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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양은 드넓은 중원에서 북경과 장안 다음으로 큰 도시다. 수백만이 넘는 인파가 쏘다니는 만큼, 인간군상도 다양했다. 조각가 또한 많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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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나 장안의 자랑이자 불심의 정수가 깃든 용문석굴 노사나불의 머리를 다시 빚어낼 만한 조각가가 있느냐 물으면, 그 누구도 선뜻 답할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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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사나불의 높이는 족히 다섯 장을 훌쩍 넘는다. 건장한 사내 여덟을 수직으로 세워도 그 머리 근처에도 미치지 못할 지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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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구나 용문석굴의 재료는 딱딱하고 촘촘한 감람석이라, 칼날 한 번 대기도 쉽지 않은 강도를 지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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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부는 어둠에 잠겨 횃불에 의지해야 했고, 천장 근방은 습기로 가득하여 정과 망치를 내리치기조차 여의치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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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골치 아픈 문제는, 사내의 몸통만 한 감람석 덩어리를 깎아내어 그 높은 곳까지 올려야 한다는 것이었다. 만약 그렇게 땀 흘려 올렸는데도 아귀가 맞지 않는다면, 그야말로 허송세월이 될 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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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치 아픈 일이 생겼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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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게 말일세. 당장 작업을 시작해도 반 년은 걸릴 듯 하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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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양에서 가장 드높고 아름답다는 기루였다. 금룡상단주와 낙양을 관장하는 부윤(府尹)이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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꼼꼼하고 날카롭게 생긴 노인이 고개를 가로저었다. 낙양 부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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흰머리가 히끗히끗 나 있었는데, 문사임에도 풍기는 분위기가 여느 장수 못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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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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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네 상단에서 내일모레 각예대회를 연다고 하지 않았나? 아예 불상을 만들어 보게 하는 건 어떤가? 노사나불을 수리할 인재도 알아볼 겸 말일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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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한다면 그리 하겠지만, 목공(木工)이라면 모를까, 노사나불을 깎아낼 수준의 석공이 낙양에 나타났다면 내가 진작에 알았을걸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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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룡상단주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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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문석굴에서 일어난 일련의 사건은 이미 전해들은 참이었다. 셋째의 수하들이 그곳에 머물고 있었기에 누구보다 빨리 소식을 전해들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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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 하루도 되지 않았는데 온 낙양에 소문이 퍼져나갔다. 심지어 황제 폐하의 덕이 부족하여 이런 변고가 생겼다는 망언을 퍼뜨리는 우민들까지 생겨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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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히 추포하여 쉬쉬하는 분위기가 되었으나, 백성들의 민심이 흔들리고 있다는 사실만큼은 분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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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양은 금룡상단의 뿌리가 되는 곳이자, 하남의 심장과도 같았다. 이곳의 민심이 흔들린다면 바로 옆 섬서에도 그 여파가 미칠 것이고, 북경에 닿는 것도 순식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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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들 집단으로 활동하는지라 이렇다 할 석공이 없네. 개인의 이름이 부각된 경우는 드물어. 기껏해야 초대 황릉을 만든 석공들의 제자들 정도나 될까. 허나 하나같이 북경에서 떠날 생각이 없으니 어찌할 도리가 없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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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가들이 수도에 몰리는 것은 당연한 이치다. 귀족과 부유한 자들이 많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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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낙양도 부유하기로는 다섯 손가락 안에 들었지만, 북경과 비교할 수는 없었다. 당연히 석공들의 수준 또한 뒤떨어질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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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상께 주청을 올리면 어찌 해결할 수도 있겠으나, 그리했다간 내 무능만 드러낼 뿐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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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윤은 답지 않게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단순히 불상 하나 무너진 것이 아니었다. 민심이 무너질 판이었다. 북경에서 오해라도 한다면, 목숨이 위태로울 수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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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선과 직접적으로 맞닿아 있는 운남과 흑룡강, 그리고 청해의 관리들은 지금도 심심찮게 목이 잘려나가고 있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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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은 대도시 낙양이다. 낙양의 민심을 잡지 못했다간 말 그대로 십족이 멸해져도 이상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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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한 기색을 눈치챘는지, 금룡상단주가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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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염려 마시게. 진작 새외로 사람을 보내두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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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외라고 다를까? 중원의 석공보다 뛰어날 것 같지는 않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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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와 같은 인간이 아니라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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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윤이 눈을 부릅떴다. 금룡상단주는 장난기 어린 얼굴로 친우를 쳐다보다가 덧붙여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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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가문과 교류하는 청목족이시네. 증조부 때부터 연이 닿아 있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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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목족? 그자들이 조각도 할 줄 알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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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적이진 않지. 허나 그분은 청목족 사이에서도 별종이셔서, 아주 오랜 세월 조각을 해오셨다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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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룡상단주는 그렇게 말하며 창 밖을 응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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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까지는 풍년이었다. 무려 수십 년 동안 이어진 풍년이었다. 전쟁이 이어지고 있음에도 민심이 유지되고 있는 것은 전부 그 덕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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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나 올해는 작년보다 비가 덜 내렸다. 작황이 덜할 것은 분명했다. 흉년은 아니겠으나, 민심이 지금보다 나빠질 것은 명백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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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윤이 천천히 입술을 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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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외에서 낙양까지 오는데 빨라도 달포는 걸릴텐데. 너무 늦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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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후의 방안일세. 그 안에 답을 찾는 것이 자네에게도 내게도 좋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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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십 년을 함께해온 지기라 그런지, 눈빛만 봐도 서로가 뭘 말하려는지 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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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룡상단주가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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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예대회는 내일로 앞당기겠네. 감람석도 오늘 안에 전부 구해놓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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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맙네. 비용은 이쪽에서 대겠네. 사람들이 많이 보도록 방도 널리 퍼뜨려 놓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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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 만에 수백 명이 쓸 상품의 감람석을 구하고, 낙양 모든 사람들이 알도록 곳곳에 벽보를 붙이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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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나 이 둘에게는 가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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곧 고개를 끄덕인 노인들은 각자 할 일을 끝내기 위해 밖으로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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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예대회가 내일로 앞당겨졌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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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진송이었다. 그는 아침에 그랬던 것처럼 소식을 전한다는 핑계로 서연의 처소를 찾았다. 사실 방문이라 표현하기도 애매한 것이, 애초에 서연이 묵는 곳이 금진송의 별장이었다. 집주인이 제 집을 들락날락거리는 것을 두고 어찌 왈가왈부하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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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무가내로 들어온 것도 아니요, 온갖 예를 갖추며 들어왔다. 또 손에는 용정차가 담긴 찻주전자도 들려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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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잣집 자제, 그것도 집주인이 흙바닥에서 찻주전자 덜렁 들고 있는 꼴을 보고도 가만있으면 사람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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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문석굴에 다녀온 서연이 금진송과 다시 마주 앉아 차를 들이키게 된 경위는 그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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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탁하셨던 민초들은 전부 치료를 마쳤습니다. 저희 상단이 운영하는 의원에서 책임지고 있으니, 별 탈 없이 완치될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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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의를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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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연이 고개를 숙였다. 진심이었다. 아무런 흑심 없이 선뜻 제 돈을 내어주는 사람에게는 얼마든지 고개를 숙일 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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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 어색한 침묵이 흘렀다. 용정차 들이키는 소리만 이따금 울려퍼질 뿐이었다. 어색함을 참지 못한 금진송이 먼저 입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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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내일 각예대회에서 감람석을 사용할 예정이랍니다. 아, 다른 분들에게도 알려진 사실이니 곡해는 마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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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람석 말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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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조각은 잘 모르지만, 감람석이 다루기 힘든 재료라는 건 압니다. 마침 창고에 감람석이 있는데, 한 번 사용해 보시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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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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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연의 상기된 목소리에 금진송은 제가 기분이 더 좋아졌다. 아버지께 졸라대어 감람석 덩어리를 얻어오기를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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곧 서연은 창고로 이동했다. 창고에는 몸통보다 조금 작은 감람석 덩어리가 너덧 개 놓여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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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연은 용문석굴에서 보았던 노사나불을 떠올렸다. 관아에서 다급히 달려와 반쯤 쫓겨나다시피 나와야 했지만, 그때 느꼈던 감상은 아직도 오롯이 지니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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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사나불을 새로 깎아낼 사람을 구하려는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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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막을 알지는 못하지만, 각예대회를 앞당긴 이유를 대강 짐작할 수 있었다. 본래 자유였던 재료를 굳이 감람석으로 바꾸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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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왕이면 내가 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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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연 또한 천성이 조각가였다. 비록 세가 작은 상인들에게만 조각을 팔았을지언정, 제 실력이 어디서 꿀리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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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하의 내로라하는 조각가들과 이번 기회에 실력을 겨루어 보고 싶다는 생각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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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써도 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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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초에 그리하시라고 가져왔습니다. 일전 유람선에서 있었던 일에 대한 사과라 봐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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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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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연은 그렇게 말하며 금진송의 손을 덥썩 잡았다. 악수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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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나 금진송은 갑작스러운 상황에 당황하여, 얼굴이 벌게진 채로 어버버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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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 손을 잡아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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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죽했으면 현기증이 느껴질 정도였다. 순간 어지러움을 참지 못하고 비틀거릴 정도였으니 말이다. 뒤에 서 있던 교교가 잡아주지 않았다면 볼썽사나운 꼴을 보였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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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진송은 가까스로 호흡을 다듬고 말했다. 얼굴은 그새 벌게져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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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이만 가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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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진송은 다급히 빠져나갔다. 교교는 그런 금진송과, 서연을 번갈아 쳐다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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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서운 여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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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보다 배분이 몇 개는 아래일 사내를 아무렇지 않게 꼬셔대다니. 저 정도 철면피여야 중원 무림에서 여고수로 살아갈 수 있는 것인지 두려움마저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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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찍 은퇴하기를 잘한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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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도 무림에 오래 몸을 담았더라면 저런 괴물이 되었을까? 모르겠다. 알고 싶지도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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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교는 몸을 얕게 떨다가, 넋이 나간 금진송을 이끌고 밖으로 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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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련님은 내가 지켜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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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리 은인이라지만, 이건 좀 아닌 듯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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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연은 손재주가 빠른 편이었다. 일전 남궁 남매에게 목검을 만들어줄 때도 일 다경도 채 걸리지 않았으니 말이다. 허나 재료가 석재라면, 그것도 단단한 편에 속하는 감람석이라면 이야기가 조금 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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홀로 남은 서연은 눈앞에 놓인 감람석의 표면을 만지작거리며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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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단하다. 이 정도면 며칠은 걸릴 것 같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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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이조차도 다른 석공이 들었다면 헛소리 하지 말라고 버럭 소리 질렀을 것이다. 본래 석재 조각은 짧게는 몇 주, 길게는 년 단위로 걸리는 작업이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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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록 각예대회에서 사용할 감람석은 크기가 작아 그보다는 덜 걸리겠지만, 그래도 최소 몇 주는 걸린다고 봐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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괜히 금룡상단주와 부윤이 하루라도 빨리 각예대회를 시작하려 했던 것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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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서연의 용력 자체가 남달랐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애초에 어느 무림인이 시간만 오래 걸리는 조각을 취미로 할까. 분재 다듬기라면 모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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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연은 품 속에서 망치와 정(鑿)을 꺼냈다. 머릿속으로 얼개를 대충 그린 다음, 위치를 어림잡아 망치를 내리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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곧 서연은 순식간에 감람석을 둥그런 모양으로 깎아냈다. 뒤에서 공손한 자세로 지켜보던 화련은 그 모습을 보며 감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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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승님은 어떻게 그렇게 빠르게 하시는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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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 이리 와보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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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연은 품에서 작은 망치와 정을 꺼냈다. 예전에 화련에게 주려 만들어 놓았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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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연은 정과 망치를 집어든 화련의 양손을 잡고는, 힘을 조절하여 감람석을 툭툭 내리쳤다. 몇 번 두드리자 딱딱한 감람석 한편이 뚝 하고 떨어졌다. 신기라고 해도 부족함이 없는 힘조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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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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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련은 순수하게 감탄했다. 제 손이 이렇게 움직일 수도 있구나 싶었다. 스승님이 제 양 팔을 직접 움직이니 이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알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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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술이랑 똑같아. 어쩌면 더 어려울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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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술은 검로가 틀려도 다시 연습하면 그만이다. 허나 조각은 다르다. 한 번 실수하면 돌이킬 수 없다. 실력은 물론이고, 모든 움직임에 확신을 담아야 한다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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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옆에 낸 모양을 그대로 따라해보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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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연은 한 걸음 뒤로 물러났다. 화련은 제 스승과, 감람석을 번갈아 쳐다보다가 약간 긴장한 듯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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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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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괜찮으니 계속 하렴. 실수할 수도 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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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연은 끙끙대는 화련의 뒷모습을 지켜보며 옅게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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끙끙거리면서도 어떻게든 해보려는 모습이 참으로 기특했다. 화련에게는 확실히 재능이 있었다. 아무리 자신이 까다로운 부분을 전부 쳐냈다지만, 어설프게나마 그 맥을 따라가고 있었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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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속 틈틈이 연습하고 있었나 보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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굳은살이 박힌 손만 보아도 쉬이 짐작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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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 조각이 쉬운 일인가. 막대한 힘이 들고, 자칫했다간 손을 다치기 일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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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더 잘난 사람이 되야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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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만한 재능의 아이를 가르치는데, 어디 스승이 보통 사람이어서야 되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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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연은 내일 있을 각예대회에서 이기기로 마음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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곧 스승도 제자 옆에 나란히 서서 조각을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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