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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원이 직접 요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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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화연의 그 말의 진의를 가늠하려 애썼지만… 현재로서는 구분할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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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 저 계집의 말이 진짜라면 의원의 부탁을 받아 타당한 행위를 한 이를 자신이 방해하고, 또 겁박한 것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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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사실을 의원이 알게 된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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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군주가 무엇을 하든 신하로서 받아들여야 하는 것이 맞겠으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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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화연은 이유는 알 수 없었지만, 본능적으로 썩 유쾌하지 않게 될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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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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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화연의 붉게 물들었던 눈동자에서 서서히 핏빛이 가라앉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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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를 휘감던 어둠의 기운 또한 스르르 흩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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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은, 지금은 여기까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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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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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화연은 차갑게 식어버린 폐허를 한번 훑어보고는 고개를 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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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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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 지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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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 나타났는지 그녀의 그림자 속에서 거대한 인영 하나가 솟아올라 무릎을 꿇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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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송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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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협회에 연락을 취해두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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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강은 고개를 숙인 채 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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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로 그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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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삐요오오오오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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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멀리서부터 요란한 사이렌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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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 대의 응급 차량이 이쪽을 향해 미친 듯이 달려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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협회의 후송 차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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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세아는 자신의 품에 안긴 유선우를 조심스럽게 고쳐 안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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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그쪽을 향해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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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지러웠던 납치극이, 마침내 끝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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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의 헌터들은 제 역량과 능력을 갈고닦아, 매달 진행하는 길드 내부 테스트에서 그를 증명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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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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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콰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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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대한 더미 허수아비가 비명을 지르며 터져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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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니온 길드의 최첨단 훈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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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곳에서는, S급 헌터인 루나와 엘리스 자매가, 정기 신체 능력 테스트를 치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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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나 헌터님 또 기록 경신… 요즘 컨디션이 너무 좋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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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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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력 분석관의 흥분한 목소리가 훈련장 전체에 울려 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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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정작 루나 자신은 자신의 손을, 멍하니 내려다볼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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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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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명 몸이 가벼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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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전에는 온 힘을 다해야만 낼 수 있었던 속도와 힘이 이제 자연스럽게 발휘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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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콰아아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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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리스의 하이킥이 더미에 제대로 적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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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리스 헌터님도 최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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컨디션이 좋은 것은, 엘리스 또한 마찬가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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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 후 두 사람은 전력 분석관의 앞에 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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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나님은 근력이랑 속력이 지난달 대비 15% 상승… 엘리스님은 근력만 20% 상승… 두 분 다 신체 능력이 폭발적으로 성장하고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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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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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시 최근에 특별한 훈련이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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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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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혀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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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사람의 대답은 동시에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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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그건 루나와 엘리스 둘 모두에게도 풀리지 않는 의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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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군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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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력 분석관은 이해할 수 없다는 듯 고개를 갸웃하며 태블릿에 데이터를 기록하려던 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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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로 그때, 훈련장의 문이 열리며, 또 다른 헌터 여우 수인 릴리가 나른한 걸음걸이로 들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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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는 다음 차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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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안 끝났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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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거의 다 끝났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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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나와 엘리스는 이제 자리에서 떠나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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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 뭐야? 기록 경신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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릴리는 전광판에 떠 있는 수치들을 훑어보며,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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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음흉한 미소와 함께 두 자매에게 질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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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토끼 동생들, 둘 다 수컷이라도 생긴 모양이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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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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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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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한마디에 루나와 엘리스는 릴리 쪽으로 고개를 휙 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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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설이는 루나 대신, 엘리스가 먼저 릴리에게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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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게 무슨소리에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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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모르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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릴리는 그런 두 순수한 토끼의 반응이 귀엽다는 듯, 꼬리를 살랑거리며 말을 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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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같은 암컷 수인은 말이야. 마음에 드는 수컷이 생기면 몸이 먼저 반응하거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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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암컷들과의 경쟁에서 이겨야 하니까, 눈앞의 수컷을 내 것으로 만들어야 하니까. 본능적으로 신체 능력이 폭발적으로 상승하는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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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충격적인 이야기에 루나와 엘리스의 눈이 서서히 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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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듣는 이야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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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그 능력이 피크를 찍을 때가 바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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릴리의 붉은 입술이 천천히 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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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정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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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단어에 루나와 엘리스는 그대로 굳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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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사람은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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뻣뻣하게 굳은 채, 전력 분석관과 릴리에게 로봇처럼 고개를 꾸벅 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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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그대로 훈련장 밖으로 걸어 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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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혼이라도 빠져나간 사람들, 아니 토끼들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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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의 뒷모습을 바라보던 릴리는 속으로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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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 퍼센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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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만족스러운 미소와 함께 중얼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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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야 좀 수인 같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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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고로 암컷 수인이란, 마음에 든 수컷 하나쯤은 밤새도록 울게 만들 수 있어야 하는 법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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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은 저 맞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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릴리는 그렇게 말하고는 허리를 쭉 펴며, 분석관에게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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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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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또각또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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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요한 복도에 두 사람의 발걸음 소리만이 울려 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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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도 입을 열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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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나는 자신의 붉어진 뺨을 애써 차가운 손으로 식히려 했지만, 소용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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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도 뜨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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릴리의 마지막 말이 머릿속에서 계속 맴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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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는 자신도 모르게 누군가의 얼굴을 떠올렸다가. 심장이 미친 듯이 뛰는 것을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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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리스 또한 마찬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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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난기 넘치던 얼굴은 온데간데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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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큰일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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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는 붉게 달아올라 굳은 표정으로 앞만 보고 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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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토끼는 길드 라운지로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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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라운지의 분위기는 상당히 산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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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터들이 약속이라도 한 듯 TV 앞에 모여 숨을 죽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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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면 속에서는 긴급 뉴스가 속보로 흘러나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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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리스는 가장 가까이 있던 동료에게 조용히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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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슨 일이에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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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료는 그녀를 돌아보지도 않은 채 화면을 응시하며 대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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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번에 우리 길드로 왕진 왔던 상담사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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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납치당하셨다나 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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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말에 루나와 엘리스의 머릿속이 하얗게 비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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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담사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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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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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길드에 왕진을 온 상담사는 단 한 명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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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 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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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나가 허탈한 목소리로 조용히 중얼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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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리스도 마찬가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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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끼들의 눈동자에 두려움이 어리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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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근데 다행히도 지금은 구출되어서 괜찮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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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료는 뒤늦게 희소식을 전하기 위해 고개를 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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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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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그곳에는 이미 아무도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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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한편, 창천맹의 총본산 그 가장 깊숙한 곳에 자리한 집무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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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른 아침의 햇살이 창문을 통과해 방 안을 따스하게 채우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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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이 좋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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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기 중에는 춘란의 맑고 청아한 향기가 감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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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서령은 비단 장포의 소매를 정갈하게 걷어 올린 채, 난초 잎사귀에 맺힌 아침 이슬을 부드러운 천으로 하나하나, 정성껏 닦아주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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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동 하나하나가 우아하고 또 고결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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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는 마지막 잎사귀의 물기까지 닦아낸 후에야 자리에서 일어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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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창가에 놓인 고풍스러운 나무 책상으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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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자에 앉은 그녀는 책상 위에 놓인 서적 하나를 집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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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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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엄마가 되는 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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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이라는 곳은, 중원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이 우수하고 또 기묘한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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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원에서 무공을 배우기 위해 가장 먼저 읽어야 할 것은 무공 서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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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무공 서적이란 아무나 읽을 수 있는 것이 아니며, 구하기도 하늘에 별 따기에 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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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이곳에서는 좋은 부모가 되는 법이라는 엄청난 정보마저, 책으로 알려주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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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지어 소량의 돈만 내면 그 지식을 누구에게나 팔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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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의 눈높이에서 소통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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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과가 아닌 과정을 칭찬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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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건 없는 사랑을 표현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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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서령은 요즘 매일 아침 이런 구절들을 보며 다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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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까지 못 했던 것들을 지금 와서라도 바로잡기 위한 그녀만의 노력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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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록 유월이가 알아주지 않더라도 괜찮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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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노력하면 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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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서령은 그렇게 다짐하며 서적을 덮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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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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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그녀의 백옥같은 뺨 위로 희미한 홍조가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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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는 주위를 살짝 둘러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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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넓은 집무실에, 자신 외에는 아무도 없다는 것을 확인하고 나서야 책상 가장 깊숙한 곳의 서랍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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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그 안에서 또 다른 서적 한 권을 꺼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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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금 전의 그 반질반질한 새 책과는 달리 표지는 해지고 책장은 누렇게 바래 세월의 흔적이 고스란히 묻어나는, 낡은 서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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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아비를 위해 봉사하고 섬기는 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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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에는 그녀 또한 ‘좋은 아내가 되는 법’이라는 이 세계의 현대 서적을 읽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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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그 안의 내용은 이서령의 사상과는 도무지 맞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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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과 수평적인 관계를 유지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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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의 의견에 무조건 따르려 들지 말아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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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부분이 전혀 이해가 가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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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늘과 같은 지아비에게 어찌 아내가 그럴 수 있단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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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다가 몇몇 서적은 오히려 지아비를 휘어잡고, 그 위에 군림해야 한다는 괴상망측하고 발칙한 이야기까지 쓰여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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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서 이서령은 점점 더 과거의 기록을 찾아 헤맬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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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이 이해할 수 있고 또 마땅히 따라야만 하는 이야기를 찾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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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책은 아주 오래전, 조선이라는 시대의 어느 이름 모를 현모양처가 남긴 기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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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는 책의 첫 장을 경건한 손길로 펼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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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그 안의 가르침들을 새겨넣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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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一). 지아비는 아내의 하늘이니, 하늘의 뜻을 거스르지 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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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특히 이 첫 번째 구절이 너무나도 마음에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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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고로 아내란 지아비가 벗으라면 벗고, 엎드리라면 엎드려야 하는 존재가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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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평생, 남성이란 증오와 경멸의 대상일 뿐이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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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녀도 어쩔 수 없는 중원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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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상 자신의 부군으로 모시고 싶은 자가 생기니, 뼛속 깊이 박혀있던 사상이 고개를 드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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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사실, 이 책에서 가장 가장 중요한 내용은 바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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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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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서령의 시선이 일곱번째 장에서 멈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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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얀 뺨 위로 홍조가 더욱 피어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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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七). 지아비의 몸은 옥체와 같으니, 소홀히 하지 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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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 밤, 잠자리에서 지아비의 지친 몸을 성심성의껏 어루만져 그 정기(精氣)를 북돋아 드리는 것이 아내의 본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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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는 여인이 반드시 익혀야 할, 지아비를 기쁘게 하는 몇 가지 방중술(房中術)에 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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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서령은 마른침을 삼키며 그 어떤 무공 비급을 읽을 때보다도, 더 진지하게 그 글자들을 읽어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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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그녀가 새로운 세상에 천천히 발을 들이고 있던 바로 그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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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똑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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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파다다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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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작스러운 노크 소리에 이서령은 화들짝 놀라 읽고 있던 책을 서랍 가장 깊숙한 곳에 쑤셔 넣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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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는 재빠르게 자세를 바로 하고 헛기침으로 목소리를 가다듬은 후 평소의 목소리로 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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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어오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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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이 열리고 암명대주가 안으로 들어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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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얼굴은 평소보다 훨씬 더 굳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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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주, 무슨 일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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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서령은 붓을 들어 화선지에 난초를 그리기 시작하며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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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명대주는 고개를 숙인 채, 무겁게 입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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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맹주님. 해태 길드에서 변고가 생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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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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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선우 의원님이… 납치 당하셨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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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빠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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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서령의 손에 있던 붓대가 두 동강이 나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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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대주에게 되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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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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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의 얼굴의 온화함이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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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 안의 따뜻한 공기가 순식간에 얼어붙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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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곳에는 좋은 부모가 되겠다고 다짐했던 어미도, 지아비를 생각하며 미소 짓던 여인도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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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 마교 일대를 공포에 떨게 했던, 여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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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천현녀(九天玄女), 이서령이 서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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