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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12-14 21:31:57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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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양은 드넓은 중원에서 북경과 장안 다음으로 큰 도시다. 수백만이 넘는 인파가 쏘다니는 만큼, 인간군상도 다양했다. 조각가 또한 많았다.

허나 장안의 자랑이자 불심의 정수가 깃든 용문석굴 노사나불의 머리를 다시 빚어낼 만한 조각가가 있느냐 물으면, 그 누구도 선뜻 답할 수 없었다.

노사나불의 높이는 족히 다섯 장을 훌쩍 넘는다. 건장한 사내 여덟을 수직으로 세워도 그 머리 근처에도 미치지 못할 지경이다.

더구나 용문석굴의 재료는 딱딱하고 촘촘한 감람석이라, 칼날 한 번 대기도 쉽지 않은 강도를 지녔다.

내부는 어둠에 잠겨 횃불에 의지해야 했고, 천장 근방은 습기로 가득하여 정과 망치를 내리치기조차 여의치 않았다.

가장 골치 아픈 문제는, 사내의 몸통만 한 감람석 덩어리를 깎아내어 그 높은 곳까지 올려야 한다는 것이었다. 만약 그렇게 땀 흘려 올렸는데도 아귀가 맞지 않는다면, 그야말로 허송세월이 될 터.

“골치 아픈 일이 생겼군.”

“그러게 말일세. 당장 작업을 시작해도 반 년은 걸릴 듯 하니.”

낙양에서 가장 드높고 아름답다는 기루였다. 금룡상단주와 낙양을 관장하는 부윤(府尹)이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꼼꼼하고 날카롭게 생긴 노인이 고개를 가로저었다. 낙양 부윤이었다.

흰머리가 히끗히끗 나 있었는데, 문사임에도 풍기는 분위기가 여느 장수 못지 않았다.

그가 말했다.

“자네 상단에서 내일모레 각예대회를 연다고 하지 않았나? 아예 불상을 만들어 보게 하는 건 어떤가? 노사나불을 수리할 인재도 알아볼 겸 말일세.”

“원한다면 그리 하겠지만, 목공(木工)이라면 모를까, 노사나불을 깎아낼 수준의 석공이 낙양에 나타났다면 내가 진작에 알았을걸세.”

금룡상단주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용문석굴에서 일어난 일련의 사건은 이미 전해들은 참이었다. 셋째의 수하들이 그곳에 머물고 있었기에 누구보다 빨리 소식을 전해들을 수 있었다.

채 하루도 되지 않았는데 온 낙양에 소문이 퍼져나갔다. 심지어 황제 폐하의 덕이 부족하여 이런 변고가 생겼다는 망언을 퍼뜨리는 우민들까지 생겨났다.

엄히 추포하여 쉬쉬하는 분위기가 되었으나, 백성들의 민심이 흔들리고 있다는 사실만큼은 분명했다.

낙양은 금룡상단의 뿌리가 되는 곳이자, 하남의 심장과도 같았다. 이곳의 민심이 흔들린다면 바로 옆 섬서에도 그 여파가 미칠 것이고, 북경에 닿는 것도 순식간이었다.

“다들 집단으로 활동하는지라 이렇다 할 석공이 없네. 개인의 이름이 부각된 경우는 드물어. 기껏해야 초대 황릉을 만든 석공들의 제자들 정도나 될까. 허나 하나같이 북경에서 떠날 생각이 없으니 어찌할 도리가 없네.”

예술가들이 수도에 몰리는 것은 당연한 이치다. 귀족과 부유한 자들이 많기 때문이다.

물론 낙양도 부유하기로는 다섯 손가락 안에 들었지만, 북경과 비교할 수는 없었다. 당연히 석공들의 수준 또한 뒤떨어질 수밖에 없었다.

“황상께 주청을 올리면 어찌 해결할 수도 있겠으나, 그리했다간 내 무능만 드러낼 뿐이니…….”

부윤은 답지 않게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단순히 불상 하나 무너진 것이 아니었다. 민심이 무너질 판이었다. 북경에서 오해라도 한다면, 목숨이 위태로울 수도 있었다.

전선과 직접적으로 맞닿아 있는 운남과 흑룡강, 그리고 청해의 관리들은 지금도 심심찮게 목이 잘려나가고 있지 않은가.

이곳은 대도시 낙양이다. 낙양의 민심을 잡지 못했다간 말 그대로 십족이 멸해져도 이상하지 않았다.

그러한 기색을 눈치챘는지, 금룡상단주가 말했다.

“너무 염려 마시게. 진작 새외로 사람을 보내두었네.”

“새외라고 다를까? 중원의 석공보다 뛰어날 것 같지는 않은데.”

“우리와 같은 인간이 아니라네.”

부윤이 눈을 부릅떴다. 금룡상단주는 장난기 어린 얼굴로 친우를 쳐다보다가 덧붙여 말했다.

“우리 가문과 교류하는 청목족이시네. 증조부 때부터 연이 닿아 있었지.”

“청목족? 그자들이 조각도 할 줄 알았나?”

“일반적이진 않지. 허나 그분은 청목족 사이에서도 별종이셔서, 아주 오랜 세월 조각을 해오셨다네.”

금룡상단주는 그렇게 말하며 창 밖을 응시했다.

작년까지는 풍년이었다. 무려 수십 년 동안 이어진 풍년이었다. 전쟁이 이어지고 있음에도 민심이 유지되고 있는 것은 전부 그 덕분이었다.

허나 올해는 작년보다 비가 덜 내렸다. 작황이 덜할 것은 분명했다. 흉년은 아니겠으나, 민심이 지금보다 나빠질 것은 명백했다.

부윤이 천천히 입술을 뗐다.

“새외에서 낙양까지 오는데 빨라도 달포는 걸릴텐데. 너무 늦어.”

“최후의 방안일세. 그 안에 답을 찾는 것이 자네에게도 내게도 좋겠지.”

수십 년을 함께해온 지기라 그런지, 눈빛만 봐도 서로가 뭘 말하려는지 알았다.

금룡상단주가 말했다.

“각예대회는 내일로 앞당기겠네. 감람석도 오늘 안에 전부 구해놓지.”

“고맙네. 비용은 이쪽에서 대겠네. 사람들이 많이 보도록 방도 널리 퍼뜨려 놓지.”

하루 만에 수백 명이 쓸 상품의 감람석을 구하고, 낙양 모든 사람들이 알도록 곳곳에 벽보를 붙이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었다.

허나 이 둘에게는 가능했다.

곧 고개를 끄덕인 노인들은 각자 할 일을 끝내기 위해 밖으로 나섰다.


“각예대회가 내일로 앞당겨졌다고 합니다.”

금진송이었다. 그는 아침에 그랬던 것처럼 소식을 전한다는 핑계로 서연의 처소를 찾았다. 사실 방문이라 표현하기도 애매한 것이, 애초에 서연이 묵는 곳이 금진송의 별장이었다. 집주인이 제 집을 들락날락거리는 것을 두고 어찌 왈가왈부하겠는가.

막무가내로 들어온 것도 아니요, 온갖 예를 갖추며 들어왔다. 또 손에는 용정차가 담긴 찻주전자도 들려 있었다.

부잣집 자제, 그것도 집주인이 흙바닥에서 찻주전자 덜렁 들고 있는 꼴을 보고도 가만있으면 사람이 아니다.

용문석굴에 다녀온 서연이 금진송과 다시 마주 앉아 차를 들이키게 된 경위는 그러했다.

“부탁하셨던 민초들은 전부 치료를 마쳤습니다. 저희 상단이 운영하는 의원에서 책임지고 있으니, 별 탈 없이 완치될 겁니다.”

“편의를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서연이 고개를 숙였다. 진심이었다. 아무런 흑심 없이 선뜻 제 돈을 내어주는 사람에게는 얼마든지 고개를 숙일 만 했다.

잠시 어색한 침묵이 흘렀다. 용정차 들이키는 소리만 이따금 울려퍼질 뿐이었다. 어색함을 참지 못한 금진송이 먼저 입을 열었다.

“사실, 내일 각예대회에서 감람석을 사용할 예정이랍니다. 아, 다른 분들에게도 알려진 사실이니 곡해는 마십시오.”

“감람석 말입니까?”

“제가 조각은 잘 모르지만, 감람석이 다루기 힘든 재료라는 건 압니다. 마침 창고에 감람석이 있는데, 한 번 사용해 보시겠습니까?”

“정말입니까?”

서연의 상기된 목소리에 금진송은 제가 기분이 더 좋아졌다. 아버지께 졸라대어 감람석 덩어리를 얻어오기를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곧 서연은 창고로 이동했다. 창고에는 몸통보다 조금 작은 감람석 덩어리가 너덧 개 놓여 있었다.

서연은 용문석굴에서 보았던 노사나불을 떠올렸다. 관아에서 다급히 달려와 반쯤 쫓겨나다시피 나와야 했지만, 그때 느꼈던 감상은 아직도 오롯이 지니고 있었다.

‘노사나불을 새로 깎아낼 사람을 구하려는거야.

내막을 알지는 못하지만, 각예대회를 앞당긴 이유를 대강 짐작할 수 있었다. 본래 자유였던 재료를 굳이 감람석으로 바꾸었겠는가.

‘기왕이면 내가 하고 싶다.

서연 또한 천성이 조각가였다. 비록 세가 작은 상인들에게만 조각을 팔았을지언정, 제 실력이 어디서 꿀리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천하의 내로라하는 조각가들과 이번 기회에 실력을 겨루어 보고 싶다는 생각도 있었다.

“제가 써도 될까요?”

“애초에 그리하시라고 가져왔습니다. 일전 유람선에서 있었던 일에 대한 사과라 봐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정말로 감사합니다.”

서연은 그렇게 말하며 금진송의 손을 덥썩 잡았다. 악수한 것이다.

허나 금진송은 갑작스러운 상황에 당황하여, 얼굴이 벌게진 채로 어버버거렸다.

‘소, 손을 잡아버렸다.

오죽했으면 현기증이 느껴질 정도였다. 순간 어지러움을 참지 못하고 비틀거릴 정도였으니 말이다. 뒤에 서 있던 교교가 잡아주지 않았다면 볼썽사나운 꼴을 보였을 것이다.

금진송은 가까스로 호흡을 다듬고 말했다. 얼굴은 그새 벌게져 있었다.

“이, 이만 가보겠습니다.”

금진송은 다급히 빠져나갔다. 교교는 그런 금진송과, 서연을 번갈아 쳐다보았다.

‘무서운 여인이다.

저보다 배분이 몇 개는 아래일 사내를 아무렇지 않게 꼬셔대다니. 저 정도 철면피여야 중원 무림에서 여고수로 살아갈 수 있는 것인지 두려움마저 들었다.

‘일찍 은퇴하기를 잘한건가.

자신도 무림에 오래 몸을 담았더라면 저런 괴물이 되었을까? 모르겠다. 알고 싶지도 않았다.

교교는 몸을 얕게 떨다가, 넋이 나간 금진송을 이끌고 밖으로 나갔다.

‘도련님은 내가 지켜야 한다.

아무리 은인이라지만, 이건 좀 아닌 듯 싶었다.


서연은 손재주가 빠른 편이었다. 일전 남궁 남매에게 목검을 만들어줄 때도 일 다경도 채 걸리지 않았으니 말이다. 허나 재료가 석재라면, 그것도 단단한 편에 속하는 감람석이라면 이야기가 조금 달라졌다.

홀로 남은 서연은 눈앞에 놓인 감람석의 표면을 만지작거리며 생각했다.

‘단단하다. 이 정도면 며칠은 걸릴 것 같은데.

물론 이조차도 다른 석공이 들었다면 헛소리 하지 말라고 버럭 소리 질렀을 것이다. 본래 석재 조각은 짧게는 몇 주, 길게는 년 단위로 걸리는 작업이었기 때문이다.

비록 각예대회에서 사용할 감람석은 크기가 작아 그보다는 덜 걸리겠지만, 그래도 최소 몇 주는 걸린다고 봐야 했다.

괜히 금룡상단주와 부윤이 하루라도 빨리 각예대회를 시작하려 했던 것이 아니다.

물론 서연의 용력 자체가 남달랐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애초에 어느 무림인이 시간만 오래 걸리는 조각을 취미로 할까. 분재 다듬기라면 모를까.

서연은 품 속에서 망치와 정(鑿)을 꺼냈다. 머릿속으로 얼개를 대충 그린 다음, 위치를 어림잡아 망치를 내리쳤다.

곧 서연은 순식간에 감람석을 둥그런 모양으로 깎아냈다. 뒤에서 공손한 자세로 지켜보던 화련은 그 모습을 보며 감탄했다.

“스승님은 어떻게 그렇게 빠르게 하시는 거예요?”

“음, 이리 와보렴.”

서연은 품에서 작은 망치와 정을 꺼냈다. 예전에 화련에게 주려 만들어 놓았던 것이다.

서연은 정과 망치를 집어든 화련의 양손을 잡고는, 힘을 조절하여 감람석을 툭툭 내리쳤다. 몇 번 두드리자 딱딱한 감람석 한편이 뚝 하고 떨어졌다. 신기라고 해도 부족함이 없는 힘조절이었다.

‘와.

화련은 순수하게 감탄했다. 제 손이 이렇게 움직일 수도 있구나 싶었다. 스승님이 제 양 팔을 직접 움직이니 이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알 것 같았다.

‘검술이랑 똑같아. 어쩌면 더 어려울수도.

검술은 검로가 틀려도 다시 연습하면 그만이다. 허나 조각은 다르다. 한 번 실수하면 돌이킬 수 없다. 실력은 물론이고, 모든 움직임에 확신을 담아야 한다는 뜻이다.

“내가 옆에 낸 모양을 그대로 따라해보렴.”

서연은 한 걸음 뒤로 물러났다. 화련은 제 스승과, 감람석을 번갈아 쳐다보다가 약간 긴장한 듯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윽.”

“괜찮으니 계속 하렴. 실수할 수도 있지.”

서연은 끙끙대는 화련의 뒷모습을 지켜보며 옅게 웃었다.

끙끙거리면서도 어떻게든 해보려는 모습이 참으로 기특했다. 화련에게는 확실히 재능이 있었다. 아무리 자신이 까다로운 부분을 전부 쳐냈다지만, 어설프게나마 그 맥을 따라가고 있었으니 말이다.

‘계속 틈틈이 연습하고 있었나 보구나.

굳은살이 박힌 손만 보아도 쉬이 짐작할 수 있었다.

어디 조각이 쉬운 일인가. 막대한 힘이 들고, 자칫했다간 손을 다치기 일쑤였다.

‘나도 더 잘난 사람이 되야겠지.

저만한 재능의 아이를 가르치는데, 어디 스승이 보통 사람이어서야 되겠는가.

서연은 내일 있을 각예대회에서 이기기로 마음먹었다.

곧 스승도 제자 옆에 나란히 서서 조각을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