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팀장이 아쉬움에 가득 찬 작은 목소리로 창천맹주에게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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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무래도 상담사님이 조금 더 상담을 진행하려는 모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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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자 이서령의 입가에 인자하게 웃음이 번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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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는 모든 것을 이해한다는 듯 부드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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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괜찮습니다. 제 딸의 상태를 가장 잘 아는 것은 의원님일 테니. 아직 안정이 필요하다 판단하셨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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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서령은 그 인자한 가면 뒤에서, 속으로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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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시(暗示)를 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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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하게 걸지는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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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대는 일반인이기도 하고, 과하게 걸면 흔적이 남기 마련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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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드럽게 동정심을 유발하여 스스로 문을 열게 만들 생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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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분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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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항하지도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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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는 아까 자신의 부탁에 망설이던 그의 눈빛을 떠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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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시가 통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저항의 흔적도 느껴지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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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도, 그는 거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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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고난 정신력이 강해, 암시에 감정적으로는 동요해도 이성적 판단은 유지한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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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은 직업적 사명감이 강하게 나타난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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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쪽이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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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순간, 의원이 고개를 들어 CCTV를 무심하게 응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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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네가 뭐라 하든 안중에도 없다는 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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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시선은 자연스럽게 자신의 딸인 유월에게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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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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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의 암시를 거절한 필부는, 실로 오랜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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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담사는 내담자가 무심코 흘리는 아주 작은 단서만으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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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내면을 좀먹는 정신 질환을 빠르게 꿰뚫어 보는 통찰력을 가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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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의식적인 손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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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어 사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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찰나의 시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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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은 어떤 단서라도 괜찮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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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그것을 도와주는 것 중 하나가 바로 내 능력이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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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곳에만 의존하지 않기 위해, 내 상담사로서의 행동의 근간이 되어줄 지식과 경험을 쌓아 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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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이번 설유월의 문제는, 굳이 필요조차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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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서가 차고 넘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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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서령의 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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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유월의 비언어적 행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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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스로 무엇 하나 원한다 말할 수 없는 그녀의 대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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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이제 와 조금이나마 이해가 되는… 자화연의 목각인형이라는 설유월을 지칭하는 단어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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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문제는 어렵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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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다 정정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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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료는 지독하게 어렵겠지만, 그 질환의 명칭만큼은 어느 정도 명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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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존성 성격장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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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그것뿐만은 아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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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서령과의 관계를 명확히 알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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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라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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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서령] [PINN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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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상태: 암시에 당하고도 면회를 막는 상담사에 대해 의문을 느끼고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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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인 스탠스: 자신의 딸인 설유월에게는 질문할 것들이 매우 많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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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부터, 그것이 내가 알아가야 할 부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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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유월은 내 인사에 눈을 피하며 고개를 끄덕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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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행히도 당희란 헌터가 나에 대해서 설명해 준 것이 도움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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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어도 나를 적으로 인식하지는 않고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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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더는 그녀를 유리벽 너머로 바라보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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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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옆의 버튼을 눌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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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를 가로막고 있던 두꺼운 강화유리가 약간의 소음과 함께 옆으로 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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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 상황실에서는 이걸 보며 난리가 났을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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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의’ 등급의 이방인을 억제하는 방벽을 해제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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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아랑곳하지 않고 그녀의 방으로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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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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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유월은 내가 다가가자 살짝 놀란 듯 벽 쪽으로 몸을 물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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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체 이런 사람이 누구에게 위해를 가한단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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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쪽으로 나오시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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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제안에도 설유월은 움직이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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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는 발이 바닥에 붙은 것처럼, 그 자리에 우두커니 서서 열린 문과 나를 번갈아 볼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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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그녀를 재촉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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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설유월이 망설이는 동안, 이어진 문을 통해 바로 옆에 있는 거실로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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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은 상당히 넓고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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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종의 모델하우스처럼 설계되어 있는 공간은 이방인들이 지내기에 충분히 좋아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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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즉시 주방으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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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스브레이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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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담사는 내담자와의 어색한 분위기를 깨고 편안한 분위기를 조성할 의무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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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라서 모든 상담사에게는 각자만의 기술이 존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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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이 방법은, 내가 가장 선호하는 방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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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원초적인 감각이지만… 가장 쉽게 경계심을 무너뜨릴 수 있는 방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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냉장고의 문을 열자, 차가운 공기가 훅 흘러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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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지런히 정리된 신선한 재료들 사이에서, 나는 딸기 상자를 꺼내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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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사를 할 것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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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빠르게 만들 수 있는 디저트 정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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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냄비에 물과 설탕을 넣고, 불을 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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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원한 물로 딸기를 조심스럽게 씻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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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슬금슬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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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에서 누군가가 거실로 나오는 소리가 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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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뒤를 돌아보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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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선 자체가 부담스러울 수도 있으니까. 일에 집중하는 척 등을 보여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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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보글보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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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탕물 위로 달콤한 향과 거품이 끓어오를 때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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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기를 옆에 있는 꼬치에 꽂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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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그 꼬치를 잘 녹인 설탕물에 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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찐득한 액체가 딸기를 뒤덮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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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는 실온에 긴 기간 식히지만… 시간이 없으니 냉동고에 빠르게 넣어서 굳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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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 후, 나는 그것을 꺼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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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만드는 디저트는… 한때 상당히 유행했던 음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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탕후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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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질적인 이 세계에서 그녀가 유일하게 알고 있을지도 모를 단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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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천천히 몸을 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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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는 주방으로 다가온 상태이기는 했지만, 어찌할 바를 모르겠다는 얼굴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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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그녀의 눈을 마주치며, 종이컵을 거꾸로 꽂은 탕후루를 조심스럽게 내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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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마 중원에서도 존재하는 다과로 알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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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탕후루를 종이컵을 거꾸로 꽂아 설유월에게 내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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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미소와 함께, 나직하게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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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맛에 맞으셨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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탕후루를 바라보는 설유월의, 눈동자가 살짝 떨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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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그 떨림은 이내 멎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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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는 천천히 고개를 가로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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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소리에는 어떤 감정도 실려있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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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괜찮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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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치, 타인의 말을 그대로 옮기는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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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잣거리 다과와… 낯선 사내가 주는 음식은, 입에 대는 것이 아니라 배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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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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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그 이유가 명확하다면, 내게도 할 말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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규칙에는 허점이 있기 마련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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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곤란하다는 듯, 뒷머리를 긁적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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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군요… 훌륭한 이야기입니다. 당연히 그래야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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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그녀의 규칙을 긍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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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만, 이건 저잣거리 음식이 아닙니다. 제가 방금 전 깨끗한 주방에서 직접 만들었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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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바로 옆의 먼지 하나 없이 반짝이는 주방을 가리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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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저는 낯선 사내가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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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 말을 멈추고, 그녀의 눈을 바라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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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 전 당희란 소저가 말했듯이, 저는 당신을 돕기 위해 존재하는 의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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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희란 헌터에게는 감사의 말을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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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이것은 의원이 환자의 안정을 위해 권유하는 음식이 되겠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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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부드럽게 웃으며 쐐기를 박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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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가 조금은 달라지지 않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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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마지막 질문에, 설유월은 대답 대신 깊은 고민에 빠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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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꿀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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탕후루를 보며 침을 삼키기까지 하며, 그녀의 머릿속에서는 두 이야기가 격렬하게 충돌하는 듯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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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다, 마침내 그녀가 입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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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전과 같이 감정 없는 목소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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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원의 말을 따르는 것이, 병세를 가장 빠르게 치료하는 길이라… 그리 배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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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의 새하얀 손이 천천히 아주 천천히 뻗어와 내가 내민 탕후루를 받아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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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망설임 끝에, 그것을 입으로 가져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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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와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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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고 경쾌한 소리와 함께, 단단한 설탕 코팅이 부서지는 소리가 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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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순간 설유월의 움직임이 멈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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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의 눈이 크게 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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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와삭와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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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와삭와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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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는 선 자리에서 꼬치 하나를 작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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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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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너무 잘 먹는 거 아니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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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먹은 뒤, 그녀는 빈 꼬치를 손에 쥔 채 그저 가만히 서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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텅 비었던 푸른 눈동자는 이제 내 손에 들린 나머지 두 개의 꼬치에 고정되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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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작게 헛웃음을 흘리며, 꼬치 하나를 더 내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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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이것도 의원인 제가 드리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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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와삭와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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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말이 끝나기도 전에, 그녀의 손이 다시 움직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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탕후루 하나가 다시금 그녀의 앵두 같은 입술 사이로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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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랄까, 단 음식을 엄청 좋아하는 사람이, 상당히 오랜만에 먹게 되어 허겁지겁 해치우는 느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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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그녀는 딸기 탕후루 세 꼬치를 해치운 후에서야 내 앞의 자리에 앉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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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층 편안해진 분위기 속에서, 나는 그녀의 상태를 확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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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유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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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인 스탠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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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먹은 당과는… 맛있었습니다. 심신이 어느 정도 안정됐습니다. 그러나 마음 한구석, 그녀의 무의식에서는 이 세계에 어머니가 계시다는 사실을 신경 쓰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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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능력은 상대방의 긴장을 낮추고, 안정화 시킬수록 그 사람에 대한 더 많은 정보를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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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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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시, 일전에 봤던 그녀의 무의식을 지배하던 ‘누군가’는 그녀의 어머니. 이서령일 가능성이 높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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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스레 설유월의 의존적 대상도 그녀일 가능성이 높아졌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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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 자식 관계에 있어 적절한 의존은 당연히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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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그것이 과해지는 순간, 아이는 부모의 소유물이 되어버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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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는 성장과정에서 있어, 아이의 세상 전부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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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만, 자녀들은 색칠놀이 책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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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가 좋아하는 색으로 자녀들을 채우려 해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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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눈앞에 적합한 답변들이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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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합 답변] [만족 적합률 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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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한 번 여쭤보겠습니다. 설유월 님은 무엇을 하고 싶으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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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번째는, 상담사로서의 정석적인 길을 제시해 주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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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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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합 답변] [만족 적합률 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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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한 번 물어볼게. 하고 싶은 게 뭐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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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유월의 뒷 머릿결에 손을 넣어 목덜미를 콱 붙잡으세요. 입꼬리는 끌어올리지만, 눈은 웃지 않으며… 목소리는 낮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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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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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야 이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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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그 정신 나간 선택지에 미간을 찌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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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게다가, 적합률이 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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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체 어떻게 이런 선택지가 적합률마저 높은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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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그 숫자를 의심한 바로 그 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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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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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경이 흐릿하게 흔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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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눈앞에 한 장면이 재생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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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건 처음 겪는 현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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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면 속의 나는 망설임 없이 설유월에게로 다가가, 그녀의 목덜미를 콱, 붙잡아 낚아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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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포에 질려있을 것이라 생각했던 예상과는 달리, 그녀의 눈동자에는 학습된 복종심이 담겨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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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웃음기 없는 눈으로 나직하게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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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한번 물어볼게. 네가 하고 싶은 게 뭐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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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자 설유월이 반응했다. 그녀는 내 눈을 피하지 못한 채, 떨리는 목소리로 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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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에… 네… 바로 말씀드리겠사옵니다…. 소녀가, 소녀가 하고 싶은 것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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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는 답을 찾기 위해, 필사적으로 머리를 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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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그런 설유월을 뿌듯한 표정으로 내려다 보며 머리를 쓰다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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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난 다시 현실로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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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허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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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짧게 숨을 몰아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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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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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그지 같은 장면은 대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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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순식간에 깨달을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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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이 선택지가 존재하는지. 또 적합률이 왜 이렇게 높은 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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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서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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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고개를 강하게 젓고, 마지막 선택지를 바라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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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합 답변] [만족 적합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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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를 아버지라고 생각해도 괜찮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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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마지막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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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질척이고 위험한 길처럼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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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나는, 오히려 두 번째 선택지보다는 이해가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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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 나간 선택지처럼 보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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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도 안 된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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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답변의 의도 자체가 무엇을 하려는지는 알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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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부분의 의존성이 심한 내담자와 환자는, 자의든 타의든 형성된 그들의 의존의 대상에게서 벗어나기가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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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작스러운 독립이나 분리를 시도하면 오히려 불안정해지며 붕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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즉, 건물이 무너져 내린다는 소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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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할 경우, 그 모든 무게가 상담사에게로 쏟아지는 역전이 현상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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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이런 방식의 치료법이 존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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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로 ‘의존 대상의 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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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존의 병들고 위험한 의존 관계를, 상담사라는 통제 가능하고 안전한 대상으로 옮겨 심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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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전무결하게 안전한 존재인 상담사가 그 대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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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담자에게 일시적인 의존을 허락한 후, 그 울타리 안에서 점진적으로 내담자의 자율성을 길러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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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천천히, 내담자 스스로 걷는 법을 가르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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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전한 관계에 대한 새로운 경험을 하게 됨으로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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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에는 그 울타리마저 스스로의 힘으로 부수고 나가게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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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담사와의 건강한 이별을 통해, 완전한 독립을 경험하게 만드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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즉, 내담자가 기댈 수 있는 일시적인 안전 기지 역할을 수행하는 방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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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아버지’라는 언어의 선택 자체는 문제가 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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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또한 저 방법을 고려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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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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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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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에는 내 방식으로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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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도직입적으로 말씀드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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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그녀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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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바깥에는 설유월 소저의 어머니가 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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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말에 그녀의 푸른 눈동자가 사시나무 떨리듯이 흔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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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 선택지의 장면과, 설유월의 이 반응으로 그녀가 이서령을 어떤 대상으로 여기는지 쯤은 알 수 있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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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맹주께서는,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쉬지 않고 제게 소저와의 면회를 강하게 요구하고 계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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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천히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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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이곳의 규칙은 다른 사람이 정할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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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그녀에게, 안전한 울타리를 약속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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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그분의 의사보다는 소저님의 의향을 묻는 게 옳다고 생각합니다. 이곳의 모든 규칙은 설유월 소저의 뜻으로 정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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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에게 한 걸음 다가서며, 조용히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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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유월 소저. 면회를 원하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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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질문에, 그녀는 뒷걸음질 치며 필사적으로 고개를 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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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저는 잘 모르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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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는 지금, 선택의 기로 앞에서 도망치려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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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이상의 회피는 불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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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유월이 스스로 말하지 않는 이상, 면회를 막을 방법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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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르겠… 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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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설유월은 답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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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 내부에서 있는 공포심이, 답변을 막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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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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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방금 전 보았던 그 가능성을 꺼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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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정적으로는 거부감이 있지만… 어쩔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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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의 내면의 의지를 끌어내기 위해서는, 충격요법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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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설유월에게 다가가 목덜미… 아니, 어깨에 손을 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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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나’처럼 입꼬리만 끌어올린 채, 웃지 않는 눈으로 그녀를 내려다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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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낮고 단호한 목소리로 요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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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요. 대답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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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유월의 눈이 나와 정확히 마주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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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의사를, 당신의 입으로 직접 말하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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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조용히 문 쪽을 가리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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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 내담자분께서 원치 않으신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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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드시 약속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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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누구도 저 문을 열게 하지는 않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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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상담사로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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