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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12-14 21:31:57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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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리 인생만사 새옹지마(塞翁之馬)라지만, 호신술 하나 배우려다 갑자기 학관 도장깨기를 하게 될 줄 그 누가 예상했으랴.
적어도 서연은 꿈에도 몰랐다.
본래 시선을 끌만한 행동은 최대한 자제하려던 서연이었건만, 일이 이리 되었으니 후회한들 이미 때는 늦었다.
당장 지금만 해도 그러했다. 볶음면 하나 먹으려는데도 온갖 사람들이 주변에서 웅성거렸다.
“새파랗게 어린 여자애한테 청풍무관 관장이 털렸다면서?”
“진가무관은 아예 문을 닫았다더군.”
“그 아이의 스승은 도대체 어떤 고수이기에?”
“내가 성 노인한테 슬쩍 들었는데, 일인전승 신비문파라 하더이다.”
듣고 반응해달라고 옆에서 저러는 것이다. 일반적인 강호인이었다면 제 명성이 드높아진다고 좋아했겠지만, 서연은 오히려 수명이 깎여나가는 것 같다는 기분만 들었다.
사실 청풍무관에 들어갔을 때까지만 해도 마냥 좋았던 서연이었다. 동네 무관이니 수준은 애초부터 크게 기대하지 않았다. 수준 높은 무학을 견식할 생각이었으면 구파일방의 속가들로 향했을 것이다.
허나 굳이 무관부터 찾은 이유는, 평범한 아이들이 땀 흘리며 수련하는 모습을 보며 소박한 즐거움을 느끼고 싶었기 때문이다.
자고로 아이들의 얼굴을 보면 스승의 인성을 안다고 하였다. 청풍무관에서는 팔굽혀펴기나 마보와 같은 힘든 자세를 할 때도 비명을 지를 뿐, 힘들다고 투정부리는 아이가 하나 없었다. 제대로 가르치고 또 제대로 배우고 있다는 뜻이다
청풍이 가르치던 응격검도 그러했다. 비록 견문있는 이들이 보기엔 어설퍼 보일 수는 있으나, 무학에 대한 관심을 이끌어내기 위한 입문용 검법이라 생각하면 나쁘지 않았다.
아이들의 눈이 오죽 까다롭던가. 자칫 그럴듯하기만 한 잔재주에 매몰되기 십상인데, 응격검은 투박하면서도 나름의 멋이 있었다. 흥미를 이끌어내기 충분하다는 것이다.
물론 어느 정도 교정은 필요하겠지만, 동네 학관이 가르칠법한 무공 중에서 찌르기에 대하여 이만큼 깊게 고찰한 검법이 또 있을 것 같지는 않았다.
너무 고절한 검법을 가르치면 아이들이 따라오지 못할테고, 그렇다고 너무 기초적인 검법을 가르치면 아이들이 흥미를 잃을 터이니, 그런 의미에서 청풍은 동네 무관이 할 수 있는 최선의 선택을 했다고 할 수 있겠다.
모두 마음에 들었으나, 그중 최고를 꼽으라면 단연 화련이 목검을 쥐었을 때라고 말할 수 있겠다.
몰입하여 그런 것인지, 아니면 그저 몰랐던 재능을 이제야 깨우쳤는지는 모르겠다만, 서연은 뒤죽박죽으로 이어지는 초식 중에 화련의 오성이 정확한 방향을 찾아 꿈틀거리는 것을 보았다.
육체적인 거리감을 그제야 완전히 체득한 것일까. 초식을 거듭할수록 기운이 안정되었고, 얕은 검진(劍震) 또한 잦아들었다.
타인의 시선에서 벗어났을 때에는 진중했다가, 초식을 제 마음대로 펼칠 수 있게 되었을 때는 기뻐하고, 숨겨진 의를 깨우쳤을 때에는 반성하는 제자의 모습을 보면서.
서연은 자신의 재능이 결코 허접한 것이 아님을 깨달았다.
한 번 보았을 뿐인 응격검의 초식이 머릿속에 선연했고, 어떻게 펼쳐야 할지, 또 어떤 의도로 만들어졌는지, 또 허초를 어디에 섞어야 하는지도 훤히 보였기 때문이다.
동시에 배운 적도 없는 검법 몇 개가 서연의 뇌리를 스쳐지나갔다. 회풍무류검(廻風舞流劍)이나 섬광분운검(閃光分雲劍) 같은, 응격검의 뿌리가 되는 점창의 검법들이 그것이었다.
그 즈음, 서연의 심상 너머에 웬 사내가 홀연히 나타났다.
사내는 도인의 복장을 하고 있었는데, 이내 응격검의 기수식을 취했다. 발검과 납검을 일평생 반복했던 모양인지, 한 치의 떨림도 없는 모습이 경이롭기까지 했다.
서연은 제 손에 들린 목검을 내려보다가, 본능적으로 기수식을 취했다.
점창의 섬광분운검이었다.
본 적도 없는 검법을 나는 어찌 아는 걸까. 그런 의문은 자연스럽게 머릿속 어딘가로 사라졌고, 이내 상대를 면밀히 탐색하는 검수로서의 정체성만이 남았다.
서연은 사내의 호흡에 집중했다. 쾌검이란 일순간에 잠력을 폭발시켜야 하기에, 다른 무엇보다 호흡이 핵심이었다.
곧 사내가 숨을 크게 들이켰다.
그리고.
쩌어엉!
산산이 조각난 사내의 검이, 서연의 심상 속에 서리서리 뻗쳐올랐다. 서연은 사방으로 흩어지는 조각들을 보며 아름답다는 생각을 했다.
비록 섬광분운검에 미치진 못했으나, 그 속에 담긴 의지와 처절함은 고스란히 전해졌기 때문이다.
서연의 손에 들린 목검이 반으로 갈라진 것이 그 증거였다.
그제야 사내는 만족했다는 듯 희미하게 웃더니, 서연에게 포권하고는 그림자처럼 사라졌다.
정신을 차렸을 땐, 화련이 청풍을 세 수만에 쓰러뜨린 이후였다.
거기까지만 해도 괜찮았다.
청풍무관 관생들이 제 관장이 어린아이에게 털린 것을 무슨 자랑거리라도 되는 것 마냥 이곳저곳에 떠들어대기 전까지만 해도 말이다.
입에서 입으로 거쳐간 소문은 순식간에 와전되었고, 그 결과가 이것이다.
“남만에서 올라왔다는 소문이 있네. 죽립을 걷어보면 귀가 뾰족할거라던데.”
“그게 참말이오?”
“건청문(乾淸門)은 단단히 준비를 하고 있더이다.”
“내 전해들은 이야기인데, 나왕문(羅王門)에서도 관심을 보이고 있다고 하오.”
그래도 마냥 나쁜 일만 있는 것은 아니었다.
제자의 재능을 알았고, 또 서연 자신의 재능도 깨달았기 때문이다.
‘보통 재능은 아닌 것 같은데.
서연은 마음속으로 한숨을 내쉬며 볶음면을 집어먹었다.
이 기분을 대체 무어라 표현해야 할까.
오랜 세월 강호와 떨어져 지내려 했던 노력이 무색하게도, 재능이라는 단어 하나에 이리도 쉽게 흔들리는 꼴이 우습기도 하고.
다시 예전처럼 틀어박혀 살자니, 괜한 재능을 버리는 것만 같고.
참 인간의 욕심은 끝도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볶음면의 맛을 제대로 느끼지 못할 정도로 번뇌에 잠겨있던 와중에, 청경채를 걸러 먹던 화련의 시선이 뒤쪽으로 쏠렸다.
그곳에 웬 여인이 서 있었다.
동공이 벌겋게 충혈된 여인은 손톱을 깨물면서 객잔 내부를 둘러보고 있었다. 행색은 추레했고, 몸동작은 뚝뚝 끊어지는 것이 마치 무슨 병에라도 걸린 것 같았다.
점소이가 곧장 나섰다.
“손님, 여기서 이러지 마시고 일단 나가실까요?”
“아, 안 돼.”
“만두 하나 드릴테니까, 적당히 하고 나가시라고.”
“안된다고!”
이쯤 되자 객잔에 있던 손님들의 시선도 전부 여인에게 쏠렸다. 여인은 그러거나 말거나 주변을 돌아보며 뭐라 중얼거리더니, 서연을 바라봤다.
“차, 찾았다.”
여인은 점소이를 옆으로 밀쳐내고는, 서연이 있는 방향으로 성큼성큼 다가왔다. 그러고는 다짜고짜 엎드리더니 서연의 발을 붙잡고 늘어졌다.
“도, 도와. 도와주세요.”
“스승님.”
“가만히 있으렴.”
서연은 나서려는 화련을 막아세운 다음, 제 다리를 붙잡고 눈물을 쏟아내는 여인을 응시했다.
‘해하려는 의도는 없어보이는데.
몸 곳곳에 큼직한 매질과 채찍 자국이 나 있는 것으로 유추하건데, 기루에서 도망쳐 나온 여인 같았다.
아무리 소림이 떡하니 버티고 있다지만, 하남이 보통 넓은가. 막말로 남한의 두 배 가까이 넓은 것이 하남이다. 소림이 정파의 태산북두라 한들 그 넓은 땅을 혼자서 어떻게 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조금만 도시 외곽으로 나가도 분위기가 삭막해지는 것도 이 때문이었다.
대놓고 흑도질을 하는 놈들은 없지만, 불법과 합법 사이에 애매하게 걸친 이들은 많았다. 도박장을 만든다거나, 먼 곳에서 가난한 처자들을 살살 꼬셔서 홍등가에 집어넣는다거나…….
서연은 일단 여인을 일으켜 세운 다음, 자리에 앉혀 물부터 먹였다. 자신을 예화라 소개한 여인은 떨리는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회, 회화루에 동생이 잡혀 있어요. 친동생은 아니지만, 친동생처럼 아끼는 아이에요. 루주가 닷새 안에 여고수를 데려오면 살려주고, 안 그러면 온몸을 묶어서 돼지 먹이로 던져준댔어요. 이제 하루 남았는데, 소문을 들어서…….”
“다른 분들께 말은 해보셨습니까? 관이라던가.”
“안 돼요! 관은 안 돼요!”
예화는 안색이 새하얗게 질린 채로 서연을 붙잡았다. 그녀의 표정이 워낙 절절했기에, 서연은 더 캐묻는 대신 고개만 끄덕였다. 대충 상황이 어떻게 흘러갔는지 알 것 같았기 때문이다.
서연은 주변을 가볍게 훑었다. 다들 안 듣는 척하고 있을 뿐, 온 신경을 이쪽에 쏟고 있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리 사람이 많은 곳에서 할 만한 이야기는 아니었다.
“어, 손님. 계산하시려고요?”
당장 점소이부터가 아쉽다는 표정을 감추지 못하고 있었으니 말이다.
“일단 나가서 얘기할까요.”
아무리 생각해도 자신이 나설 만한 일은 아니었다. 소림이 눈을 부릅뜨고 있는 하남에서 활동할 있을 정도면 오죽 음험한 놈들일 터인데, 아무 생각 없이 갔다가 무슨 험한 꼴을 당할지 눈에 훤했다.
소림이 이런 일까지 받아줄 정도로 여유가 있는지는 모르겠으나, 일단 찾아가서 대화를 나눠보는 것이 우선인 것 같았다.
비룡각을 나서서 소림 방향으로 발걸음을 옮기려는데, 명백히 예화를 찾아온 듯한 사내들이 길을 막아섰다.
“예화야, 우리 왔다.”
복장을 맞춰 입은 왈패들은 서연을 슥 쳐다보다가 코웃음을 쳤다.
“예화야, 예화야. 이 멍청한 년아. 루주께서 닷새나 주셨는데, 설마 검도 안 차고 다니는 일반인을 고수라고 데려갈 생각이었냐?”
“이럴 거였으면, 그냥 네가 직접 고수 행세하지 그랬냐? 이건 뭐, 오죽 멍청해야지.”
왈패들은 서로 낄낄대다가, 침을 찍찍 뱉으며 다가왔다.
“그쪽도 뭣도 모르고 나선 듯 한데, 어디 하나 잘리기 싫으면 이만 돌아들 가쇼. 보아하니 동네 무관 몇 개 털었다고 나대는 것 같은데, 그러다가 객사해.”
“아니면 그쪽도 따라오던가. 딱 보니 창기로 일하면 돈도 잘 벌 것 같은데.”
왈패들은 히죽거리며 서연의 몸을 흝었다.
서연은 대답하는 대신 시선을 내려 화련을 응시했다.
놀랍게도 어린 제자는 분노하고 있었다. 스승이 나서지 않았기에 화를 삭이고 있을 뿐이다.
곧 서연은 화련과 시선을 마주했다.
“…….”
속이 뒤틀렸다.
“귀 먹으셨나? 얌전히 보내줄 때 그냥 가라니까?”
서연이 꿈쩍도 하지 않자, 왈패는 얼굴을 흉신악살처럼 일그러뜨린 채 저벅저벅 걸어왔다. 몸을 풀 때마다 근육 곳곳에서 뚜둑 소리가 울려퍼졌다.
왈패는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손바닥을 휘둘렀다. 뺨을 치려는 것이다.
동시에 서연의 눈이 번뜩였다.
‘머리.
서연은 무식하게 힘만 실린 공격을 바라보다가 가볍게 한 걸음 뒤로 물러나 피해냈다. 왈패의 얼굴에 당황함이 스쳤다.
“이 년이!”
움직임이 훤히 보였다. 서연은 날아드는 주먹을 잡아채서 그대로 꺾어버린 뒤, 사내가 그랬던 것처럼 손바닥을 휘둘렀다.
촤악!
뺨을 쳤는데 무슨 채찍에 맞은 것 같은 소리가 났다. 서연은 사내를 무릎꿇린 다음, 한 손으로 멱살을 쥐고 말 그대로 무지막지하게 패기 시작했다.
옆에 있던 다른 왈패들이 서연을 공격하기 위해 애를 썼으나, 서연에게 닿기에는 한참 부족했다.
서연은 미친 개새끼를 계도하는 심정으로 처음에 덤볐던 사내의 뺨을 계속 후려쳤다.
‘너희들은 짐승이다. 사람 말을 할 줄 아는 짐승.
사내는 빠져나가기 위해 발버둥쳤지만, 아무리 힘을 줘도 손아귀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촤악! 찰싹! 촤악! 찰싹!
거리가 순식간에 잠잠해지고, 서연을 막아세우려던 왈패들도 더는 덤벼들지 못하고 근처에 서서 마른침만 삼켰다.
사내의 얼굴은 이미 걸레짝처럼 변한 상태.
서연은 피떡이 되어버린 사내를 땅바닥에 내팽개친 다음, 싸늘한 시선으로 주변을 흝었다. 그렇게 격렬히 움직였는데도 서연의 호흡엔 변화가 없었다.
“어…….”
그 모습을 지켜보던 사내가 뒷걸음질 쳤다. 하지만 차마 도망치지는 못했다. 제 발에 걸려 넘어졌기 때문이다.
곧 왈패들을 말 그대로 개패듯이 패기 시작한 서연의 모습을 보며 화련은 괜히 심각해졌다. 스승님이 화난 모습을 처음 봤기 때문이다.
‘말 잘 들어야겠다. 화나시면 답도 없겠구나.
어쩌면 양 볼에 당과를 가득 채우고 볼이 터질 때까지 뺨만 때리실 수도 있겠다는 끔찍한 생각도 들었다.
“화련아.”
괜히 찔렸던 화련은 공손한 자세로 대답했다.
“예, 스승님. 말씀하세요.”
“물 한 잔만 가져다 주렴.”
객잔으로 달려가는 화련의 뒷모습을 바라보던 서연은 생각했다.
제자를 위해서라도, 앞으로 검 하나쯤은 차고 다녀야겠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