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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 손님 괜찮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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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원이 떨어진 샘플을 주우며 친절히 물었다.
 
루나는 고개를 꾸벅 숙이고는 재빠르게 그들을 뒤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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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는 충격에 빠졌지만, 도망치지는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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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야 루나가 잘못한 것은 하나도 없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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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사람을 다시 발견했다.
 
선생님과 여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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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이제 보니까 알 것 같다.
 
가만히 떠올려 보니 본 적이 있는 얼굴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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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특한 흑백색의 머리카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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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TV를 통해 봤었다.
 
엘리스의 등에 업혀 정신을 잃고 있던 이방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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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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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사실을 깨닫는 순간 루나의 마음이 아주 조금 편안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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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이트 같은 게 아니었구나.
 
이방인의 사회 적응을 위한 선생님의 업무 연장선이라고 생각하니 조금 마음이 편안해지는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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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이건 업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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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사람은 손을 꽉 잡고 돈까스를 판매하는 식당 안으로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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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는 쇼핑몰 기둥 뒤에 몸을 숨긴 채 창문 너머로, 식당 안을 훔쳐보았다.
 
두 사람은, 마주 보고 앉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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곧, 그들의 앞에 커다란 접시가 놓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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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은 아주 자연스럽게, 여자의 접시를 자신의 앞으로 가져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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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나이프를 사용해 먹기 좋은 크기로 정성스럽게 돈까스를 잘라주기 시작했다.
 
루나는 자신도 모르게 입술을 살짝 깨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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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은 잘라낸 고기 한 점을 포크로 찍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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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여자에게 포크를 쥐는 방법까지 손동작으로 자세히 보여주며, 다정하게 가르쳐 주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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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바로 다음 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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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이 그 포크를 그대로, 여자의 입가로 가져갔다.
 
여자는 아주 당연하다는 듯, 아기 새처럼 그 음식을 받아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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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음식을 삼킨 여자는 붉은 혀를 천천히 내밀어, 자신의 윗입술에 묻은 소스 자국을 핥아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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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고는 그대로 고개를 들어, 선생님을 올려다보았다.
 
솔직히 말해, 그 푸른 눈동자에서는 더 이상 아기 새 따위는 남아있지 않았다.
 
먹이를 받아먹는 새끼 맹수의 눈빛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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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안타깝게도, 매우 안타깝게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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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은 그 시선을 보지 못했다.
 
그는 다시 고개를 숙여 남은 돈까스를 마저 잘라주고 있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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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직 루나만이 그 모든 것을 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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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은 다시 한번, 손가락으로 새우튀김을 가르키며 이번에는 이걸 먹고 싶다며 어필했다.
 
선생님은 그런 그녀의 모습이 기특하다는 듯, 기분 좋은 미소를 지었다.
 
그는 포크로 튀김을 찍어 다시, 그녀의 입가로 가져다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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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여성은 그 튀김을 받아먹으며, 포크에 남은 마지막 튀김 부스러기까지 쪽, 하는 소리를 내어 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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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인의 귀는, 듣고자 하면 전부 들을 수 있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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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나는 심장이 점점 얼어붙는 것을 느꼈다.
 
여성은 멈추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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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는 선생님의 손에서 포크를 아주 자연스럽게, 빼앗아 들었다.
 
이번에는 자신이 돈까스 한 조각을 찍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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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는 그것을 선생님의 입가로, 가져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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먹으라는 제스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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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은, 잠시, 당황한 듯했지만 이내 그녀의 행동을 보며 고개를 끄덕거리더니.
 
그는 그녀가 건네는 음식을 받아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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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모든 광경을 루나는 더 이상 지켜볼 수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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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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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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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로 옆 아이스크림 가게 앞에서, 서 있던 남성이 눈을 비볐다.
 
분명 누군가 서 있었던 것 같은데.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루나는··· 토끼굴로 긴급하게 탈출하는데 성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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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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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옷을 담은 쇼핑백을 한 아름 들고, 우리는 루나 필드를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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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새 해는 저물었고 거리는 주황빛 노을에 물들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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옷도 샀고.
 
맛있는 돈까스도 먹었고.
 
설유월에게 속세의 디저트의 맛도 보여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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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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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옆에서 작은 콧노래 소리가 들려왔다.
 
설유월 또한 오늘 하루가 꽤나 만족스러웠는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작은 흥얼거림을 내뱉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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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슬슬 그녀의 마음이나 심리 상태가 충분히 안정되었다고 판단했다.
 
우리는 백화점에 들어선 순간부터 지금까지, 계속 손을 잡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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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는 놓아도 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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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아주 자연스럽게 잡고 있던 손을 스르륵 빼려 했다.
 
하지만 바로 그 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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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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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손을 놓치지 않으려는 듯 엄청난 반응 속도로 그녀의 작은 손이 다시 내 손을 붙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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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속으로 쓴웃음을 지었다.
 
아직은 아닌 걸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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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괜찮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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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외출은 상당히 성공적이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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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유월은 오늘 처음으로, 스스로 원하는 것을 선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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옷 가게에서는 원하는 옷을 골랐고.
 
음식점에서는 원하는 음식을 골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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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게 원하는 것을 요구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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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의 진짜 ‘자아’가 생겨나는 과정이라 봐도 될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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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그런 그녀의 손을 잡은 채, 다시 협회의 격리 시설.
 
그녀가 머무는 방으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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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유월의 태도는 나올 때와는 180도 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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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눅 들어 고개를 푹 숙이고 불안에 떨며 나왔던 오전과는 다르게….
 
지금은 신기한 듯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새로운 문물들을 하나라도 눈에 담으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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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그대로 설유월의 방 안으로 들어갔다.
 
양손 가득 들고 있던 쇼핑백들을, 거실 테이블 위에 와르르 내려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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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쁜 옷들도 있고.
 
맛있는 간식들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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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정리를 마쳤다.
 
텅 비어있던 모델하우스는 이제야 좀 사람 사는 듯한 느낌이 나는 것 같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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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부드럽게 웃으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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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여기까지입니다. 유월 씨.”
 
“푹 쉬시고, 오늘 있었던 일들을 천천히 다시 생각해 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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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그녀에게 새로운 숙제를 내주었다.
 
오늘 무엇을 보았고, 무엇을 느꼈는지.
 
어떤 기분이었고, 또 어떤 감정이 들었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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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아직 끝나지 않은 첫 번째 숙제, ‘하고 싶은 일’에 대해서도, 잊지 말라는 말과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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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모든 것을 마무리하고 돌아서려던 바로 그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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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원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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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지만 전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또렷한 목소리.
 
나는 걸음을 멈추고 그녀를 돌아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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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유월은 나를 똑바로 올려다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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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푸른 눈동자에는 작고 다부진 결의가 담겨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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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는 망설임 없이 바로 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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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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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는 아주 작게 숨을 들이마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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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를 뵙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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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유월은 내게, 이서령을 보고 싶다고 말했다.
 
나는 그녀의 눈을 들여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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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유월]
 
[메인 스탠스]
 
[어머니가 원했던 완벽한 딸이 되는 데에는 실패했습니다. 그러나 오늘, 그녀는 처음으로 ‘나’ 자신으로 존재하는 법을 배웠습니다. 이제 이 모습 그대로, 어머니를 마주하고 싶습니다.]
 
[마침내, 어머니와 대화를 할 준비가 된 것 같습니다.]
 
그 안에는 어떠한 거짓이나 의무감도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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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결정은… 설유월이 자신의 의지로 내린, 가장 어렵고 용감한 결정이었다.
 
오늘 하루.
 
그녀가 낯선 세상을 경험했던 그 모든 과정은, 설유월에게 있어 새로운 기폭제가 되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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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백 벌의 옷 앞에서 스스로의 판단으로 옷을 고르고.
 
음식 하나를 먹는 것마저 스스로의 판단으로 결정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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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소한 것 하나하나, 전부.
 
그녀가 원하는 것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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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모든 경험이 설유월이라는 자아를 일깨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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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게, 잿더미 속에 묻혀 있던 진짜 설유월이었다.
 
[적합 답변] [만족 적합률 100%]
 
[원하시는 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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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합 답변] [만족 적합률 100%]
 
[(대견하다는 표정으로, 그녀의 머리를, 아주 부드럽게 쓰다듬어 주십시오.)]
 
100퍼센트와, 100센트의 만남이라….
 
이런 경우는 또 처음이었다.
 
그러나 두 선택지 모두 고려할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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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그중 하나를 고르는 대신, 두 가지를 모두 해주기로 했다.
 
지금 그녀에게는 그 둘 모두가 필요할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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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의 앞으로 아주 천천히 다가갔다.
 
그리고, 조심스럽게 손을 뻗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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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의 머리카락 위로 손을, 가만히 얹었다.
 
내 손길이 닿자, 설유월은 눈을 천천히 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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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그녀의 머리를 아주 천천히, 대견하다는 마음을 가득 담아, 부드럽게 쓰다듬어 주었다.
 
설유월은 내 손길을 느끼며.
 
그녀의 굳게 닫혔던 눈꺼풀이 파르르, 떨렸다.
 
나는 그런 그녀에게 나직한 목소리로 말했다.
 
“원하시는 대로.”
 
이서령도 분명, 그걸 원하고 있을 것이다.
 
***
 
- 띠리리리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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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나의 토끼굴.
 
이불을 머리끝까지 뒤집어쓴 채, 웅크리고 있던 루나는 이불 밖으로 손만 내밀어 전화를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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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언니? 어디 갔어? 점심시간 끝났는데… 무슨 일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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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화기 너머로, 엘리스의 걱정이 묻어나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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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갑자기 몸이 너무 안 좋아서… 집 왔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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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헉, 진짜? 어디 아파? 죽이라도 사 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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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픈 건 아니다.
 
뭐라 해야 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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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히 말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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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나도 이 감정을 뭐라 딱 잘라 정의하기가 너무나도 어려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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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괜찮아… 그냥, 조금 쉬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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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알았어… 내가 잘 말해둘게… 혹시, 뭐 먹고 싶은 거라도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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먹고 싶은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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먹고 싶은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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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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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까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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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응, 알았어. 제일 맛있는 걸로 사 갈게. 언니 아무 생각 말고 푹 쉬고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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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리스는 그대로 전화를 끊었다.
 
루나는 갑자기 궁금증이 생겼다.
 
진짜 돈까스가 먹고 싶은 걸까?
 
아니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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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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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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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나는 그대로 폰을 내려놨다.
 
핸드폰이 바닥에 부딪히는 소리가 방 안에 울려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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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나는, 천천히 이불을 들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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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끼굴 이불 아래.
 
그곳에는 하얀색 의사 가운이 웅크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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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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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동적으로 가지고 들어와 버렸다.
 
이성을 잃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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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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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나는 조심스럽게 향을 맡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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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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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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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탁한 것이 전부 의미가 없어져 버렸다.
 
오히려, 전보다 더 심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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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괜찮다.
 
뭐, 피할 수 없으면 즐기라는 말도 있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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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나는 즐기기로 마음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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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는 가운을 아주 소중하게 끌어안았다.
 
그리고, 그 안에 아주 깊숙하게 얼굴을 파묻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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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미하게 남은 그의 향기와 그 위를 뒤덮은 자신의 향기가 뒤섞여 기묘하고, 아찔한 안정감을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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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치 선생님과 같은 공간… 같은 침대에 함께 누워 있는 듯한 느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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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의 안정을 얻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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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그녀에게는 이것이, 유일한 구원이자.
 
할 수 있는 최선의 행동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