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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천당문 내에서 작은 소문이 돌았다. 당소소 아가씨가 뒷산에서 돌과 나무를 깎는다는 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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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고 하여 직접 찾아가는 사람은 없었다. 일단 아가씨께 무례가 되기도 했거니와, 돌과 나무 따위를 깎는 것을 구경하러 찾아갈 정도로 한가한 사람들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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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천당문의 식솔들이 괜히 많겠는가. 이만한 장원을 막힘없이 운영하기 위해서는 모든 구성원이 제 할 일을 빈틈없이 해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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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따금 당소소 아가씨가 괴상하게 깎인 나무토막을 들고 어디론가 황급히 달려가는 것을 볼 때마다 궁금증이 솟아오르긴 했지만, 그것이 전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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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계가 하는 일이니 다 이유가 있을 것이다. 새로운 방식의 훈련이지 않을까. 문제가 있다면 높으신 분들이 알아서 제지하실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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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들 그렇게만 생각했다. 사천당문의 소가주, 당진성만 제외하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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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님, 내일 떠나신다고 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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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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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소소는 당진성을 쳐다보지도 않고 그리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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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의 시선은 눈 앞에 놓인 나무토막을 향해 있었는데, 연녹색 눈동자가 그녀의 표정이 일그러질 때마다 미세하게 흔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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깊은 수심에 잠긴 듯했다. 평소보다 몹시 진지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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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자기 각예에 취미를 들이셨습니까? 저희 또래에는 뱃놀이가 훨씬 어울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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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중해야 합니다. 방해할거면 멀리 가십시오. 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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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물고 있겠습니다. 저도 누님이 뭘 하시는지 궁금했던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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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진성은 당소소의 뒤로 물러서자마자 도로 얼굴을 무표정하게 되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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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님이 이상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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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래도 괴짜였으나, 이 정도는 아니었다. 그뿐이랴, 갑자기 부친과 독대하더니 외유를 허락받아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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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에는 수련이나 하나 싶었는데, 진짜로 각예를 하고 있었을 줄이야. 무림인과 각예? 솔직히 어울리지 않았다. 차라리 난(蘭)을 기르는 것이 백배 천배 나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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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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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 고뇌하던 당소소는 자그마한 칼을 움직여 나무토막을 잘라냈다. 힘이 부족한 탓에 칼은 나아가다 막히기를 반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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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님, 진기를 사용하면 훨씬 쉬울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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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우님은 제가 그것도 모르는 멍청이로 보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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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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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부러 쓰지 않았다는 것이다. 당진성은 입을 다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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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소소는 불만족스러운 얼굴로 나무토막을 응시했다. 엉망이었다. 평소에 이런 훈련을 하지 않은 탓에 더 그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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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리 생각해도 예술품을 만드는 것 같지는 않은데, 왜 이런 짓을 하시는 겁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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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소소는 질린다는 얼굴로 당진성을 바라보다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대답해주지 않으면 떠나지 않을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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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물의 결을 읽는 훈련입니다. 대성에 이르면 나뭇가지조차 명검처럼 쓸 수 있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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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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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접 보지 못해서 그렇습니다. 보면, 아우님도 생각이 달라질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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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 저녁마다 서연은 화련과 당소소를 데리고 각예를 가르쳤다. 화련이야 매일 보았던 장면이었기에 담담했지만, 당소소는 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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볼품없이 쓰려져있던 고목이 활강하는 맹금의 모습으로 화하는 것을 목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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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빛이 궤적에 거침없이 잘려나갔다. 월광이 아름답게 비산할 때마다 경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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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몽 속에 들어온 것 같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 정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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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적 감각보다 무학에 대한 이해도가 높았기에, 움직임에 담긴 무를 먼저 읽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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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기에 당소소는 당당하게 이리 말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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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무림인이 각예를 했다면, 평균 수위가 지금의 곱절은 되었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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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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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진성은 확실히 누님이 이상해졌음을 느꼈다. 허나 내색하지 않고 화제를 돌리려 나무토막을 향해 턱짓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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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지금은 무얼 만드시는 겁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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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체를 만들고 있습니다. 기초부터 시작하는 것이 좋다 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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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진성은 남몰래 눈을 좁혔다. 아무리 보아도 구체보다는 찌그러지고 비틀린 무언가에 가까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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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쯤 되니 누님이 진짜로 질 나쁜 사기꾼과 연루된 것은 아닐까 하는 걱정마저 들었다. 부친께서 어련히 판단하셨겠지만, 또 모르는 일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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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친마저 속여먹었을지 모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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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문된 오장로를 단독으로 격살한 인물이니, 실력은 확실히 뛰어날 터. 거기서 수십 수 정도 실력을 더 숨기면 부친도 어찌저찌 속여넘길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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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진성은 무려 두 시진동안 당소소를 지켜보았다. 소가주로서 마땅히 해야할 업무? 새벽 일찍 일어나 전부 처리하고 왔다. 당진성은 이리도 철저한 인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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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당진성은 여기서 만족할 생각이 없었다. 은공 일당이 매일 뒷산에서 벌인다는 기이한 모임에 직접 참석할 생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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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찌 가느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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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은 바로, 산정 장인이 칠 주야에 걸쳐 만든 명검을 가져다준다는 핑계로 방문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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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찌하여 소가주가 직접 왔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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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문의 은공을 헛되이 대할 수 있겠습니까. 은공께서 직접 오시는 것도 좋겠지만, 제가 직접 전해드리는 것이 훨씬 모양새가 좋지요. 설명해주실 것이 있다면 제가 기억해두었다가 전해드리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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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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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집을 벗겨 살피지는 않겠습니다. 그건 은공이 직접 해야 할 일이지요. 아니면 장인께서도 함께 가시겠습니까? 은공께서 어디 계시는지는 제가 알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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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당진성은 기어코 산정 장인까지 꼬드겨 뒷산으로 올랐다. 목격자는 많을수록 좋다는 계산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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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가주는 성실하시구려. 장차 큰 인물이 되시겠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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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하. 가문의 최고 명장께 그런 말씀을 들으니 참으로 기분이 좋습니다. 실망시켜 드려선 안 되니 제가 더 노력해야겠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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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허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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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하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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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뚝뚝한 산정 장인조차 그에게 마음을 연지 오래였으니, 열 여덟이라고는 믿기 힘든 처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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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작 가져다준다던 명검은 산정 장인이 들고 있었다. 떠넘긴 것은 아니었다. 명장들은 으레 제가 만든 병기를 주인에게 직접 가져다주고 싶어 했기 때문이다. 물론 당진성은 거기까지 계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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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진성은 눈이 소복이 쌓인 산길을 터덜터덜 걸었다. 겨울이 다 되어 입에서 김이 새어 나왔지만, 내로라하는 후기지수였기에 춥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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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님도 떠나시면 한가해지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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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과 누이가 죄다 떠나가니 괜스레 상념이 깊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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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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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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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진성이 저도 모르게 탄성을 내뱉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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멀리서도 눈에 띄는 용모. 현실감이 다소 멀어지는 자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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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립을 벗은 모습을 처음 보았다. 누님과 제자를 앞에 앉혀두고 고목을 깎아내고 있었다. 눈이 소복이 쌓인 겨울 산에서 그러고 있으니 더욱 신비롭게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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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세상에서 왔다고 해도 믿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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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깨까지 늘어뜨린 담홍발이 홀로 소담히 피어오른 벚꽃 같았다. 그 때문인지 주변 풍경과 완전히 동떨어져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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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찌하여 용모를 가리고 다니는지 알 것 같았다. 그녀가 눈웃음이라도 짓는다면 가슴을 붙잡고 쓰러질 사내가 적지 않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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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진성은 곧장 해독약을 삼킨 후 다시금 서연을 응시했다. 여전히 미려한 용모였다. 환각이 아니라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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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확실히 범상치 않구나. 기인인 것은 알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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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초들이었다면 천상에서 내려온 선녀라 착각할 만했다. 당장 구파의 도인들도 신선 취급을 받는 세상인데 오죽하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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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심하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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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다짐하며 고개를 돌렸을 때, 산정 장인은 이미 서연의 근처까지 걸어가 이야기를 나누는 중이었다. 그제야 당진성은 자신이 한참 동안 넋을 놓고 있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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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찌 여기까지 오셨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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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래도 직접 전해드리는 것이 좋을 듯하여 이리 찾아오게 되었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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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연은 두 손으로 검을 건네받았다. 너무나 가벼워 무게가 거의 느껴지지 않을 정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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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철(隕鐵)을 섞었소. 오랜만에 욕심이 들더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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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철을 말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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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료는 중요치 않소. 결국 누구의 손에 들렸느냐가 중요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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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인은 어서 검을 뽑아보라 재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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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연은 손잡이를 잡는 순간 약간 놀랐다. 예전에 자신이 쓰던 검의 손잡이를 그대로 살려 만들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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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검은 손에 익숙하지 않기 마련인데, 기존의 손잡이를 살린 덕에 감각이 전혀 낯설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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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연은 천천히 검을 뽑았다. 도중에 날에 닿은 눈송이가 반으로 갈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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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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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을 뽑기만 했는데도 대기가 갈라지는 소리가 은은하게 퍼져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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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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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처럼 맑은 검신에 주변 사람들의 놀란 얼굴이 선명하게 비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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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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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만큼이나 아름다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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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연은 형용할 수 없는 감정을 느꼈다. 처음 느껴보는 감정이라 말로 표현하기 힘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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곧 서연과 산정 장인의 눈이 마주쳤다. 산정 장인은 고개를 끄덕이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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촤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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곧 서연의 검이 밤공기를 갈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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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종혈부터 진기를 끌어모아 한 번에 힘을 실어 내리그은 것이다. 일 년 전, 화련을 제자로 받아들였던 그날 밤에 펼쳤던 바로 그 검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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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화비영보도 섞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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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법은 본디 보신경과 섞여야 비로소 완성되는 법이었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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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아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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흰빛 궤적이 춤추듯 이지러졌다. 눈발 사이로 실선이 선명히 그려지고, 갈라진 눈의 잔향이 길게 흩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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빠르면서도 섬세한, 능히 천상의 검법이라 할 만했다. 힘이 실리지 않는 것처럼 보였음에도 사방에서 잔바람이 몰아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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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조차 정해지지 않은 검법의 초식 하나를 펼쳤을 뿐이지만, 섣불리 입을 여는 사람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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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으로 찬란하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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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진성의 얼굴에만 음영이 졌다. 제 누님을 어떻게 홀렸는지 알아차린 탓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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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예를 본딴 검법이라 그런가, 마치 춤을 추는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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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 장포를 입고 있는 탓에 더더욱 그러했다. 마치 날개옷을 입은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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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더 봐서는 안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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찰나에 마음이 동했다. 더 보고 싶다는 마음이 솟구쳤다. 계속 보았다가는 저마저 가문을 저버릴지도 모른다. 그럴 수는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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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진성이 눈을 질끈 감은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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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연이 깊이 숨을 들이마신 후, 천천히 검을 집어넣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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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아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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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공에 잔향처럼 남아있던 검의 궤적이 그제서야 흩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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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방에서 숨 삼키는 소리가 들려왔다. 화련은 제 정수리에 쌓인 눈을 털어냈다. 숨도 쉬지 못하고 검무에 몰입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그제야 알아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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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정 장인이 먼저 입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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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넋을 빼고 보았소이다. 검법의 이름을 여쭈어도 되겠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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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마땅한 이름을 정하지 못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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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말을 해도 될지 모르겠소만, 능히 천하를 논할 만한 검법이었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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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법에 천(天) 자를 담을 만하다는 의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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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목족만큼은 아니었지만, 산정 역시 평범한 인간들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장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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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장으로 살아오며 견식한 절세검법이 적지 않았을 터. 서연의 검법 또한 그와 비견된다는 뜻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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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연은 그러한 내막까지는 몰랐으나, 중하게 받아들일 조언이라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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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잔향(殘香)도 기뻐하는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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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정 장인은 검을 보며 그리 말했다. 흘러나오는 검파를 느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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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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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지 않겠다는 듯 서연의 쥘부채 또한 묘한 진동음을 발했다. 잔향검은 반응하지 않았다. 아직 영성이 깃들지 않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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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잔향, 좋은 이름이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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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생의 역작이오. 부디 잘 사용해주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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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 주야만에 만든 검이었다면 필생의 역작이라 하지 않았을 것이다. 허나 그는 일 년이 넘는 시간 동안 운철을 정련했고, 그 운철을 잔향을 만드는 데 사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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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 번 다듬은 철을 백련정강(百鍊精鋼)이라 했다. 일 년 동안 수천 번은 족히 다듬었을 운철은 뭐라 불러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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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기에 서연이 기존에 사용하던 검의 영성까지 섞였다. 잔향이 신병이기로 거듭난 것은 그 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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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합니다. 장인의 명성에 누가되지 않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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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또한 영광이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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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은 마주 포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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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연은 제 허리춤에 매인 잔향과, 저를 올려다보는 화련과 당소소를 바라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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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은 심상 속에서나마 서연을 따라하려 애썼다. 그것이 표정에서 그려졌기에, 서연은 웃으면서 둘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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