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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12-14 21:31:57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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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녕 천명검이다.”
“귀독문(貴毒門)의 무인들을 모조리 일도에 쓰러뜨리다니. 말단이 이 정도라면, 천하를 징치한다는 말도 허언이 아니겠구나.”
잘려나간 중년인의 목을 마주한 행인들의 목소리에는 놀라운 기색이 서려 있었다. 사람이 죽은 것에 놀라는 이는 없었다.
섬서성은 비록 정파의 영역이었으나, 사마외도의 본거지인 감숙성과 녕하성에 맞닿아 있어 이 같은 일은 으레 벌어지는 풍경이었기 때문이었다.
사내는 핏물 한 방울 묻지 않은 도신을 도로 납도하고는, 서연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천명검 패검대(覇劍隊) 소속 팽무성(彭武成)이라 하오. 도인께서는 성함이 어찌 되시는지.”
서연은 선뜻 답하지 못했다. 찰나의 순간, 코앞에서 사람의 목이 잘려나가는 것을 목도했기 때문이었다. 조금만 더 가까웠더라면 그 피가 서연의 옷자락을 적셨을 터였다.
어느새 주변은 삼삼오오 모여든 행인들로 가득 차 있었다.
“팽무성? 하북팽가의 장남, 광염삭월(狂焰削月) 아니던가!”
“혼원벽력신공(混元霹靂神功)을 익혀 웬만한 칼은 박히지도 않는다던데. 팽가주는 도검불침의 경지를 이뤘다는 말도 있소.”
“팽가가 황실과 뜻을 함께하기로 결정했다는 소문이 사실이었다니!”
늦은 저녁 시간임에도 수런거리는 소리가 사방을 울렸다.
서연은 잠시 고민에 잠겼다. 팽무성이 자신을 종남파의 도인이라 오해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방금 전 펼친 검법이 종남의 것이었으니, 그리 오해할 만도 했다.
허나 서연에게도 나름의 생각이 있었다. 헤어지기 전, 태허진인이 건넨 말 때문이었다.
―선자께서는 외부에서 자유로히 본문의 검을 사용해도 좋소. 뒷말이 나오더라도 본문이 감내하리다.
그때는 너무 과한 배려라 여겼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태허진인은 언젠가 이런 난처한 상황이 닥칠 것을 미리 짐작했던 모양이었다. 제대로 익힌 검법이라곤 종남의 것밖에 없으니 말이다.
‘몇 번을 생각해도 고마우신 분이다.
언젠가 반드시 은혜를 갚으리라 다짐한 서연 또한 예를 갖춰 마주 포권했다.
“하남성 출신 서연이라 합니다. 종남의 도인은 아니오나, 연이 닿아 그 검을 익히게 되었습니다.”
서연은 더 이상 뒷말이 나오기 전에 품속에서 작은 각패를 꺼내 내밀었다. 태허진인에게 직접 받은 것이었다.
각패를 받아든 팽무성의 눈에 순간 이채가 서렸다.
“이것은…….”
전해 들었던 외양과 흘러나오는 기운으로 보건대, 틀림없는 진품이었다. 팽무성은 서연의 외양을 찬찬히 훑었다.
사실 그는 반쯤은 떠볼 생각으로 종남의 도인이냐 물었던 참이었다. 현 종남파의 이대제자 및 삼대제자 중에는 여인이 없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명색이 황태자가 이끄는 집단이다. 금의위는 물론, 동창과도 깊이 연루되어 있었기에 개방과 하오문에 비할 수 없을 수준에 정보력을 가지고 있었다.
본래 종남 출신이 아닌 자가 종남의 검을 익혔다는 것은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 당장 살생을 금하는 소림조차도 제 비전을 유출한 자가 있다면 사지근맥을 끊고, 심하면 살계(殺戒)를 열기도 했기 때문이다.
그만큼 외인에게 문파의 비기를 알리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
그렇기에 서연이 종남의 검을 훔쳐 사용하는 사마외도일 가능성까지 염두에 두려던 그였으나, 지금은 생각이 완전히 달라졌다.
‘……태허진인에게 알려지지 않은 여식이 있었나?
나이대를 보아하니 손녀뻘에 해당되는 듯한데, 종남의 장문인쯤 되는 고수가 작정하고 숨겼다면 여태 세상에 알려지지 않았을 만도 했다.
‘아니면 단순히 연이 닿았을 수도 있겠다.
혈육이 아닐 가능성 또한 충분했다. 구파의 도인들이 전란 속에 부모를 잃은 고아들을 거두어 기르는 일은 꽤나 흔한 일이었기 때문이다.
종남은 수십 년 전 정사대전 당시 막대한 피해를 입었던 만큼, 만일의 사태를 대비해 두 번째 장문제자를 비밀리에 숨겨두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었다.
곧 팽무성이 서연에게 각패를 돌려주며 다시 입을 열었다.
“그러면 서연 소저라고 부르면 되겠소이까?”
“편하신대로 부르시면 되겠습니다.”
충분히 윗선에 보고할 만한 사항이었다. 어찌하여 그간 꽁꽁 숨겨진 종남의 비녀(秘女)가 이제서야 정체를 드러냈는지는 알 수 없었으나, 그것은 암검대(暗劍隊)가 조사할 일이지 패검대의 관할이 아니었다.
“혹 서연 소저도 암단화를 찾아 오신 것이오?”
“……암단화라 하셨습니까?”
“모르셨던 모양이구려.”
“실은 운남으로 향하던 중 사람이 모여 있는 것을 보고 확인하러 들렀던 것뿐이라, 무슨 말씀을 하시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팽무성은 남몰래 고개를 끄덕였다. 면사 때문에 표정까지는 읽을 수 없었으나, 목소리를 통해 유추하건데 거짓은 아닌 듯했다.
암단화는 강한 냉기를 품은 독초였다.
허나 독초는 쓰기에 따라 영약이 되기도 하는 법. 암단화 또한 그러한 부류였다.
본디 영약은 지맥의 기운을 머금고 자라나 자연히 양기를 품게 되는 것이 보통이다. 그렇기에 반대로 음기를 품은 영약은 매우 귀한 취급을 받았다.
이따금 극한 지방에서 나는 수십, 수백 년 묵은 설삼이 막대한 가격에 거래되는 것만 보아도 알 수 있었다.
암단화는 백년짜리 설삼보다 한 단계 높은 수준의 냉기를 품은 독초였다.
인근에 사파 낭인들이 유독 많이 몰려드는 것은 전부 그 때문이었다.
영약과 영초에 관한 소문은 반드시 피를 불렀다.
사실 서연 또한 어느 순간부터 기류가 심상치 않아졌다는 사실을 알아차렸다. 도시 밖으로 나온 지 얼마 되지 않았거늘, 검을 패용한 무인들이 유독 많이 보였기 때문이다.
“운남으로 가신다 들었는데, 석천(石泉) 방향으로 가시오, 아니면 녕강(寧强) 방향으로 가시오?”
두 곳 모두 섬서성의 끝자락에 위치한 도시였다. 차이점이라면 녕강은 섬서의 서남쪽 끝에 위치해 있고, 석천은 동남쪽에 위치해 있다는 것이었다.
서연은 본래 석천 방향으로 갈 생각이었다. 아무래도 녕강은 감숙과 가까워 사마외도를 마주칠 가능성이 더 높았기 때문이다.
“……그것은 어찌 물으십니까?”
“암단화가 피어올랐다는 소문이 들린 곳이 석천 인근이라 그렇소. 본관이 모시는 패검대주께서도 그곳으로 향하는 중이시라오.”
서연은 이 말을 듣고 약간 놀랐다. 팽무성이 스스로를 본관(本官)이라 칭했기 때문이다.
천명검에 속한 무인들이 관리에 준한 대우를 받고, 스스로를 관인이라 여긴다는 말을 들어본 적은 있었지만, 명문 팔대세가에 속한 팽무성조차 저렇게 말할 줄은 몰랐다.
무림이 황실의 권위 아래에 놓인 수준을 넘어섰다.
팽무성 정도 되는 무인이 무림인으로서의 정체성보다 관인으로서의 정체성을 더 중시한다는 것만 봐도 알 수 있었다.
도대체 황실의 힘이 얼마나 강하기에 저럴 수 있을까. 어쩌면 지금 이 시기가 대명의 황금기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관무불가침은 유명무실하겠구나.
다른 것은 몰라도 그것만큼은 확실해 보였다.
고민하는 서연을 보던 팽무성이 입을 열었다.
“보아하니 가는 방향이 비슷할 듯한데, 본관이 동행을 청해도 되겠소?”
“동행, 말씀이십니까?”
팽무성은 눈짓으로 서연 뒤에 선 화련을 바라보며 말했다.
“이렇게 말하는 것이 결례인 것은 아오나, 영약에 눈이 먼 폭급한 종자들이 소저에게 해를 입힐까 염려되어 그렇소.”
혹여 서연의 자존심을 건드릴까 말투부터 조심스러웠다. 서연 또한 그 속에 담긴 진심을 읽어냈다.
물론 그것이 전부는 아니었다. 팽무성은 혹여 서연이 화를 입고 난 후 종남이 분노하여 일이 커질 것을 걱정했다.
일전의 합을 보았을 때, 제 한 몸 지킬 실력은 충분해 보였으나, 사파 고수들과 맞서는 상황에서 어린 여아까지 지킬 수준은 못 될 듯했기 때문이다.
“괜찮습니다. 말씀을 들어보니 녕강 방향으로 돌아가면 될 듯 합니다. 그리고 팽 공자께서는 석천으로 가실 것 아닙니까.”
서연은 무턱대고 팽무성을 믿지 않았다. 팽무성의 신원이 믿을 만한 것과는 별개로, 무림인들과 대립 구도를 이루는 천명검과 괜히 엮였다 화를 입을 것을 염려했기 때문이다.
“아니오. 본관도 녕강 방향으로 향할 예정이오. 단독임무를 마치고 막 복귀하던 터라, 이번 임무에는 참여하지 않기로 했소. 그러니 소저가 염려하는 일은 생기지 않을 것이오.”
서연은 팽무성을 잠시 바라보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
본래 무협지에서 하북팽가는 타고난 신력과 근골 덕에 덩치가 크고 호쾌하다는 모습으로 자주 등장하고는 했다.
허나 팽무성은 그러한 고정관념을 당당히 깨부쉈다. 덩치도 평범했고, 지극히 예의발랐다. 이따금 서연이 질문하면 성실히 답해주기도 했다.
“천명검의 조직도는 간단하오. 무수한 말단 대원 위에 열 명의 대주가 있고, 그 위에 단주가 있지. 대주들과 비무를 해서 실력을 증명하지 않는 이상 본관은 영원히 말단이라오.”
“군문과 비슷할 줄 알았는데, 들어보니 사뭇 다르군요.”
“아무래도 실력이 중하니 그렇소.”
둘은 생각보다 대화가 잘 통했다. 서로 예의를 깍듯이 차리는 것을 선호했기 때문이다.
“서 소저는 운남에는 무슨 일로 가시오?”
“운남의 대리석이 그렇게 질이 좋다하여 구경하러 가고 있었습니다.”
“……대리석? 아, 각예를 즐겨했다는 것을 미처 기억하지 못하고 있었소.”
그렇게 사흘 동안 여유로히 나아갔다. 본래 천명검은 임무를 마치면 충분한 휴식이 주어진다고 했다. 팽무성도 그러했다. 보름 안에만 목적지에 도착하면 된다고 했다.
이따금 적잖은 낭인들을 마주쳤는데, 그들은 서연에게 다가가려다 팽무성의 등 뒤에 당당히 새겨진 천 자를 보고 꼬리를 내렸다.
뭣도 모르고 덤벼드는 이들도 적지 않았으나, 그들 모두 팽무성의 도에 절명했다.
광염삭월이라는 별호처럼, 팽무성의 도는 패도와 쾌도의 성격을 동시에 띄고 있었다. 사람 서넛을 무기 채로 양단하는 경우가 적지 않았다.
홀로 당당히 강호 무림을 주유할 수준이 되어야 비로소 옷에 하늘을 새길 수 있다고 했다. 이 정도 되는 사람을 말단으로 부리는 황실의 힘을 짐작할 만했다.
녕강이 하루 거리였다. 허나 이상하게도 갈수록 여정 중에 낭인을 만나는 일이 잦아졌다. 길을 잘못 들었다고 착각할 정도였다.
산길을 걷는 중에도 마찬가지였다. 행인들이 나누는 대화가 심상치 않았다.
―낭인 하나가 미쳐서 사람을 서른이나 죽였다더군. 관군이 나서기 전까지 노소를 가리지 않고 피바람을 일으켰다지 뭔가.
―진령산맥(秦嶺山脈)으로 올라갔던 약초꾼들이 죄다 실종되었다고 하더이다. 그 때문에 약값이 천정부지로 올랐다지. 미리 약초를 쟁여뒀던 의원들은 노났겠어.
―요 근래 분위기가 심상치 않아. 산을 넘어오던 보부상들의 발걸음이 뚝 끊겼다네.
팽무성의 표정이 굳어지는 것을 보아, 그 또한 무언가 심상치 않음을 알아차린 듯했다.
석천과 녕강의 거리는 수백 리가 넘었다. 낭인들이 아무리 암단화에 눈이 멀었기로서니, 여기까지 찾아올 가능성은 없었다.
바로 그때, 하늘에서 무언가 빠르게 착지했다. 성인 남성의 머리보다 약간 작은 크기의 맹금이었다. 맹금은 팽무성의 어깨에 내려앉은 다음 얌전히 발톱에 매달린 전서를 내밀었다.
팽무성은 이전보다 훨씬 딱딱한 어조로 말했다.
“……은비조(銀飛鳥)요. 패검대가 소통할 때 사용하는 맹금이오.”
곧 전서에 담긴 내용을 확인한 팽무성이 침음을 뱉어냈다. 서연은 눈치껏 뒤로 물러나 있었기에, 뭐라 적혀있는지 확인할 수 없었다.
팽무성의 심상찮은 표정으로 보아 보통 일은 아닐 터. 서연은 긴장한 얼굴로 그가 입을 열기를 기다렸다.
곧 팽무성이 천천히 말문을 열었다.
“암단화에 대한 정보가 잘못되었소. 몇몇 문파들이 시선을 돌리기 위해 작정하고 교란을 펼쳤다더군.”
“그게 무슨 뜻입니까?”
“……하품 암단화가 석천이 아니라 녕강 인근 산자락에서 발견되었다고 하오.”
암단화는 사기(死氣)와 음기가 응집된 곳에서 떼를 지어 피어난다. 하품 암단화가 발견되었다면 멀지 않은 곳에 상품 암단화도 있다는 뜻이다.
“대주께서도 급히 방향을 돌려 이곳으로 오고 계시다더군. 이만 헤어져야 할 것 같으니, 본관은 먼저 가보겠소이다.”
팽무성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이었다.
쐐애애액!
공기가 찢어지는 소리와 함께 창이 날아들었다.
팽무성은 고개를 돌려 공격이 날아오는 방향으로 발도하려 했다.
허나 그때쯤 서연의 검이 이미 창날을 반으로 갈라내고 있었다.
촤아악!
처참하게 잘려나간 창날이 바닥으로 추락했다.
“이걸 막아?”
산자락에서 나타난 산적의 입꼬리가 비틀어졌다. 평범한 산적이라기에는 풍기는 기파가 심상치 않았다.
“……네 놈이 한 짓이냐?”
서연은 날이 선 눈빛으로 산적을 노려보았다. 자신이 아니라 어린 화련을 노렸다. 그 수법이 아주 악질적이었다.
산적이 이죽거리는 얼굴을 한 채로 말했다.
“그렇다면?”
기다렸다는 듯 서연의 검신이 빛줄기를 토해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