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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12-14 21:31:57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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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천당문의 소가주, 당진성은 가히 편집증이라 일컬을 만한 성정을 지닌 인물이었다.

자신에게 닥칠 피해를 걱정하는 일반적인 편집증과는 사뭇 달랐다. 그의 의심과 두려움은 오직 사천당문의 안위만을 향해 있었다.

누님을 제외한 동년배 중 독보적인 무위를 갖춘 것도 모두 이 기벽 덕이었다. 가문을 지키려면 결국 당진성 본인이 강해져야 했으니 말이다.

물론 당진성은 이러한 성격을 겉으로 전혀 드러내지 않았다. 사천당문의 식솔들이 보기에, 당진성은 그저 예의바르고 성실한 소년일 뿐이다.

실상은 달랐다.

당진성의 속이 뒤틀려있다는 사실을 아는 이는 온 중원을 통틀어 당가주와 당소소, 단 두 명뿐이었다.

당진성은 서연 일행을 안내하면서 그들의 행색을 꼼꼼히 흝었다. 우선 누님의 은공이라던 서연부터였다.

‘손에 이렇다 할 굳은살이 없다. 겉으로 드러나는 나이는 많아야 약관 언저리. 허나 고작 그 나이에 오장로와 녹림오호를 격살할 수 있었을까?

아니라고 생각했다.

당진성의 사고회로는 일반인들과 완전히 달랐다.

그렇기에 그는 서연이 반로환동한 초고수일 가능성과, 동시에 약관 언저리의 나이에 환골탈태를 이뤄낸 천재일 가능성을 동시에 고려했다.

전자는 상상력이 뛰어난 자라면 으레 떠올릴 수 있는 일이었으나, 후자는 완전히 상식 밖의 일이었다. 그래서 당진성은 후자 쪽에 더 무게를 실었다.

그래야 그 상황이 닥쳤을 때 충격이 덜하기 때문이다.

‘저 연배에 저 정도 성취라면, 천명검단주의 숨겨진 직전제자인가? 아니, 어쩌면 사마외도가 숨겨놓은 신진고수일 수도 있겠다.

마교의 소교주도 성별이 밝혀지지 않았다 들었다. 혹시 모르는 일이다.

아니면 노고수가 어린 여인의 손가죽을 벗겨 끼고 있을 가능성도 있었다.

그러나 잠시 생각하던 당진성은 고민 끝에 그 가능성을 철회했다.

‘산정의 눈썰미는 인간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뛰어나다. 인피면구 비슷한 것을 사용하고 있다면 그 즉시 들통날거야. 저 정도로 오성이 뛰어난 고수가 그것을 감안하지 않았을 리 없다.

당진성의 시선은 이제 서연이 쓰고 있는 죽립과 면사로 향했다.

흑도의 무인이라면 저런 식으로 얼굴을 가리고 다니지 않는다. 자칫 거친 바람이라도 불어 맨얼굴이 드러나면 큰 낭패를 보기 때문이다.

‘그래서 보통 가면을 쓰고 다니지.

허나 그러지 않은 것으로 보아, 스스로가 떳떳하거나 혹은 흑도 출신임에도 맨 얼굴이 알려지지 않은 무인일 것이다.

전자보다 후자일 때가 가문에 더 큰 충격을 안겨줄 터이니, 후자 쪽에 비중을 두고 생각하는 것이 더 이득이었다.

당진성은 슬쩍 고개를 돌려, 나긋나긋한 어조로 물었다.

“은공께서는 여행을 다닌다고 하셨지요? 혹, 어디에서 오셨는지 여쭈어도 되겠습니까?”

“하남에서 왔습니다.”

하남이라니, 예상 밖의 답이었다. 아무리 제정신이 아닌 사마외도라 할지라도 소림이 있는 하남에 기거하지는 못한다.

그렇기에 사마외도의 간자들은 제 출신을 댈 때, 하남 출신이라는 말은 감히 입에 답지 못했다. 금방 들통나기 때문이다.

“하핫, 그렇군요.”

당진성은 웃는 척을 하다가 이내 입을 다물었다.

‘만만치 않은 적수다.

설마 대놓고 정면 돌파를 시도할 줄은 몰랐다.

더 묻고 싶은 것이 많았지만, 그랬다가는 이상한 오해를 살 수 있었다.

―아우님. 질문 의도가 매우 불순합니다. 혹시 또 맞고 싶어서 그러는 겁니까?

당장 누님부터가 저를 세차게 노려보고 있었다. 이 이상 떠보았다가는 한 대 얻어맞을 가능성이 농후했다.

그렇다면 어쩔 수 없이 서연의 일행을 파악할 차례.

팽무성? 저 인간은 볼 것도 없다. 자신이 소가주 자리를 떠맡게 된 것도, 형님이 저 인간의 꼬드김에 홀딱 넘어간 탓이었으니 말이다.

'천명검은 무슨 빌어먹을 천명검.'

팽무성에게는 반드시 갚아줘야 할 빚이 있었다. 제게 소가주 직을 떠넘긴 형님도 마찬가지다. 언젠가 공식석상에서 제대로 망신을 주리라 다짐하는 것으로 족했다.

그렇다면 이제 남은 것은 은공이 데려온 여자아이 뿐이다.

겉으로 보기에는 그리 특별한 점이 보이지 않았다.

‘제자라고 했다.

흝어보았을 때 학대의 흔적은 없었다. 오히려 살집이 적당히 오른 것이, 잘 먹고 잘 지내는 모양이었다.

사마외도일 가능성이 크게 낮아졌다. 하지만 당진성은 방심하지 않았다.

‘외양은 얼마든지 그럴듯하게 만들 수 있다.

허나 표정과 행동까지 속이기는 힘들다. 하지만 이곳저곳을 둘러보는데 여념이 없는 화련은 정말로 그 나이대의 어린아이처럼 보였다.

자신처럼 다섯 살 때부터 편집증적인 사고를 가지게 된 것이 아닌 이상, 저 나이대에 그만한 연기력을 가지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웠다.

물론 당진성은 호락호락한 사람이 아니었다. 혹시 몰랐다. 반로환동한 초고수가 어린아이 행세를 하고 있을 수도 있지 않겠는가.

‘과연 이것도 넘길 수 있을까.

당진성은 품에서 당과를 꺼냈다. 매 순간 비장한 각오를 품고 사는 그였다. 이따금 단 것으로 풀어주지 않으면 정신이 위태로워지곤 했다. 품에 단 음식을 넣고 다니는 것도 그 때문이었다.

당진성은 화련에게 다가가, 은근한 목소리로 말했다.

“은공의 제자 분, 이걸 한 번 드셔보시겠습니까?”

"음, 이건 뭔가요?"

다 알면서 물어보다니. 순간 싸가지없다는 생각이 스쳐 지나갔지만, 내색하지 않았다. 당진성은 서글서글한 미소를 품은 채로 다시 말했다.

"당과입니다. 꿀을 발라 맛이 아주 좋지요."

“!”

순간 화련의 눈이 번쩍 뜨였다. 연기라고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자연스러운 모습이었다.

화련은 일말의 망설임 없이 당과를 받아들고는, 입을 크게 벌려 핥아 먹고 부숴 먹기를 반복했다.

누가 보아도 그 나이 또래의 아이가 보일 법한 모습이었다.

‘…….

반로환동한 초고수가 체면을 전부 내려놓고 저리 열심히 연기할 수 있을까. 그럴 가능성은 없다고 봐도 좋았다.

'정말로 그냥 어린아이인가.'

저 모습을 보라. 입 주변에 설탕이란 설탕은 다 묻히고 먹고 있다.

허나 이상하리만치 묘한 기시감이 드는 탓에, 의심의 시선을 거두기가 힘들었다. 당진성은 스스로의 감이 꽤 좋은 편이라고 믿었기 때문이다.

이 감으로 찾아낸 간자가 무려 열 명이 넘었으니 오죽할까.

그렇기에 당진성은 방심하지 않고 마지막까지 화련을 떠보았다.

“……하나 더 드시겠습니까?”

“네.”

꿀로 범벅이 된 손을 내미는 화련을 보며 당진성은 속으로 침음을 삼켰다.

'입 주변에 꿀이 무슨.'

그뿐이랴. 옷 주변에도 흥건하게 묻어 있었다. 오죽했으면 서연이 직접 나서서 손수건으로 닦아주어야 했을 지경이었다.

"당과 주세요."

"……예."

만약 화련이 진정 반로환동한 초고수라면, 당진성은 어쩔 수 없다고 생각했다…….

인간의 마음을 포기한 괴인을 어찌 이기겠는가. 아무리 당진성이라도 그건 무리였다.


서연 일행은 사천당문의 내당 깊숙한 곳으로 향했다.

깊숙하다는 표현보다 더 적절한 말은 없을 터였다. 산정이 머무는 곳은 정말로 어두컴컴한 땅속이었기 때문이다.

가히 갱도라고 불러도 부족함이 없을 정도로 깊고 험난한 길이었다.

앞서가던 당진성이 설명하듯 말했다.

“본가에서 다루는 독 중에는 광물독도 적지 않습니다. 그러한 독을 지속적으로 공급하기 위해서는 이런 시설이 필요하지요.”

설명하는 당진성에게서는 이전보다 힘이 빠진 기색이 역력했다.

이따금 화련에게 당과를 내밀 때만 생기를 되찾았는데, 화련이 당과를 받아먹으면 언제 그랬냐는 듯 다시 생기를 잃었다.

저도 당과를 좋아하면서 억지로 나눠주는 건가 싶었다.

서연의 상념은 그리 길게 이어지지 않았다.

거대한 석문이 모습을 드러냈기 때문이다.

당진성은 석문 한가운데에 파인 홈에 제 보패를 끼워 넣은 다음 내공을 흘려보냈다. 그러자 고절한 기관진식이 발동하며 석문이 천천히 열리기 시작했다.

구구구궁!

무게가 수천 근에 달할 것 같은 석문이 거침없이 열렸다. 모두가 놀랐지만, 가장 놀란 이는 서연이었다.

이전에 암단화를 담았던 함도 그러했듯, 이 석문 또한 정교한 장치들이 숨겨져 있었다. 당문의 직계가 아닌 다른 사람이 건드렸다면 분명 꿈쩍도 하지 않았을 터였다.

일행은 석문을 통과한 뒤에도 한참을 더 나아갔다. 다행히 천장에 야명주가 박혀 있어 발을 헛디딜 일은 없었다.

언제부터인가 묘한 열기가 느껴졌다. 대장간 속으로 들어온 것 같은 착각이 들 정도로 쇠를 두드리는 소리가 점점 가까워졌다.

“소가주.”

“철영(鐵榮) 장인.”

이윽고 한 사내가 나타나 당진성과 마주 포권을 취했다. 무수한 수염에 짧은 팔다리를 지닌 사내였는데, 그 키가 네 척에 살짝 못 미쳤다.

허나 근육만큼은 남달랐다. 불에 그을린 듯한 그의 근육은 그를 작은 거인으로 느끼게 할 만큼 강렬한 분위기를 풍겼다.

“이곳에는 무슨 일로 오셨소?”

“본가의 은공께서 장인을 뵙고 싶다고 하여 이리 모셨습니다.”

“은공?”

산정 장인의 시선이 곧장 서연에게로 향했다. 씨족 특유의 눈썰미일까. 당진성이 말한 은공이 누구인지를 곧장 알아챈 기색이었다.

그는 서연을 빤히 쳐다보다가 다짜고짜 물었다.

“혹 다른 씨족의 혼혈이시오?”

다른 씨족이라 함은 필시 청목족을 말하는 것일 터였다. 서연은 고개를 가로저으며 답했다.

“아닙니다.”

“당문의 은공은 내게도 은공이나 마찬가지오. 단순히 내 용모를 보고자 이곳까지 찾아온 것은 아닐터. 원하는 것을 말씀하시오.”

그렇게 말하는 산정 장인의 눈빛은 정말로 뭐든 만들어줄 수 있다고 확신하는 듯했다.

야장술과 손재주로는 천하에 견줄 존재가 없다고 했다. 오가며 보았던 기관진식들만 보아도 그것이 사실임을 알 수 있었다.

처음에는 단순히 암단화를 멀쩡히 담아낼 수 있을 정도로 정교한 함을 누가 만들었는지 궁금하여 찾아왔을 뿐이었으나, 지금은 생각이 달라졌다.

그러한 장치를 어떻게 만들었냐고 묻는 것은, 자신에게 삼신세불을 어찌 만들었냐고 묻는 것과 같았다.

손재주는 본래 감각의 영역이라서, 말로는 설명할 수 없는 부분이 많았다. 들어도 큰 소용이 없을 것이라 확신했다.

더구나 당문의 직계만이 드나들 수 있는 이곳을 아무 때나 들어올 수 있는 것도 아닐 터, 단순히 궁금증을 해결하기 위해 이만한 장인과 대면할 기회를 날리고 싶지 않았다.

잠시 고뇌하던 서연이 입을 열었다.

“제 검을 봐주실 수 있겠습니까?”

“……검을?”

서연은 더 설명하는 대신 허리춤에 매여 있던 검집을 풀었다. 이전에 하남의 대장간에서 샀던 검이었다.

산정 장인은 서연의 검을 순순히 건네받았다. 검 자체는 별 볼일이 없었다. 인간들의 눈에는 장인이라 불릴 실력자가 만든 것이겠지만, 산정 장인이 보기에는 그저 그런 검에 불과했다.

“……으음.”

허나 산정 장인은 코웃음 치는 대신 검의 감촉에 집중했다. 그의 손길은 조심스러웠는데, 그 모습이 마치 검을 사람처럼 대하는 듯 했다.

뛰어난 산정 장인은 검파의 감촉을 통해 검의 생애를 느낄 수 있었다. 그 또한 마찬가지였다.

그런 의미에서 서연의 검은 남달랐다.

검이란 본래 수많은 살생을 거치며 피와 한을 품게 되기 마련인데, 이것은 단 한 번도 누군가의 목숨을 끊은 적이 없었다.

그뿐이랴, 검의 결에서는 도가와 법가의 정순한 기운이 동시에 느껴졌다.

‘괜히 청목족이라 착각한 것이 아니었구나. 필부(匹夫)가 품을 수 있는 마음가짐이 아니다.

산정 장인이 내심 감탄하면서도 감정을 계속 이어나갔다.

검은 주인을 닮는다고 했다. 서연의 검이 좀처럼 부서지지 않을 단단한 영성(靈性)을 띄게 된 것은 분명 그 때문이리라.

믿기 힘든 일이다. 자연지기로 가득한 지맥에 보관하지 않는 한, 물건이 영성을 띄려면 못해도 수십 년의 세월을 거쳐야 했다.

허나 그가 손에 든 검은 이 모든 것을 정면으로 부정하듯, 미약하나마 분명한 영성을 띄고 있었다.

“……보기 드문 검이로군.”

그래서 그리 말했다.

검 자체는 평범했다. 허나 주인이 천하에 드문 기상을 가진 사람이었다.

그렇기에 검 또한 보기 드문 보검이 되었다.

허나 제 주인의 실력을 온전히 담아내기에는 그것만으로는 모자랐다.

“원한다면 새 검을 만들어줄 수 있소. 이 검과, 내가 가진 재료를 함께 녹여서 말이오. 당연히 손에도 잘 맞을 것이오.”

잠시 고민하던 서연은 고개를 끄덕였다. 더 좋은 검을 만들어준다는데 거절할 이유가 없었다.

“얼마나 걸리겠습니까?”

“칠주야만 기다리시오. 천하의 명검을 만들어 드리리다.”

장인의 자부심이 깃든 표정으로 그리 말했다.

칠주야, 일반적인 시선으로 보기에는 검 하나를 만들기도 촉박한 시간이었지만, 상대는 산정 장인이었다. 웬만한 검은 한 시진이면 만들어낼 수 있었다.

고로 칠주야가 걸린다는 뜻은, 전심을 다해 검을 만들겠다는 뜻이다.

‘장인도 은공이 마음에 드셨나보다.

당소소가 남몰래 고개를 끄덕이던 순간이었다.

―딸아.

당가주의 전음이 들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