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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12-14 21:31:57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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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으로 돌아와 샤워를 마치고, 거실의 불을 켰다.

나는 젖은 머리를 수건으로 대충 털어내고 의자에 몸을 묻었다.

방 안에서는 창밖의 소음이 희미하게 들려왔다.

컴퓨터를 켜고 협회에서 보낸 메일을 확인했다.

다음 왕진 길드는 해태로 정했다.

협회에서는 일정을 정리해서 바로 알려주기로 했었다.

목요일이나 금요일은 설유월을 만나러 가야 하니….

아마, 다음 주가 될 가능성이 높긴 했다.

지금쯤이면 일정이 도착해있을 것이다.

  • 딸깍.

역시 메일은 도착해 있었고.

화면 위로, 다음 주 나의 일정이 담긴 표가 나타났다.

[수요일 오전 9:00 - 해태 길드]

“응?”

일정은, 예상과는 다르게 왕진은 바로였다.

수요일부터 시작해서, 다음 주 월요일에 끝난다.

그렇다면 이번 주는 왕진과 동시에 설유월의 적응을 도우면 될 것 같았다.

‘지금 뭐 하고 있으려나?

나는 내가 방문하지 않은 설유월의 하루가 궁금해졌다.

아마 오늘은 협회의 교육을 받고, 또 협회의 적응 시설을 돌아다니며 시간을 보냈을 것이다.

기분이 어떤지 정도는 체크하는 게 좋아 보였다.

나는 오랜만에 어빌리티를 사용했다.

설유월에게 핀을 꽂았다.

[설유월] [PINNED]

[현재 상태: 하루 종일 너무나도 많은 것을 보고, 듣고, 경험했습니다. 머릿속이 어지럽고 조금 피곤하지만… 기분은 나쁘지 않았습니다. 다만, 의원님이 직접 알려주셨으면 더 좋았을 것 같습니다.]

[메인 스탠스: 의원님의 방문 날짜는 목요일? 금요일?… 목요일이었으면 좋겠습니다.]

나는 그녀의 상태를 조용히 읽어 내렸다.

역시 설유월은 오늘 하루 꽤나 많은 것을 경험했던 것 같다.

나도 그녀에게 직접 알려주고는 싶지만… 내게 의존하게 되는 현상은 바람직하지 않다.

오랜 시간 이서령이라는 거대한 기둥에 의지해왔던 그녀다.

그 기둥이 사라진 지금, 설유월은 필사적으로 다음 기둥을 찾고 있다.

약간의 틈이 생기면 분명 내게도 쉽게 의존하려는 성향을 보일 것이다.

지금도, 어느 정도 그런 느낌이 있고.

그 대상이 내가 되어서는 안됐다.

결국 설유월은 두 발로 서야 하니까.

따라서 거리감을 적당히 조절하는 게 좋아 보인다.

그래도….

나는 그녀의 마지막 문장을 다시 한번 떠올렸다.

[… 목요일이었으면 좋겠습니다.]

“목요일에 가자.”

왕진은 수요일과 금요일이니까.

이 정도면 큰 문제는 없어 보인다.

나는 스스로를 합리화하며, 컴퓨터를 껐다.

그리고, 오랜만에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진세아의 펜트하우스.

거실의 모든 불이 꺼져 있었다.

오직 거대한 통유리창 너머로 쏟아져 들어오는 서울의 야경만이 그녀의 실루엣을 희미하게 비출 뿐이었다.

그녀는 창문을 통해 한곳만을 바라보고 있었다.

선우의 집.

그녀가 그를 위해 직접 골라준 가장 안전하고 또 가장 완벽한 그곳.

그는 다행히 늦지 않은 시간에, 집에 도착했다.

창문에 불이 켜졌다.

그리고 오랜시간이 지난 후.

다시, 불이 꺼졌다.

“흐우….”

진세아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평소와 똑같은 귀가 시간.

샤워를 하고, 컴퓨터를 잠시 켰다가 잠자리에 들기까지의 루틴.

시간까지도 거의 비슷했다.

즉, 선우는 오늘 그 여자와 저녁 식사를 한 후 다른 곳에 들르지도 다른 누군가를 들이지도 않고, 곧장 자신의 집으로 돌아왔다.

애초에 그가 자신의 집에, 다른 여자를 들이는 법이 없다는 것을 그녀는 잘 알고 있었기도 했고.

그래도… 확인은 필요했으니까.

“…….”

진세아가 우려했던 것이 이런 부분이었다.

자신의 통제가 닿지 않는 영역이 생겨나는 것.

선우가 길드 안에 있다면 괜찮다.

그에게 다가오는 모든 불순한 손길들을 그녀가 전부, 쳐낼 수 있었다.

그녀의 비호 아래 그는 완벽하게 안전했으니까.

하지만 선우가 밖으로 나간 그 순간부터 제약이 생겼다.

길드 내부에서 외부로 뻗어 나가는 위협뿐만이 아니다.

이제는 외부에서 그에게로 향하는 수많은 손길들까지 그녀는 막아낼 수가 없어졌다.

오늘 선우가 만났던 백시은처럼.

사상이 위험하고, 목적은 뻔한 이들.

고작 백시은뿐일까?

진세아는 상상만으로도 온몸의 피가 차갑게 식는 것을 느꼈다.

무엇을 더 속일까?

진세아는 유선우를 사랑한다.

상냥함? 다정함?

무엇 하나 말로 표현할 수 없다.

애초에, 진세아는 유선우를 만나기 전까지 삶의 모든 순간이 고통이었다.

그래서 그녀는 단 한 번도 조급해하지 않았다.

스스로 생각하기에 그녀는 선우와의 관계를 아주 착실하게 쌓아가고 있었다.

헌터와 이방인. 그딴 건 상관없다. 우리는 천천히, 세상에서 가장 이상적인 연인의 모습을 향해 나아가고 있었으니까.

꽤 오랜시간이 걸리겠지만, 분명 결국 그의 옆에는 그녀가 있어야 했다.

그렇게 믿어 의심치 않았다.

그런데.

그런데….

그녀의 머릿속에 또 다른 하나의 장면이 불쑥 떠올랐다.

며칠 전, 그의 상담소에서 마주쳤던 S급 헌터.

루나.

얼굴이 새빨갛게 달아오른 채, 선우의 의자에 앉아있던 모습.

수상할 정도로 급하게 뛰는 심장 소리.

그리고 결정적으로, 실수인 척 위장하며 옷을 훔쳐 달아나던 행위까지.

백시은은 차라리 상대하기 편했다.

그녀는 진세아를 두려워했으니까. 어떻게든 피하려 들었다.

그러나 그 하얀 토끼는 다르다.

순진한 표정 뒤에 욕망을 숨기고 있다.

딱히 물러서지도 않는다.

그게 훨씬 더 까다로웠다.

아무래도.

조금, 문제가 생긴 것 같았다.

바로 그때.

  • 띠링!

소파에 아무렇게나 던져둔 그녀의 스마트폰이 작게 울렸다.

진세아는 무표정한 얼굴로 화면을 확인했다.

그리고, 그녀의 얼굴 위로 화사한 미소가 피어올랐다.

선우♥

그에게서 온 메세지였으니까.

선우♥: 이번 주 수요일이래 ㅋㅋ

사진에는 수요일 오전 9시 해태라고 적힌, 공식 일정이 담겨 있었다.

진세아는 미소를 지었다. 그의 모습을 상상했다.

침대에 누워 메세지를 보낸 것일까?

나를 생각해 준 거구나.

물론 이 사실에 대해서는 이미 알고 있었지만.

그녀는 망설임 없이 바로 통화 버튼을 눌렀다.

  • 여보세요?

수화기 너머로 나른한 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진짜야?”

진세아는 놀란 목소리로 말했다.

이번에도, 절대 들키지 않을 연기를 하며.

그녀의 귓가로 다정한 목소리가 흘러들어왔다.

그리고 진세아는 그 목소리를 들으며, 창밖의 야경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그의 목소리는 이상한 힘을 가지고 있다.

백시은에 대한 분노도, 루나에 대한 경계심도, 그 모든 날카로운 감정들이 그의 목소리 하나에 스르르 녹아내렸다.

진세아는 소파 위로 몸을 뉘었다.

차가운 베개 위로 뜨거워진 뺨을 부볐다.

그리고 천천히.

몇 번의 대화가 이어지고 나서.

“응….”

진세아는 그의 목소리를 들으며, 잠에 빠져들었다.

오랜만에 아주 깊고 평온한 잠에.

  • 자나 보네.

휴대폰 너머의 목소리는, 그렇게 진세아의 집 안에 조용히 울렸다.


수요일 아침.

해태 길드.

스카우트 팀장, 위재완의 사무실은 아침부터 불이 켜져 있었다.

그는 사흘 만에 처음으로 자신의 의자에 앉았다.

최근 아주 바쁘게 돌아다녔다.

외근도 어제부로 끝이다.

그는 다음 주에 있을 유선우의 왕진 신청 명단을, 텅 빈 눈으로 내려다보고 있었다.

유선우의 왕진이 확정됐다.

그가 길드를 나간다는 폭탄선언 이후, 미친 듯이 분노했던 윗선의 압박도 마침내 잦아들었다.

그는 상담 신청서를 취합하고 한 명, 한 명, 명단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S급부터 이제 막 길드에 들어온 C급 신입까지.

상담을 원하는 이들의 이름이 화면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해태에게 있어 유선우라는 이름은 그 정도의 파급력을 지니고 있다.

그는 기계처럼 타자를 쳤다.

밤샘과 외근으로 몸의 근육이 비명을 질렀지만 이상하게도 마음은 편했다.

슬슬 모든 것이 제자리를 찾아가는 듯했으니까.

마지막 신청자의 이름을 명단에 추가하고, 전송 버튼을 누르려고 할 참이었다.

  • 똑똑.

누군가가 방의 문을 두드렸다.

“네.”

위재완은 모니터에 시선을 고정한 채.

무미건조하게 답했다.

  • 안녕하세요 팀장님. 잠시 들어가도 괜찮을까요?

그 목소리를 듣자마자, 위재완의 미간이 살짝 풀렸다.

백시은이었다.

“어, 들어와.”

그는 피곤함 속에서도 반가운 미소를 지으며 답했다.

  • 끼익.

문이 열리고 백시은이 평소와 같은 해맑은 미소와 함께, 안으로 들어섰다.

그녀의 손에는 김이 모락모락 피어나는 커피 두 잔이 들려 있었다.

“밤새우신 것 같아서요. 이거 드세요.”

백시은은 한 잔을 위재완의 책상 위에, 조심스럽게 내려놓았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그의 맞은편 의자에 앉아 그를 바라보았다.

“고마워.”

위재완은 기분 좋게 커피를 받았다.

백시은은 삭막한 길드에 비타민 같은 존재였으니까.

“무슨 일 있어?”

하지만 그녀는 그저 안부를 묻기 위해 온 것이 아닌 듯했다.

무언가 할 말이 있는 표정.

위재완은 그것, 놓치지 않았다.

  • 홀짝.

위재완은 그녀가 건넨 커피를 아무런 의심 없이 입으로 가져갔다.

따뜻하고 달콤한 액체가, 밤샘으로 지쳐있던 몸을 치유하는 듯한 느낌이 든다.

“아… 그게 아니고요… 저도 오늘 진행하는 상담, 신청하려고요."

“아, 선우 왕진 오는 거? 알았….”

잠깐…만….

위재완은 입에서 커피잔을 떼며, 그대로 허공에 멈췄다.

그리고 천천히 찻잔을 책상 위에 다시 내려놓았다.

“…….”

그는 고개를 들어 눈앞의 백시은을 다시 바라보았다.

그녀는 여전히 해맑게 웃고 있었다.

“… 그리고 감사 인사를 전하고 싶어서요.”

“… 무슨?”

“선우… 밖으로 내보내 주신 거, 감사하다고요.”

그 말과 동시에, 위재완의 머릿속이 점점… 하얗게… 물들기 시작했다.

“덕분에 기회가 생겼어요.”

“그러니까… 그게… 무슨… 소리냐고….”

말이, 제대로 나오지 않았다.

이상했다. 혀가 딱딱하게 굳어가는 것 같았다.

그리고 기분이… 이상할 정도로 좋아지고 있었다.

몸의 모든 피로가 눈 녹듯 사라지고 깃털처럼 가벼워지는 느낌.

“기분이 좋아지실 거예요. 제가 마법을 부렸거든요.”

위재완은 점점, 안갯속으로 침잠해가는 의식 속에서 비로소 깨달았다.

커피.

“…….”

그는 이제 아무런 대답도 할 수 없었다. 온몸의 감각이 멀어지고 있었다.

그저 텅 빈 눈으로, 눈앞의 여인을 바라볼 뿐이었다.

그녀는 여전히 천사와도 같은 미소를 짓고 있었다.

“조금 주무시고 일어나시면 전부 다, 괜찮아져 있을 테니까요.”

그리고 그는 지금 깨닫고 있었다.

“선우도 분명, 좋아하게 될 거고요.”

자신이 얼마나 끔찍한 착각을 하고 있었는지를.

그는, 선우를 보호한 게 아니었다.

‘내가….

오히려 그를 지켜주겠다는 명분 아래.

그를 울타리 밖으로 밀어내 버린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