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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니온 길드 최상층에 위치한 헌터 전용 라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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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급스러운 가죽 쇼파와, 도시의 풍경이 한눈에 들어오는 통유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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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니온이라는 길드가 그렇듯 다양한 외모를 가진 헌터들이 담소를 나누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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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의 커피는 어째서 이리도 쓴 맛만 나는지 모르겠군. 아무리 시간이 지나도 적응이 되지 않아… 제국에서 마시던 루키아 산 원두가 그립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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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려한 장식이 달린 전투복을 입은 제국 자작가의 아들 빅토르가 불평을 늘어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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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주위에는 그와 비슷한 부류의, 한때는 귀족이라 불렸던 이방인들이 모여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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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은 이곳 지구의 모든 것이 자신들의 고상한 취향과는 맞지 않는다며, 은근한 경멸이 담긴 대화를 이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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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에 온 지 꽤 많은 시간이 지났음에도, 그들의 오만함은 조금도 변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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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나저나 오늘은 어째 그 불경한 짐승이 보이지를 않는군. 잘나신 길드의 얼굴께서 자리를 비우시니 마음이 참 허하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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빅토르의 비아냥에 다른 이들이 경멸이 담긴 웃음을 터뜨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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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이 말하는 토끼는 유니온의 간판 헌터이자, 그들에게는 영원한 이방인인 루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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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유독 곱상한 외모를 한 남자가 조용히 입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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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국 백작가의 차남, 리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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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그 수인은 오늘 비번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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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목소리에 담긴 은근한 관심을 포착한 빅토르가, 혀를 차며 쏘아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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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아서 무엇하게 리안? 그 천박한 토끼 계집이 안 오면 좋을 일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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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지. 나도 안 보여서 좋을 따름이라고 말한 것일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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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안은 표정 하나 바꾸지 않고 손안의 와인 잔을 빙빙 돌리며 우아하게 받아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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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그의 말을 비웃듯 라운지 건너편 소파에 파묻혀 있던 인물이 조용히 중얼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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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신, 그냥 보고싶은 건 아니구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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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은 토끼의 직설적인 언행에 귀족들의 대화에 정적이 감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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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먼저 정신을 차린 빅토르가, 분노로 붉어진 얼굴로 그녀를 노려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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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년이 감히… 누구 앞에서 천한 말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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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흐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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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리스는 조금도 위축되지 않고 오히려 재미있다는 듯 쫑긋한 잿빛 귀를 까딱까딱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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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는 소파에서 천천히 몸을 일으키며 그들을 향해 경멸과 조소가 뒤섞인 미소를 지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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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면서 그녀는 자신을 향해 삿대질하는 빅토르를 향해 똑같이 손을 뻗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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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아주 우아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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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고 가느다란 가운데 손가락 하나만을 길쭉하게 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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빅토르는 이방인이었지만, 저 표현이 무엇인지정도는 아주 잘 알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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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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빅토르의 얼굴이 경악으로 물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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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도 여기가 제국인 줄 아나 봐여. 옆에 등신은 통통한 토끼 한번 어떻게 해보려고 침이나 질질 흘리면서 다니고. 티 안나는줄 아시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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빅토르와 리안의 얼굴이, 굴욕감으로 시뻘겋게 달아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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빅토르의 손이 허리춤의 장식용 검으로 향하자, 엘리스도 오른쪽 다리를 살짝 앞으로 빼며 자세를 낮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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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운지의 공기가 금방이라도 터질 듯 팽팽하게 부풀어 오르던 바로 그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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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끼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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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운지의 문이 열리며 한 여인이 안으로 들어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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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하얀 머리카락과 그 사이를 가로지르는 선명한 브릿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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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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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는 눈앞에 펼쳐진 일촉즉발의 상황을 보고, 미간을 아주 희미하게 찌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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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이내 아무런 관심도 없다는 듯, 귀족들이 모여있는 쪽에 가볍게 목례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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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그녀는 곧장 엘리스에게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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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오후에 너 센터 파견 임무 있더라. 가서 무례하게 굴지 말고, 농땡이 피우지 마. 알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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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없는 동생을 타이르는 말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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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그녀는 할 말을 마쳤다는 듯, 그대로 몸을 돌려 문으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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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금 그거 말해주려고 여기까지 온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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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리스는 어이없다는 듯 물었다. 오늘 상담하러 간다더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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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나는 문고리를 잡은 채, 뒤도 돌아보지 않고 대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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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 너, 안 가려고 했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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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리스는 움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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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곡을 찔렸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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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갈게. 소란 피우지 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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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철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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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쯧.”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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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리스는 김이 샜다는 듯 털썩 주저 앉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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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란 피우지 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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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나 언니가 그렇게 말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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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날 아침, 나는 약간의 피로감을 안고 상담실 문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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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늦게까지 파고들었던 낡은 논문들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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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피를 내리며 오늘 스케줄을 정리하려던, 바로 그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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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근 한 나를 맞이한 건 토끼도 내담자들도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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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례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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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덜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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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담실 문이 활짝 열리더니, 검은 정장을 입은 장정 여럿이, 내 허락도 없이 거대한 나무 상자를 들고 안으로 들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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움직임에는 군더더기가 없고, 풍기는 기운도 평범한 배달원의 그것은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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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다란 나무상자가 출입물을 간신히 통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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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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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자가 상담실 로비에 대자로 누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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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자 위에는 기괴한 문양이 찍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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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게… 뭡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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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묻자, 그들을 지휘하는 듯한 남자가 내게 다가와 정중하게 허리를 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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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존께서 보내신 물건입니다. 지난번, 의원님의 기물에 손상을 입힌 것에 대한 보상이라고 전하라 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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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화연이 주는 보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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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가 주먹으로 박살냈던, 5만원짜리 조립식 테이블에 대한 보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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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얼타는 사이, 그들은 상자를 해체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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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자가 열리자 안에서 검은 비단에 싸인 거대한 테이블이 모습을 드러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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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이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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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이블이긴한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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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흑같이 검은 흑옥(黑玉)을 통째로 깎아 만든 테이블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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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이블의 다리에는 황금색 용과 봉황 장식이 박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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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그들의 손은 멈추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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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이블이 꺼내진 상자 안쪽 부드러운 비단 더미 속에서 이번에는 검은색으로 번쩍거리는 거대한 명패를 꺼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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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神醫 유선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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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의(神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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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심으로 너무 부담스러운 칭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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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 잠시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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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아담한 상담실은, 이런 제왕의 가구와 칭호를 감당하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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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내 만류는 그들에게는 들리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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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은 테이블을 상담실 중앙에 완벽하게 배치하고, 그 위에 명패를 올리고 나서야 움직임을 멈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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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저희는 이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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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내들은 임무를 마쳤다는 듯, 다시 한번 깍듯하게 고개를 숙이고, 상자의 잔해들을 남김없이 챙겨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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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문을 나서려던 그 남자가 마지막으로 무언가 생각났다는 듯 뒤를 돌아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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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그리고 지존님의 전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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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감정 없는 목소리로, 마치 신탁을 읊듯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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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곧 방문하겠다. 그리 알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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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말을 끝으로, 그들은 소리 없이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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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관자놀이를 지그시 누르면서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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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머리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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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차피 부서진 테이블은 협회에서 지급하는 금액으로 처리하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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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지 않아도 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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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생긴게 그래서 그렇지 상당히 고급스러운 가구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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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다가 명패에 각인된 금색의 글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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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거 설마 진짜 금은 아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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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일단 생각하는 것을 멈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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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시간은 8시. 슬슬 일어나서 준비를 할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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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9시에 바로, 내담자의 예약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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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작은 부엌으로 들어가, 오븐을 예열하고 미리 준비해둔 반죽을 꺼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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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콤한 버터와 설탕이 녹는 냄새가 상담실 안을 가득 채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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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갓 구워낸, 따끈한 쿠키 위에 방금 막 휘저어 올린 새하얀 생크림을 정성스럽게 발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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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마지막으로 딸기 하나를 그 위에 살포시 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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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작은 접시에 담긴 쿠키를, 자화연이 선물한 테이블의 한가운데에 올려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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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 어울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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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은색 테이블 위에 깜찍한 쿠키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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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울리지 않는 두 개의 물건이 만들어 내는 기묘한 풍경을 잠시 바라보고 있을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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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끼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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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확히 9시 정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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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담실의 문이 조심스럽게 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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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누군가가 안으로 들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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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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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는 상담실을 오는 복장과 출근할 때의 복장이 다르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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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 편하게 입어도 될 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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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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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의자에서 일어나, 입꼬리를 살짝 끌어올리며 그녀를 맞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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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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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나도 마주 고개를 숙이며 주저하듯 안으로 들어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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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의 붉은 눈이 일순간 방 중앙을 차지한 검은 테이블과 거대한 명패를 보고 놀란 듯 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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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신경 쓰지 않으셔도 됩니다. 배송이 잘못된 것 같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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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명패라도 좀 치워둬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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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와주셔서 다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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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말에 그녀의 어깨가 미세하게 움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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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히, 조금 걱정했거든요. 혹시 저를 싫어하게 되진 않으셨을까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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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곤란하다는 듯 웃으며 우리 사이에 있었던 모든 껄끄러운 사건들을 수면 위로 꺼내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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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그 모든 원인을 내 탓이라 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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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의는 아니었습니다. 제 능력이 멋대로 실례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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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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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나는 천천히 루나의 상태를 확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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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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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인 스탠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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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는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이곳으로 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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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합 답변] [만족 적합률 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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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그녀를 위해 만들어 둔 음료와 과자를 권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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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태창도 양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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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의나 불안한 심리 상태또한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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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천천히 다음 단계로 넘어가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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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테이블을 향해 손짓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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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위에는 준비해 둔 두 개의 찻잔과 작고 하얀 접시가 놓여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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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시고 싶으신 걸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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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두 개의 잔을 그녀 앞으로 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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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는 씁쓸한 아메리카노, 다른 하나는 달콤한 라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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뭘 좋아할지를 모르겠어서, 일단 두 가지 다 준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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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의 선택은 라떼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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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내 몫인 아메리카노를 가져오며 테이블 위, 작고 하얀 접시를 부드럽게 밀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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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이건… 약속했던 딸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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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웃으며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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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말에, 루나는 접시 위를 내려다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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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곳에는 붉고 탐스러운 딸기가 올라간 쿠키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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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그녀는 아주 오랫동안 망설이다 마침내 조심스럽게 손을 뻗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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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그녀가 쿠키를 집어 들기 직전 마지막 한마디를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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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에 맞으실 지 모르겠습니다. 수인분들은 단것을 그다지 즐기지 않는다는 말들이 있어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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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저는 좋아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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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는 대답과 함께, 쿠키를 작은 새처럼 한입 베어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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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순간, 그녀의 붉은 눈이 놀라움으로 동그랗게 떠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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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 어제 그녀가 받았던 것과는 비교가 되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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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 식어버린 것을 포장했던 어제와 달리 지금 이건 쿠키는 오븐에서 나온 지 5분도 채 지나지 않았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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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안 가득 퍼지는 식감, 버터의 풍미, 부드러운 생크림, 상큼한 딸기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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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장으로 굳어 있던 그녀의 어깨에서 서서히 힘이 빠져나가는 것이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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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시, 이게 내가 가장 선호하는 방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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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스브레이킹을 하는 데, 잘 만든 디저트만큼 확실한 것은 없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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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진짜 상담을 시작할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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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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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인 스탠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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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의 치부를 전부 아는 상담사입니다. 차라리 전부 터놓고 싶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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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합 답변] [만족 적합률 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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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이든, 편하게 말씀해주시겠어요? 어떤 일이든 상관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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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합 답변] [만족 적합률 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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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데 귀 좀 보여주시겠어요? 그때 보니까 예쁘던데요. (낮은 목소리 및 강압적인 톤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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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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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번째 적합 답변은 이해가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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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극히 정석적인 상담사의 접근법이다. 80%라는 높은 만족률이 그것을 증명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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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데, 두번째는 대체 뭐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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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연히 적합률이 낮을 줄 알았는데 의외로 높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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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지어 강압적인 톤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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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통 나의 능력은 정답과 명백한 오답을 보여주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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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이건 두 가지 모두 꽤나 나쁘지 않은 선택지라는 의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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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쿠키를 오물거리는 루나를 바라보며, 두 개의 선택지가 의미하는 바를 빠르게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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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리 봐도 다음 답변에 앞으로의 상담 방향성이 결정될 것만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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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떡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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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깊은 고민에 휩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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