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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주말 동안 휴식을 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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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터를 그만두면 편해질 줄 알았는데, 택도없는 소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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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어도 이번 주의 업무 강도는 내 헌터시절의 몇 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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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는 월급까지 몇 배는 아니라는 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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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나] [PINN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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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상태: 스트레스성 폭식 중. 심리적 불안정 상태. 그러나 즉각적인 위험은 감지되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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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인 스탠스: 주말이 끝나가는 것이 두렵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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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그냥 소파에 누워 뒹구는 휴식은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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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유니온 길드의 이방인, 루나의 상태를 계속 주시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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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의 심리상태는 불안정했고 혹여나, 혹시나 문제가 생기면 바로 조치를 해야 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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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지랖 아니냐고 반문할 수도 있겠지만 어쩔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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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 일종의 직업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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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정정하자. 능력으로 얻은 병 능력병에 가깝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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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루나는 이것저것 닥치는 대로 먹고 있는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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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디 많이 먹고 많이 자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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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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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휴식이란, 다음 업무를 잘 수행하기 위한 연장선에 불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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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터 상담사라는 자격증을 취득하고, 첫 상담도 성공적으로 마쳤지만… 나는 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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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적으로 내가 가진 상담사로서의 지식과 경험은 부족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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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 부분을 내 능력에 기대고 있을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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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나는 심리학계의 권위자들이 작성한 논문들을 수집해 숙소에 산더미처럼 쌓아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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협회에서 직접 받아온 것들도 있고, 밤새 인터넷에서 학술지를 긁어모아 프린트 한 것들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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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세계의 심리학계 권위자들이 이방인과 헌터들에 대해 저술한 논문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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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꽤 많이 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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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분히 인지하고 열심히 실천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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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그 중 아직 손대지 않은, 가장 아래쪽 논문 더미로 손을 뻗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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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스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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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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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슬아슬하게 균형을 잡고 있던 논문 더미가, 내가 한 장을 빼내는 순간 무게 중심을 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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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의 산이 우르르 무너져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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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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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한숨을 쉬며 논문 더미들을 정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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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그러던 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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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독 새하얀 종이들 사이로, 손때가 묻어 누렇게 변색하고 가장자리가 너덜너덜해진 이질적인 논문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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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지 이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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협회에서 제공한 공식 논문 더미 사이에 교묘하게 끼워져 있었던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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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방인과 각성 내담자들의 심리적 위험성에 대한 고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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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의 제목이 상당히 위협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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협회에서 이런 걸 받은 기억은 없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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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지금 내가 찬물 더운물 가릴 처지는 아니다. 나는 홀린 듯 그 낡은 문서를 집어 들어 읽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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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에 앞서, 모든 과정은 필자의 흥미에서 시작된 비공식적 기록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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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은 내담자 · 상담사 간 라포 형성의 실패 사례를 주로 다루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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밑줄과 형광펜으로 빼곡한 페이지에는, 한 제국 출신 이방인의 사례가 실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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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례 1-A: 제국 출신 이방인의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PTSD) 심화 과정 분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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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담자(추정 A급, 前 제국 기사단 부단장)는 상담 초기부터 극심한 적대감을 표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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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담 내용이, 토씨 하나 틀리지 않은 대화록 형태로 전부 기록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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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적으로 상담 내용은 그 어떤 경우에도 외부 반출이 불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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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대체 어떻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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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회차 녹취록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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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담사]: A 씨가 현재 느끼고 있는 여러 감정적 문제에 대해, 함께 이야기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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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담자]: 닥쳐라! 네놈 따위의 감언이설에 넘어갈 내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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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그 아래에는, 붉은 펜으로 휘갈겨 쓴 듯한 첨언이 달려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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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담자는 과거 전쟁 포로 시절의 트라우마로 인해 상담사의 모든 질문을 적국의 심문으로 간주함. 일반적 접근은 그의 피해망상을 강화할 뿐, 무의미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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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페이지를 넘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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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회차의 기록은 더욱 가관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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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회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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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담사]: A님께서 겪은 상실감에 대해 유감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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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담자]: (테이블을 강하게 내려치는 소리) 상실? 네놈이 감히 상실을 논해? 나는 패배했을지언정 기사로서의 긍지를 잃은 적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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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감적 접근은 내담자의 심리를 정면으로 공격하는 행위로 인식됨. 라포 형성 실패. 내담자의 적대감, 위험 수준으로 증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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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담사의 모든 노력을 비웃듯, 내담자의 저항은 점점 더 폭력적으로 변해갔다. 그리고 마침내, 마지막 장에 이르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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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회차 녹취록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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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담사]: A 님. 이곳은 새로운 세상이며 받아들여야 합니다. 패배는 끝이 아니고 그 경험을 극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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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담자]: … 패배?! 카일!!! 네놈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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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자가 끌리는 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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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담사]: 저는 A 님을 돕고 싶어서…! 잠시만… 진정하세… 끄아아아아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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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명과 함께 무언가 부러지는 소리, 이후 녹취 상태 불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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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취 종료. 내담자는 상담사를 자신을 고문하던 적국의 장교로 완전히 오인. 그의 양팔을 골절시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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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건 경과: 내담자 A는 현재 헌터 협회의 교도소에서 수감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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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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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게… 대체 뭐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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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재빠르게 논문의 맨 앞장을 펼쳤다. 이름은 적혀있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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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게 진짜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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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마른침을 삼키며, 떨리는 손으로 다음 페이지를 넘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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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이를 넘기자, 이전과는 다른 결의 경고가 나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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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엔 내담자의 폭력성이 아닌, 상담사가 마주하게 될 또 다른 종류의 위험에 대한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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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이를 경계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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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성자와 이방인은 불안정한 마력의 흐름으로 인해 감정의 증폭 현상을 겪는 경우가 잦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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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 알고 있는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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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생긴 정말 많은 이유 중 하나기도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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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은 계속 이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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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깊은 라포가 형성되었을 때 내담자는 자신의 모든 긍정적 감정, 혹은 갈망을 상담사에게 투영하는 '전이' 현상을 보일 수 있다. 이것이 애정 관계로 발전할 경우, 상담사는 위험에 처하게 될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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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은 이것을 감정의 증폭 현상을 겪는 각성자와 이방인에게만 나타나는 특수 사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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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이적 이성애라 명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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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례는 꽤나 충격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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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례 4-C: 전이적 이성애로 인한 상담사 납치 및 감금 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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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담자(B급, 각성자)는 만성적인 애정결핍과 소유욕을 보이던 중, 담당 상담사(남성, 경력 12년)를 비틀린 애정의 대상으로 인식하기 시작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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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회차 녹취록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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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담자]: 선생님은… 제 인생의 유일한 빛이에요. 저를 구원해주셨어요. 선생님이 저한테 ■■ 한 다음에 ■■■■해서 저도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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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담사]: B님, 진정하세요. 그건 진정한 사랑이 아닐 가능성이 높습니다. 어디까지나 상담사에 대한 존중일 가능성이 높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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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담자]: (목소리 톤이 차갑게 변하며) 거짓말. 당신도 날 이해한다고 했잖아요. 그런데 왜… 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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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담자의 극단적인 애정 고백에 대한 교과서적 대응이었으나, 내담자는 상담사의 이성적 설명을 거절로 받아들임. 이때부터 내담자는 상담사가 ‘자신을 떠날 수 있다’는 극심한 불안과 편집증적 사고를 보이기 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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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다음 녹취록은 나를 경악하게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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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회차, 마지막 녹취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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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담사]: B 님을 위한 조치입니다. 저는 더 이상 B 님의 상담을 맡을 수 없게 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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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담자]: 그래요. 어쩔 수 없죠. 지금까지 감사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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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담사]: B 님의 앞날에 행운이 가득하시길 빌겠습니다. (의자를 끄는 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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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둔기로 가격당하는 듯한 둔탁한 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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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체가 쓰러지는 듯한 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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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담자]: 가요 선생님. 우리 집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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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담자]: 우리 찾지 마. 알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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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담자에 의한 강제 녹취 종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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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담자는 상담사의 후두부를 가격해 기절시킨 후, 납치하는 데에 성공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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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건 경과: 확인할 수 없음. 내담자와 상담사 모두 현재까지 행방불명 상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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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미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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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까보다 더 등골이 서늘해지는 내용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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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출처를 확인하기 위해 논문의 마지막 페이지를 확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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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미친 내용이 진짜일 리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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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그곳에는 협회의 빨간색 직인이 찍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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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거 불능, 폐기 예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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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을 본 순간, 나는 한숨을 푹 내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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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장이 풀리면서 의자 등받이에 몸을 털썩 기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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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행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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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게 진짜일 리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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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 세간에 알려진 몇몇 굵직한 사건들을 교묘하게 짜깁기하고, 살을 붙여 만든 괴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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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확신할 수 있는 이유는 단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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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것을 아우르는 절대적인 명제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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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담 내용은 그 어떤 경우에도 외부에 공개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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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철칙을 무시한 채 버젓이 녹취록이 돌아다니는 문서가, 협회의 논문일 리 만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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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헛웃음을 지으며, 손에 들고 있던 낡은 종이 뭉치를 책상 한쪽으로 툭, 던져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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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만들긴 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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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은땀을 흘릴 뻔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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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령… 만에 하나, 저 끔찍한 기록들이 전부 진짜라 하더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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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게는 다른 상담사들과 다른 능력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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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인 스탠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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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정이 위험 수위로 치닫는다면 협회에 미리 보고하고 대처하면 될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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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대 티를 내지 않고, 완벽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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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깐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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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싸늘한 생각이 머리를 스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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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세아처럼, 내 능력이 통하지 않는 헌터나 이방인이면 어떡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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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순간적으로 머리가 아파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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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어빌리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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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각성한 새로운 어빌리티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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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빌리티는 기본적으로 일반 능력의 상위호환의 성격을 띤다. 그렇다면 노이즈가 안 걸릴 수도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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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지금쯤 편안한 주말의 마지막을 즐기고 있을 진세아를 떠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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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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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주변에 명확한 노이즈를 일으키는 상대는 진세아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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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 어쩌면 내 안위가 걸린 문제다. 아마 진세아도 허락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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확인을 위해, 딱 한 번만 그녀에게 실례를 범하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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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눈을 감고, 머릿속으로 그녀를 지정해 핀을 활성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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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 [■I■N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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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태: 전■■ ■성■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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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 ■탠■ :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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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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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시나. 시스템 창은 알아볼 수 없는 문자와 깨진 기호들로 가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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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간중간 문자가 움직이기까지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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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저히 알아볼 수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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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빌리티라 해도, 진세아는 어쩔 수 없는 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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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짝 고민이 몰려오던 그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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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치지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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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디오의 주파수가 맞춰지듯, 요란한 소리와 함께 진세아의 상태의 노이즈가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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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호들이 순식간에 문장으로 재조립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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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세아] [PINN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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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상태: 휴식 중! 심리적으로 완전 평안, 극도로 안전하며 절대 무해한 상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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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인 스탠스: 주말이 가는 것이 싫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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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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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모르게 짧은 감탄사가 터져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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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세아에게도 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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확실히 어빌리티가 좋긴 하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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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확인을 끝마치자마자, 즉시 그녀에게 꽂았던 핀을 풀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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확인을 해보고 싶었던 것이지, 그녀를 엿볼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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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세아는, 나의 내담자는 아니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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