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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12-14 21:31:57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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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검후 신초빈(申草瀕)의 옛 별호는 설매화(雪梅花)였다.

얼음장 같은 눈매와 도통 감정을 드러내지 않는 입매 탓에, 마치 천 년 묵은 한빙에서 뿜어져 나오는 듯한 서늘한 분위기를 풍겼기 때문이었다.

그 때문에 감히 누구도 쉽게 다가설 엄두를 내지 못했다.

말수가 유난히 적은 것도 그러한 인상을 쌓는 데 한몫했다. 오죽했으면 사형제 사이에서도 그녀와 제대로 대화를 나눠본 이가 손에 꼽을 정도였다.

키가 작다고 멸시한 것은 아니었다. 그 누가 감히 검후의 직전제자를 멸시할까.

홀로 풍기는 분위기가 고고했기에, 감히 다가가지 못하는 것에 가까웠다.

물론 소검후는 다른 이들과 두루 친하게 지내기를 원했으나, 워낙 소극적이고 조용한 성격 탓에 그러지도 못했다.

검후가 직전제자로 받은 탓에 항렬이 꼬여버린 연유도 있었다. 눈 떠보니 나이 지긋한 아저씨들과 같은 항렬이 되어버린 것이다.

심지어 검후는 현 화산 장문인보다 항렬이 높았다. 장문인보다 먼저 입문했기 때문이다.

소검후는 그렇게 대사저가 되었다.

화산파는 다른 도문에 비하면 분위기가 개방적이었다. 속가를 만들기를 꺼리지 않는 화산파 특유의 성향 때문이었다.

그렇기에 화산파에 막 입문한 제자들 중에는 뭣도 모르고 소검후에게 다가가 반말로 인사하는 경우도 적지 않았다. 키가 작아 자신과 동문으로 착각했기 때문이었다.

허나 소검후는 곧장 인사를 받지 않았다. 어찌 대답해야할지 고민하던 것이었으나, 다른 사람들은 그런 소검후가 매우 화가 났다고 여겼다.

‘대사저, 검을 뽑으시면 안됩니다. 뭣도 모르는 아이니 용서하시지요.

‘사고, 제가 대신 사과드리겠습니다!

‘사고조님, 또 비무를 핑계로 무력을 사용하시면 아니됩니다!

‘흐, 흐어어엉! 태사고님, 때리지 말아주세요……!

그런 일이 생긴 이후로, 어린 입문제자들조차 감히 소검후에게 말을 걸 시도를 하지 못했다.

소검후가 노력하지 않았던 것은 아니다. 그녀는 어느 정도 친해진 사람 앞에서는 나름 말수가 많아지는 편이었기에, 스승인 검후에게 이러한 고민들을 토로했었다.

‘이런 일이 있었는데, 그 아이를 어떻게 해야 할까요. 비무라도 해야 할까요?

허나 말투가 심각할 정도로 딱딱하고 무거웠던 탓에, 검후는 제 제자가 새로 입문한 아이를 해하려는 줄로 오해했다.

졸지에 소검후는 말 한 번 잘못했다고 어린 입문제자를 목검으로 무자비하게 다스릴 뻔한 냉혹한 인간이 되고 말았다.

그 후 소검후는 타인에게 고민을 토로하기를 그만두었다.

그렇게 몇 년. 어느새 성인이 되었지만, 소검후의 키는 여전히 십대 초중반쯤에 멈춰 있었다.

본래 동기였을 아이들은 성인이 되기 한참 전에 장성했거늘, 소검후만 처음 모습 그대로 멈춰버린 것이다.

오죽했으면 소검후라는 영광스러운 별호가 자신을 놀리기 위해 만들어졌을지도 모른다고 곡해할 지경에 이르렀으니 말이다.

결국 소검후는 이러한 번민을 아이들을 만나는 것으로 풀었다. 갓난아기들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그 나이의 아이들은 무표정한 소검후를 보면 으레 무섭다고 울어댔다.

다행히 다섯 여섯쯤 되는 어린아이들은 예쁜 사람을 좋아했고, 소검후는 외양이 매우 빼어난 편에 속했다. 소검후는 티 없이 제게 다가오며 웃는 아이들을 보며 마음의 심려를 해소하곤 했다.

오늘도 그러했다.

길을 걷던 중에 예쁘장하고 귀여운 아이를 만났다. 열 살은 되었을까? 아슬아슬했지만, 그 나이대의 소녀들 또한 으레 예쁜 것을 좋아하는 것은 매한가지였다. 소검후는 언제나처럼 아이를 쓰다듬으며 심려를 해소하려 했다.

본래 쓰다듬어도 되는지 묻는 것이 상례였으나, 무뚝뚝하고 차가운 말투를 마주한 아이들이 으레 겁을 먹고 도망치기 일쑤였기에, 일단 저지르고 보았다.

그랬다가 막혔다.

옆에 서 있던 여인에게.

놀란 소검후의 눈동자가 매우 커졌다. 타인이 보기에는 느끼지 못할 정도로 미세한 차이였으나, 소검후 본인은 제 눈동자가 평소보다 세 배는 크게 떠졌다고 생각했다.

‘잡혔어.

화산파가 검법으로 유명하다지만, 권장법과 수법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다. 소검후 또한 난화수(亂花手)나 매화산수(梅花散手)를 대성했고, 검후에게 직접 전수받은 산화무영수(散花無影手)도 한창 익히는 중이었다.

배분에 걸맞는 실력 또한 가지고 있었다. 나이를 생각하면 말도 안되는 일이었다. 화산이 자랑하는 제일기재라는 말이 아깝지 않았다.

그런데도 잡혔다.

‘고수다.

순간 소검후의 눈동자가 다른 의미로 반짝였다.

‘비무해달라고 부탁해볼까.

소검후는 본래 비무를 즐겼다. 비무 중에는 강제로라도 몸을 부대끼게 되는 탓에, 친해진 것 같다는 착각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비무에도 최선을 다해야 한다. 그래야 실전에서도 제 실력을 내는 법이다.

스승인 검후의 가르침 덕에 하수를 상대할 때도 항상 최선을 다했다.

다만 그 최선이 다른 이들이 보기에 공포스러웠던 것이 문제였다.

아무리 목검 비무라지만, 뛰어난 무인과의 비무는 필시 상처를 남기는 법이다. 소검후는 비무에서도 최선을 다했기에, 그녀를 상대한 사람들은 항상 어딘가 한 군데씩 부러지곤 했다.

물론 사형제와 사질들은 이러한 사실을 소검후 앞에서 내색하지 않았다. 괜히 훌쩍거렸다가 더 심하게 맞을 것을 두려워했기 때문이었다.

그렇기에 소검후는 아직도 사형제들과 비무하면 친해진다고 착각하고 있었다.

뭣도 모르고 반말했던 입문제자들과 비무를 하려던 것도 그 때문이었다.

친해지고 싶어서 그랬다.

누가 와서 알려줬다면 좋았겠으나, 안타깝게도 그럴 기회가 없었다. 화산파 내부에서는 감히 소검후에게 대들 사람이 없었고, 종남과 무당의 후기지수들은 사사로이 검을 섞지 않고자 했다.

소검후가 검을 제대로 섞어본 유일한 외인은 광검(狂劍) 남궁청해 뿐이었다.

인간관계가 박살난 소검후와, 검에 미쳤다는 남궁청해가 어찌 비무했을지는 안 봐도 눈에 훤했다.

자그마치 칠주야 동안 밥 먹고 자는 시간을 제외하고는 매일같이 비무했고, 이기고 지기를 반복했다. 둘은 엄청나게 친해졌다.

남궁청해가 검에 미친 인간이었기에 가능한 일이었으나, 소검후는 그 때문에 비무만능주의의 열렬한 신봉자가 되었다.

친해지고자 했던 사형제, 사질들과 수없이 비무했다. 화산파의 일대, 이대, 삼대제자들은 대사저의 난데없는 패악질에 속절없이 쓸려나갈 뿐이었다.

장문인과 장로들도 막지 않았다.

제자들의 실력이 느는 것은 확실했고, 살초(殺招) 또한 일절 없었기 때문이다.

자신들이 예전에 검후에게 그렇게 당했기 때문도 있었다. 그 스승에 그 제자라고 할 수 있겠다.

다만 차이점은 검후는 매우 사교적이었으나, 소검후는 그러지 못해 괜한 오해를 샀다는 것이다.

다시 방금 상황으로 돌아와서.

소검후는 제 양팔을 꽉 틀어잡은 사형제들과 사질들을 부루퉁한 얼굴로 쳐다보았다. 물론 그들은 겉보기엔 무표정하기 그지없는 소검후를 보며 남몰래 부르르 떨었다.

“사고, 저희가 전부 잘못했어요. 그러니 한 번만 참아주세요.”

“이번에도 난동을 일으키시면 정말로 큰일납니다!”

난동? 한 번도 일으킨 적 없다. 비무했을 뿐이다.

그 여파로 주변 일대가 쓸려가긴 했으나, 민가에 피해를 준 적은 없다. 어찌 도사가 되어 다른 이에게 피해를 줄까.

소검후는 제 사질들이 쓸데없는 걱정을 한다고 생각했다. 마음씨가 이리 상냥하여 험한 세상을 어찌 살아갈까 걱정도 되었다.

‘나중에 비무 한 번씩 해줘야겠다.

기특하니 그 정도는 해줘도 되리라.


서연은 졸지에 화산파 분타가 세운 객잔에서 밥을 얻어먹게 됐다. 허나 체할 것 같은 분위기에 밥을 넘기기 힘들었다.

코앞에 소검후가 앉아 있었기 때문이다.

‘표정이 없다.

좋지 않은 방향으로 인형 같다고 해야 할까. 아름다우면서도 묘하게 무생물 같은 분위기를 풍겼다.

방년 스물세 살이라고 했다. 솔직히 말해 그보다 훨씬 어려 보였다. 성인 여성보다는 소녀에 가깝다고 할까.

다짜고짜 화련을 쓰다듬으려 했던 것에 대해 사과하긴 했다. 다만 말로 하지는 않았다. 고개를 정중하게 꾸벅 숙였다. 옆에 있는 도사들에게 물으니 원래 말수가 적다고 했다.

‘이건 말이 아예 없는 수준 아닌가.

그렇다고 나쁜 사람 같지도 않았다.

당과부터 사들고 와서 화련에게 건네주었기 때문이다. 화련이 당과를 선뜻 받아먹었을 때, 굳어있던 소검후의 입매가 풀려 올라가는 것을 서연은 분명 보았다.

화련은 당과 하나에 제 머리를 쓰다듬는 것을 허락했다. 그 결과 소검후는 입술 끝이 약간 몽실해진 채로 화련의 머리를 계속 쓰다듬었다.

‘특이한 사람이네.

이곳에 오기 전에 다른 도인들에게서 사정을 대충 전해들었다. 소검후의 배분 이야기도 그 중 하나였다.

어쩌면 대사저라는 압박감 때문에 저리 강압적인 모습을 연기하고 있는 것일 수도 있겠다고 서연은 속으로 짐작했다.

서연이 천천히 입술을 뗐다.

“곧 종남파와 지회(之會)를 연다고 한다고 들었습니다.”

“아.”

소검후가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요.”

“혹시 소검후 님도 참가하시나요?”

소검후는 이번에는 고개를 짧게 고개를 가로저었다.

“저는 참가할 수 없어요.”

“아.”

이번에는 서연이 고개를 끄덕였다.

소검후가 출전한다면 종남파에서도 마땅히 배분이 맞는 제자를 내밀어야 했다. 그것이 도리였기 때문이다.

중년의 일대 제자를 내세워야 한다는 뜻이다.

그쯤 되면 이겨도 문제요, 져도 문제였다.

이기면 약관 즈음의 여인을 실력으로 짓눌렀다고 말이 나올 테고, 지면 약관 즈음의 여인에게 졌다고 말이 나올 것이다.

고로 소검후가 참여하는 것을 종남에서 반길 리 만무했다.

소검후의 입술이 부루퉁 피어올랐다. 서연처럼 눈썰미가 신기가 오른 사람이 아니고서야 알아챌 수 없을 정도로 미세한 변화였다.

‘어지간히도 나가고 싶나 보다.

서연은 문득 소검후가 안쓰럽다고 느꼈다. 빈궁한 사람을 보았을 때의 안쓰러움과는 조금 달랐다. 이제 보니 사람 자체가 뭔가 멍하고 얼빠져 보인다고 할까.

다른 화산파 도인들이 들었다면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냐고 한소리 했을 것이다.

물론 서연은 그런 생각을 겉으로 내색하진 않았다.

식사를 마친 김에 자리에서 일어나려는데, 소검후가 입을 열었다.

“그.”

한 글자를 내뱉었을 뿐이다. 순간 주변에 있던 화산파 도인들이 일제히 눈을 부릅떴다.

허나 안타깝게도 소검후가 문장을 완성하는 것이 더 빨랐다.

소검후의 시선은 서연의 허리춤에 매여있는 검을 향해 있었다.

“비무 한 번 부탁드려도 될까요. 검을 사용하시는 것 같은데.”

서연은 문득 예전에 회화루를 쳐들어갔을 때를 떠올렸다. 그때 제 오성을 일대제자 수준이라 어림짐작했었다.

마침 소검후 또한 배분으로 따지면 일대제자였다.

물론 소검후는 일대제자들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어리다. 아무리 재능이 뛰어나다지만, 수십 년을 더 살아왔을 진짜 일대제자들만큼 강하진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래도 나보다는 훨씬 강하겠지.

화산이 자랑하는 검후의 제자가 어디 보통 사람일까. 오성만 놓고 보아도 자신보다 몇 배는 뛰어날 것이다.

소검후도 제 실력이 더 낫다는 것을 알고 있을 것이다. 서연은 소검후가 무인의 방식으로 사과하려는 것이라 어림 짐작했다.

본래 뛰어난 무인과의 비무는 지도대련이 되기 십상이기 때문이다.

‘검술을 가다듬기에도 좋겠다.

저만한 실력자와 비무라면 분명 얻는 것이 많을 것이다. 서연은 소검후의 배려를 받아들이기로 마음먹었다.

곧 서연이 고개를 끄덕이며 입을 열었다.

“적당한 장소가 있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