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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소파에 나란히 앉아 아직도 못다 한 이야기를 나누는 두 모녀를, 멀리서 조용히 바라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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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서령의 손이 설유월의 머리카락을 부드럽게 쓰다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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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사람의 대면은 성공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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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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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 벽이란 것은 약간의 균열로 무너지는 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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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십 년간 둘의 사이를 막고 있던 감정의 벽이 허물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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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 모두에게 좋은 시간이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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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유월은 자신을 짓누르던 의무감에서 벗어나 처음으로 어미의 사랑을 확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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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서령 또한 설유월이 자신의 뒤틀린 방식이 아닌 올바른 방식으로 딸을 마주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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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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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담사로서 이 이상으로 도와야 할 일이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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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내 역할은 거의 끝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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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유월은 더 이상 특별 관리 대상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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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평범한 이방인들처럼 천천히, 사회화 과정을 거치면 될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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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그녀의 담당 상담사로서 가끔씩 잘 지내는지 경과만 체크하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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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슬 면회시간이 다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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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 만에 십몇 년간 쌓인 모든 회포를 다 풀 수는 없는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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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여기까지가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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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로 그때 문에서 노크 소리가 들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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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똑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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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문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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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 앞에는 담당 직원이 따뜻한 김이 피어오르는 커다란 보온 도시락을 든 채 서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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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팀장님이 오늘은 점심 식사까지 넣어드리라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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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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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인분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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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그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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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면, 이것까지는 먹고 헤어질만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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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직원에게서 도시락을 건네받으며 감사를 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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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아직 눈가가 붉어진 채 서로에게 기대어 앉아 있는 두 모녀에게로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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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실의 넓은 테이블 위를 깨끗이 치우고 뚜껑을 하나씩 열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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맛있는 고기의 향이 방 안에 기분 좋게 퍼져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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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메뉴는 쌈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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싱싱한 상추와 흰쌀밥, 제육볶음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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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양각색의 정갈한 나물 반찬들 또한 존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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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단 자체가 엄청 공을 들인 티가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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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두 사람의 앞에 각각 수저를 놓아주고 따뜻한 밥그릇을 먼저 놓아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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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사부터 하실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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웃으며 자리에 앉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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쌈밥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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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 이서령은 어떻게 먹는지 알겠지만 설유월이 알지는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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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원에 이와 비슷한 음식이나 문화가 있을지 없을지에 대해서는 잘 모르겠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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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시나 설유월은, 어쩔 줄 모르겠다는 얼굴로 젓가락으로 밥알만 깨작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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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그녀에게 먹는 법을 알려주기 위해 입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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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드시는 건지 알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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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나보다 먼저 움직인 것은 이서령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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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는 내 말을 막는 대신 내 손 위로 자신의 손을 가만히 겹쳐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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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이 직접 하겠다는 이야기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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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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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가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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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서령은 아주 부드러운 목소리로 딸을 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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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는 자신의 앞에 있던 깨끗한 상추 한 장을 들어, 손바닥 위에 펼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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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푸른 잎 위에 밥을 조금 올리고… 고기도 한 점 올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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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서령은 다정하게 설유월에게 쌈을 싸는 법을 가르쳐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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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유월은 어머니의 시연을 지켜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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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그런 그 두 사람의 모습을 흐뭇하게 지켜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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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예쁘고 정성스러운 쌈이 완성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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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성한 그 첫 번째 쌈은 딸을 향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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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서령은, 그 쌈을 내 입을 향해 두 손으로 정중하게 내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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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는 나와 눈을 맞추며 설유월에게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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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탁 위의 가장 웃어른께 먼저 드리는 것이 예의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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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는 내 입에 쌈을 가져다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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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시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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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말하며, 싱긋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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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작스럽긴 했지만, 나는 그녀가 건네는 쌈을 거절하지 않고 받아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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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씹어 삼킨 뒤 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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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합니다. 맛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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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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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서령 또한 수줍은 듯 미소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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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로 그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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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유월이 자신의 앞에 놓인 상추를 다급하게 집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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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그녀는 방금 전 이서령이 했던 것을 그대로 따라 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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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툰 손길로 밥을 올리고, 고기를 얹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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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허겁지겁 완성된 작고 귀여운 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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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당연히 그녀가 그것을 이서령에게 건넬 것이라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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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설유월은 그 쌈을 내게로 내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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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서령과 똑같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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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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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그 호의 앞에 잠시 망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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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보다는 방금 재회한 어머니에게 먼저 드리는 것이 순서에 맞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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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로 그때 내 옆에서, 이서령의 나긋나긋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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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딸이 의원님께 감사한 마음을 담아 드리는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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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는 흐뭇한 미소와 함께,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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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디 받아주시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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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더 이상 거절할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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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가 내민 작은 쌈을, 조심스럽게 입으로 가져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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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천천히 그것을 씹어 삼키고 이번에도 그녀를 바라보며 웃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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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이것도 맛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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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한 마디에 설유월의 얼굴에 환한 웃음꽃이 피어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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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이 내가 그녀에게서 처음으로 보았던, 무방비한 미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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맛있는 점심 식사가 끝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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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는 다시 각자의 세계로 돌아갈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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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와 이서령은 설유월의 방 문 앞에 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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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두 사람을 바라보며 앞으로의 계획을 조심스럽게 입에 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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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 다음 상담은 큰 문제가 없다면 목요일이나 금요일 일 것 같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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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부터는 서서히 상담의 횟수를 줄여나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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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유월은 더 이상 나라는 좁은 창구에만 갇혀 있어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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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유월도 이제는 자신과 같은 처지의 다른 이방인들과 소통하며, 새로운 관계를 맺어야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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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 외의 다른 이들과도 만나며 세상을 배워나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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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무엇보다 협회에서 진행하는 교육과 사회화 과정을 밟아야 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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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내일이 아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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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자 눈앞의 설유월의 표정이 급격히 어두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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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유월의 푸른 눈동자가 천천히, 가라앉는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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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그런 그녀의 반응을 보며 대수롭지 않게 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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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이제 유월 씨도 많이 좋아졌고. 또 큰 문제가 있지 않은 이상, 저와의 만남도 차차 줄어들게 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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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 문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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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계속 저만 보는 것도 질리실 거고. 답답하실 테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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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그녀를 안심시키기 위해 가볍게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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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지 않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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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그녀는 웃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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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천천히 말을 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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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걱정하실 필요는 없습니다. 앞으로는 협회로 가셔서 다른 이방인들과 소통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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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슨 말을 해도 설유월은 듣는 눈치가 이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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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까의 반응도 그렇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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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는 낯을 많이 가리는 성격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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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 입장에서는 또 새로운 세상에 적응을 해야 되는 거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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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에 올 때는 또 맛있는 것들을 잔뜩 가져오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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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그녀의 눈을 보며 약속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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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디 그때까지 잘 지내고 계셔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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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그 한마디에 차가웠던 그녀의 표정에 희미한 균열이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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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의 굳었던 입술이 아주 살짝 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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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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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웃으며 고개를 끄덕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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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만남은 더 좋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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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설유월은 자신의 방으로 다시 들어갔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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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와 이서령은 협회 시설의 복도를 걸어 돌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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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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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서령은 무언가 할 말이 있는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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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속 움찔움찔하며 정확히, 나의 반발자국 뒤를 따라올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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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침내 그녀가 작은 목소리로 나를 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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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원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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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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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걸음을 멈추지 않은 채 고개만 살짝 돌려 그녀를 바라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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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서령은 내 눈을 마주치지 못했다. 비단 장포의 옷소매만 만지작거릴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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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는 아주 오랫동안 다음 말을 골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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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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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말씀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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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담담히 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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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돌아간 후 많은 고민을 했습니다… 부모라는 것을 핑계로 아이를 너무 구속한 것은 아니었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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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서령도 나름대로 고민 끝에 결론을 내린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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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월이에게 너무 미안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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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고개를 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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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의 자학을 멈추고자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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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럴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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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예상 밖의 대답에 이서령의 젖은 눈동자가 흔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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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맹주님도 어머니는 처음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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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으로도 그녀는, 설유월의 어머니로 살아가야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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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간의 죄책감은 관계 개선에 있어 도움이 되겠지만, 그 모든 짐을 그녀 혼자서 짊어지게 할 수는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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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이서령의 짐을 조금 덜어주고자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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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다가 맹주님께서 살아오셨던 그 세상… 중원을 고려한다면, 그 선택은 오히려 어느정도는 합리적이었을지도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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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게 내가 내린 결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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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의 방식이 옳았다는 것은 절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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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만, 어느정도는 참작할 여지가 있다는 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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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 이 세계에 와서도 그 방식을 고수했다면 이야기가 달랐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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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랬다면 오늘 이서령은 설유월을 보지 못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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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서령은 변할 줄 아는 부모였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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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의 잘못을 제대로 마주할 줄 아는 사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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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말에 이서령의 입술이, 아주 작게 벌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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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이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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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의 눈에서 눈물 한 방울이 흘러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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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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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빠르게 주머니를 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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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지는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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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이 순간에도 그녀의 눈물은 멈추지 않고 하얀 뺨 위로 흘러내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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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어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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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도에는 지나가는 사람이 너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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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서령의 체면도 체면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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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망설이다가 결국 내가 입고 있던 하얀 가운의 부드러운 소매 끝을 끌어당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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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조심스럽게, 그녀의 젖은 눈가로 가져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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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그녀의 눈물을 가만히 닦아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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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질렀다가는 괜히 화장이 번질 수도 있었기에 톡톡, 끝을 두드려 물기를 흡수하는 방식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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옷감 너머로, 그녀 눈물의 뜨거운 온기가 희미하게 전해져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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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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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서령의 움직임이 멎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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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는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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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서령의 젖은 눈동자에 내 모습이 담겨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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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간의 놀라움이 뒤섞여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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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주제넘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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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긴 무림맹주의 눈물을 옷소매로 닦아주는 행위는 조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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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그 정적을 견디지 못하고, 결국 머쓱한 표정으로 그녀에게 변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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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시면… 눈이 부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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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자 그녀의 붉은 입술이 아주 작게 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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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언가, 말을 하려는 듯하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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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내 고개를 살짝 숙이며 피식하고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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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은 내가 그녀에게서 처음으로 본, 소녀 같은 웃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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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는 눈물에 젖은 내 하얀 옷소매를 들어 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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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그 축축한 감촉을 자신의 손가락으로 매만지며 나직하게 속삭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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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원님에 옷에… 제 흔적을 남기고 말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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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서령의 젖은 붉은 눈동자가 나를 올려다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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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모로… 정말,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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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서령은 내 옷소매와 나의 얼굴을 번갈아 바라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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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의원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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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는 아주 정중하게 허리를 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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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으로도…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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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치 웃어른을 모시는 듯한 낮은 자세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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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는 내 그림자조차 밟지 않으려는 듯 조심스럽게 한 걸음, 물러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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