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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12-14 21:31:57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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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소파에 나란히 앉아 아직도 못다 한 이야기를 나누는 두 모녀를, 멀리서 조용히 바라보았다.

이서령의 손이 설유월의 머리카락을 부드럽게 쓰다듬고 있다.

두 사람의 대면은 성공적이다.

좋은 이야기다.

원래 벽이란 것은 약간의 균열로 무너지는 법.

수십 년간 둘의 사이를 막고 있던 감정의 벽이 허물어졌다.

둘 모두에게 좋은 시간이었을 것이다.

설유월은 자신을 짓누르던 의무감에서 벗어나 처음으로 어미의 사랑을 확인했다.

이서령 또한 설유월이 자신의 뒤틀린 방식이 아닌 올바른 방식으로 딸을 마주하게 되었다.

‘좋네.

상담사로서 이 이상으로 도와야 할 일이 있을까?

이제 내 역할은 거의 끝났다.

설유월은 더 이상 특별 관리 대상이 아니다.

다른 평범한 이방인들처럼 천천히, 사회화 과정을 거치면 될 일.

나는 그녀의 담당 상담사로서 가끔씩 잘 지내는지 경과만 체크하면 될 것이다.

슬슬 면회시간이 다 되었다.

하루 만에 십몇 년간 쌓인 모든 회포를 다 풀 수는 없는 법이다.

오늘은, 여기까지가 좋겠다.

바로 그때 문에서 노크 소리가 들려왔다.

  • 똑똑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문을 열었다.

문 앞에는 담당 직원이 따뜻한 김이 피어오르는 커다란 보온 도시락을 든 채 서 있었다.

“팀장님이 오늘은 점심 식사까지 넣어드리라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여기….”

“아, 감사합니다.”

“3인분이에요.”

나는 그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이러면, 이것까지는 먹고 헤어질만하겠다.

나는 직원에게서 도시락을 건네받으며 감사를 표했다.

그리고 아직 눈가가 붉어진 채 서로에게 기대어 앉아 있는 두 모녀에게로 돌아왔다.

거실의 넓은 테이블 위를 깨끗이 치우고 뚜껑을 하나씩 열기 시작했다.

맛있는 고기의 향이 방 안에 기분 좋게 퍼져나갔다.

오늘의 메뉴는 쌈밥.

싱싱한 상추와 흰쌀밥, 제육볶음까지.

각양각색의 정갈한 나물 반찬들 또한 존재했다.

식단 자체가 엄청 공을 들인 티가 난다.

나는 두 사람의 앞에 각각 수저를 놓아주고 따뜻한 밥그릇을 먼저 놓아주었다.

“식사부터 하실까요?”

웃으며 자리에 앉았다.

쌈밥이라….

아마 이서령은 어떻게 먹는지 알겠지만 설유월이 알지는 모르겠다.

중원에 이와 비슷한 음식이나 문화가 있을지 없을지에 대해서는 잘 모르겠으니까.

역시나 설유월은, 어쩔 줄 모르겠다는 얼굴로 젓가락으로 밥알만 깨작이고 있었다.

나는 그녀에게 먹는 법을 알려주기 위해 입을 열었다.

“어떻게 드시는 건지 알려….”

하지만 나보다 먼저 움직인 것은 이서령이었다.

그녀는 내 말을 막는 대신 내 손 위로 자신의 손을 가만히 겹쳐올렸다.

자신이 직접 하겠다는 이야기 같았다.

그리고.

“아가야.”

이서령은 아주 부드러운 목소리로 딸을 불렀다.

그녀는 자신의 앞에 있던 깨끗한 상추 한 장을 들어, 손바닥 위에 펼쳤다.

“이 푸른 잎 위에 밥을 조금 올리고… 고기도 한 점 올리고….”

이서령은 다정하게 설유월에게 쌈을 싸는 법을 가르쳐 주었다.

설유월은 어머니의 시연을 지켜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그런 그 두 사람의 모습을 흐뭇하게 지켜봤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예쁘고 정성스러운 쌈이 완성됐다.

완성한 그 첫 번째 쌈은 딸을 향하지 않았다.

이서령은, 그 쌈을 내 입을 향해 두 손으로 정중하게 내밀었다.

그녀는 나와 눈을 맞추며 설유월에게 말했다.

“식탁 위의 가장 웃어른께 먼저 드리는 것이 예의란다.”

그녀는 내 입에 쌈을 가져다줬다.

“드시지요.”

그렇게 말하며, 싱긋 웃었다.

갑작스럽긴 했지만, 나는 그녀가 건네는 쌈을 거절하지 않고 받아먹었다.

잘 씹어 삼킨 뒤 답했다.

“감사합니다. 맛있네요.”

“아닙니다.”

이서령 또한 수줍은 듯 미소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바로 그 순간이었다.

설유월이 자신의 앞에 놓인 상추를 다급하게 집어 들었다.

그리고 그녀는 방금 전 이서령이 했던 것을 그대로 따라 하기 시작했다.

서툰 손길로 밥을 올리고, 고기를 얹고.

그렇게 허겁지겁 완성된 작고 귀여운 쌈.

나는 당연히 그녀가 그것을 이서령에게 건넬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설유월은 그 쌈을 내게로 내밀었다.

이서령과 똑같이.

“음….”

나는 그 호의 앞에 잠시 망설였다.

나보다는 방금 재회한 어머니에게 먼저 드리는 것이 순서에 맞지 않을까.

바로 그때 내 옆에서, 이서령의 나긋나긋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제 딸이 의원님께 감사한 마음을 담아 드리는 것 같습니다.”

그녀는 흐뭇한 미소와 함께, 덧붙였다.

“부디 받아주시지요.”

나는 더 이상 거절할 수 없었다.

그녀가 내민 작은 쌈을, 조심스럽게 입으로 가져갔다.

나는 천천히 그것을 씹어 삼키고 이번에도 그녀를 바라보며 웃어주었다.

“네. 이것도 맛있네요.”

그 한 마디에 설유월의 얼굴에 환한 웃음꽃이 피어올랐다.

그것이 내가 그녀에게서 처음으로 보았던, 무방비한 미소였다.


맛있는 점심 식사가 끝났다.

이제는 다시 각자의 세계로 돌아갈 시간이었다.

나와 이서령은 설유월의 방 문 앞에 섰다.

나는 두 사람을 바라보며 앞으로의 계획을 조심스럽게 입에 담았다.

“아마… 다음 상담은 큰 문제가 없다면 목요일이나 금요일 일 것 같네요.”

이제부터는 서서히 상담의 횟수를 줄여나가야 한다.

설유월은 더 이상 나라는 좁은 창구에만 갇혀 있어서는 안 된다.

설유월도 이제는 자신과 같은 처지의 다른 이방인들과 소통하며, 새로운 관계를 맺어야 하고.

어머니 외의 다른 이들과도 만나며 세상을 배워나가야 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협회에서 진행하는 교육과 사회화 과정을 밟아야 하니까.

“네…? 내일이 아니라….”

그러자 눈앞의 설유월의 표정이 급격히 어두워졌다.

설유월의 푸른 눈동자가 천천히, 가라앉는 듯했다.

나는 그런 그녀의 반응을 보며 대수롭지 않게 답했다.

“네. 이제 유월 씨도 많이 좋아졌고. 또 큰 문제가 있지 않은 이상, 저와의 만남도 차차 줄어들게 될 것 같습니다.”

“큰… 문제….”

“사실 계속 저만 보는 것도 질리실 거고. 답답하실 테니까요.”

나는 그녀를 안심시키기 위해 가볍게 웃었다.

“그렇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그녀는 웃지 않았다.

나는 천천히 말을 이었다.

“너무 걱정하실 필요는 없습니다. 앞으로는 협회로 가셔서 다른 이방인들과 소통을….”

무슨 말을 해도 설유월은 듣는 눈치가 이니었다.

아까의 반응도 그렇고….

그녀는 낯을 많이 가리는 성격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녀 입장에서는 또 새로운 세상에 적응을 해야 되는 거니까.

“다음에 올 때는 또 맛있는 것들을 잔뜩 가져오겠습니다.”

나는 그녀의 눈을 보며 약속했다.

“부디 그때까지 잘 지내고 계셔야 합니다.”

내 그 한마디에 차가웠던 그녀의 표정에 희미한 균열이 생겼다.

그녀의 굳었던 입술이 아주 살짝 열렸다.

“네.”

나는 웃으며 고개를 끄덕거렸다.

다음 만남은 더 좋을 것이다.

그렇게 설유월은 자신의 방으로 다시 들어갔고.

나와 이서령은 협회 시설의 복도를 걸어 돌아갔다.

“…….”

이서령은 무언가 할 말이 있는 듯했다.

계속 움찔움찔하며 정확히, 나의 반발자국 뒤를 따라올 뿐.

마침내 그녀가 작은 목소리로 나를 불렀다.

“의원님….”

“네.”

나는 걸음을 멈추지 않은 채 고개만 살짝 돌려 그녀를 바라보았다.

이서령은 내 눈을 마주치지 못했다. 비단 장포의 옷소매만 만지작거릴 뿐.

그녀는 아주 오랫동안 다음 말을 골랐다.

“너무… 감사합니다.”

“별말씀을요.”

나는 담담히 답했다.

“그날 돌아간 후 많은 고민을 했습니다… 부모라는 것을 핑계로 아이를 너무 구속한 것은 아니었을지.”

이서령도 나름대로 고민 끝에 결론을 내린 듯했다.

“유월이에게 너무 미안하….”

나는 고개를 저었다.

그녀의 자학을 멈추고자 했다.

“그럴 수 있습니다.”

내 예상 밖의 대답에 이서령의 젖은 눈동자가 흔들렸다.

“맹주님도 어머니는 처음이니까요.”

앞으로도 그녀는, 설유월의 어머니로 살아가야만 한다.

약간의 죄책감은 관계 개선에 있어 도움이 되겠지만, 그 모든 짐을 그녀 혼자서 짊어지게 할 수는 없었다.

나는 이서령의 짐을 조금 덜어주고자 했다.

“게다가 맹주님께서 살아오셨던 그 세상… 중원을 고려한다면, 그 선택은 오히려 어느정도는 합리적이었을지도 모릅니다.”

그게 내가 내린 결론이었다.

그녀의 방식이 옳았다는 것은 절대 아니다.

다만, 어느정도는 참작할 여지가 있다는 뜻.

만약, 이 세계에 와서도 그 방식을 고수했다면 이야기가 달랐겠지만….

그랬다면 오늘 이서령은 설유월을 보지 못했을 것이다.

이서령은 변할 줄 아는 부모였고.

자신의 잘못을 제대로 마주할 줄 아는 사람이었다.

내 말에 이서령의 입술이, 아주 작게 벌어졌다.

그리고 이내.

그녀의 눈에서 눈물 한 방울이 흘러내렸다.

이런.

나는 빠르게 주머니를 뒤졌다.

휴지는 없었다.

그러나 이 순간에도 그녀의 눈물은 멈추지 않고 하얀 뺨 위로 흘러내리고 있었다.

‘아… 어쩌지.

복도에는 지나가는 사람이 너무 많다.

이서령의 체면도 체면이니까….

나는 망설이다가 결국 내가 입고 있던 하얀 가운의 부드러운 소매 끝을 끌어당겼다.

그리고 조심스럽게, 그녀의 젖은 눈가로 가져갔다.

나는 그녀의 눈물을 가만히 닦아주었다.

문질렀다가는 괜히 화장이 번질 수도 있었기에 톡톡, 끝을 두드려 물기를 흡수하는 방식으로.

옷감 너머로, 그녀 눈물의 뜨거운 온기가 희미하게 전해져 왔다.

“아….”

이서령의 움직임이 멎었다.

그녀는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이서령의 젖은 눈동자에 내 모습이 담겨 있었다.

약간의 놀라움이 뒤섞여 있다.

너무 주제넘었나….

하긴 무림맹주의 눈물을 옷소매로 닦아주는 행위는 조금….

나는 그 정적을 견디지 못하고, 결국 머쓱한 표정으로 그녀에게 변명했다.

“우시면… 눈이 부으니까요.”

그러자 그녀의 붉은 입술이 아주 작게 열렸다.

무언가, 말을 하려는 듯하다가.

이내 고개를 살짝 숙이며 피식하고 웃었다.

그것은 내가 그녀에게서 처음으로 본, 소녀 같은 웃음이었다.

그녀는 눈물에 젖은 내 하얀 옷소매를 들어 올렸다.

그리고 그 축축한 감촉을 자신의 손가락으로 매만지며 나직하게 속삭였다.

“의원님에 옷에… 제 흔적을 남기고 말았네요.”

이서령의 젖은 붉은 눈동자가 나를 올려다보았다.

“여러모로… 정말, 감사합니다….”

이서령은 내 옷소매와 나의 얼굴을 번갈아 바라보았다.

“그리고··· 의원님···.”

그녀는 아주 정중하게 허리를 숙였다.

“앞으로도…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마치 웃어른을 모시는 듯한 낮은 자세로.

그녀는 내 그림자조차 밟지 않으려는 듯 조심스럽게 한 걸음, 물러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