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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12-14 21:31:57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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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또 무얼 하세요?”

서연은 뒷짐을 진 채로 제자리에서 가볍게 뛰다가 화련의 물음에 대꾸했다.

“음?”

“지금 하시는 게 뭔지 궁금해서요. 일전에 말씀하셨던 연화비영보인가요?”

“그렇단다.”

화련은 서연이 제대로 된 보법을 펼치는 것을 처음 보았다. 그동안은 줄곧 백호를 타고 다녔기 때문이다.

허나 처음으로 마주한 서연의 보법은 아름다운 연꽃이 빛나며 날아오른다는 이름답게, 참으로 우아했다.

나풀거리는 옷을 입고 연화비영보를 펼친다면, 그 자체만으로도 선녀라 추앙받을 만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뿐히 걸음할 때마다 은은하게 피어오르는 도화색 기운 또한 그렇게 느끼도록 하는데 한몫했다.

“나중에 저도 배울 수 있을까요?”

“음, 그건 잘 모르겠구나.”

서연은 연화비영보를 복원한 장본인이기에 익히는 것을 허락받았지만, 타인에게 이를 알려주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였다. 문파의 비전이 유출되는 것이나 다름없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섣불리 대답하지 못했다. 물론 화련은 아직 제가 부족하다는 뜻으로 알아들었다.

서연은 숨을 가다듬으며 멈춰섰다. 종남파의 삼대제자가 찻물을 가져왔기 때문이다. 소년 도사는 서연을 보자마자 귓불이 붉어졌다.

서연이 종남파에 들어온 이후로 쭉 죽립과 면사를 벗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 편이 보법을 펼치기 편해서였다.

“고맙습니다, 도사님.”

“네, 넵!”

서연은 가만히 차를 들이켰다. 그 맛이 일품이었다.

사실상 개인실이나 다름없는 거대한 수련장은 서연이 현재 받고 있는 대우를 증명했다. 순양자의 무공을 복원한 서연은 그야말로 귀빈이나 다름없는 대접을 받았다.

안 그래도 서연을 극진히 대접했던 태허진인이었지만, 지금은 말할 것도 없었다.

비전이나 다름없는 연화비영보를 장소에 구애받지 않고 익힐 수 있도록 허락했다. 서연이 없었다면 실전되었을 것이란 말도 덧붙였다. 그렇다고는 해도 더없는 파격이었다.

서연의 품성을 믿지 않았다면 쉬이 할 수 없는 행동이었다.

칠주야가 넘는 시간동안 서연은 매일같이 만공정을 오르내렸다.

예전부터 기이할 정도로 눈이 밝았다. 날이 밝고 어두운 것에 영향을 받지 않았다. 그 때문인지 서연은 주야를 상관하지 않고 수련에 전념할 수 있었다.

만월이 깊은 밤이었다.

만공정의 벽면을 디뎌도 소리가 나지 않는 경지에 다다랐다. 풀벌레 소리에 묻힐 정도로 발걸음이 희미하고 가벼웠다.

연화비영보는 끝없이 나아가는 것을 핵심 구결로 삼았다. 공격을 회피한다기보다는 마땅히 있어야 할 곳으로 나아간다는 느낌이 강했다.

우웅.

뇌리에 단단히 새겨진 순양자의 보법을 따라하다보면, 있지도 않은 교룡의 공격을 피해내고 있다는 착각마저 들었다.

‘경신법이자 보법이구나.

본래 신법은 전체적인 몸동작을, 경공은 빠르게 달리기 위한 신법을, 그리고 보법은 상대를 공격하거나 회피할 때 사용하는 움직임을 뜻했다.

허나 연화비영보는 그 모든 것을 한 번에 할 수 있었다. 등선했다는 도사가 직접 만든 무공다웠다.

이제는 세찬 바람 속에서도 발을 놀리는데 거침이 없었다. 세찬 바람이 오히려 걸음을 북돋아주는 듯했다. 놀랍도록 친숙한 느낌까지 들었다.

자연이 그녀에게 호응하는 것이었으나, 그것까지는 미처 깨닫지 못했다.

‘즐겁다.

처음 익힌 무공이라고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성취가 빨랐다. 마치 자신을 위해 만들어진 무공인 양 몸에 딱 맞았다.

그렇게 만공정을 몇 번이나 휘감듯 움직였을까. 정신을 차렸을 때는, 어느새 여선검상이 있는 정상에 도달해 있었다.

‘완전히 익혔다.

대성(大成)까지는 아니었으나, 더 이상 만공정의 도움을 받지 않아도 연화비영보를 자유로이 펼칠 수 있으리라 확신했다. 앞으로 여정을 떠나는 길에 틈틈이 수련한다면 언젠가 자연스레 대성해 있으리라.

그런데 특이하게도 여선검상보다 그 앞에 놓인 검혼비가 먼저 눈에 들어왔다. 일전에 장백신옹에게 들었던 이야기 때문이었다.

‘이건…….

사마련에 맞서다 죽은 도사들을 기리기 위해 세운 비석이라 했다. 그렇다는 뜻은, 이곳에서 스러져간 종남의 도사가 있었다는 뜻이다.

‘진짜 검이다.

수십 년 전부터 꽂혀 있었을 텐데도 여전히 예기를 내뿜고 있었다. 칼날 하단부에 태허(太虛)라는 글자가 적혀 있는 것으로 보아, 태허검인 듯했다.

허나 태허는 현 종남 장문인의 도호였다. 미간이 절로 좁혀지려던 그때, 멀지 않은 곳에서 인기척이 느껴졌다.

곧 태허진인이 만공정 위에 나타났다.

그는 서연과, 그 앞에 놓인 태허검을 보다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빈도의 사제였소. 혈혈노파(血血老婆)의 장력에 심장이 꿰뚫려 절명했지.”

태허진인은 옅은 한숨을 내쉬며 태허검의 손잡이를 쓸어내렸다.

“…….”

“동 항렬의 막내였소. 진중한 사형제들 사이에서도 홀로 밝아 모두와 허물없이 지냈다오.”

“그러면 장문인께서는.”

“빈도의 도호는 본래 태진(太眞)이었소.”

서연은 그제서야 내막을 알게 되었다. 사제의 유지를 잇기 위해 도호를 그대로 가져다 쓴 것이다. 매우 이례적인 일이었으나, 그만큼 사이가 돈독했다는 것으로 이해했다.

이번에는 서연이 물었다.

“그러면 태허검은 어쩌다 이곳에 꽂혀 있게 된 겁니까?”

태허진인이 말했다.

“사마련이 대대적으로 습격했소. 산문을 지키던 도사들을 먼저 쓰러뜨리고 순식간에 내부로 들이닥쳤지. 당시 장문인께서는 사마련 팔천(八天)의 일익인 마영종주(魔影宗主)와 겨루느라 우리를 도울 여력이 없으셨소. 당시 장로님들 대부분이 청성파를 돕기 위해 사천까지 나가있던 상황이라 피해가 더 컸지.”

청성파는 머나먼 사천성에 위치해 있었다. 서연은 그제서야 수십 년 전에 일어났던 정사대전의 규모가 얼마나 거대했는지를 짐작할 수 있었다.

“당시 본문은 혈혈노파와 같은 사파의 고수들에 맞설 사람이 부족했소. 치욕을 감수하고 오대 일로 싸웠음에도 불구하고 형편없이 밀렸지.”

“혈혈노파가 그렇게나 강했습니까?”

태허진인이 고개를 내저었다.

“결단이 부족했소. 두려움에 잠식되어 누구 하나 먼저 나서려 하지 않았지. 혈혈노파가 공격할 때마다 막기에만 급급했소. 혈혈노파도 그러한 기색을 알아채고 적극적으로 나섰지. 전원이 극심한 상처를 입기까지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소.”

태허진인은 씁쓸한 얼굴로 말했다.

“막내 사제가 그것을 가장 먼저 알아차렸소. 일말의 망설임 없이 선천진기를 끌어내어 혈혈노파와 동귀어진을 택했지.”

“……재능이 범상치 않으셨겠습니다.”

“화산의 검후에 비견될 정도였소. 어떤 면에서는 그보다 뛰어났지. 지금까지 살아있었더라면 필시 본문의 제일고수가 되었을 것이오.”

도호가 담겨 있는 검이 그 재능을 증명했다. 분명 범상치 않은 인물이었으리라.

“혈혈노파는 막내 사제의 마지막 일검에 오른팔을 잃었소. 우리도 그제서야 상처를 도외시하고 싸우기 시작했지. 날이 밝을 때까지 싸우고, 혈혈노파를 비롯한 사파의 고수를 베고 또 베었소. 그렇게 지쳐 나가떨어졌을 때쯤에 화산파의 지원군이 당도했소. 화산도 사마련의 습격을 받은 것은 매한가지였는지 온 몸이 상처로 가득했소.”

“그곳에 검후도 계셨겠군요.”

“그러했다오.”

태허진인은 잠시 옛일을 회상하려는 듯 눈을 감았다.

“검후와 막내 사제는 실력이 비슷하여 자주 교분을 나눴소. 얼핏 보면 같은 문파 출신이라는 착각이 들 정도로 친분이 깊었지. 연인은 아니었으나, 몇 년 뒤에 그렇게 될 것이라 확신할 정도로 서로를 아꼈다오.”

태허진인은 그 이후에 벌어진 일까지는 말하지 않았다. 서연 또한 묻지 않았다. 검후가 옛 태허 도사의 시신을 마주했을 때 어찌 반응했을지 눈에 훤히 보였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화제를 돌렸다.

“오가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검후께서 바라는 것 없이, 훗날 화산이 위급할 때 종남이 돕는 것으로 족하다고 말씀하셨다고.”

태허진인의 표정에는 씁쓸함이 스쳐 지나갔다.

“검후는 막내 사제를 잃은 본문에게 무얼 요구할 인물이 못 되었소. 반쯤 제정신이 아닌 상황에서도 고인에게 폐가 될까 두려워 곪아가는 속내를 겉으로 드러내지도 못했지.”

그래서 억지로 담담한 체하며 웃었다.

극히 일부만 아는 내막이었다.

“나중에서야 만공정 꼭대기에 막내 사제의 검을 놓아달라고 부탁하더군. 영면한 이후에도 본문의 정경을 한 눈에 담을 수 있었다면 좋겠다고. 태허검이 이곳에 놓이게 된 연유는 그러하오.”

태허진인은 그렇게 말하면서 서연을 깊이 응시했다. 주름진 얼굴이 유독 슬퍼 보였다.

“이제 빈도가 질문 해도 되겠소?”

“네.”

“선자께서는 아주 오랜 세월을 속세와 동떨어져 살아왔을 것이오. 맞소?”

서연은 고개를 끄덕였다.

“허나 모종의 일을 계기로 세상 밖으로 나오기로 결심하셨소. 분명 쉬운 결단은 아니었을 것이오. 그 이유를 알지도 못하고 물을 생각도 없으나, 본문은 언제고 선자를 빈객으로 대하겠소. 빈도와 막내 사제가 수없이 순양자의 보법을 견식할 수 있도록 한 것에 대한 보답이라 생각하시오. 또한 선자께서 연화비영보를 타인에게 전수한다고 하더라도 본문은 관여하지 않겠소.”

서연의 눈이 커졌다.

“너무 과합니다.”

서연의 말에 태허진인은 잠시 멈추었다가, 조용하지만 단호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정 과하다는 생각이 들면, 나중에 한 번 화산에 방문하는 것으로 보답해주시오.”

“……화산 말입니까?”

서연은 입을 다물었다.

어떻게 종남파도 아닌 화산파에 방문하는 것이 보답이 된단 말인가?

이쪽의 부담을 덜어주려 억지로 이유를 만들어낸 것 같아서 마음이 편치 않았다.

그렇기에 이리 물을 수 밖에 없었다.

“제가 화산에 가는 것이 어찌하여 보답이 된단 말입니까?”

“그리하면 빈도의 마음이 편해지기 때문이오.”

“하지만…….”

“지금 당장이 아니라도 괜찮소. 오 년, 십 년 뒤라도 상관없소. 정 힘들다면 영면하기 전이라도 좋으니, 언젠가 꼭 한 번만 방문해주시오. 화산도 분명 빈객으로 맞이할 것이오.”

빈말이라기에는 그 눈빛에 담긴 감정이 너무나도 절절했다.

서연은 그저 고개를 끄덕일 수 밖에 없었다.

“……그리하겠습니다.”

그제서야 태허진인의 주름진 안색이 환해졌다. 놀라울 정도로 안도한 기색이었다.

태허진인은 한동안 고맙다는 말만 반복했다. 나이 많은 노인을 등쳐먹는 것 같아 서연은 몹시 마음이 불편해졌다.

대화가 예고없이 끊겨 정적이 흐르는 가운데, 태허진인이 어디론가 걸어갔다. 여선검상이 있는 방향이었다.

서연은 그제서야 여선검상을 제대로 확인할 수 있었다.

순양자는 뒤돌아 가부좌를 틀고 앉아 있는 모습이었는데, 그 때문에 얼굴을 볼 수 없었다. 그뿐이랴, 당대 최고의 석공이 만들었다는 말이 무색할 만큼 외형은 평범하기 그지없었다.

그렇기에 자연스레 입고 있는 옷에 새겨진 글자로 시선이 갔다. 돌을 옷 모양으로 깎아낸 다음, 그 위에 글자를 음각한 것이었는데, 그 글자가 마치 살아있는 것처럼 꿈틀거렸다.

일필휘지로 써 내려간 듯 거침이 없었다.

서연은 저도 모르게 감탄했다. 필체 하나로 천하 일절을 논할 만했기 때문이다.

이만한 석공이라면 분명 여선검상 자체도 걸작으로 깎아낼 수 있었을 터. 허나 글자를 보다 눈에 띄게 하려고 일부러 그리하지 않은 듯했다.

서연은 글자를 천천히 읽었다.

구인자생(救人者生).

살릴 사람을 구하는 자는 삶을 얻는다.

용실자진(容失者進).

실수를 용서하는 자는 나아간다.

득생이진 시위도(得生而進 是爲道).

삶을 얻고 앞으로 나아가는 것이 곧 도라.

옛 선인의 깨달음이 그곳에 담겨 있었다. 묻지 않아도 누가 적었는지 한 눈에 알 수 있을 정도였다.

“…….”

그렇기에 서연은 조용히 입을 다물었다. 글귀 하나하나가 제게 말을 거는 것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마침 아침 해가 떠오르고 있었다. 공교롭게도 순양자가 앉아있는 방향이었다. 그 때문인지 순양자의 주변이 타오르는 듯 이글거렸다.

“아침 해를 맞으며 운기조식을 하는 것만큼 즐거운 일이 없소. 하늘이 감싸주는 것처럼 따뜻하고 편안하다오.”

태허진인은 그렇게 말하고는, 양손을 자신의 무릎 위에 편히 얹고 눈을 감았다. 깊게 호흡을 하는 것이, 곧장 운기조식에 돌입한 모양이었다.

서연은 놀란 얼굴로 태허진인을 응시했다.

호법도 없이 무슨 생각으로 저리 갑작스럽게 운기조식에 돌입한단 말인가.

“…….”

서연은 호법을 서듯 태허진인의 주변을 맴돌았다. 허나 곧 그만두었다. 자신이 움직이는 것 자체가 방해가 될까 두려웠기 때문이다.

서연까지 입을 다무니 그야말로 완벽한 적막이 찾아왔다. 드높은 봉우리에 올라선 탓에 흔한 풀벌레 소리마저 들리지 않았다.

그러다 문득 고개를 돌려 태허검이 있는 방향을 보았다.

쏟아질 것처럼 가득 차있던 어둠이 밀려나며 헛것이 보이는 것일까. 희끄무레한 불빛이 일렁이는 것 같았다. 왜인지는 모르겠으나 그 모습이 마치 사람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서연은 멍한 얼굴로 태허검을 바라보다가, 차례로 태허진인과 여선검상을 바라보았다. 공교롭게도 셋이 각각 한 방위를 맡고 있었다.

빈 방위를 채워야할 것만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곧 서연 역시 가부좌를 틀었다. 코앞이 아찔한 절벽이었으나, 등을 감싸는 따스한 기운 탓에 두렵지가 않았다.

서연은 순양자가 새긴 문장을 되뇌이다가, 저도 모르는 사이에 운기조식에 돌입했다.

네 도인은 편안한 얼굴로 따스한 햇살에 몸을 맡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