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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연은 허공을 밟듯 사뿐히 내려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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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산이 흩어진 파편들이 폭풍처럼 몰아쳤지만, 서연의 주변에 이르러서는 마치 보이지 않는 벽에 부딪힌 듯이 힘을 잃고 흩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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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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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게 늘어진 장포가 바람에 펄럭이며 주위의 모든 시선을 사로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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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당소소는 홀린 듯한 눈동자를 감추려는 노력조차 하지 않고서 서연을 흝어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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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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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전의 일격은 당소소가 어찌 할 수 없는 수준이었다. 호위대주가 미처 손도 써보지 못하고 휩쓸려 나간 것만 보아도 그 위력을 짐작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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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월 끝에 실린 무게감부터 확연히 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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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을 직감했으나, 명색이 사천당문의 직계였다. 순순히 죽음을 받아들일 생각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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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월이 제 육신을 가르는 순간, 핏물과 독을 함께 터뜨려 끔찍한 고통을 선물해주리라 다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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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나 서연이 그를 막아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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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검격이 어찌나 황홀했던지, 당소소는 죽음의 문턱에 서 있었다는 사실조차 잊은 채 멍하니 서연의 모습만을 좇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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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천당문의 역사를 통틀어 손꼽히는 재능을 지녔다. 그렇기에 서연의 검술이 본래 짧은 검을 다루는 검법을 변형한 것임을 한눈에 꿰뚫어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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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걸 단도로 펼치면 또 얼마나 아름다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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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신해 있는 호위대주를 간파했을 때부터 평범한 인물이 아님을 짐작했지만, 이토록 무공의 경지가 드높을 줄은 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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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쓸만한 조력자를 데려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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곧 어둠 너머에서 산발의 노인이 모습을 드러냈다. 녹색 눈동자가 어둠 너머에서 야차처럼 번뜩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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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천당문의 전 오장로, 당위산(唐威山)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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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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곧 그의 옆에 덩치 큰 사내가 착지했다. 덩치에 어울리지 않게 엄청나게 날렵했는데, 그의 손에는 끝이 완전히 망가진 부월이 들려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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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시무시한 기세로 호위대주를 일격에 베어 넘기고, 당소소마저 격살하려 들었던 장본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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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서운 기파를 내뿜는 그 모습은 녹왕의 다섯 수제자, 녹림오호(綠林五虎) 중 한 명임을 짐작케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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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연을 위아래로 흝은 그가 이죽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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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집치고는 속도가 예사롭지 않군. 그 나이에 보일 수 있는 경지가 아닐진대, 죽립과 면사를 벗겨 직접 확인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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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쪽이 느린 것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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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격을 막으면서 진기를 대부분 소모했을텐데, 답지않게 허세를 부리는구나. 그 기세도 마음에 든다. 근맥을 끊어낸 다음 첩으로 삼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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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곧 등에 매여 있던 또다른 부월을 꺼내들었다. 녹왕의 제자들은 하나같이 무기를 소모품처럼 여기는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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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옆에 있던 당위산이 끌끌 웃으며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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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심하지 말게. 일전의 일격을 막아냈다는 것만으로도 후기지수라 불릴 수준은 아니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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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찌나 심후한 내공을 지니고 있는지, 당위산의 목소리가 공동을 가득 울렸다. 곡선같이 휘어진 눈동자가 당소소를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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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 년만이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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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름진 얼굴에서 악살같은 미소가 올라온다. 본능적으로 거부감이 드는 미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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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써 노부를 잊었더냐? 예전에 노부의 다리를 붙잡고 당과를 사달라고 졸랐던 것이 어제 일처럼 생생한데, 그새 이리 장성했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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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말투는 마치 뱀이 혀를 날름거리는 듯했다. 서연은 당소소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당소소는 당위산의 말이 들리지 않는 사람처럼 허공만을 멍하니 응시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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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림오호가 픽 웃으며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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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실 속 화초처럼 자라왔을테지. 호위의 죽음에 충격을 받아 정신을 놓기라도 한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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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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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위산이 좁힌 미간으로 당소소를 노려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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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명문세가라면 모를까, 당가의 직계들이 어떻게 자라나는지 아는 이라면 감히 그런 말을 할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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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 순간 죽음과 맞닿아 지내는 독인들이다. 호위의 죽음에 충격을 받았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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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아지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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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그조차 아니었다. 당소소의 눈동자가 파르르 떨리는 것을 보아, 조금 전의 검격을 복기하는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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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기할 만한 것도 없었거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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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위산은 속으로 혀를 찼다. 혹 독이 뇌까지 미쳐 기혈을 갈무리하는 중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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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지는 높았을지언정, 재능은 당소소에 미치지 못했기에 생긴 오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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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소소의 시야는 아직도 서연의 손끝에서 펼쳐지던 검격에 머물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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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의 문턱에 이르렀기에 세상이 평소보다 느리게 흘렀다. 거기에 오성까지 더해졌다. 그렇기에 검결의 오묘함을 엿볼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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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연에게 목숨을 구원받은 것은 첫 번째 은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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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계의 목숨을 구했으니, 당문의 비급을 견식하게 하고 은공으로 모시는 것으로 그 빚을 갚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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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나 서연이 펼쳤던 검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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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은 목숨으로도 가치를 추산하기 힘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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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천당문의 절기인 만천화우(萬天花雨)는 초대 가주가 직접 창안한 절기다. 허나 그것은 비도가 아니라 얇은 침 수천 개를 사용하여 펼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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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나 서연이 펼친 절기는 달랐다. 비도로 펼칠 수 있는 무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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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을 저를 구하면서 드러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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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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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소소는 벅찬 숨을 가까스로 가라앉혔다. 그제야 가문을 등지고 마교에 투신했던 숙부의 마음을 온전히 헤아릴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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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릇 상승의 무학이란, 무림인에게 목숨보다 더한 보배였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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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우 정신을 차린 그녀는 자신을 노려보는 당위산의 시선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서연에게로 한 발짝 다가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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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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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 가의 소소가, 은공께 인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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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 뒤에 무서운 적을 두고서도 조금의 망설임 없이 고개를 깊숙이 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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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변을 호위하듯 서 있는 당가의 무인들을 믿어서가 아니었다. 당소소 스스로가 자신의 목숨보다 이 일이 더 중요하다고 여겼기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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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씨 성을 가진 것들은 하나같이 정신이 나갔다더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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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월을 든 사내가 세차게 소리쳤다. 매서운 기파가 공동 내부에 절절히 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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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가씨께서 은공께 온전히 예를 표하실 수 있도록 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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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가의 무인들 중 우두머리 격의 사내가 그렇게 말했다. 곧 당가의 무인들이 일제히 앞으로 뛰어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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쩌엉! 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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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가 무인들은 죽음이 두렵지 않은 사람처럼 덤볐다. 저보다 두세 수는 앞서는 고수를 향해 야차처럼 달려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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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공, 무엇이든 말씀하십시오. 제가 따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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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연은 허리를 숙인 채 자신을 올려다보는 당소소를 물끄러미 응시했다. 이걸 고지식하다고 해야 할까, 아니면 정신이 나갔다고 해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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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그걸 따질 상황은 아니었다. 부월을 든 사내는 녹림오호라는 별호에 걸맞게 당가의 무인들을 오히려 압도하고 있었고, 정작 가장 위협적인 당위산은 나서지도 않은 상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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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연은 당소소를 바라보다 입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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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 소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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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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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제자를 부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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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련을 품에 안고 싸우는 것은 무리였다. 그럴 바에야 차라리 당소소의 곁에 두는 것이 나아 보였다. 그렇게 하면 당문의 무인들이 화련을 함께 지킬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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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소소는 결연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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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목숨을 바쳐 지키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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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정도까지는 필요 없다고 말하려다가 그만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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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천당문은 참으로 고지식하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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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지식하다는 말로 넘길 수준은 아니었다. 차라리 광기라 해야 옳을 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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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새 팽무성이 서연의 옆에 나란히 섰다. 눈빛만으로도 그가 무엇을 하려는지 짐작할 수 있었다. 이전에 그랬듯, 먼저 나서겠다는 뜻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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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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팽무성이 곧장 앞으로 뛰쳐나가 도를 횡으로 내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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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도격, 패검대로구나. 황태자의 개가 이곳까지 찾아왔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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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위산이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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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명검을 두려워하는 말투가 아니다. 완전히 사마외도의 길로 들어섰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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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독기를 양 팔에 휘감은 다음 그대로 일장을 내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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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아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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팽무성은 거대한 도면(刀面)으로 독무를 막아섰다. 완전히 피하는 것은 불가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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츠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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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에 머금고 있던 피독주가 타들어 가는 듯한 열기를 뿜어냈다. 기껏해야 반 각이면 그 효용을 다할 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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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와 동시에 사각지대에서 비도가 날아들었다. 명색이 사천당문의 전대 장로였다. 팽무성보다 그 격이 명백히 뛰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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쩌엉! 쩌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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팽무성의 도는 유독 큰 편이었다. 그 길이가 성인 남성의 상반신보다 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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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에도 비도와 충돌할 때마다 세차게 흔들렸다. 만약 무게가 가벼운 도였다면 진작에 구멍이 뚫리고도 남았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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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틈이 없었다. 어떻게든 앞으로 나아가 검격을 내질러야 했으나, 당위산은 조금의 틈도 허용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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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무를 헤치고 나아가려 하면 온갖 종류의 암기가 사방에서 날아들었다. 처음부터 지금까지 고작 다섯 걸음밖에 나아가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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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검식이 결코 얕지 않거늘, 내 경지가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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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검대가 익히는 무공을 패검식이라 했다. 본래 무기를 가리지 않는 무학이지만, 검수가 많아 그리 불렸다. 만약 도를 쓰는 사람이 더 많았다면 패도식이라 불렸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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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실의 대종사가 직접 창안한 무학이다. 뛰어난 오성을 지닌 팽무성조차도 대성하기 어려운 무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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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대로 입문한 것만으로도 재능을 인정받았으나, 그것만으로는 눈앞의 노괴를 상대하기에 역부족이었다. 당위산이 펼치는 것 또한 팔대세가의 절기였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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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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촤아아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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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걸음에 서연이 팽무성을 스쳐 지나갔다. 섬광이라 칭하기에 부족함이 없는 속도였다. 뒤늦게 솟구친 바람이 팽무성의 전신을 거칠게 휘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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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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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위산은 다급히 양손의 비도를 교차해서 서연의 검격을 막아내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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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나 서연의 검과 맞닿은 순간 당황하여 비도를 놓을 수 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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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번의 충돌에 무기를 감싼 독기가 두부처럼 뭉그러졌다. 비도는 순식간에 두 동강이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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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함을 깨달은 즉시 무기에서 손을 떼고 물러났음에도, 찰나에 서연의 진기가 당위산의 손아귀를 파고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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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양 손에서 느껴지는 아릿한 감각에 손을 쥐었다 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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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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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만 더 나아갔으면 몸째로 베였을 것이다. 그는 황급히 전신의 진기를 폭발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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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둠 속에서 세차게 움직이는 그의 속도는 순식간에 몇 배나 빨라진 듯했다. 당문의 보법이라기보다는 살수의 보법에 가까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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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연은 당황하지 않았다. 당문의 오 장로가 살수들의 교육을 담당했었다는 사실을 미리 전해들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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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뿐이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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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합에 깨달았다. 자신이 더 강했다. 재능도 제가 더 뛰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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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만 부족한 것은 실전 경험과 상대를 죽이겠다는 살의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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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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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위산은 품속에서 폭우이화침을 꺼내들었다. 겉보기에는 그저 둥근 원통일 뿐이지만, 내부 구조는 내로라하는 장인들조차도 혀를 내두를 정도로 복잡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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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출부를 누르면 동물의 털보다도 가느다란 침 수백 개가 한 번에 날아갔다. 내기를 담아 쏘아내면 웬만한 검풍으로도 막아낼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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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 끝에는 각기 다른 종류의 독이 묻어 있는데, 하나하나가 치명적이었다. 그중에는 내공 수발을 틀어막는 산공독도 열 종류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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괜히 당가의 독문 암기라 불리는 것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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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당위산은 폭우이화침만 믿을 생각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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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위산의 눈동자에서 녹색 빛이 흘러넘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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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이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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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변 대기가 녹아내리는 듯한 소리를 내며, 당위산의 전신 혈관이 꿈틀거렸다. 극독이 그의 내공을 물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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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자라 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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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가는 말을 분명히 들었다. 당소소의 품에 안겨 있는 여아는 분명 저 여고수의 진전을 잇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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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위산은 일말의 망설임 없이 폭우이화침의 돌출부를 눌렀다. 폭발하는 듯한 소리와 함께 무수한 침이 서연에게로 쇄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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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래 속도가 화살보다도 빨랐다. 거기에 당위산의 내기까지 실렸다. 평범한 무인은 비침이 날아드는 것조차 인지하지 못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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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걸로 끝이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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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위산은 독단에서 최심사혼독(催心死魂毒)을 끌어올려 그대로 화련이 있는 방향으로 손을 뻗었다. 독기를 쏘아내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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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운이 따라 폭우이화침을 막아낸다고 한들, 제 제자가 죽는 것까지는 막을 수 없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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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제자를 구하기 위해선 쏟아지는 비침을 도외시하고 나서야 할 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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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 싸움에서 내가 이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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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순간, 당위산의 눈이 처음으로 크게 뜨였다. 등 뒤에서 막대한 진기가 쏟아지는 것을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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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찌 사람이 이렇게 빠를 수 있단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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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연은 당위산의 옆구리를 향해 손을 뻗었다. 세찬 독기가 손끝에서 펼쳐진 순백색 광채에 뭉그러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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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 끝에 담긴 기운은 그야말로 압도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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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위산은 가까스로 고개를 돌렸다. 순간적으로 시선이 마주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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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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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위산의 눈이 찢어질 듯 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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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 경험으로 통찰했다. 중독된 사람이 보일 수 있는 눈빛이 아니다. 서연은 정말로 찰나에 모든 비침을 막아내고 여기까지 당도한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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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그에게 남은 수단은 체내를 가득 메운 최심사혼독뿐이었다. 서연의 손바닥이 제 옆구리에 닿았을 때, 당위산은 그것을 천운이라 여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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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문을 상대해본 경험이 일천한 것이 분명했다. 그랬다면 이런 실수를 저지르지 않았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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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문의 무인은 전신이 독이나 다름없으니, 맨몸으로 접촉했다간 중독되기 십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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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위산 또한 그러했다. 그의 육신을 세차게 오가는 최심사혼독은 닿는 순간 상대의 심장으로 몰아쳐 죽음에 이르게 하는 극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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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극독이 서연의 몸으로 흘러가는 것을 느꼈다. 화련에게 쏘려던 독기마저 방향을 돌려 서연의 육신으로 흘러가도록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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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단이 텅 비겠지만, 괜찮았다. 상황을 마무리한 후에 암단화를 흡수하면 될 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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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생각을 하며 안도하기 무섭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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쩌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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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도 없이 들어차있던 독단이 순식간에 바닥을 드러냈다. 파문된 이후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쌓아온 독이 일순간에 사라진 탓에, 당위산은 막대한 탈력감에 휩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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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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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연과 직접적으로 맞닿아 있었기에 느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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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의 독이 먹물 한 방울이라면, 서연은 거대한 대양(大洋)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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먹물을 떨어뜨려 대양을 검게 물들일 수 있을까. 어불성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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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체, 누구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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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성이 뚝뚝 끊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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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연은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대신 당위산의 옆구리를 더욱 세게 움켜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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콰아아아아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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곧 막대한 장력이 서연의 손끝에서 터져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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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이 공동을 가득 메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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