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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법 넓은 독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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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이 감옥이지, 사실상 주의 등급의 이방인의 숙소는 상당히 좋은 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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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히 말해 호텔의 스위트룸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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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도 여러 개에, 내가 특별히 요청했던 사항은 확실히 이행된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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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대는 상당히 푹신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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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방인의 교화 가능성을 높이고, 이 세계의 문물을 조금이라도 더 긍정적으로 접하게끔 하기 위해서라고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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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그 인도적인 방법에는 전적으로 동의하는 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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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담실의 문을 열자 넓은 방의 풍경이 확 들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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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그 방은 지금 내 눈앞에 투명하고 두꺼운 강화유리를 사이에 두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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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을 열자마자 설유월이 달려들 줄 알았는데 아무런 반응도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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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유리 쪽으로 다가가 방의 내부를 천천히 살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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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장은 풀지 않았다. 아까처럼 훅 하고 달려들어 유리를 두들기며 놀래킬 수도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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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다 발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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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 한구석에 웅크린 채, 무릎에 얼굴을 박고 있는 그녀의 모습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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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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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까랑 분위기가 너무 다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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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명 그녀의 기감이라면 누가 왔는지 알아챘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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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은 소통이 가능하게끔 소리는 그대로 통하게 되어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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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능력을 사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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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유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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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인 스탠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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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마의 일격에 기절하고, 마인에게 끌려왔음을 깨달았습니다. 스스로를 매우 한심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극도의 무기력증과 자기혐오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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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합 답변] [만족 적합률 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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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정하십시오 소저. 여긴 그대가 아는 중원이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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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적인 적합률 자체가 매우 낮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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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만큼 그녀의 심리상태가 불안하다는 증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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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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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정하십시오 소저. 여긴 그대가 아는 중원이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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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나직한 목소리에 설유월의 고개가 천천히 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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엉망으로 헝클어진 흑백색의 머리카락 사이로 차갑고 푸른 눈동자가 모습을 드러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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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의 푸른 눈동자가 나를 위아래로 훑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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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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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는 한참이나 나를 쏘아보다가 마른 입술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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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은 서역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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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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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면, 남만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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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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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반응은 극히 자연스러운 수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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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원이 아니라고 하니까 마교에게 패배해 어디 다른 지방의 감옥으로 끌려왔다고 믿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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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방인을 만나면 가장 먼저 이 세계에 대해 설명하는 프로토콜들이 존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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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부터 빠르게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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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저. 잠시 여기를 보시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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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그녀의 방 안에 있는 벽걸이 모니터의 화면을 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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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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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고 거대한 유리판에서 갑자기 눈부신 빛과 소리가 흘러나오자 설유월은 화들짝 놀라며 몸을 뒤로 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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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생처음 보는 그 수상한 물건을 향해 적개심을 내비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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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그녀의 그 경계심을 아랑곳하지 않고 나직한 목소리로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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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훈교육 시작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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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이거부터 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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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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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야, 비로소 대화가 될 것 같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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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으흥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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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는 콧노래를 부르며 선생님의 상담소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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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리스의 짧은 꼬리가 기분 좋게 살랑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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걱정을 많이 했던 선생님의 경호도 무사히 끝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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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이대로 퇴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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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다가 정말 생각지도 못한 선물까지 받게 되어서, 그녀의 기분은 굉장히 좋은 상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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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옆의 바닐라 케이크는 엘리스님 몫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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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나 언니를 위한 딸기 케이크뿐만 아니라, 선생님이 자기를 위한 케이크를 만들어줬다는 것 자체가 기쁜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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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래도 지난 보육원에서 느꼈던 그 친밀감이 그녀만의 착각은 아니었던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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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는 겉으로는 수인이라는 종족의 이미지 때문에 굉장히 개방적인 마인드를 가진 척 행동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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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남성과의 교제 경험은 단 한 번도 없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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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리스의 모든 도발적인 행동은 무시당하기 싫어하는 어린 짐승의 서툰 방어기제일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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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찰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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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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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이 준 것은 열쇠 꾸러미였지만, 운 좋게도 단 한 번에 상담소에 맞는 열쇠를 찾아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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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시 기분 좋은 날에는 뭘 해도 되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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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리스는 기쁘게 미소 지으며 안으로 들어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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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담실 안은 조용했다. 아무도 없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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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른 아침 구워졌던 빵의 달콤한 향과, 그가 마셨을 커피의 씁쓸한 향이 아주 희미하게… 공간을 채우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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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인이 아니었으면 맡지도 못했을 정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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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의 손짓을 기억하자면… 주방은 저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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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는 상담실 안쪽의 작은방으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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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곳에는 아담한 주방이 있었고, 주방에는 하얀색 냉장고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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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리스는 냉장고의 문고리를 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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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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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는 냉장고 안에 놓인, 예쁘게 포장된 두 개의 케이크 박스를 보고 감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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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리스는 보물이라도 되는 듯 조심스럽게 들어, 밖으로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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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조심스럽게 문으로 향하던, 바로 그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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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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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리스는 발걸음을 멈출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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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담실 밖 로비에서는 그렇게까지 느끼지 못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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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어오고 나서는 케이크에 정신이 팔려서 제대로 맡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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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그녀의 예민한 코에는 선생님의 향이, 아주 강하게 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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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이러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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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번도 이런 적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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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성의 향이야 지겹도록 맡아왔고, 아는 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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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이거는 조금 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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좀 더… 달콤하고, 부드러운, 바닐라 같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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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리스는 그대로 멈춰 선 채로 냄새, 아니 그 향의 근원지를 찾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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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알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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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담사 유선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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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자 등받이에, 그가 벗어두고 간 하얀 의사 가운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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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원지를 인식하니 향이 더 깊어지는 듯한 느낌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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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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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어떤 경고도 없이, 엘리스의 머리를 이상한 충동이 지배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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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는 홀린 듯 그곳으로 발걸음을 옮기다가… 문득 정신을 차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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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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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무슨 짓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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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리스는 얼굴이 시뻘게진 채, 그대로 케이크를 들고 돌아서 뛰쳐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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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담실에 아무도 없어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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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나는 TV를 통해 중계되는 이방인에 대한 상황을 지겨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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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이 침식으로 인해 선생님이 갑자기 사라졌을 때에는 자신도 모르게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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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괜찮아, 괜찮아 루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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옆에서 릴리가 그런 그녀를 진정시키지 않았다면 아마 그 자리에서 뛰쳐나가 서울숲으로 달려갔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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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힘겨울 정도로 인내심의 시간 이후 선생님은 밖으로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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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행히 잘 해결된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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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대로 중계는 끝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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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는 아무래도 오늘 선생님이 이곳에 방문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려울 것이라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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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헌터 개인 쉼터로 돌아가, 먼지가 뽀얗게 쌓여 있던 책 한 권을 꺼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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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만의 여유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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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에는 계속 쫓기는 듯한 느낌만 들어 독서라는 행위는 상상할 수도 없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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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지금은, 마음이 아주 많이 편안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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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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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는 한 장 한 장 책장을 넘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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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끄러웠던 머릿속이 고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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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나는 이런 평범한 경험을 다시 할 수 있게끔 해준, 선생님에게 감사할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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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얼마나 책을 읽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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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와 맛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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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잠시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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쉼터 바깥, 라운지가 갑자기 시끄러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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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리스 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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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의 사랑하는 동생이 임무에서 돌아온 듯했다. 마침 책도 다 읽은 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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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을 잘 경호해 준 엘리스를 칭찬하고, 감사 인사를 전해주기 위해 루나는 문을 열고 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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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 돼! 내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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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라운지의 모습을 본 루나는 그 자리에서 멈춰 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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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리스는 다른 헌터들에게 둘러싸여, 하얀 케이크 상자 하나를 품에 꽉 껴안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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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킁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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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닐라 향이 코끝을 스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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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자 밖으로 보이는 케이크의 모양과 디테일은, 어디 하나 손색이 없는 완벽한 모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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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나는 단번에 저 케이크의 제작자가 누군지 알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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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정도의 디테일은 선생님의 쿠키와 샌드에서 볼 수 있는 것이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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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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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이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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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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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리스가 경호를 잘 해줬으니, 감사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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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야. 그건 말이 안 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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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이크를 구울 시간 따위는 없었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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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나의 머릿속이 팽팽 돌아가던 바로 그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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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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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멀리서 엘리스가 그녀를 발견하고 해맑게 손을 흔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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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나는 차마 받아줄 힘이 남아있지 않았지만, 간신히 손을 들어 엘리스의 인사를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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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리스는 웃으며 그녀에게로 다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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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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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환하게 웃을 수 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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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리스는 그런 루나의 마음도 모른 채, 딸기 그림이 그려진 케이크 상자를 그녀의 앞으로 쑥 내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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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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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 차려보니 루나의 손에는 바닐라 케이크 상자와 똑같은 상자가 하나 더 들려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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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짜잔! 선생님이 언니 주려고 아침부터 만든 거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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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리스는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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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언니 꺼 만들면서, 겸사겸사 내 것도 하나 만들어 주셨지롱. 킥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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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거였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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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나는 깨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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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은 섬세하니까, 자신의 것뿐만 아니라 엘리스의 것까지 준비한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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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초에 루나를 주기 위한… 케이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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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나는 조심스럽게 상자를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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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안에는 그녀가 살면서 본 케이크 중, 가장 예쁜 케이크가 들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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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하얀 생크림이 겨울철 눈처럼 폭신하게 쌓여 있었고, 그 위에는 반짝이는, 붉은 딸기 여럿이 꽃처럼 피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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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나는 자신도 모르게 손을 뻗어 검지손가락으로 그 하얀 생크림을 콕 찍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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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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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핥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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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의 손가락에 묻은 크림을 핥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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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의 붉은 혀가 하얀 크림을 천천히, 그리고 부드럽게 훑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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혀로 입술을 살짝 쓸어내리며, 그녀는 맛을 느끼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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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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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안에서 녹아내리는 생크림의 달콤한 맛에, 그녀의 온몸이 찌릿하게 떨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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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는 자신도 모르게 아주 깊고 나른한 미소를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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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서 가장 달콤하고 또 위험한 맛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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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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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나는 문뜩 주변이 조용해졌음을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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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금 전까지 시끄럽게 떠들던 라운지의 모든 소음이 거짓말처럼 멎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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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가 고개를 돌리니 라운지에 있던 대부분의 길드원들이, 약속이라도 한 듯, 전부 그녀를 넋이 나간 표정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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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왜 그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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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나가 순진한 눈으로 묻자 그녀와 가까이 있던 릴리가 간신히 입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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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그니까 방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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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릴리는 차마, 다음 말을 잇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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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금 루나의 모습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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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의 반쯤 감긴 듯한 눈과, 달뜬 한숨, 그리고 크림을 핥던 그 혀의 움직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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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우 수인인 자신의 유혹보다도 훨씬 더 관능적으로 보였다는 그 사실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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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마, 말할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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