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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12-14 21:31:57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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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천당문을 떠나는 날 아침에는 눈이 그쳤다. 서연은 당가주에게 꾸벅 고개를 숙였다.

“그간 신세 많이 졌습니다.”

“딸아이를 잘 부탁드리겠소.”

당자헌은 당소소와도 시선을 마주했다. 운남의 치안이 영 좋지 않다는 사실을 들은 터라 가슴 한켠에 묘한 걱정이 맴돌았다.

물론 내색하지는 않았다. 현명한 딸아이니 잘 처신할 것이라 믿었다.

“전장(錢莊)에 자금과 연락책을 마련해두었으니, 필요하면 언제든 사용하거라.”

“잘 쓰겠습니다. 아버님.”

가주님이라 부르지 않았다. 당자헌은 딸아이의 그런 세심한 배려가 좋았다.

“잘 가거라.”

“예.”

당소소가 걸음을 돌려 떠나가려는 순간, 서연이 당소소에게 눈짓했다. 가서 한 번 안아드리라는 것이다.

“으음.”

당소소는 잠시 망설이다, 당자헌에게 다가가 그의 허리를 끌어안았다.

“잘 다녀오겠습니다.”

“……!”

“그러니 아버님과 아우님은 걱정하지 마시고, 가문을 잘 지키고 계십시오.”

당소소는 그렇게 말하고는 양쪽 입꼬리를 어거지로 끌어올렸다. 웃음이라고 하기에는 묘했지만, 그 정도면 작별 인사로 충분했다.

곧 서연 일행은 성도 바깥을 향해 걸었다.

사천성의 지리는 당소소가 훤히 꿰고 있었기에, 길 안내는 당소소가 도맡아서 했다.

“은공, 운남에 급히 가야할 일이 있으신 것은 아니지요?”

“천천히 가도 된단다.”

“그러면 여유롭게 관광하듯 가겠습니다.”

드넓은 사천성에서 가장 큰 도시는 성도다. 앞으로 만날 도시들은 모두 성도보다 작을 터였다.

서연은 앞서가는 당소소를 보며 병아리 같다는 생각을 했다. 당연히 화련은 털도 덜 자란 병아리다. 그렇다면 자신은 어미닭인가? 군사부일체라 했으니, 어쩌면 틀린 말도 아니리라.

당소소를 제자로 여기지 않았다면 할 수 없는 생각이었다.

구배지례를 행해야만 제자이겠는가. 서로를 스승과 제자로 여기면 그것이 곧 사제지간이라 생각했다. 화련을 처음 제자로 받아들였을 때도 구배지례를 행하지 않았으니 말이다.

더 강해져야겠다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여인 셋이 다니기 험난한 강호였기 때문이다.

그렇게 얼마나 걸었을까. 서연 일행은 금세 대로로 나아갔다.

성도에서 벗어난지는 꽤 되었지만, 사천 땅은 당문의 영역이나 마찬가지다.

맞은편에서 지나치던 행인들이 서연 일행을 보며 속삭였다. 선두에 선 당소소를 본 순간 그리한 것이다.

“당랑암화(唐娘暗花)다.”

“세가의 금지옥엽이 어찌하여 이곳까지?”

“홀로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분명 근처에 당문의 무사들이 인기척을 감추고 있을걸세. 저번의 천양문(天陽門)의 장자가 뭣모르고 들이댔다가 양물이 잘렸다지 않는가.”

“……암화라는 별호가 참으로 어울리는군.”

독인의 경지에 오른 당소소의 귀에는 그 속삭임들이 전부 들렸다. 민초들이 작정하고 속삭여도 이 정도 거리에서는 듣기 싫어도 들리는 법이었다.

물론 당소소는 천양문의 장자가 누구인지도 몰랐다. 제게 들이댔던 수많은 남정네들 중 하나일 것이라 지레짐작했을 뿐이었다.

평소 같았다면 신경 쓰지 않고 지나쳤으리라. 사천당문의 직계라면 뭣 모르는 민초들의 말에 일희일비하지 않기 때문이다.

“양물……?”

허나 뒤에서 따라오던 화련이 반응했다. 그녀는 저도 모르게 사타구니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당소소가 다급히 입을 열었다.

“헛소문입니다.”

“으음.”

“화련 님. 저는 남정네들의 그것을 자르는 취미가 없습니다. 제게 무례히 굴었다면 차라리 독을 뿌렸을 겁니다.”

“으으음.”

화련은 억지로 고개를 끄덕였다.

“저는 소소 님을 믿어요.”

당소소는 그런 화련을 보며 미간을 좁혔다. 전혀 믿는 눈치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서연은 픽 웃으며 티격대격하는 둘을 바라보았다. 생각보다 잘 어울렸다.

‘맛있는 거라도 사 먹여야겠다.

사천에 와서 제대로 된 사천요리를 먹어본 기억이 없었다. 사천당문에서 호화로운 식사를 대접받았지만, 외인임을 고려한 탓인지 음식은 하나도 맵지 않았다.

마침 눈앞에 크고 화려한 객잔이 보였다. 근처에 다가가니 알싸한 향이 코 끝에서 맴돌았다.

‘음.

이번 기회에 화련의 식성을 바꾸는 것도 괜찮으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언제까지고 단 것만 먹였다간 이가 상할테니 말이다.

“점심은 저걸 먹자꾸나.”


“역시 은공이십니다. 매운 음식도 잘 드시는군요.”

식후차를 마시며 말하는 당소소의 시야에, 눈물과 콧물을 질질 흘리는 화련이 보였다.

화련이 저런 처지가 된 것은 전적으로 화련 본인의 잘못이었다.

서연과 당소소는 진심으로 화련을 걱정하여 매울 수 있으니 양념을 적당히 조절해야 한다고 경고했는데, 화련은 거기서 어린아이 특유의 경쟁심이 발동한 듯했다.

자기도 평소에 매운 것을 즐겨 먹었다는 얼토당토 없는 소리를 하더니, 당소소만큼 많은 양의 양념을 쏟아부었다.

세 입까지는 어찌저찌 버텼지만, 금세 눈물과 콧물로 범벅이 되고 말았다.

외지인이 사천 요리를 얕보다가 체읍(涕泣)을 쏟아내는 것은 흔한 일이었기에, 점소이는 익숙한 듯 천을 건네주었다. 서연은 그 천으로 그런 화련의 얼굴을 닦았다.

“느무… 느무… 매어여…….”

입술이 퉁퉁 불어 발음도 질질 샜다.

“그러게 적당히 먹으라 하지 않았니.”

“재송함미다…….”

서연은 화련의 얼굴을 닦아주며 옅은 한숨을 내쉬었다.

“후우, 후엑.”

화련은 그 와중에도 물을 벌컥벌컥 들이키거나, 달아오른 혀에 손부채질을 하기 바빴다.

그 모습이 꽤나 요란했는데, 손님들은 각자 떠들기 바빴던 탓에 시선이 끌리지는 않았다.

“사천은 아직 멀쩡하구만. 자네 운남 가봤나? 그쪽 객잔들은 조용해.”

“그 넓은 땅을 점창파 혼자서 감당한다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이지. 국경 근처에 군이 자리잡고 있어 망정이지, 아니었으면 일이 터져도 진작 터졌을거야.”

“탈주병들이 적지 않다던데. 관아에 밀고하면 은자를 준다더군.”

국경에서 벌어지고 있는 전쟁은 일상이 된지 오래였다.

전쟁은 크게 서정(西征)과 남벌(南伐)로 나뉘어 있었는데, 운남은 그중 남벌과 연관이 있었다다. 남쪽 끝에서 남만과의 전쟁이 벌어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황상께서 안남(安南) 정벌을 시작했다고 들었소. 병사들의 시체가 산처럼 쌓였다더군. 친한 동생이 금룡상단에서 일하는데, 최근 바다에서 익사한 시체를 하루 꼴로 마주한다더이다.”

“장강 이남의 사파들도 발호했다던데.”

“그나마 마교가 잠잠한 것이 다행이지. 작금의 교주는 전대 교주를 참살한 것 말고는 중원을 침략한 적은 없지 않은가.”

“후우, 후엑.”

“마교주가 겁이 많아서 그런 것 아니오?”

“……그런 이야기는 대놓고 하지 않는 것이 좋소.”

옆 탁자에서 듣고 있던 연륜 많은 노상인이 충고하듯 말했다. 허나 낭인은 충고를 귀담아듣기는커녕 코웃음만 쳤다.

“마교가 천산에 처박혀서 나오지 않는 것은 사실이지 않소. 그런 인간을 어찌 절세고수라 할 수 있겠소. 겁쟁이라면 또 모를까. 어디 내 말이 틀렸소?”

“후엑, 하악.”

“……충고를 한 것이오. 아무리 사천이 정파의 영역이라지만, 그러다 객사할 수 있소.”

“객사? 지금 객사라 했나?”

낭인이 탁자를 쾅 치며 일어났다. 근처에 앉아있던 낭인들 또한 함께 일어나 흉흉한 기세를 내뿜었다.

“…….”

떠들썩하던 객잔이 순식간에 적막으로 물들었다. 오죽했으면 화련의 안절부절 못하는 숨소리가 엄청나게 크게 들릴 정도였다.

모든 시선이 서연 일행에게로 쏠리는 것은 당연한 이치였다.

상당수가 당소소를 알아보았다. 비단으로 된 녹빛 경장, 새하얀 피부. 출중한 용모. 알아보지 못하는 것이 더 힘들었다.

“당랑암화다.”

“당문의 직계가 어찌하여 성도 바깥에…….”

동시에 낭인들을 애도했다. 당랑암화의 눈에 띈 이상, 끔찍한 최후를 맞이하게 될 것이 분명했기 때문이다.

허나, 낭인들은 놀라기는커녕 오히려 더 분노했다. 제게 쏠려야 했을 시선이 한순간에 웬 여인에게 쏠린 탓이다.

작은 마을에서 왈패로 살아온 탓에 견문이 부족했다. 소문이 유독 흉흉한 마교에 관한 이야기를 몇 번 들어본 것이 전부였다. 당연히 당소소도 알아보지 못했다.

강호 초출이나 보일 법한 기질을 훤히 드러냈다. 낭인은 당소소에게 쏠린 시선을 제게 다시 돌리고자, 양 팔을 뻗어 노상인의 멱을 틀어쥐고자 했다.

타악-!

서연이 낭인의 팔을 붙잡지 않았다면 분명 그렇게 되었을 것이다.

"……!"

사박.

다른 사람들이 보기에 서연은 그야말로 갑작스레 나타난 것이나 다름없었다.

그야말로 독보적인 존재감이라 칭하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오죽했으면 팔을 붙잡힌 낭인마저도 마른침을 삼킬 지경이었다.

‘팔을 부러뜨리는 것이 나을까.

노인의 멱살을 틀어쥐려 했다. 강호 초출인지 아닌지는 알 수 없었으나, 심히 나쁜 손버릇을 타고 난 것은 분명했다.

‘이대로 놔둬도 객사할 것 같기는 하다.

사천은 마교의 영역과 그리 멀지 않다. 노상인의 말마따나 분노한 마교인에게 참살당해도 이상하지 않았다. 이런 소문은 금세 퍼져나가는 법이었으니 말이다.

결심을 마친 서연이 양 손에 힘을 주었다.

“끄으으윽……!”

낭인이 신음을 뱉어냈다. 서연의 양 손이 제 팔을 강하게 짓누르고 있었기 때문이다.

순식간에 식은땀을 흘렸다. 도무지 뿌리칠 수 없었다. 이러다 양팔이 우그러질지도 모른다는 공포가 낭인의 뇌리를 잠식했다.

낭인의 팔에서 부서지는 듯한 소리가 들릴 때쯤, 서연은 그의 팔을 놓아주었다.

서연은 거친 숨을 내뱉는 낭인을 내려다보며 생각했다.

예전에 회화루로 갔을 때, 사람이 되기로 다짐했다. 잘못된 길로 빠진 사람을 한 번 정도는 용서해줄 의향이 있었다.

물론 서연은 어쭙잖게 마무리한 상대가 복수심을 품고 돌아온다는 것쯤은 알고 있었다. 상대가 낭인인 이상, 힘의 차이를 명확하게 보여주어야 했다.

촤악!

서연은 망설임 없이 발검했다. 낭인의 양쪽 소매가 동시에 잘려나갔다. 살갗에는 그저 얇은 실선이 생겨났을 뿐이나, 낭인은 그것만으로도 제 손목이 잘려나간 줄로 착각하고 주저앉았다.

“……보이지 않았다.”

“참으로 고절한 검초다! 당랑암화와 괜히 어울리는 것이 아니었구나.”

“사사로이 목을 베지 않는 것도 자비롭도다!”

사방에서 감탄사가 터져 나왔다. 서연은 아랑곳하지 않고 검으로 사내의 목을 겨눈 채 기세를 뿜어냈다.

“허, 허억!”

나머지 낭인들도 저항할 의지를 잃었다. 견문이 부족했음에도 상대의 실력이 넘볼 수 없을 정도로 뛰어남을 알았다. 서연이 그들의 목 근처에 실선을 새겼기 때문이다.

"사, 사죄드리겠소!"

낭인들은 서연이 뭐라 말하지 않았음에도 알아서 노상인에게 넙죽 엎드렸다. 그리고는 서연의 눈치를 보다 도망치듯 빠져나갔는데, 실례라도 한 것인지 어기적거리며 달려가는 이가 적지 않았다.

“도와주셔서 감사합니다. 큰 일을 치를 뻔했습니다.”

그렇게 말하는 노상인의 말투는 낭인들을 대할 때보다 훨씬 정중했다. 잘 자란 손녀를 대하는 듯했다.

“제가 어찌 사례해야…….”

서연의 행색을 살피던 노상인의 눈이 이채를 띄었다.

“혹, 하남에서 오셨습니까?”

“그걸 어찌…….”

서연 또한 미간을 좁혔다. 어디선가 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먼저 입을 연 것은 노상인이었다.

“저희 상단의 짐꾼들을 구해주셨던 분을 어찌 잊겠습니까.”

“!”

그제서야 노상인의 옷에 새겨진 그림이 눈에 들어왔다. 하남 태실산에 있을 때 자주 사용했던 일월상단의 표식이었다.

“혹시 어르신이 일월상단주십니까?”

“역시 기억하시는군요. 언젠가 한 번 찾아뵈어 감사 인사를 드려야겠다고 생각하였는데, 설마 이렇게 먼 곳에서 뵙게 될 줄은 몰랐습니다.”

서연은 저도 모르게 노상인의 일행을 응시했다. 혹여 저번에 구했던 짐꾼들이 있나 해서였다.

노상인이 고개를 가로저으며 말했다.

“전부 하남에 남아 있습니다. 이런 장거리 상행에 데려갈 수는 없는 노릇이지요.”

사실 일월상단이라는 이름은 서연 입장에서는 그리 듣기 좋은 이름은 아니었다.

무협지에서 마교인이 스스로를 자칭하는 방식은 크게 두 가지로 나뉘는데, 하나는 천마신교요, 다른 하나는 일월신교(日月神敎)기 때문이다.

허나 설마, 소림사가 제 앞마당에 사교의 이름을 딴 상단이 자리잡도록 허락했겠는가. 그럴 리가 없었다.

그게 사실이라면 마교와 소림사가 둘다 멍청이 집단이라는 뜻이기 때문이다.

고로 일월상단은 마교와는 아무런 관계가 없는 평범한 상단이라는 것이 서연의 생각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