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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검후 신초빈(申草瀕)의 옛 별호는 설매화(雪梅花)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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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음장 같은 눈매와 도통 감정을 드러내지 않는 입매 탓에, 마치 천 년 묵은 한빙에서 뿜어져 나오는 듯한 서늘한 분위기를 풍겼기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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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때문에 감히 누구도 쉽게 다가설 엄두를 내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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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수가 유난히 적은 것도 그러한 인상을 쌓는 데 한몫했다. 오죽했으면 사형제 사이에서도 그녀와 제대로 대화를 나눠본 이가 손에 꼽을 정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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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가 작다고 멸시한 것은 아니었다. 그 누가 감히 검후의 직전제자를 멸시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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홀로 풍기는 분위기가 고고했기에, 감히 다가가지 못하는 것에 가까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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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소검후는 다른 이들과 두루 친하게 지내기를 원했으나, 워낙 소극적이고 조용한 성격 탓에 그러지도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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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후가 직전제자로 받은 탓에 항렬이 꼬여버린 연유도 있었다. 눈 떠보니 나이 지긋한 아저씨들과 같은 항렬이 되어버린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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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지어 검후는 현 화산 장문인보다 항렬이 높았다. 장문인보다 먼저 입문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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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검후는 그렇게 대사저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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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산파는 다른 도문에 비하면 분위기가 개방적이었다. 속가를 만들기를 꺼리지 않는 화산파 특유의 성향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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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기에 화산파에 막 입문한 제자들 중에는 뭣도 모르고 소검후에게 다가가 반말로 인사하는 경우도 적지 않았다. 키가 작아 자신과 동문으로 착각했기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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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나 소검후는 곧장 인사를 받지 않았다. 어찌 대답해야할지 고민하던 것이었으나, 다른 사람들은 그런 소검후가 매우 화가 났다고 여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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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사저, 검을 뽑으시면 안됩니다. 뭣도 모르는 아이니 용서하시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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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고, 제가 대신 사과드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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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고조님, 또 비무를 핑계로 무력을 사용하시면 아니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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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흐, 흐어어엉! 태사고님, 때리지 말아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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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일이 생긴 이후로, 어린 입문제자들조차 감히 소검후에게 말을 걸 시도를 하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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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검후가 노력하지 않았던 것은 아니다. 그녀는 어느 정도 친해진 사람 앞에서는 나름 말수가 많아지는 편이었기에, 스승인 검후에게 이러한 고민들을 토로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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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일이 있었는데, 그 아이를 어떻게 해야 할까요. 비무라도 해야 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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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나 말투가 심각할 정도로 딱딱하고 무거웠던 탓에, 검후는 제 제자가 새로 입문한 아이를 해하려는 줄로 오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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졸지에 소검후는 말 한 번 잘못했다고 어린 입문제자를 목검으로 무자비하게 다스릴 뻔한 냉혹한 인간이 되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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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후 소검후는 타인에게 고민을 토로하기를 그만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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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몇 년. 어느새 성인이 되었지만, 소검후의 키는 여전히 십대 초중반쯤에 멈춰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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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래 동기였을 아이들은 성인이 되기 한참 전에 장성했거늘, 소검후만 처음 모습 그대로 멈춰버린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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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죽했으면 소검후라는 영광스러운 별호가 자신을 놀리기 위해 만들어졌을지도 모른다고 곡해할 지경에 이르렀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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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소검후는 이러한 번민을 아이들을 만나는 것으로 풀었다. 갓난아기들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그 나이의 아이들은 무표정한 소검후를 보면 으레 무섭다고 울어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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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행히 다섯 여섯쯤 되는 어린아이들은 예쁜 사람을 좋아했고, 소검후는 외양이 매우 빼어난 편에 속했다. 소검후는 티 없이 제게 다가오며 웃는 아이들을 보며 마음의 심려를 해소하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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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그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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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을 걷던 중에 예쁘장하고 귀여운 아이를 만났다. 열 살은 되었을까? 아슬아슬했지만, 그 나이대의 소녀들 또한 으레 예쁜 것을 좋아하는 것은 매한가지였다. 소검후는 언제나처럼 아이를 쓰다듬으며 심려를 해소하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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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래 쓰다듬어도 되는지 묻는 것이 상례였으나, 무뚝뚝하고 차가운 말투를 마주한 아이들이 으레 겁을 먹고 도망치기 일쑤였기에, 일단 저지르고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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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랬다가 막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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옆에 서 있던 여인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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놀란 소검후의 눈동자가 매우 커졌다. 타인이 보기에는 느끼지 못할 정도로 미세한 차이였으나, 소검후 본인은 제 눈동자가 평소보다 세 배는 크게 떠졌다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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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혔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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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산파가 검법으로 유명하다지만, 권장법과 수법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다. 소검후 또한 난화수(亂花手)나 매화산수(梅花散手)를 대성했고, 검후에게 직접 전수받은 산화무영수(散花無影手)도 한창 익히는 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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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분에 걸맞는 실력 또한 가지고 있었다. 나이를 생각하면 말도 안되는 일이었다. 화산이 자랑하는 제일기재라는 말이 아깝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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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도 잡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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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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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간 소검후의 눈동자가 다른 의미로 반짝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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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무해달라고 부탁해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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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검후는 본래 비무를 즐겼다. 비무 중에는 강제로라도 몸을 부대끼게 되는 탓에, 친해진 것 같다는 착각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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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무에도 최선을 다해야 한다. 그래야 실전에서도 제 실력을 내는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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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승인 검후의 가르침 덕에 하수를 상대할 때도 항상 최선을 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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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만 그 최선이 다른 이들이 보기에 공포스러웠던 것이 문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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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리 목검 비무라지만, 뛰어난 무인과의 비무는 필시 상처를 남기는 법이다. 소검후는 비무에서도 최선을 다했기에, 그녀를 상대한 사람들은 항상 어딘가 한 군데씩 부러지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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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사형제와 사질들은 이러한 사실을 소검후 앞에서 내색하지 않았다. 괜히 훌쩍거렸다가 더 심하게 맞을 것을 두려워했기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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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기에 소검후는 아직도 사형제들과 비무하면 친해진다고 착각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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뭣도 모르고 반말했던 입문제자들과 비무를 하려던 것도 그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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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해지고 싶어서 그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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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와서 알려줬다면 좋았겠으나, 안타깝게도 그럴 기회가 없었다. 화산파 내부에서는 감히 소검후에게 대들 사람이 없었고, 종남과 무당의 후기지수들은 사사로이 검을 섞지 않고자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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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검후가 검을 제대로 섞어본 유일한 외인은 광검(狂劍) 남궁청해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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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관계가 박살난 소검후와, 검에 미쳤다는 남궁청해가 어찌 비무했을지는 안 봐도 눈에 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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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그마치 칠주야 동안 밥 먹고 자는 시간을 제외하고는 매일같이 비무했고, 이기고 지기를 반복했다. 둘은 엄청나게 친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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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궁청해가 검에 미친 인간이었기에 가능한 일이었으나, 소검후는 그 때문에 비무만능주의의 열렬한 신봉자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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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해지고자 했던 사형제, 사질들과 수없이 비무했다. 화산파의 일대, 이대, 삼대제자들은 대사저의 난데없는 패악질에 속절없이 쓸려나갈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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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문인과 장로들도 막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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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자들의 실력이 느는 것은 확실했고, 살초(殺招) 또한 일절 없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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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들이 예전에 검후에게 그렇게 당했기 때문도 있었다. 그 스승에 그 제자라고 할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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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만 차이점은 검후는 매우 사교적이었으나, 소검후는 그러지 못해 괜한 오해를 샀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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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방금 상황으로 돌아와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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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검후는 제 양팔을 꽉 틀어잡은 사형제들과 사질들을 부루퉁한 얼굴로 쳐다보았다. 물론 그들은 겉보기엔 무표정하기 그지없는 소검후를 보며 남몰래 부르르 떨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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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고, 저희가 전부 잘못했어요. 그러니 한 번만 참아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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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에도 난동을 일으키시면 정말로 큰일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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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동? 한 번도 일으킨 적 없다. 비무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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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여파로 주변 일대가 쓸려가긴 했으나, 민가에 피해를 준 적은 없다. 어찌 도사가 되어 다른 이에게 피해를 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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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검후는 제 사질들이 쓸데없는 걱정을 한다고 생각했다. 마음씨가 이리 상냥하여 험한 세상을 어찌 살아갈까 걱정도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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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중에 비무 한 번씩 해줘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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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특하니 그 정도는 해줘도 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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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연은 졸지에 화산파 분타가 세운 객잔에서 밥을 얻어먹게 됐다. 허나 체할 것 같은 분위기에 밥을 넘기기 힘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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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앞에 소검후가 앉아 있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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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정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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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지 않은 방향으로 인형 같다고 해야 할까. 아름다우면서도 묘하게 무생물 같은 분위기를 풍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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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년 스물세 살이라고 했다. 솔직히 말해 그보다 훨씬 어려 보였다. 성인 여성보다는 소녀에 가깝다고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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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짜고짜 화련을 쓰다듬으려 했던 것에 대해 사과하긴 했다. 다만 말로 하지는 않았다. 고개를 정중하게 꾸벅 숙였다. 옆에 있는 도사들에게 물으니 원래 말수가 적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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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 말이 아예 없는 수준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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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고 나쁜 사람 같지도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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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과부터 사들고 와서 화련에게 건네주었기 때문이다. 화련이 당과를 선뜻 받아먹었을 때, 굳어있던 소검후의 입매가 풀려 올라가는 것을 서연은 분명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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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련은 당과 하나에 제 머리를 쓰다듬는 것을 허락했다. 그 결과 소검후는 입술 끝이 약간 몽실해진 채로 화련의 머리를 계속 쓰다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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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이한 사람이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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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에 오기 전에 다른 도인들에게서 사정을 대충 전해들었다. 소검후의 배분 이야기도 그 중 하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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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면 대사저라는 압박감 때문에 저리 강압적인 모습을 연기하고 있는 것일 수도 있겠다고 서연은 속으로 짐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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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연이 천천히 입술을 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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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곧 종남파와 지회(之會)를 연다고 한다고 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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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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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검후가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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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맞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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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시 소검후 님도 참가하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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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검후는 이번에는 고개를 짧게 고개를 가로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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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참가할 수 없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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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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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에는 서연이 고개를 끄덕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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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검후가 출전한다면 종남파에서도 마땅히 배분이 맞는 제자를 내밀어야 했다. 그것이 도리였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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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년의 일대 제자를 내세워야 한다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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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쯤 되면 이겨도 문제요, 져도 문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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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면 약관 즈음의 여인을 실력으로 짓눌렀다고 말이 나올 테고, 지면 약관 즈음의 여인에게 졌다고 말이 나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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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로 소검후가 참여하는 것을 종남에서 반길 리 만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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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검후의 입술이 부루퉁 피어올랐다. 서연처럼 눈썰미가 신기가 오른 사람이 아니고서야 알아챌 수 없을 정도로 미세한 변화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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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지간히도 나가고 싶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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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연은 문득 소검후가 안쓰럽다고 느꼈다. 빈궁한 사람을 보았을 때의 안쓰러움과는 조금 달랐다. 이제 보니 사람 자체가 뭔가 멍하고 얼빠져 보인다고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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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화산파 도인들이 들었다면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냐고 한소리 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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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서연은 그런 생각을 겉으로 내색하진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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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사를 마친 김에 자리에서 일어나려는데, 소검후가 입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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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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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글자를 내뱉었을 뿐이다. 순간 주변에 있던 화산파 도인들이 일제히 눈을 부릅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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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나 안타깝게도 소검후가 문장을 완성하는 것이 더 빨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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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검후의 시선은 서연의 허리춤에 매여있는 검을 향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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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무 한 번 부탁드려도 될까요. 검을 사용하시는 것 같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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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연은 문득 예전에 회화루를 쳐들어갔을 때를 떠올렸다. 그때 제 오성을 일대제자 수준이라 어림짐작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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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침 소검후 또한 배분으로 따지면 일대제자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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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소검후는 일대제자들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어리다. 아무리 재능이 뛰어나다지만, 수십 년을 더 살아왔을 진짜 일대제자들만큼 강하진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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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나보다는 훨씬 강하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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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산이 자랑하는 검후의 제자가 어디 보통 사람일까. 오성만 놓고 보아도 자신보다 몇 배는 뛰어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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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검후도 제 실력이 더 낫다는 것을 알고 있을 것이다. 서연은 소검후가 무인의 방식으로 사과하려는 것이라 어림 짐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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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래 뛰어난 무인과의 비무는 지도대련이 되기 십상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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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술을 가다듬기에도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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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만한 실력자와 비무라면 분명 얻는 것이 많을 것이다. 서연은 소검후의 배려를 받아들이기로 마음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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곧 서연이 고개를 끄덕이며 입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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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당한 장소가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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