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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12-14 21:31:57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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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직으로 솟은 절벽은 말 그대로 까마득할 정도로 높았다. 서연은 구름마저 뚫고 올라선 봉우리를 올려다보며 물었다.
“혹 저 봉우리에 이름이 있습니까?”
“만공정(萬孔頂)이라 하오.”
처음엔 그 의미를 짐작할 수 없었으나, 거리를 좁히자 이내 깨달았다. 거대한 절벽 곳곳에 수천을 헤아릴 만한 큼지막한 구멍들이 뚫려 있었던 것이다.
만 개의 구멍이 뚫린 봉우리라는 이름에 걸맞은 광경이었다.
서연이 저절로 탄식을 내뱉었다. 구멍 사이로 불어오는 바람이 기묘한 소리를 냈기 때문이었다. 그 소리만으로도 저 높은 곳에 얼마나 거친 바람이 휘몰아치는지 짐작할 수 있었다.
‘맨손으로는 도저히 오르지 못하겠다.
줄을 매달고 올랐다간 줄째로 바람에 휩쓸려 날아갈 지경이었다. 구멍을 딛고 오르는 방도를 떠올렸으나, 구멍 틈새로 새어 나오는 바람의 기세를 보니 차라리 구멍을 피해 가는 것이 안전 하겠다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저 구멍들은 어쩌다 생긴 것인지 아십니까?”
“옛 선인들이 수련하다 남긴 흔적이라는 설도 있고, 순양자(純陽子)께서 교룡을 쓰러뜨렸을때 그리 되었다는 이야기도 있소. 허나 구전일 뿐이니, 흘려들어도 무방하오.”
여기서 순양자란 검선 여동빈의 도호를 의미했다.
곧 태허진인은 양 손을 내밀어 만공정의 양 면을 가리켰다. 그의 눈빛은 흔들림 없는 바위처럼 단단했다.
“먼 과거에는 종남산도 오악(五岳)에 비견될 만큼 험준했다 들었소. 그때의 만공정은 종남산의 정상이자, 천하에 그 웅장함을 견줄 곳이 없었다고 하더이다. 여선검상도 그때 만들어졌다오. 허나 순양자께서 만공정의 사방을 모두 갈라내어 지금의 형상이 되었다지.”
“…….”
서연은 입을 다물었다. 일신의 힘으로 산을 잘라냈단 말인가? 그 기상이 실로 상상조차 불가능했다.
허나 터무니없는 말로 치부하기엔 만공정의 잘린 면이 너무나도 반듯했다. 마치 거대한 칼을 대고 베어낸 듯한 기분이 들 정도였다.
눈으로 얼핏 보았는데도 날카로운 예기가 느껴졌다.
서연은 종남산을 오르던 중 보았던, 완만한 언덕 구석구석에 박혀 있던 거대한 기암괴석들을 떠올렸다.
그때는 이해하기 어려운 풍경이었으나, 태허진인의 이야기를 들으니 비로소 깨달음이 찾아왔다. 어쩌면 그 거대한 기암괴석들은 순양자가 산맥을 베어 가른 후에 남은 잔해였으리라.
‘……이 정도는 되어야 일문의 대종사라 할 수 있는 것이로구나.
만공정의 깎아지른 한쪽 면에 손을 대고 있던 서연에게 태허진인이 물었다.
“어떻소?”
“……허황된 이야기만은 아닌 것 같습니다.”
“빈도 또한 만공정을 처음 마주했을 때 그리 느꼈소. 종남의 전대 장문인들 또한 그러하셨을 것이오.”
서연 또한 동의하는 바였기에 고개를 끄덕였다.
“장문인께서는 만공정을 어찌 오르십니까?”
“장문제자들에게 대대로 내려오는 경신법이 있소. 무영공공보(無影空空步)라 하오.”
뜻을 해석하니 그림자조차 남기지 않고 허공을 밟는 듯 움직이는 경공이란다. 저 정도 되는 경신법이어야 만공정을 수월히 올라갈 수 있다는 말로도 들렸다.
‘종남 장문인에게 허락을 받아야 한다는게 이런 의미였나?
평범한 무인이라면 만공정을 오르기는커녕 중간 즈음에 낙엽처럼 휩쓸려 갈 터였다.
태허진인은 걸음을 멈춘 채 서연을 응시했다.
“한번 보여드리겠소.”
태허진인은 그야말로 질풍처럼 빠르게 나아갔다. 땅을 박차는 소리조차 들리지 않았는데, 보폭이 워낙 커서 한 걸음에 수십 장을 나아간다는 착각이 들 정도였다.
특이하게도 그는 뒷짐을 지고 있었는데, 멋을 부리기 위함이 아니라 경공의 기세를 극대화하여 가속하기 위해 그리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태허진인은 도약으로 최대한 높이 솟구친 다음, 절벽을 마치 지면이라도 되는 것처럼 손쉽게 나아갔다.
‘놀랍구나.
강호에 나온지 얼마 되지 않아 잘 모르겠으나, 대문파의 장문인에 걸맞는 실력을 가졌다는 것은 확실히 알 수 있었다.
태허진인은 그야말로 순식간에 구름을 뚫고 만공정 정상에 올라섰다. 그 거리가 오죽 멀었던지 서연의 눈에도 작은 점처럼 보일 지경이었다.
“이제 내려가겠소.”
그 먼 거리였음에도 태허진인의 목소리가 귓가에 선명하게 들렸다. 말로만 들었던 육합전성이라도 되는 것일까.
곧 태허진인은 공중으로 뛰어오른 다음 그대로 수직으로 떨어졌다. 이따금 발길질을 했는데, 놀랍게도 그때마다 속도가 점차 감소했다.
서연은 감탄한 기색을 감추지 않은 채로 사뿐히 착지하는 태허진인을 응시했다.
“대단하십니다.”
태허진인은 살짝 웃었다.
“과찬이오.”
그렇게 빨리 올라갔다 내려왔는데 태허진인의 장포에는 흙먼지 한톨 묻어있지 않았다.
“그러면, 어찌 보셨소?”
“나름대로 안목이 뛰어나다 자부하고 있었는데, 덕분에 새로운 세계를 알게 된 느낌입니다.”
“……그렇소?”
태허진인의 미간이 약간 좁혀지려던 때였다.
숨을 가다듬던 서연이 생각했다.
‘나는 여태껏 제대로 걷지도 못하고 있었구나.
무영공공보를 견식한 덕분에 깨달았다.
서연은 정신을 극한으로 집중하며, 몸속에서 꿈틀거리는 진기를 발끝에 모았다. 주변의 자연지기가 살아있는 생명체처럼 모여들더니 그녀의 발 주위 세 장 반경에 파릇한 새싹을 틔웠다.
서연은 눈을 감고 있었기에 그 엄청난 변화를 보지 못했다. 이미 그 짧은 순간에 완전히 몰입한 것이다.
“……!”
갑작스럽게 밀집되는 자연지기를 목도한 태허진인의 눈이 더할 나위 없이 커졌다.
태허진인은 황급히 뒤로 물러났다. 동시에 눈꺼풀을 들어올린 서연이 걸음을 내딛었다.
‘호흡을 끊을 때마다 진기도 같이 터뜨린다.
순식간에 맨 땅에 도달했다. 한 걸음에 무려 세 장을 이동한 것이다.
허나 서연은 거기서 만족하지 않았다. 보다 더 나아갈 수 있을 것 같았다.
시선을 치켜들자 만공정의 웅장한 봉우리가 한눈에 들어왔다. 그때, 서연은 기이한 경험을 했다.
시야가 일순간 뒤집히더니, 수백 장도 넘는 거대한 교룡의 환영을 마주했다. 교룡은 무지막지한 속도로 만공정을 휘감듯 솟구쳐 올랐다. 그 섬뜩한 발톱에 닿을 때마다 바위가 찢겨나갔다.
교룡은 한 사내를 맹렬히 쫓고 있었다. 사내는 뒷짐을 지고 있었는데, 그 존재감이 거대한 교룡에 전혀 뒤지지 않았다. 특이한 것은 강한 역광 때문에 사내의 얼굴을 볼 수 없었다는 점이었다.
사내는 기이하고 변화무쌍한 보법으로 교룡의 맹렬한 공격을 모두 피했다. 교룡이 발톱을 휘두르고 꼬리를 휘감으며 절벽을 부술 듯 덤벼들었으나, 사내는 종이 한 장 차이로 이를 모두 비껴냈다. 사내가 발을 딛을 때마다 만공정에는 큼지막하고 깊은 발자국이 생겨났다.
환영은 얼마 지나지 않아 가라앉았다. 사내가 마지막 걸음을 딛고 교룡의 목을 베어내는 순간이었다. 환영 속에서 교룡의 거대한 몸체가 폭포수처럼 무너져 내리는 듯했다.
‘……진짜였구나.
동시에 깨달음이 섬광처럼 스쳤다.
만공정은 순양자, 즉 검선 여동빈이 등선하기 전 종남을 위해 남긴 거대한 유산이나 다름 없었다.
‘왜 이만한 절벽이 내당에 있나 했더니.
종남의 제일 절학이 바로 이곳 만공정에 고스란히 담겨 있었던 것이다.
특출난 오성으로 그 모든 것을 기억했다. 순양자가 만공정의 어디를 어떻게 딛고 나아갔는지, 그 발자취와 보법의 오묘함이 그녀의 뇌리에 선명하게 새겨졌다.
우웅!
전신에서 진기가 흘렀다.
서연은 조심스럽게 첫 걸음을 내디뎠다. 육신이 마치 깃털처럼 떠올랐다. 순양자가 그랬듯 뒷짐을 지고 자세를 취하자, 몸의 균형이 놀랍도록 안정되었다.
서연의 시야에는 환영 속 순양자가 내딛던 발자취가 선명하게 보였다. 서연은 그 발자취를 그대로 따라가기 시작했다.
첫 걸음은 더뎠지만, 두 번째, 세 번째 걸음을 내딛을수록 그녀의 움직임은 점차 빨라지고 유려해졌다. 거친 바람이 그녀의 몸을 휘감았으나, 서연은 어느새 바람과 함께 나아가는 방법을 터득했다.
태허진인은 놀란 얼굴로 서연을 응시했다.
“아아……!”
주름진 얼굴에서 경탄이 피어올랐다. 만공정의 본의를 그제서야 깨우친 것이다.
수십 년 동안 만공정을 곁에 두고 살아왔으나, 여태 그 의미를 알지 못했다. 허나 이제야 깨달았다.
태허진인의 주름진 얼굴이 더없을 경탄으로 물들었다.
서연이 걸음을 옮길 때마다 도화와 같은 기운이 피어올랐기 때문이다.
“진정 선자였도다……!”
서연은 생각했다. 구멍의 깊이가 곧 일보의 강약을 결정했다. 얼핏 보면 패도적인 보법이라고 오해할 수 있었으나, 실상은 정반대였다.
‘바람에 나풀거리는 잎새 같다.
세월의 풍화에 흔적이 스러지지 않도록 순양자가 후대를 위해 배려했다고 봐야 옳았다.
탁―.
육신이 날개라도 돋친 것처럼 가벼워졌다. 서연은 저도 모르게 환하게 웃었다. 가파른 절벽을 딛고 서 있었는데도 즐겁기만 했다.
서연은 기암을 붙잡은 채로 멈춰 서서 옅게 미소 지었다.
두려움은 없었다. 다만 더없이 기뻤다.
‘나는 기재가 맞았구나.
마음에 얹혀 있던 커다란 돌멩이 하나가 뚝 떨어져나간 듯했다. 묘한 해방감마저 느껴졌다.
조각을 하는 것만큼이나 즐거웠다. 생각대로 몸이 움직여서 그러할까.
무에 일생을 바치는 무인들의 심정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이런 생각을 한 적이 처음이었다. 심경의 변화가 스스로도 놀라웠다.
‘일평생 보법만 익혀도 즐겁겠다.
화산의 암향표(暗香飄), 제갈세가의 천기미리보(天機迷離步), 무당의 제운종(梯雲縱)…….
천하를 오시한다는 보신경들은 또 어떠한 묘리를 품고 있을까.
신공에는 의념이 담긴다고 했다. 순양자의 보법도 그러했다. 물러섬이 없었다. 무엇이 앞을 가로막든 끝없이 나아가고자 하는 기상이 서려 있었다.
묵묵히 나아가는 종남과 참으로 어울리는 보법이라는 생각을 했다.
서연은 그렇게 백 보를 더 나아갔다. 내려올 때에는 순양자의 보법을 역순으로 밟아 잎새처럼 사뿐히 착지했다. 도화와 같은 머리칼이 우아하게 나풀거렸는데, 그 모습이 가히 선녀라 칭하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끝까지 올라가지는 못했다. 구멍의 개수가 곧 나아가야 할 보법의 수였다. 더 나아가기에는 연습이 필요할 것 같았다.
물론 단순히 올라가고자 했다면 언제든 올라갈 수 있었다. 이제는 그럴 자신이 있었다. 허나 그런 방식으로 올라가고 싶지는 않았다.
들뜬 마음을 가라앉히고자 호흡을 반복했다.
자연스레 호법을 서게 된 태허진인이 조용히 말했다.
“……선자께서는 종남의 은인이시오.”
옳은 말이었다.
그동안 존재조차 몰랐던 절세 무공을 복원해냈다. 경지에 오른 장문제자들은 이제 만공정을 오르고 또 오르는 것만으로도 순양자의 보법을 익히게 되리라.
서연이 눈꺼풀을 들어올렸을 때였다.
“선자, 이름을 지어주시오.”
“……제가 말인가요?”
“선자가 아니면 누가 이 무공에 이름을 붙일 수 있겠소. 순양자께서 이름을 정해두지 않으셨으니, 선자가 정해야 마땅하오.”
서연은 고개를 끄덕였다. 실로 영광스러운 일이다.
이름을 뭐라고 해야 좋을까.
바람에 나풀거리는 잎새처럼 가볍고.
그러면서도 신선과도 같은 기품이 절로 풍겨나오고.
용보다 빠르며, 또 우아했다.
또 제 이름을 넣고 싶다는 욕심도 피어올랐다.
보법을 펼쳤을 때 느꼈던 심정 또한 담고 싶었다.
그 모든 감상이 담긴 무공은.
분명 연화비영보(蓮華飛影步)라는 이름으로 불릴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