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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날, 서연은 곧장 각예대회가 열리는 광장으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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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디 오가는 인파로 북적이던 광장을 대회용으로 개조하여, 수백 명의 장인이 동시에 기량을 펼칠 수 있도록 너른 터를 마련한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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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 이른 시각이었음에도 이미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었다. 볼거리가 귀한 시대다. 금룡상단에서 대회를 연다 하니, 강호의 무인들은 물론 평범한 백성들까지 구름처럼 몰려와 구경하려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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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리에선 어느새 주전부리를 파는 행상들의 우렁찬 목소리가 울려 퍼지고, 한쪽에는 길게 늘어선 줄이 보였다. 줄을 선 이들은 하나같이 손에 세월의 흔적이 깊게 새겨진 상처들을 달고 있었는데, 하나같이 장인이라고 불리기에 부족함이 없는 분위기를 풍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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뛰어난 석공일수록 손에 부르튼 상처가 많다. 야장의 손이 굳은살로 뒤덮이는 것과 같은 이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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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연이 그 줄에 서자, 주변에 있던 사람들의 시선이 서연에게 달라붙었다. 누가 봐도 의구심으로 가득한 얼굴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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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빛만 보아도 무슨 말을 하려는지 넉넉히 짐작할 수 있을 정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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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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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나 줄을 잘못 섰다고 나서서 꾸짖는 이는 없었다. 서연의 허리춤에 매인 끌과 망치 같은 조각 도구들이 매달려 있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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곧 사람들은 서연에게서 관심을 털어냈다. 겉모습만 번지르르한 이들은 스스로 도태될 것이 자명했기 때문이었다. 서연도 그러리라 여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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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연은 화련의 손을 잡은 채로 접수대로 다가가 신상명세를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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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남성 태실산? 산골짜기에 사는 사람도 다 있군. 이름은 서연, 맞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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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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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옆에 있는 나무 조각 하나 들고 가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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접수원 옆에 놓인 책상에는 네모난 나무토막이 수북이 쌓여 있었다. 서연은 그중 하나를 집어 들고는 발걸음을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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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연은 손바닥만 한 나무토막을 만지작거리며 생각에 잠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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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나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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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에 꼽을 정도로 단단한 나무였다. 나뭇결 또한 거칠어 다루기가 매우 까다로운 재료에 속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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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걸로 거르려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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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 석공이라고 나무를 다루지 못하겠는가. 자고로 뛰어난 조각가는 재료를 가리지 않는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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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한 감람석을 아무에게나 내어줄 수는 없었을테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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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연은 곧 안내받은 천막 안으로 들어섰다. 시험을 주관하는 감독관이 서연을 책상 앞으로 이끌었다. 기이하게도 금룡상단의 상단원과 관아의 관리가 나란히 앉아 있었다. 감독관인 모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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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관이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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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다경 안에 나무토막을 원형으로 깎아내면 되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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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다경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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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벽한 구체일 필요는 없소. 우리가 세워둔 기준만 넘으면 합격이고, 그러지 못하면 불합격이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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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연은 안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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겉면까지 완벽하게 다듬지 않아도 된다는 뜻으로 해석했기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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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정도면 충분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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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험 주제를 듣고 적잖은 석공들이 절망했음을 몰랐기에 나올 수 있는 생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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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토막을 쥔 서연의 손이 힘차게 움직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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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료의 단단함은 서연에게 큰 의미가 없었다. 서연은 나무토막을 한 손으로 단단히 고정한 다음, 조각칼을 들고 거침없이 깎아내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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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빠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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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찌 여인이 저런 속도를 낸단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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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변에 서 있던 몇몇 사람들이 감탄사를 터뜨렸다. 그들 중에는 시험에서 난항을 겪고 있던 조각가들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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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슨 사과 껍질을 깎는 것 같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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옆에서 지켜보던 감독관들조차 감탄을 감추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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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다경이라는 촉박한 시간을 주었건만, 서연은 그 사분의 일도 되지 않는 시간에 온전한 구체의 형태를 만들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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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으로도 모자라 아교와 모래로 만든 사포로 겉면을 매끄럽게 다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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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만해도 좋소. 통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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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과라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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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준을 한참 초과했소. 애초에 겉면을 다듬는 것까지 상정하지 않았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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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관은 서연이 만들어낸 구체를 보고 혀를 내둘렀다. 이내 그것을 책상에 올려놓고 약간 힘을 주어 밀어냈다. 곧 구체는 구슬처럼 또르르 굴러갔다. 한 번쯤 걸리는 면이 있을 법도 했건만, 굴러가는데 막힘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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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시 스승이 있으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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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찬이었기에 서연은 웃으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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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관은 그것을 사문을 알리고 싶지 않다는 뜻으로 받아들였다. 설마 독학으로 이만한 경지에 오르리라고는 상상하지 못했던 탓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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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시험에서는 무려 절반이나 걸러졌다. 다행히 두 번째 시험은 없었다. 금룡상단에서 준비한 감람석의 수보다 남은 장인의 수가 적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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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관문을 통과한 석공들 중, 평소 친분이 있는 이들은 이동하는 틈을 타 삼삼오오 모여 이야기를 나누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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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아하니 섬세함보다는 속도를 중시하는 듯하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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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래도 노사나불을 하루빨리 수리해야 하니 그러했겠지. 괜히 감람석으로 주제를 바꿨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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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럿이서라면 모를까, 혼자서라면 몇 달은 족히 걸릴 작업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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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방된 너른 공간에는 사람 수에 맞춰 감람석 덩어리들이 놓여 있었다. 서연의 상체보다 조금 컸는데, 그 색깔과 질감을 보아하니 하나같이 최상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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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련은 인파의 접근을 막기 위해 쳐둔 울타리 바깥에서 작은 손을 흔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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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힘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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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연은 픽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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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어온 사람부터 맨 앞줄에 서는 방식이었는데, 서연의 자리는 공교롭게도 정가운데였다. 다른 석공들이 온통 진한 색의 옷을 입고 있어 그런지, 흑돌 사이에 놓인 백돌처럼 유독 눈에 띄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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곧 강단 앞에 후덕한 풍채의 노인이 나타났다. 금룡상단주였다. 거대한 상단을 이끄는 자는 아무나 되는 것이 아닌지, 성품 좋아 보이는 얼굴 너머로도 이유 모를 위압감이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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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석공들을 예리한 시선으로 살핀 다음 입을 열었다. 무공을 익힌 모양인지, 작게 말했음에도 그 목소리가 좌중에 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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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장 시작하시면 되겠소. 숙식은 금룡상단에서 책임지겠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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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석공 하나가 손을 들어 외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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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간은 어떻게 되는 겁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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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룡상단주는 그럴 질문이 나올 것을 예상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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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간 제한은 없소. 주제도 상관없소. 다만, 속(速), 정(精), 의(意) 세 분야에 비중을 두어 판단할 것이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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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각 속도와 정교함 그리고 조화로움을 이야기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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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순히 빠르게만 만들어 내면 실격이오. 무릇 작품으로 인정받을 만할 수준이어야 하외다. 그렇다고 너무 오래 걸려도 좋은 점수를 받기는 힘들 것이오. 다들 지역에서 내로라하는 장인들일테니 이 말을 이해했을 것이오. 그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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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룡상단주는 그렇게 말하고는 단상 아래로 내려왔다. 구경꾼들이 있는 곳이 아니라, 석공들이 있는 방향으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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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앞에서 직접 보고 판단하겠다는 뜻으로 여겨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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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하에서 내로라하는 상단주의 안목이 손꼽힐 정도로 뛰어날 것은 당연한 이치. 그것에 딴지를 거는 석공들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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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룡상단주는 여유로운 걸음으로 앞줄부터 차례로 흝어나갔다. 본래 첫날에는 이렇다할 볼거리가 없다. 전체적인 그림을 그려야 하기 때문이다. 허나 속도를 평가 기준으로 내세운 탓에, 다짜고짜 끌부터 치켜드는 이들도 적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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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공 하나를 쳐다보던 금룡상단주가 속으로 혀를 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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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쪽은 볼 것도 없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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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도 감람석을 다뤄본 경험이 없던 모양이다. 단단하다고 하여 너무 강하게 힘을 줘버리면 덩어리째로 떨어져 나가는 것이 바로 감람석이었다. 경험이 없으면 제대로 다루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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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렇게 실수할 바에는 차라리 한 걸음 물러나서 고뇌하는 편이 현명하다고 할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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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룡상단주는 돌아다니면서 제 수하들에게 은밀히 전음을 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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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번, 5점 감점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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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1번도 5점 감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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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8번도 5점 감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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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룡상단주는 가차없이 평가했다. 노사나불을 새로 만들어야 하는 중차대한 일이다. 실력이 뒤떨어지는 자에게 맡길 바에는 차라리 머리가 부서진 채로 내버려두는 편이 나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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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따금 금룡상단주는 걸음을 멈췄는데, 그때마다 구경꾼들도 해당 장인의 작품을 유심히 지켜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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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듬는 속도가 거침이 없으면서도 두드리는 힘이 일정하다. 뛰어난 장인은 정을 두드릴 때 소리부터 다르다. 경지에 올랐다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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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3번은 3점 가산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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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 있는 자리가 곧 번호였다. 금룡상단주는 이따금 고개를 끄덕이기도, 때로는 옅게 감탄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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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다가 중간 쯤에서 걸음을 멈춰 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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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곳에 한 여인이 서 있었다. 각예대회에 참가한 유일한 여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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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셋째가 말했던 여 석공이 저자였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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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인은 깊이 고뇌하는 모양인지, 감람석 덩어리를 뚫어져라 응시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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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이 복잡해질 만도 하지. 애초에 여인의 몸으로는 다루기 힘든 재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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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야장이 대부분 남성이겠는가. 힘이 많이 들기 때문이다. 석공도 마찬가지다. 여인이 하기엔 벅찬 작업이 수두룩했다. 단단한 감람석이라면 더 말할 것도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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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윽고 서연이 정과 망치를 치켜들었다. 그리고는 일말의 망설임 없이 정질을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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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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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치 옥을 두드리는 듯 청량한 소리가 울렸다. 순간 금룡상단주의 눈에 이채가 서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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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석공들을 마저 살피려던 금룡상단주는 고개를 돌려 다시 서연을 응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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곧 금룡상단주는 서연이 무얼 하려는지 이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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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조(丸彫)로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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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방에서 감상할 수 있도록 조각하는 기법을 말한다. 입체감이 온전하지만, 모든 면을 온전히 깎아내야 하기에 한 면만 깎아내는 일반적인 방법보다 몇 배는 까다로운 기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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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디 조각은 부산스럽고 번잡한 작업이다. 당장 주변에서도 정(釘) 울리는 소리에 귀를 막는 행인들이 적지 않은 것만 보아도 알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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똑, 똑, 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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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나 저 여인은 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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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란스럽지 않고 청아했다. 돌이 아니라 옥을 부딪치는 것 같았다. 그런데도 그 소리가 작지 않아, 듣기 좋은 소리가 사방으로 울려 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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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룡상단주는 어느새 작품에 몰입한 채로 서연을 바라보았다. 저도 모르는 사이에 처음보다 몇 걸음 가까이 다가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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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람석 덩어리의 형상은 조금씩 바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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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에는 그저 거대한 덩어리였다. 도대체 얼마나 큰 그림을 그리고 있는지 가늠조차 되지 않을 정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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곧 하나의 덩어리가 세 개의 산봉우리 같은 모양으로 변모했다. 처음에는 대자연을 그려내려나 했다. 봉우리를 먼저 만들고, 거기에 배경 그림을 양각(陽刻)할 때 일반적으로 그러했기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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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다 금룡상단주는 자신이 완전히 틀렸음을 깨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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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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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우리를 만드는 것이 아니었다. 비록 지금은 희미했으나, 봉우리 하단에서부터 가부좌를 튼 무릎과 다리의 형태가 차차 드러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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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신삼세불(三身三世佛)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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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가지 몸을 지닌 세 분의 부처라는 뜻. 굳이 봉우리를 세 개씩이나 만든 것도 이 때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처음부터 봉우리마다 부처를 새기려 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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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룡상단주는 숨죽인 채 감람석을 응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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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연의 손이 움직일 때마다 봉우리 위에 옷이 그려진다. 가늘게 물결치고 주름진 옷이다. 어찌나 정교한지, 누가 실제 옷을 입혀놓았다는 착각이 들 정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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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개를 쭉 빼고 지켜보던 금룡상단주는 감탄을 금치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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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찌 이렇게 짧은 시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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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생각하며 고개를 치켜들었는데, 어느새 세상이 까맣게 물들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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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룡상단주는 저도 모르게 입을 뻐끔거렸다. 등에 흥건한 식은땀과 시큰거리는 무릎이 몇 시진 동안이나 몰입하고 있었음을 알려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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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개를 돌리자 수많은 상단원들이 자신을 염려스러운 듯 쳐다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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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단주님? 괜찮으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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걱정하는 듯한 어투로 묻는 상단원을 보고, 금룡상단주는 터져 나오려는 헛웃음을 가까스로 틀어막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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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얼마나 이러고 있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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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섯 시진이 조금 넘었습니다. 아무리 여쭈어도 대답이 없으셔서, 선 채로 정신을 잃으신 줄 알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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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담하는 표정이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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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룡상단주는 헛웃음을 짓다가 다시 서연이 있는 방향으로 고개를 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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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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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끄러웠던 시험장에서 오직 서연의 정질만이 청아하게 울려퍼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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