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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서령과 토끼 자매는 돌아갔고.
 
면회는 끝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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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면회라는 것 자체를 할 시간도 크게 없었다.
 
어차피 당장 오늘 저녁에 퇴원할 예정이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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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협회에서 파견된 직원과 함께 퇴원 수속을 밟기 위해 복도를 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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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죄송합니다. 저희의 불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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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병실을 나서는 순간부터 계속해서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내 안위에 대해 너무 안일하게 대응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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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통 내가 이방인을 만나러 가는 상황에서의 경호는 철저하게 대비하는 편이다.
 
다만 길드에 방문하는 왕진 같은 경우는 문 너머에 즉시 다른 길드원들이 대기하고 있기 때문에 큰 문제가 발생할 거라 예상하지 못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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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괜찮습니다. 어쩔 수 없는 일이었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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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드 내부의 인원을 꼭두각시로 만들고, 헌터들을 외부로 돌린 뒤, 외부의 인원을 섭외한 완벽한 계획범죄였다.
 
협회가 아무리 철저히 대응했다 한들 결과는 크게 달라지지 않았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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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나라는 존재가 헌터 정신 상담사의 첫 사례이기도 하고.
 
상담사가 헌터에게 납치당하는 이런 황당한 경우에 대한 매뉴얼이 존재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물론 기록에서 비슷한 사례가 있기는 했지만… 흔한 사례는 절대 아니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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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원은 더욱 굳은 표정으로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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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으로 왕진 시에는 상담사님의 안위를 더욱 신경 쓰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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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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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대비를 해야 하는 것은 협회뿐만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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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또한 앞으로 주의를 할 필요가 있다고 느꼈다.
 
마나를 다루는 실력의 수준이 높아질수록, 감정은 더욱 증폭되고, 때로는 침식되는 경향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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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앞으로 마주하게 될 내담자들은 대부분 그 현상에 노골적으로 노출되어 있는 존재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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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의 나를 향한 의존도가 높아질수록.
 
오늘과 같은 일이 다시는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고 여기는 것은 안일한 판단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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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백시은의 경우는… 내담자도 아니었고, 그녀의 출신 세계 풍습을 고려해야 하겠지만….
 
몇 차례 이야기를 들어준 적도 있고 상담도 진행했으니 비슷한 케이스로 생각하면, 될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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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생각해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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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시 백시은은 어떻게 되었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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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세아에게 물어는 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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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뜨겁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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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그녀는 그렇게 답할 뿐, 그 이상 내게 알려주지 않았다.
 
이 궁금증을 해소하기 위해 내 옆에 서 있는 협회 직원에게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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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감될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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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단호하게 답했다.
 
수감이 된다는 소리는 적어도 죽지는 않았다는 소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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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자들 또한 전부 체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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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명이 이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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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스티아 출신의 이방인 헌터들이, 대거 적발되었다고 했다.
 
그중에는, 신생 길드 리프의 길드장인 리아도 포함되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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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는 적발 당시, 그들 모두의 상태가 정상이 아니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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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아 헌터는 전신 타박상과 다발성 골절. 마치 하늘에서라도 떨어진 듯한 모습이었다고 했다.
 
다른 두 명은 전부 정신 오염이 강하게 나타났다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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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가장 중요한 백시은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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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세아 헌터님의 공격을 정통으로 맞았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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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에 큰 지장은 없다.
 
진세아가 손속에 사정을 둔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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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만, 두 마나 날개가 전부 타버렸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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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들은 치료가 진행되는 동시에 재판절차에 따라 법의 심판을 받게 될 것이라고 전했다.
 
법의 심판이 어떻게 될지는 모르겠지만··· 종신형부터 시작될 가능성이 높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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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듣고 싶은 이야기는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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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와 협회의 직원은 그렇게 헤어졌다.
 
그는 나를 직접 데려다주겠다고 했지만, 정중히 거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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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걸으며 생각을 정리할 시간이 필요하다고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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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새 나는 강바람이 부는 한강 다리 위를 걷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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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 진세아는 지금쯤 협회에서 조사를 받고 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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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는, 나를 구하는 데에 가장 큰 역할을 했고 그 공로를 인정받아 포상을 받을 것이라 들었다.
 
그러나 대응에 대한 조사를 받기 위해 협회에서 몇 차례 더 면담을 진행해야 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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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책임을 묻거나 그런 건 절대 아니고, 절차상 어쩔 수 없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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듣기로는 이번 일에 진세아 뿐만 아니라 자화연 또한 나의 구출을 도왔다고 한다.
 
조만간 그녀에게도 감사의 인사를 전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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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걷다 말고 난간에 기대어 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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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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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간적으로 다리가 풀릴 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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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까지 괜찮은 척하고 있었는데….
 
역시, 절대 유쾌한 경험은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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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수많은 헌터 생활로 인해 웬만한 위협에는 단련되어 있다.
 
따라서 만약 이번 사건이 그저 일반적인 납치였다면 이 정도는 아니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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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만 그 의도 자체가 달랐다.
 
미약을 먹이고 나를 감금하여 자신의 것으로 만들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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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 그들의 대처가 조금만 늦거나 삐끗했더라면.
 
혹은 내 정신력이 조금이라도 부족했더라면.
 
생각 자체가 아예 달라졌겠지.
 
어쩌면 지금쯤 납치를 옹호하고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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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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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그런 의미에서 텅 빈 허공을 향해, 누군가를 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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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사건에서 나를 구한 또 다른 존재.
 
녀석은 내가 의식을 잃어가는 그 순간에도 내내 약의 기운을 억누르는 법에 대해 알려줬다.
 
[ 심호흡하셔야 합니다! 호흡이 늘어지거나 끊기는 순간….]
 
[ 절대 흔들려서는 안 됩니다! 집중의 끈을 유지 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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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을 어떻게 쉬어야 하는지, 어떤 마음을 가져야 하는지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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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ᴗ•̀˵)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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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스템은 대답 대신 쑥스러운 이모티콘 하나를 띄울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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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마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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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피식 웃음을 터트렸다.
 
그런데 문득, 낮에 병실에서 있었던 일이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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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맞다, 아까 낮에 업데이트했다는 건 대체 뭐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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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슨 기능 업데이트라며 잠시동안 사라지더니, 뜻을 알 수 없는 문장들과 함께 돌아왔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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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ω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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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명하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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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 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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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태창은 자신 있다는 표정으로 내게 설명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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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존 시스템은 사용자 신뢰 프로토콜을 유지하고 있었습니다! ]
 
[해당 프로토콜은 사용자가 모든 위험을 스스로 감지하고 회피할 수 있다고 안일하게 판단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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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랬구나.
 
결국 그건 틀렸다는 소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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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감지하지 못했고, 회피하지도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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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라서 본 시스템은 해당 사건에 대한 큰 책임을 느껴, 새로운 프로토콜인 ‘세이프가드’를 긴급히 세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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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까 그게 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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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본 시스템은 잠재적 위협 요소를 사전에 감지하고, 적절한 선별 과정을 거쳐 사용자에게 가장 바람직한 행동 지침을 강력히 권고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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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직한 행동 지침이라….
 
뭐 흐름상 내 안위에 가장 적합한 행동 지침이지 않을까 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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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강력하게 권고한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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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잔소리하겠다는 소리 아니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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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Σ(°ロ°) ]
 
[아닙니다! 이것은 사용자의 안전을 위한, 가장 효율적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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녀석은 억울하다는 듯 항변을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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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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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피식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뭔가 얘도 생각이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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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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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깐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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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순간 걸리는 것이 하나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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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네가 제시하는 선택지가… 그렇게 우수하지는 않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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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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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까 내 말은, 좋은 것도 있는데… 가끔, 막 나가는 선택지도 있잖아. 무슨 귀를 꽉 잡아 쥐어짜라든지, 지아비가 되어주라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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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 볼 때마다 얘가 미친 건가 싶었다.
 
나는 겸사겸사 그 선택지들에 대해서도 짚고 넘어가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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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그런 장난들도, 이제 안 친다는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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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족률도 제대로 뜨지 않고, 다른 선택지는 또 지극히 정상적이었기에 나는 지금까지 녀석이 치는 짓궂은 장난이라고만 생각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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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ㅁ°) !! ]
 
[ 본 시스템은 신성한 내담자와의 상담 진행 중 절대 장난을 치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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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녀석은 전혀 예상치 못한 답을 내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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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슨 소리야? 만족도도 제대로 안 뜨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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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해당 선택지에 대해 만족도를 명확히 제시하지 않는 것은, 그 결과가 시스템의 연산 범위를 초월하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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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따라서 만족도의 자릿수만을 예상하여 표기할 뿐, 장난이 아닌 명백한 선택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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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거는 너무 충격적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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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체 그런 선택지의 목적성이 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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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이해할 수가 없어 다시 한번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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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_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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녀석은 안경을 고쳐 쓰는 듯한 이모티콘과 함께 진지한 어투로 말을 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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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시스템의 절대적인 알고리즘에 대해 알려드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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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원칙. 사용자의 안위와 사용자의 목적 달성을 최우선으로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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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원칙. 내담자의 심층적 욕망의 해소와 그 안위를 우선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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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원칙. 제1원칙 사용자의 의도와, 제2원칙 내담자의 욕망이 정면으로 추돌했을 경우, 본 시스템은 관련된 모든 인물의 ‘행복 총량’을 계산하여 가장 높은 수치를 기록하는 선택지를 사용자에게 제시합니다.]
 
[단, 제3원칙은 결코 사용자에게 해가 되지는 않아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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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그 문장들을 바라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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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를 들어 사용자님께서 말씀하시는 선택지들은, 단기적으로는 사용자의 윤리관에 반하지만, 장기적으로 예측했을 경우, 관련된 모든 인물의 ‘행복 총량’이 압도적으로 높게 기록되었기에 제시된 것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 (๑'• ֊ •'๑)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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녀석은 해맑은 이모티콘과 함께 말을 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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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시스템은, 사용자의 윤리관과는 별개로 사용자에게 최상의 효율을 가져다주는 선택지를 제시해야 할 의무가 있습니다. 따라서 그 길을 선택하거나 또 선택하지 않는 것은 전적으로, 사용자님의 자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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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사용자님의 선택과는 관계없이, 사용자님을 전적으로 서포트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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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그 설명들을 보며 허공에 헛웃음을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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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잠깐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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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리 중앙에 멈춰 선 나는 오도 가도 못하고 충격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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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까… 절대 부정적인 선택지는 아니라는 소리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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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입니다!]
 
[ (*,,ÒㅅÓ,,)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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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믿기지가 않아서 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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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하신다면, 시스템이 예측한 평행세계 알고리즘의 결괏값 일부를 파편 형태로 보여드릴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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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야. 괜찮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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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체 뭘 보여주려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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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사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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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알겠어. 이야기해줘서 고마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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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난이 아니었다는 것을 확인하면 됐다.
 
어쨌든 그 선택지들도 진짜라는 소리였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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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 내가 그 선택지들을 선택할 일은 없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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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깐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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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근데 만약에 네가 그런 종류의 선택지를 ‘강력 권고’ 할 상황이 올 수도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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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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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 어디 갔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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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_( ◉ 3 ◉ )_/¯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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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확히는 잘 모르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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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을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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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게 녀석의 마지막 답변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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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협회 병원의 가장 깊숙한 곳 특수 격리 병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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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으… 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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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시은은 사지가 두꺼운 마력 억제 구속구에 묶인 채 차가운 침대 위에 누워 낮은 신음을 흘리고 있었다.
 
온몸의 뼈가 녹아내리는 듯한 고통.
 
진세아의 그 무자비한 번개에 정통으로 지져진 상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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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육체의 고통보다 그녀를 더 미치게 만드는 것은 굴욕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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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죽여버리고 싶다.
 
나를 이렇게 만든 그 미친년, 진세아도.
 
그리고 감히 나의 베타가 되기를 거부하던 유선우 그 새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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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부, 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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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만… 몸만 회복되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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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이 치료되기만 하면, 전부 상관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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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차피, 자신은 A급 서포터.
 
이 나라에서 손에 꼽히는 귀한 존재다.
 
협회 놈들도, 국가도 자신을 함부로 내치지는 못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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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간의 벌을 받으면 그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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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고… 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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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조금만 기다리면 된다.
 
어차피 잠시동안 쥐 죽은 듯이 지내다 보면 사람들 기억 속에서 잊혀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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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경계가 느슨해졌을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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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다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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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는 반드시 뇌를 녹여줄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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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굴욕은 잠시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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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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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그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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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여성의 목소리가 들렸다.
 
매혹적이고 기품있는 목소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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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이곳은 밀실, 그 누구도 들어올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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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시은은 순간적으로 당혹감을 느꼈다.
 
차가운 병실 안 어둠 속에서 소리 없이 나타난 낯선 여인의 실루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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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 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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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 필요는 없습니다. 어차피 전부 잊게 될 테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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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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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시은은 저도 모르게 존댓말을 내뱉었다.
 
그녀의 온몸이 본능적인 공포에 떨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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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인이 천천히 그녀에게로 다가왔다.
 
그리고, 어둠 속에서 그녀의 얼굴이 드러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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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시은의 눈이 천천히 떠졌다.
 
그리고 두 사람의 눈이 마주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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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빠드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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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한 것이, 가당치도 않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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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시은의 어금니가 갈리는 소리가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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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히 그 분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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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켁… 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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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시은의 입에서 신음이 터져 나왔다.
 
그녀의 머릿속을 거대한 무언가가 폭력적으로 쑤시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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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고! A급 정신 방벽 ‘버터플라이 테라피’가, S급 정신 파괴 공격에 저항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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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항 실… 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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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스템의 메세지가 채 끝나기도 전에 그녀의 모든 방어벽이 산산조각이 났다.
 
백시은의 눈이 뒤집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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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그 낯선 여인은, 끝났다는 듯 무심하게 고개를 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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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실의 창문으로는, 선명하게 빛나는 녹색 비단 장포가 비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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