿기 어렵다.”
부윤은 그렇게 말하며 서연을 응시했다.
“여인 홀로 혈면수라를 상대했다는 것은 더더욱 믿기 힘들다. 본관을 기망하고 있다는 생각이 절로 드는구나. 신분부터 증명하도록 하라.”
“알겠습니다.”
권태로운 태도를 끝까지 유지했다. 낙양 도감이라는 문서를 읽기 전까지만 해도 그랬다.
“……도감?”
악산 부윤이 미간을 좁혔다. 서연과 문서를 번갈아 보던 그는 손끝에서 진기를 끌어올렸다.
당연히 그 또한 무공을 익혔다. 대명의 관리라면 응당 가져야할 소양이었다.
“진품……이군.”
말투가 보다 유해졌다. 같은 부윤이라고는 하나, 대도시인 낙양의 부윤과 작은 악산의 부윤은 그 급 차이가 꽤 났다. 낙양 부윤이란 으레 총독 내정자가 거쳐가는 요직이었으니 말이다.
악산 부윤은 서연에게 문서를 건네며 말했다.
“대붕파에 사람을 보내 직접 확인해보겠다. 작은 문파가 아니었으니, 희생된 사람이 적지 않았을 터. 무관들 중에 무공에 조예가 있는 자들이 적지 않으니, 상해를 입은 흔적을 보고 음혈종의 무학임을 파악할 수 있으리라.”
취급은 달라졌으나, 대기하라는 뜻은 여전했다.
“혹 얼마나 걸릴지 여쭈어도 되겠습니까?”
“속히 끝낼 일이 아니다. 본관을 보채지 말라.”
악산 부윤이 단호히 말했다. 그는 여전히 권태로운 눈으로 무릎을 꿇고 있는 음혈종 무인들을 응시했다.
혈면수라 정도 되는 무인의 용모파기는 상부에 요청해야 얻을 수 있었다. 족히 사흘은 걸릴 터였다.
아무리 생각해도 저 힘없는 노인이 혈면수라 같지는 않았다. 신분을 확인했음에도 저를 기망한다는 생각이 도저히 지워지지 않았다.
“부윤 어르신!”
그때 관리 하나가 다급히 달려왔다. 저렇게 다급히 달려올 품계가 아니었기에 더 의아했다.
“무슨 일인가?”
관리는 곧장 답하지 않았다. 한참을 달려온 듯, 가쁜 숨을 가다듬었다.
“태, 태자 전하께서 전서를 보내셨습니다.”
“……전하께서?”
황상께서 친히 원정을 나간 지금, 대명을 실질적으로 운영하고 있는 이가 바로 황태자였다. 대리청정을 하고 있는 상황이었니, 황제와 동급으로 대해야 마땅했다.
악산 부윤은 황급히 옷차림을 단정히 했다.
곧 동창의 환관이 가마를 타고 나타났다.
황태자의 전서를 전달하는 역할이다. 품계로 보나, 받는 신임으로 보나 악산 부윤보다 급이 높았다.
환관은 가마 옆으로 고개를 돌렸다.
“…….”
그의 시선은 악산 부윤보다 서연에게 더 오래 머물렀다. 서연은 의미심장한 시선을 느꼈지만 내색하지 않았다.
이윽고 환관의 눈이 악산 부윤에게로 돌아왔다.
“악산 부윤 장원평(張元平), 전하께서 친히 전서를 보내셨습니다.”
환관은 손을 뻗어 붉은빛으로 화려한 두루마리를 내밀었다. 악산 부윤은 무릎을 꿇은 채로 천하의 보물을 받듯 조심스럽게 전서를 받아들였다.
칙서가 아니라 전서다. 이만하면 충분한 예를 취했다고 할 수 있었다.
“곧장 읽으세요.”
황명을 전달하는 사자 앞에서 감정을 드러내는 것은 관리로서 가장 피해야 할 일이었다. 그는 엄숙한 표정으로 전서를 읽어 내려갔다.
‘음?’
허나 그것도 잠시였다. 악산 부윤의 얼굴이 일순간에 하얗게 물들었다.
눈이 흔들리는 것이, 질문을 해도 되는지 눈치를 살피는 듯했다.
허나 악산 부윤은 끝까지 입을 다물었다. 가까스로 전서를 다 읽고 나서야 나지막이 읊조렸다.
“받들겠습니다.”
“실수하지 않으리라 믿겠어요.”
환관은 씩 웃고는 닫시 가마에 올라탔다. 가야 할 곳이 많았다. 인수(仁壽), 자양(資陽), 내강(內江), 흥문(興文), 거기에 미고(美姑)에 서창(西昌)까지 들러야 했다.
전부 사천의 도시였다.
사천성만 그럴까. 운남성은 물론이고, 중경과 귀주, 광서에도 같은 일이 벌어지고 있을 터였다.
전부 무공 서적 하나 때문에 일어난 일이다.
십수년 동안 웃음을 보이지 않았던 황태자가 주변 시선을 아랑곳하지 않고 대소했다.
오죽 드문 일이었으면 북경 전체에 소문이 퍼질 정도였다. 명민한 황태자가 그것을 몰랐을 리가 없다. 그런 소문을 감수할 만큼 즐거웠다는 것이다.
사천과 운남에는 유독 신임하는 환관을 파견했다. 그렇기에 그는 다른 환관들보다 많은 것을 알고 있었다.
환관은 떠나기 직전에 서연을 응시하다가 사라졌다. 갈 길이 멀다는 말을 덧붙이면서다.
“……방금 건넸던 문서, 다시 확인해봐도 되겠나?”
환관이 떠난 것을 확인한 악산 부윤이 서연을 향해 말했다. 일전보다 말투가 훨씬 조심스러웠다. 높은 사람을 대하는 듯했다.
서연은 갑작스레 변한 태도에 의아함을 느꼈다.
“문서라 하심은.”
“낙양 부윤이 적었던 문서 말이네.”
서연은 순순히 도감 임명장을 건넸다. 문서를 살피던 악산 부윤의 입술이 살짝 떨리고 있었다.
묘한 긴장감이 주변을 맴돌았다.
“…….”
악산 부윤은 몇 번이고 임명장을 살폈다. 어찌나 열심히 살피는지, 황태자가 보낸 전서보다도 꼼꼼히 읽는다는 착각이 들 정도였다.
침묵이 길어졌다.
악산 부윤은 한참 동안 입매를 달싹거렸다. 말문을 어찌 열어야 할지 고뇌하는 듯했다.
“……곰곰이 생각해보니 본관이 과거에 혈면수라를 만난 적이 있다. 오래전 일이라 제대로 기억하지 못했으나, 얼굴이 그때와 똑 닮았군.”
악산 부윤을 말을 하면서도 마른침을 삼켰다. 설마 그럴 리는 없겠지만, 서연의 눈치를 살피는 듯했다.
“그러면, 떠나도 되는 겁니―.”
“본관은 예전부터 협의지사에 대한 관심이 많았네.”
악산 부윤은 다급한 목소리로 그렇게 말했다.
“조찬이라도 한 번 대접하고 싶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