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iles
rupy1014 f66fe445bf Initial commit: Novel Agent setup
- Add 3 AI agents (writing, revision, story-continuity specialists)
- Add 4 slash commands (rovel.create, write, complete, seed)
- Add novel creation/writing rules
- Add Novelpia reference data (115 works, 3328 chapters)
- Add CLAUDE.md and README.md

🤖 Generated with [Claude Code](https://claude.com/claude-code)

Co-Authored-By: Claude Opus 4.5 <noreply@anthropic.com>
2025-12-14 21:31:57 +09:00

16 KiB
Raw Permalink Blame History

본래 화종지회(華終之會)를 구경하려 했던 것은 마땅한 구경거리가 없었기 때문이다. 운남까지 이어질 긴 여정이 지루한 걸음의 연속이 될 터이니, 적당히 쉬어갈 필요가 있었다.

허나 소검후와의 비무 후 생각이 바뀌었다. 제 안력이 생각보다 훨씬 대단하다는 것을 깨닫게 된 탓이었다.

그쯤 되니 화종지회가 다르게 보였다.

명색이 구파가 당당히 내세운 후기지수들이다. 제 안력에 확신을 가지기에 아주 좋은 기회로 보였다.

검을 제대로 쥐어 본 적도 없으면서 스스로의 재능을 일대제자 수준이라 짐작했었다. 육체에 걸림이 없고, 오성에 막힘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것만으로도 스스로의 재능을 수십 년간 체계적으로 무를 갈고닦아온 구파의 중견 고수들과 동선상에 두었다. 스스로 놀랄 정도의 파격이었다. 당시에는 그렇게 여겼다.

거기에 안력까지 더해지려 하고 있었다.

이쯤 되니 서연도 자신이 진지하게 어렸을 때부터 검을 배웠다면 어찌 되었을지 궁금해질 지경이었다.

고향인 안휘성에서 이름을 날리는 것은 물론이고, 어쩌면 남궁세가에 들어가 검대를 이끌었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지나가던 구파 도인이 발견했으면 주워갔으려나.

산속에 틀어박히지만 않았어도 분명 그리되었을 것 같았다. 허나 그렇게 되었다면, 일신의 무력을 믿고 부모의 복수를 꾀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안휘성이 어디인가. 팔대세가의 수장이나 다름없는 남궁세가의 영역이요, 정파의 거두인 무당파와 소림이 지척에 놓인 곳 아니던가. 사실상 정파 무림의 심부나 다름 없었다.

북경과도 그리 멀지 않다. 쉬지 않고 말을 달리면 칠주야도 걸리지 않는다고 했다.

그런 곳에서 혈겁을 일으킨 작자들이 어디 보통이겠는가.

수십 일 동안 잿더미가 된 초가의 지지대 아래에 숨어 지냈다. 이따금 목이 말라 장강으로 갈 때마다 떠밀려오는 시체들을 보며 혈겁이 끝나지 않았음을 짐작했을 뿐이다.

시체는 종류를 가리지 않았다. 어떤 날에는 처참한 모습으로 변한 관병들이 떼거지로 떠밀려오기도 했다. 이따금 백의를 입은 사람들도 떠밀려 왔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구파의 도인이었던 것 같다.

배가 갈라지고, 상반신만 떠밀려오고, 세로로 잘리고, 가로로 잘리고…….

맨정신으로 버틸 수 있는 재해가 아니다. 뜬 눈으로 지샌 날이 태반이었다. 무림인을 괴력난신으로 여긴다는 민초들의 심정을 뼈저리게 이해했다.

작은 마을이라 그나마 피해가 덜했다는 말이 충격이었다. 도망쳐온 이들에게 듣기를, 가까운 도시인 함산(含山)에서는 시체가 호수를 가득 메웠다고 했다.

그 때문일까, 산 속에 숨어 지낼 때도 최대한 사람을 마주치지 않으려 노력했다. 혹여 혈겁이 자신을 쫓아올까 두려웠기 때문이다.

옛 일을 떠올리다 보니 서연도 생각이 달라졌다.

‘어쩌면 더 일찍 죽었을 수도 있겠다.

과신하기 딱 좋은 재능이었으니 말이다.

서연은 소검후가 입을 열 때까지 그런 상념에 잠겨 있었다.

“다음에는 진검으로 비무했으면 좋겠어요.”

대사저로서 너무 오래 자리를 비울 수 없었기에 가봐야 한다고 했다. 아무리 섬서가 정파 무림의 땅이라 한들, 이만한 행사가 열리면 뭣 모르는 낭인들이 설쳐대기 마련이었다.

지회에 참여하지 않는 도인들은 치안을 더욱 엄중히 다스리기 위해 장안 주변을 엄중히 경계해야 했다. 그러지 않으면 황실에서 직접 나서서 징치하기 때문이다.

황태자가 이끄는 천명검에 대항하는 순간 반역도라는 낙인이 찍혔다. 사마외도라면 모를까, 민초들 곁에 자리잡은 정파라면 반드시 따라야 했다.

곧 소검후를 비롯한 도인들과 헤어졌다. 서연은 화련과 백검문 바깥으로 나왔다.

화종지회가 열리는 곳으로 찾아가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았다. 온갖 행인들이 그 이야기만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번에는 종화지회(終華之會)라 부르는게 맞지. 소검후도 출전하지 않는데 화산이 무슨 수로 이길까?”

“아무리 그렇다고 해도 검후께서 계시는 화산을 종남보다 아래로 보는 건 조금 아닌 듯 한데. 화종지회라 부르는 게 맞소.”

“그렇게 따지면 종남에는 검선 여동빈이 계셨지. 반면 화산에는 등선한 도인이 하나도 없지 않소.”

“수백 년도 더 전의 과거에 매몰된 꼬라지가 딱 종남파 놈이구만? 그쪽 속가 출신이오?”

“뭐? 그러는 그쪽은 사실 화산 분타 소속 아니오?”

“소, 솔직히 무당파가 최고라 생각하오.”

그러다 다툼이 일어나는 것을 한두 번 목격한 것이 아니었다. 분위기가 격해져 서로 치고받다 크게 다쳐 쓰러지는 사람들이 적지 않았다.

그런 싸움은 근처의 관병과 도인들이 나서고 나서야 일단락되었다.

분위기가 과열된 것이 한눈에 보였다. 당사자인 도인들보다 민초들이 더욱 그러했다. 두 도문 모두 적잖은 속가를 보유한 탓에, 그에 소속감을 느낀 사람들이 적지 않기 때문이라 추측했다.

화종지회가 열린다는 비무대는 생각보다 단촐했다. 일전에 방문했던 백검문의 비무장보다도 단촐해보였으니 오죽할까.

그렇다고 하여 그 위에 선 도사들까지 허술해 보이지는 않았다. 세 치보다 살짝 낮은 비무대의 양쪽 끝에 도열한 도사들의 모습은 올려다보는 이들로 하여금 어린 신선 같다는 느낌을 주었다.

신선이라 느낄 만도 했다. 섬서에서 두 도문이 끼치는 영향력은 그야말로 막대했기 때문이다.

지회를 개최하게 된 연유도 국경에서 일어나는 전쟁으로 인해 흔들리는 민심을 다잡고, 민초들에게 건재함을 보여주며 안심을 주기 위함이었으니 말이다.

대회장 인근엔 그야말로 엄청난 인파가 몰아쳤다. 온갖 사람들로 발 디딜 틈이 없을 정도였다.

아예 상층의 창문을 훌쩍 열어놓고 자릿세를 받는 객잔도 적지 않았다.

“비무대가 훤히 보이는 자리요. 은전 다섯 냥만 받겠소이다.”

“여기요.”

서연은 선뜻 돈을 내밀었다. 사람이 너무 많아 까치발을 들지 않고서는 앞을 보기가 힘들었기 때문이다. 자신이 이 정도인데 화련은 오죽할까. 기왕이면 제대로 구경하고 싶은 마음도 있었다.

곧 단상 위로 장포를 걸친 노인이 허공에서 홀연히 나타났다. 옷차림을 보건데 종남의 장로였다. 곧 그를 알아본 구경꾼들이 입을 모아 감탄했다.

“장백신옹(長白神翁)!”

“도대체 어디서 나타났단 말인가?”

“실로 고절한 신법이다!”

장문인이 사사로운 이유로 산문 밖으로 나올 수 없었기에, 장로가 개회식을 대신하는 것이다.

곧 장백신옹이 입을 열었다. 공력을 담기라도 한 것인지 목소리가 사방에 쩌렁쩌렁 울렸다.

“지회를 시작하기 전에 빈도가 이 자리를 찾아주신 여러분께 한 말씀 올리겠소. 본 지회는 어디까지나 화산과 종남이 교류하여 친목을 도모하기 위함이지, 누가 더 뛰어난지를 겨루기 위함이 아니오.”

말을 할 때마다 은은한 바람이 불어와 옷자락과 수염을 가볍게 휘날렸는데, 그 모습이 가히 신선이라 불리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특이하게도 화산 쪽에서 나서는 사람은 없었다. 원래라면 화산에서도 마땅히 대리인을 내세워야 했기 때문이다.

행인들도 그것을 알아차렸는지 웅성대기 시작했다.

“검후께서는 어디 계시지?”

“화산에 장로가 어찌 그분 한 분뿐이겠소? 게다가 그분이 어디 한가하신 분이던가? 척결해야 할 사마외도가 적지 않은 것을.”

“누가 들으면 종남파는 손가락만 빨고 있는 줄 알겠구려.”

다시금 주변이 소란스러워질 때였다. 장백신옹은 손을 들어 행인들을 진정시킨 다음, 상황을 설명했다. 이번 지회의 개회식은 종남이, 다음 지회는 화산이 맡기로 했다는 것이다.

그제서야 납득한 구경꾼들이 잠잠해졌다. 곧 장백신옹이 개회를 선언했다.

이윽고 양쪽에서 화산과 종남의 도인이 한 명씩 비무대에 올라섰다. 둘 다 약관이 안 되어 보였는데, 이러한 경험이 처음인지 긴장한 기색이 역력했다.

“오오!”

“이번에 나선 도사님들 나이가 열여섯이라며?”

관중들이 흥분하여 외쳤다. 아예 승패를 두고 남몰래 돈을 거는 이들도 적지 않았다. 그래도 대놓고 하지는 않았기에, 경계를 서는 도인들은 그런 도박꾼들을 못 본 척 넘어갔다.

두 도인은 가볍게 검을 휘두르며 몸을 풀다가, 천천히 기수식을 취했다.

서연의 무릎에 앉아있던 화련이 당과를 삼킨 다음에 물었다.

“스승님은 누가 이길 것 같으세요?”

“이번 경기는 아무래도 종남이 우세하지 않을까 싶구나.”

실전이라면 모를까, 비무만 놓고 보면 수비적인 검세를 취한 종남파 쪽이 훨씬 유리해 보였다. 수비자가 실수하는 것보다 공격자가 실수하는 것이 더욱 치명적이었기 때문이다.

화산의 검은 화려함 속에 살초를 숨기는 방식인데, 저리 몸이 굳어 있다면 제 실력을 펼치지 못할 것이 분명했다.

곧 경기는 서연의 예상대로 흘러갔다. 긴장한 화산의 도사는 제 실력을 제대로 펼치지 못했다. 모든 공격이 단단히 틀어막히자 다급하게 승부수를 걸었지만 그마저도 실패했다.

“과연 대종남이다!”

“저런 분들이 섬서를 수호하시는구나!”

패배를 시인한 화산의 도사가 물러설 때였다.

“이번 지회의 승패를 두고 내기해보는 것은 어떻겠는가?”

바로 옆에서 맑고 나긋한 목소리가 울렸다.

고개를 돌리니 흑단과도 같은 머리칼을 가진 여인이 옆자리에 앉아 있었다. 겉보기에는 이립 정도로 보였으나, 특유의 정갈한 분위기에서 헤아릴 수 없는 연륜이 묻어났다

특이하게도 서연처럼 죽립을 쓰고 있었는데, 그럼에도 뛰어난 외모가 가려지지 않았다.

“실은 방금 자릿세를 내는데 돈을 다 써버렸다네. 설마 은전 다섯 냥씩이나 할 줄은 미처 몰랐지 뭔가.”

활달한 기질이 말투에서부터 물씬 풍겼다. 일전에 소검후를 만나서 그런가, 그 차이가 유독 크게 다가왔다.

“승패를 헤아려 더 많이 맞추는 쪽이 식사를 사는 것이 어떤가? 값비싼 것을 청하지는 않을 터이니 너무 염려 마시게. 이쪽은 소면 하나면 족하니.”

그녀의 입매가 호선을 그렸다. 어찌할 것이냐고 묻는 듯했다.

“지면 어찌하시려고 그러십니까? 남은 돈이 없으시다고 말씀하셨는데요.”

서연이 그렇게 대꾸한 직후였다. 여인의 눈이 크게 뜨였다. 이제 보니 자신이 질 것을 아예 상정하지 않은 듯했다. 곧 익살스럽게 웃은 여인이 말했다.

“사실 식사 한 끼 살 만큼은 있었다네.”

그렇게 말하며 전낭을 내밀었다. 그 안에는 자그마한 동전 몇 푼이 굴러다니고 있었다.

안 그래도 심심해지던 차였다. 식사 한 끼가 걸린 내기 정도야 얼마든지 수락할 만했다. 물론 서연은 지든 이기든 밥을 살 생각이었다. 가난한 도인의 돈을 뜯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화산과 종남이 내세운 후기지수는 각각 여덟. 방금 한 경기가 끝났으니, 남은 경기는 일곱 개였다. 칠판 사선승제라는 뜻이다.

비무대에 두 후기지수가 올라섰다. 일전에 나섰던 도사들보다는 나이가 있어 보였다.

“이쪽은 화산의 승리에 걸겠네.”

“음, 저와 생각이 같으시군요.”

무승부를 생각하지 못했던 서연이 낭패라는 얼굴을 했다. 그때 여인이 제안했다.

“그러면 이리 해보세. 같은 쪽에 걸었다면, 더 그럴듯한 이유를 대서 상대를 납득시키는 쪽이 이기는 것으로.”

나쁘지 않은 방법 같았다. 여인은 서연이 먼저 할 것을 권했다.

서연은 곧장 답하는 대신 잠시 생각했다.

화산의 도사는 일전의 소검후가 그랬던 것과 같은 기수식을 취하고 있었다. 분명 낙화검일 것이다.

종남의 도사 또한 전판에 나섰던 도사와 같은 자세를 취하고 있었다. 그렇다면 같은 검법을 사용한다는 뜻인데, 얼핏 보았을 때는 정면을 여섯 방위로 나누어 방어하는 듯 했다. 정확한 명칭을 알지 못하니 임의로 육합검이라 칭했다.

낙화검이 가장 취약해지는 때는 상단세에서 찌르기로 전환할 때다. 그 때 구미혈(鳩尾穴)이 온전히 드러나기 때문이다.

허나 종남의 도사가 이를 파훼하려면 육합을 임의로 깨뜨리고 쏟아지는 낙화 앞으로 나서야 했다. 여섯 방위로는 온전히 닿을 수 없음이다.

전판의 미숙한 도사였다면 모를까, 이번에 나선 화산의 도사는 낙화검의 검초를 눈 감고도 능숙하게 펼칠 만큼 연마한 듯 했다. 긴장하여 실수할 일이 없다는 것이다.

결국 남은 방법은 종남의 비전인 천하삼십육검을 펼치는 것 뿐인데, 남들이 보는 앞에서 그런 상승의 검법을 꺼낼 리가 만무했다.

정리를 마친 서연은 제 생각을 말로 풀어 설명했다.

“결국 낙화검을 펼칠 때 구미혈을 뚫느냐 못하느냐에서 승부가 갈릴 것 같은데, 태을무형검(太乙無形劍)같은 쾌속한 검법이라면 모를까, 지금 펼치는 검법으로는 파훼할 수 없을 듯합니다.”

“음……?”

여인의 눈이 커졌다.

“화산의 도사를 상대해본 경험이 있나? 아니, 그렇다고 해도 쉬이 알아차릴 수 있는 것이 아닌데…….”

“사실 일전에 소검후의 검술을 견식한 적이 있습니다. 그분도 곡지혈에 내기를 온전히 싣지 않던데, 이번 분도 그러시는군요. 상대가 다칠 것을 염려하는 모양입니다.”

“곡지혈……?”

이윽고 미간을 좁힌 여인의 시선을 돌렸다. 무언가를 깊이 생각하는 듯했다. 잠시 후, 여인의 목울대가 작게 울렁거렸다. 그 모습이 마치 어딘가로 전음을 보내는 듯 했다.

곧 비무대에 올라가있던 화산의 도인이 갑자기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갑작스럽게 집중력이 흐트러진 모습에, 순간 밀릴 정도였다.

그러다 갑자기 기도가 달라졌다. 낙화검을 막아내던 종남의 도사의 얼굴에 경악이 어렸다.

투쾅!

사방에 꽃잎이 휘날렸다. 종남의 도사는 넝마가 된 채로 비무장 바깥으로 튕겨나갔다.

“이게 무슨……?”

옆에 서 있던 여인은 황망한 얼굴로 서연을 돌아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