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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토닥토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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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자 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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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리스는 기절한 루나의 엉덩이를, 아기처럼 톡톡 두들겨주며 이불을 목 끝까지 덮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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땀으로 젖은 새하얀 앞머리를, 손가락으로 부드럽게 넘겨주자 루나는 희미한 한숨을 내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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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그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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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쫑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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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법의 장막이 걷히는 듯한 희미한 빛의 파문과 함께, 기절한 루나의 머리 위로, 길고 새하얀 토끼 귀 한 쌍이 모습을 드러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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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나의 인식 저하 마법, 카모플라주가 풀린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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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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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리스는 놀라서, 눈을 동그랗게 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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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나는 설령 잠이 드는 한이 있더라도 이 마법만큼은 절대 풀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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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의 귀를, 수인이라는 정체 드러내는 것 자체를, 병적으로 두려워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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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풀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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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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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리스가 고개를 돌렸다. 여전히 푸른빛을 발하고 있는, 루나의 노트북이 들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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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터 갤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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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검색창에 선명하게 남아있는 두 글자. 수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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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리스는 잠시 말을 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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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의 언니, 루나는 아직도 제국에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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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라서 그녀는 이곳 지구에서도 수인이 만인에게 미움받는 종족이라, 굳게 믿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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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니, 이제 괜찮아. 여기는 지구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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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리스 자신이 아무리 설득해도 그 완고한 생각은 단 한 번도 달라지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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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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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루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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욕망의 구덩이인 이런 곳까지 직접 들어와서, 자신의 가장 큰 콤플렉스인 수인에 대해서 검색을 한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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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와 가장 가까운 사이라 자부하는 엘리스로서는, 믿을 수 없는 이야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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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언니에게, 상식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아주 거대한 심경의 변화가 있었던 것이 분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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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리스의 머릿속에서 조각들이 맞춰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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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전에 다녀왔다던 상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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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그 이후 평소와는 다른 그녀의 행동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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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단서는, 단 한 사람을 가리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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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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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리스는 기절한 흰토끼의 뺨을, 부드럽게 쓰다듬으며, 허공에 대고 속삭였다. 그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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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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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나의 입에서 달뜬 신음이 흘러나오자, 엘리스의 입가에도 흥미로운 미소가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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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굴만 잘생긴 줄 알았더니, 능력도 좋았네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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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껏 유니온 길드에서 언니에게 갖다 박은 상담사만 해도 한 트럭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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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슨무슨 심리 분석관부터, 유명한 정신과 의사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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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그들 모두가 루나의 방어기제 앞에서 학을 떼며 나가떨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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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족에 대한 속상함은 이 세계에서 찾을 수 없는 케이스라 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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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고작 단 한 번의 상담으로 이 정도의 진척도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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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순진한 언니한테 무슨 짓을 했을까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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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리스의 눈이 흥분으로 반짝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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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나] [PINN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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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상태: 쿨쿨 자는 중. 과도하게 활성화되었던 심박수와 신경이 안정을 되찾고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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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인 스탠스: 야한 건 안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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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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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써 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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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씻고 나오면서, 젖은 머리를 수건으로 털며 루나의 상태를 확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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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밤 10시. 성인이 잠들기에는 조금 이른 시각이다, 아무래도 그녀는 새 나라의 새 토끼인 모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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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데 메인 스탠스는 또 뭐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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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꿈이라도 꾸는 건가. 아니면 꿈에서 헌터 갤러리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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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 자고 있다니 더 볼 것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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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환자의 사생활을 존중하는 의미에서, 핀을 해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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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참고로 진세아에게는 이미 사과했다. 저번에 그녀에게 시험 삼아 핀을 사용한 건에 대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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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유를 설명하며, 기분 나빴으면 미안하다고 조심스럽게 사과하니 자지러지듯이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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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하하하! 그런 일이 있었어? 괜찮아, 괜찮아! 그래도 내 상태가 보인다니 다행이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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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는 연신 괜찮다고 말하면서도, 가장 중요한 것은 놓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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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상담사님? 제 상태는, 어떻게 나왔는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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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에서 되게 편하게 쉬고 있던데. 너 엄청 무해하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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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히. 그렇구나? 내가 무해하긴 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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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그 짧은 회상을 마치고, 머리를 다 말린 뒤 미지근한 물 한 잔을 들고 책상에 앉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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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차피 현시점, 내가 지속적으로 맡고 있는 내담자는 단 한 명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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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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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으로의 방향성에 대해 미리 계획을 세워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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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자긍심의 씨앗은 잘 심어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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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인이 이 세계에서 최소한 일방적인 미움받는 종족은 아니라는 것을 루나도 이제 어렴풋이 느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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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이제 남은 것은, 그 씨앗에서 돋아난 연약한 새싹을, 수인이라는 단단한 정체성으로 키워내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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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기 위한 가장 효과적이고 뛰어나며 완성도 높은 방법은 뭘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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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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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끼 수인의 트레이드마크이자, 그녀가 그토록 숨기려 하는 심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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쫑긋한 귀와, 솜털 같은 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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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강제로 해제하는 것이 아니라, 그녀 스스로의 의지로 장막을 걷어내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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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이야말로, 그녀가 수인으로서의 정체성을 받아들였다는 가장 확실한 증거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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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거기까지 생각하고, 순간 멈칫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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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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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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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이 상담의 목표는 그녀가 귀를 드러내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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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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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머릿속에 오늘 오후의 시스템 창이 다시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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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합 답변] [만족 적합률 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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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데 귀 좀 보여주시겠어요? 그때 보니까 예쁘던데요. (낮은 목소리 및 강압적인 톤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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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나와의 상담에서 떠올랐던 상태창의 선택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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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소 과격하고 급격했지만, 상태창은 결국 최종적인 목표에 도달하는 가장 빠른 지름길을 제시하고 있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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확률은 조금 낮긴 했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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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 설마 여기까지 본 거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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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ゞ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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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말에 응답하듯, 눈앞에 시스템 창이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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멋쩍다는 건지 칭찬받아서 쑥스럽다는 건지, 뒷머리를 긁적이는 이모티콘 하나만이 덩그러니 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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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자기 신뢰도가 좀 더 올라가는 느낌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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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택지가 조금 비상식적이고 급격할지언정, 틀린 방향성은 아닐 것이라는 묘한 확신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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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차피 이번 주 수요일과 금요일에는, 유니온에 지속적인 방문을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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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주 자체가 유니온 길드의 왕진 기간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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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까, 내일 또 가게 된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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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 꺼내보실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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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심스럽게, 권유해 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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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니온의 두 번째 왕진은 저번보다 훨씬 수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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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전에 예정되었던 후속 상담은, 대부분 10분을 넘기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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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번 상담으로 마음의 응어리를 단번에 풀어낸 내담자들은, 한결같이 밝아진 얼굴로 내게 감사 인사를 전하고 돌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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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차 호전되는 것이 눈에 보이는 내담자들도, 이전처럼 날을 세우지 않고, 한결 부드러운 태도로 자신의 고민을 털어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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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것은 순조로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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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점심으로 포장해온 샌드위치를 한입 베어 물며, 오후의 스케줄을 확인하기 위해 태블릿을 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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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남은 사람이… 루나 님이랑… 엘리스…? 이 사람은 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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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의문을 느끼며 샌드위치를 마저 씹어 넘기던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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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똑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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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기, 상담사님. 바쁘신데 죄송합니다만… 잠깐 시간 괜찮으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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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약된 상담과 상담 사이, 잠시 쉬고 있던 내게, 처음 보는 얼굴의 헌터가 문틈으로 고개를 쑥 내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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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약 명단에는 당연히 없는 사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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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네 괜찮습니다. 무슨 일이시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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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 신청은 안 했는데… 동료들이 상담사님이 되게 좋다고 해서…. 혹시, 지금 잠깐이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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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이 시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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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사람 꽤 용하다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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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슨 점쟁이가 입소문을 타는 것처럼, 내 상담이 소문이 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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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에는 불신하고 신청조차 하지 않았던 헌터들이 동료들의 후기를 듣고 찾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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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심시간이 지나자, 상담실 문 앞은 유명 맛집처럼 변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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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행히 루나와 엘리스는 저녁 상담 예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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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는 사람을 마다할 수는 없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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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길게 늘어선 줄을 바라보며, 샌드위치를 입에 털어 넣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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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시작하시죠. 어떤 게 고민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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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정시 퇴근은 글러먹은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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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니온 길드 최상층, 헌터 전용 라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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흰토끼 한 마리는 평소답지 않게, 소파에 앉아 안절부절하지 못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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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식하지 않는 듯하면서도, 모든 신경은 라운지 입구의 문을 향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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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끼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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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문이 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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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나는 반사적으로 고개를 홱 하고 돌려 그쪽을 바라봤다. 그녀의 붉은 눈동자에 숨길 수 없는 기대감이 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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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그 기대감은 다음 순간, 실망감으로 바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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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스퍼 헌터님! 지금 체력 측정실로 가시면 될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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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드 직원이 부른 것은, 아쉽게도 그녀의 이름이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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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콩, 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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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는 자신도 모르게, 시무룩해진 얼굴로 소파 아래에서 발을 콩콩 굴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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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히 말하면… 약속 시간에 늦는 연인을 기다리는 애타는 소녀의 모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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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그 모든 모습을, 옆에 앉아 있던 검은 토끼가 흥미롭다는 듯이 지켜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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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귀족들이 모여 앉은 테이블에서 빅토르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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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번부터 길드에 무슨 정신 상담사 따위가 도착했다 하더군. 어리석기 짝이 없지. 정신력이 나약하다는 것을 스스로 증명하는 꼴이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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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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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변의 귀족들이, 약속이라도 한 듯 맞장구를 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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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척 봐도, 어디 근본도 없는 사기꾼이 분명해. 그런 자에게 상담을 받는 것 자체가 수치스러운 일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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빅토르의 마지막 말이 끝나기도 전, 주변의 소음에 신경 쓰지 않고 있던 루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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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의 새하얀 미간이, 아주 선명하게 찡그러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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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으으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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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나의 주변 공기가, 아주 미세하게 차가워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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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로 옆에 앉아 있던 엘리스는 그 변화를 가장 먼저 감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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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니가 귀족에게 감정을 드러내는 것은 처음 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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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재미있는 상황에 기름을 부어보기 위해, 빅토르에게 한마디 하려던 그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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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끼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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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라운지의 문이 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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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나의 고개가, 화들짝 놀라며 다시 문 쪽으로 돌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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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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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에는 정말 맞는 듯했다. 상담 순서를 알려주는 길드 직원이, 태블릿을 들고 서 있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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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리스 헌터님! 상담 차례이십니다! 준비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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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직원의 입에서 나온 것은, 그녀가 기다리던 자신의 이름이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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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나의 고개가 옆에 앉은 동생에게로 휙 하고 돌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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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도… 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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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리스는 그런 언니를 향해, 그저 해맑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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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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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말에 루나는 다시 소파에 몸을 푹 파묻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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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고는, 아무도 모르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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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폭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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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발을 콩콩 구르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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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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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선우는 없는, 유선우의 상담소 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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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마, 자화연은 곧 방문하겠다는 자신의 전언을 지키기 위해, 직접 이곳을 찾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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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의 의원이 자신이 고심해 보내준 선물을 받고 어떤 표정을 지었을지 궁금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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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그녀를 맞이한 것은 굳게 닫힌 문과, 그 위에 붙어 있는, 낯선 종이 한 장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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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일은 상담사의 왕진으로 인해 휴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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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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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화연은 그 문장을, 아주 천천히, 한 글자씩, 힘을 주어 읽어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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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곧, 그녀의 앵두 같은 입술 사이로 짧은 한숨이 터져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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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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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진? 본좌에게 어떤 연락도 없이 자리를 비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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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좌의 의원이라면, 마땅히 본좌의 부름을 기다리며, 언제든 이 자리에서 대기하고 있어야 할 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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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명, 언제든 자신을 찾아오라 그리 말하지 않았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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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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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화연은 굳게 닫힌 문을, 고운 비단신을 신은 발끝으로, 아주 가볍게, 툭, 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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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는 뒤로 돌아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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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한 번만, 특별히 봐주겠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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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치 큰 아량을 베푸는 군주처럼, 그녀는 스스로에게 다짐하듯 중얼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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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위엄 있게 돌아선 것과 달리, 그녀의 어깨는 살짝 내려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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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치, 시무룩해진 어린아이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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