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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12-14 21:31:57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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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천당문 내에서 작은 소문이 돌았다. 당소소 아가씨가 뒷산에서 돌과 나무를 깎는다는 소문이었다.

그렇다고 하여 직접 찾아가는 사람은 없었다. 일단 아가씨께 무례가 되기도 했거니와, 돌과 나무 따위를 깎는 것을 구경하러 찾아갈 정도로 한가한 사람들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사천당문의 식솔들이 괜히 많겠는가. 이만한 장원을 막힘없이 운영하기 위해서는 모든 구성원이 제 할 일을 빈틈없이 해내야 했다.

이따금 당소소 아가씨가 괴상하게 깎인 나무토막을 들고 어디론가 황급히 달려가는 것을 볼 때마다 궁금증이 솟아오르긴 했지만, 그것이 전부였다.

직계가 하는 일이니 다 이유가 있을 것이다. 새로운 방식의 훈련이지 않을까. 문제가 있다면 높으신 분들이 알아서 제지하실 것이다.

다들 그렇게만 생각했다. 사천당문의 소가주, 당진성만 제외하고 말이다.

“누님, 내일 떠나신다고 들었습니다.”

“그렇습니다.”

당소소는 당진성을 쳐다보지도 않고 그리 말했다.

그녀의 시선은 눈 앞에 놓인 나무토막을 향해 있었는데, 연녹색 눈동자가 그녀의 표정이 일그러질 때마다 미세하게 흔들렸다.

깊은 수심에 잠긴 듯했다. 평소보다 몹시 진지해 보였다.

“갑자기 각예에 취미를 들이셨습니까? 저희 또래에는 뱃놀이가 훨씬 어울립니다.”

“집중해야 합니다. 방해할거면 멀리 가십시오. 훠이.”

“다물고 있겠습니다. 저도 누님이 뭘 하시는지 궁금했던지라.”

당진성은 당소소의 뒤로 물러서자마자 도로 얼굴을 무표정하게 되돌렸다.

‘누님이 이상하다.

본래도 괴짜였으나, 이 정도는 아니었다. 그뿐이랴, 갑자기 부친과 독대하더니 외유를 허락받아 버렸다.

처음에는 수련이나 하나 싶었는데, 진짜로 각예를 하고 있었을 줄이야. 무림인과 각예? 솔직히 어울리지 않았다. 차라리 난(蘭)을 기르는 것이 백배 천배 나았다.

“음.”

잠시 고뇌하던 당소소는 자그마한 칼을 움직여 나무토막을 잘라냈다. 힘이 부족한 탓에 칼은 나아가다 막히기를 반복했다.

“누님, 진기를 사용하면 훨씬 쉬울 것 같습니다.”

“아우님은 제가 그것도 모르는 멍청이로 보입니까?”

“…….”

일부러 쓰지 않았다는 것이다. 당진성은 입을 다물었다.

당소소는 불만족스러운 얼굴로 나무토막을 응시했다. 엉망이었다. 평소에 이런 훈련을 하지 않은 탓에 더 그랬다.

“아무리 생각해도 예술품을 만드는 것 같지는 않은데, 왜 이런 짓을 하시는 겁니까?”

당소소는 질린다는 얼굴로 당진성을 바라보다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대답해주지 않으면 떠나지 않을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사물의 결을 읽는 훈련입니다. 대성에 이르면 나뭇가지조차 명검처럼 쓸 수 있게 됩니다.”

“……그렇습니까?”

“직접 보지 못해서 그렇습니다. 보면, 아우님도 생각이 달라질 겁니다.”

매일 저녁마다 서연은 화련과 당소소를 데리고 각예를 가르쳤다. 화련이야 매일 보았던 장면이었기에 담담했지만, 당소소는 달랐다.

볼품없이 쓰려져있던 고목이 활강하는 맹금의 모습으로 화하는 것을 목도했다.

달빛이 궤적에 거침없이 잘려나갔다. 월광이 아름답게 비산할 때마다 경악했다.

혼몽 속에 들어온 것 같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 정도였다.

예술적 감각보다 무학에 대한 이해도가 높았기에, 움직임에 담긴 무를 먼저 읽어냈다.

그렇기에 당소소는 당당하게 이리 말할 수 있었다.

“모든 무림인이 각예를 했다면, 평균 수위가 지금의 곱절은 되었을 겁니다.”

“그……렇군요.”

당진성은 확실히 누님이 이상해졌음을 느꼈다. 허나 내색하지 않고 화제를 돌리려 나무토막을 향해 턱짓했다.

“그래서 지금은 무얼 만드시는 겁니까?”

“구체를 만들고 있습니다. 기초부터 시작하는 것이 좋다 하여.”

당진성은 남몰래 눈을 좁혔다. 아무리 보아도 구체보다는 찌그러지고 비틀린 무언가에 가까웠다.

이쯤 되니 누님이 진짜로 질 나쁜 사기꾼과 연루된 것은 아닐까 하는 걱정마저 들었다. 부친께서 어련히 판단하셨겠지만, 또 모르는 일 아닌가.

‘부친마저 속여먹었을지 모르지.

파문된 오장로를 단독으로 격살한 인물이니, 실력은 확실히 뛰어날 터. 거기서 수십 수 정도 실력을 더 숨기면 부친도 어찌저찌 속여넘길만했다.

당진성은 무려 두 시진동안 당소소를 지켜보았다. 소가주로서 마땅히 해야할 업무? 새벽 일찍 일어나 전부 처리하고 왔다. 당진성은 이리도 철저한 인물이었다.

물론 당진성은 여기서 만족할 생각이 없었다. 은공 일당이 매일 뒷산에서 벌인다는 기이한 모임에 직접 참석할 생각이었다.

어찌 가느냐?

그것은 바로, 산정 장인이 칠 주야에 걸쳐 만든 명검을 가져다준다는 핑계로 방문하는 것이다.

“……어찌하여 소가주가 직접 왔소?”

“가문의 은공을 헛되이 대할 수 있겠습니까. 은공께서 직접 오시는 것도 좋겠지만, 제가 직접 전해드리는 것이 훨씬 모양새가 좋지요. 설명해주실 것이 있다면 제가 기억해두었다가 전해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음.”

“검집을 벗겨 살피지는 않겠습니다. 그건 은공이 직접 해야 할 일이지요. 아니면 장인께서도 함께 가시겠습니까? 은공께서 어디 계시는지는 제가 알고 있습니다.”

그렇게 당진성은 기어코 산정 장인까지 꼬드겨 뒷산으로 올랐다. 목격자는 많을수록 좋다는 계산이었다.

“소가주는 성실하시구려. 장차 큰 인물이 되시겠소.”

“하하. 가문의 최고 명장께 그런 말씀을 들으니 참으로 기분이 좋습니다. 실망시켜 드려선 안 되니 제가 더 노력해야겠군요.”

“허허허!”

“하하하하!”

무뚝뚝한 산정 장인조차 그에게 마음을 연지 오래였으니, 열 여덟이라고는 믿기 힘든 처세였다.

정작 가져다준다던 명검은 산정 장인이 들고 있었다. 떠넘긴 것은 아니었다. 명장들은 으레 제가 만든 병기를 주인에게 직접 가져다주고 싶어 했기 때문이다. 물론 당진성은 거기까지 계산했다.

당진성은 눈이 소복이 쌓인 산길을 터덜터덜 걸었다. 겨울이 다 되어 입에서 김이 새어 나왔지만, 내로라하는 후기지수였기에 춥지 않았다.

‘누님도 떠나시면 한가해지겠다.

형과 누이가 죄다 떠나가니 괜스레 상념이 깊어졌다.

그때였다.

“아.”

당진성이 저도 모르게 탄성을 내뱉었다.

멀리서도 눈에 띄는 용모. 현실감이 다소 멀어지는 자태였다.

죽립을 벗은 모습을 처음 보았다. 누님과 제자를 앞에 앉혀두고 고목을 깎아내고 있었다. 눈이 소복이 쌓인 겨울 산에서 그러고 있으니 더욱 신비롭게 느껴졌다.

‘……다른 세상에서 왔다고 해도 믿겠다.

어깨까지 늘어뜨린 담홍발이 홀로 소담히 피어오른 벚꽃 같았다. 그 때문인지 주변 풍경과 완전히 동떨어져 보였다.

어찌하여 용모를 가리고 다니는지 알 것 같았다. 그녀가 눈웃음이라도 짓는다면 가슴을 붙잡고 쓰러질 사내가 적지 않으리라.

당진성은 곧장 해독약을 삼킨 후 다시금 서연을 응시했다. 여전히 미려한 용모였다. 환각이 아니라는 뜻이다.

‘확실히 범상치 않구나. 기인인 것은 알겠다.

민초들이었다면 천상에서 내려온 선녀라 착각할 만했다. 당장 구파의 도인들도 신선 취급을 받는 세상인데 오죽하겠는가.

‘방심하지 말자.

그렇게 다짐하며 고개를 돌렸을 때, 산정 장인은 이미 서연의 근처까지 걸어가 이야기를 나누는 중이었다. 그제야 당진성은 자신이 한참 동안 넋을 놓고 있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어찌 여기까지 오셨습니까.”

“아무래도 직접 전해드리는 것이 좋을 듯하여 이리 찾아오게 되었소.”

서연은 두 손으로 검을 건네받았다. 너무나 가벼워 무게가 거의 느껴지지 않을 정도였다.

“운철(隕鐵)을 섞었소. 오랜만에 욕심이 들더군.”

“……운철을 말입니까?”

“재료는 중요치 않소. 결국 누구의 손에 들렸느냐가 중요하지.”

장인은 어서 검을 뽑아보라 재촉했다.

서연은 손잡이를 잡는 순간 약간 놀랐다. 예전에 자신이 쓰던 검의 손잡이를 그대로 살려 만들었기 때문이다.

새 검은 손에 익숙하지 않기 마련인데, 기존의 손잡이를 살린 덕에 감각이 전혀 낯설지 않았다.

서연은 천천히 검을 뽑았다. 도중에 날에 닿은 눈송이가 반으로 갈라졌다.

사악―

검을 뽑기만 했는데도 대기가 갈라지는 소리가 은은하게 퍼져나갔다.

“……!”

눈처럼 맑은 검신에 주변 사람들의 놀란 얼굴이 선명하게 비쳤다.

‘명검이다.

그만큼이나 아름다웠다.

서연은 형용할 수 없는 감정을 느꼈다. 처음 느껴보는 감정이라 말로 표현하기 힘들었다.

곧 서연과 산정 장인의 눈이 마주쳤다. 산정 장인은 고개를 끄덕이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촤악!

곧 서연의 검이 밤공기를 갈랐다.

회종혈부터 진기를 끌어모아 한 번에 힘을 실어 내리그은 것이다. 일 년 전, 화련을 제자로 받아들였던 그날 밤에 펼쳤던 바로 그 검법이었다.

‘연화비영보도 섞어보자.

검법은 본디 보신경과 섞여야 비로소 완성되는 법이었으니 말이다.

사아아―

흰빛 궤적이 춤추듯 이지러졌다. 눈발 사이로 실선이 선명히 그려지고, 갈라진 눈의 잔향이 길게 흩어졌다.

빠르면서도 섬세한, 능히 천상의 검법이라 할 만했다. 힘이 실리지 않는 것처럼 보였음에도 사방에서 잔바람이 몰아쳤다.

이름조차 정해지지 않은 검법의 초식 하나를 펼쳤을 뿐이지만, 섣불리 입을 여는 사람이 없었다.

‘참으로 찬란하구나…….

당진성의 얼굴에만 음영이 졌다. 제 누님을 어떻게 홀렸는지 알아차린 탓이다.

각예를 본딴 검법이라 그런가, 마치 춤을 추는 듯했다.

긴 장포를 입고 있는 탓에 더더욱 그러했다. 마치 날개옷을 입은 듯했다.

‘더, 더 봐서는 안된다……!

찰나에 마음이 동했다. 더 보고 싶다는 마음이 솟구쳤다. 계속 보았다가는 저마저 가문을 저버릴지도 모른다. 그럴 수는 없었다.

당진성이 눈을 질끈 감은 순간이었다.

서연이 깊이 숨을 들이마신 후, 천천히 검을 집어넣었다.

사아악―

허공에 잔향처럼 남아있던 검의 궤적이 그제서야 흩어졌다.

사방에서 숨 삼키는 소리가 들려왔다. 화련은 제 정수리에 쌓인 눈을 털어냈다. 숨도 쉬지 못하고 검무에 몰입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그제야 알아챘다.

산정 장인이 먼저 입을 열었다.

“……넋을 빼고 보았소이다. 검법의 이름을 여쭈어도 되겠소?”

“아직 마땅한 이름을 정하지 못했습니다.”

“이런 말을 해도 될지 모르겠소만, 능히 천하를 논할 만한 검법이었소.”

검법에 천(天) 자를 담을 만하다는 의미였다.

청목족만큼은 아니었지만, 산정 역시 평범한 인간들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장수했다.

명장으로 살아오며 견식한 절세검법이 적지 않았을 터. 서연의 검법 또한 그와 비견된다는 뜻이었다.

서연은 그러한 내막까지는 몰랐으나, 중하게 받아들일 조언이라 생각했다.

“잔향(殘香)도 기뻐하는군.”

산정 장인은 검을 보며 그리 말했다. 흘러나오는 검파를 느낀 것이다.

우웅.

지지 않겠다는 듯 서연의 쥘부채 또한 묘한 진동음을 발했다. 잔향검은 반응하지 않았다. 아직 영성이 깃들지 않았기 때문이다.

“잔향, 좋은 이름이군요.”

“필생의 역작이오. 부디 잘 사용해주시오.”

칠 주야만에 만든 검이었다면 필생의 역작이라 하지 않았을 것이다. 허나 그는 일 년이 넘는 시간 동안 운철을 정련했고, 그 운철을 잔향을 만드는 데 사용했다.

백 번 다듬은 철을 백련정강(百鍊精鋼)이라 했다. 일 년 동안 수천 번은 족히 다듬었을 운철은 뭐라 불러야 할까.

거기에 서연이 기존에 사용하던 검의 영성까지 섞였다. 잔향이 신병이기로 거듭난 것은 그 덕이었다.

“감사합니다. 장인의 명성에 누가되지 않도록 하겠습니다.”

“나 또한 영광이오.”

둘은 마주 포권했다.

서연은 제 허리춤에 매인 잔향과, 저를 올려다보는 화련과 당소소를 바라보았다.

둘은 심상 속에서나마 서연을 따라하려 애썼다. 그것이 표정에서 그려졌기에, 서연은 웃으면서 둘의 머리를 쓰다듬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