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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12-14 21:31:57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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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들은 것은, 그녀의 마음 속에 있는 이야기였다.

설유월이 처해 있는 진짜 상황.

​이서령은 그녀의 친어머니가 아니었고, 설유월은 그녀의 수양딸이었다.

놀라운 사실이었지만, 나는 동요하는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그리고 담담히 답했다.

“이 세계에는, 연구 논문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특정한 대상이나 현상을 깊이 파고들어, 그 본질을 분석하고 기록한 문서를 말합니다.”

나는 그녀가 이해하기 쉽도록, 중원의 용어로 설명을 덧붙였다.

“아마 중원의 용어로 한다면… 관찰지(觀察誌) 정도가 비슷하겠군요.”

그러자 설유월이 작게나마 고개를 끄덕거렸다.

“한 연구가 있었습니다. 친자를 키우는 부모와, 양자를 키우는 부모. 그 두 부모가 각자의 자식에게 느끼는 사랑의 크기에, 과연 유의미한 차이가 있을지에 대한 기록입니다.”

그러자 설유월의 눈동자가 불안에 떨렸다.

그녀는 두려워하고 있었다.

나는 그 눈을 천천히 마주하며, 말을 이었다.

“결과는 놀랍게도….”

“두 아이를 향한 사랑에, 그 어떤 유의미한 차이도 발견되지 않았습니다.”

실제로 연구결과가 그렇다.

입양한 아이와 출산한 아이 간의 사랑에 대한 유의미한 차이는 발견되지 않았다.

이게 결론이었다.

“부모는, 보편적으로 자식을 사랑하는 데에 있어 가치 증명을 필요로 하지 않습니다.”

설유월의 텅 비어있던 눈동자의 흔들림이 아까보다 더 심해졌다.

나는 그녀를 향해 부드럽게 말했다.

나는 몸을 앞으로 기울여, 그녀만이 들을 수 있을 정도의 나직한 목소리로 물었다.

“그런데, 왜 유월 씨는 가치를 증명해야 하죠?”

그녀의 동공이 대답을 찾지 못한 채 속절없이 흔들렸다.

“왜 자식이, 부모에게 사랑받기 위해 무언가를 증명해야만 합니까.”

그녀 내면에 있는 생각에 대한 본질적인 물음을 던졌다.

“…….”

설유월은 머릿속의 상식이 부정당하는 듯, 멍한 표정을 지었다.

[설유월]

[메인 스탠스]

[친자식도 아닌 자신을 거두어 키워주신 어머니에게 은혜를 갚기 위해서는 반드시 가치를 증명해야 합니다. 사랑이라는 비효율적인 요소가 관여한다는 것 자체에 당황하고 있습니다.]

[적합 답변] [만족 적합률 80%]

[다시 한번 묻겠습니다. 유월씨가 정말 하고 싶은 일은 뭔가요?]

[절대 도망칠 구석이 없게끔 그녀를 완벽하게 몰아넣으세요!]

[눈물을 흘릴 정도여도 괜찮습니다. 마치 딸을 사랑하지만 엄한 아빠가 딸을 교육하듯이….]

좀 비켜봐.

[ (。•́︿•̀。) ]

시스템은, 슬픈 이모티콘 하나를 남기고 조용히 사라졌다.

“유월 씨. 다시 한번 묻겠습니다. 당신이 정말로 하고 싶은 일은 무엇입니까?”

하지만, 그녀의 대답은 똑같았다. 입력된 정보를 뱉듯이 즉시 답한다.

“무림맹주가… 되는 것입니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나 이제 그 대답은, 정답이 아니다.

“하지만, 이 세계에는 무림맹이 존재하지 않습니다.”

나는 그녀의 흔들리는 눈동자를 보며, 조금 더 다가갔다.

“그렇다면 유월 씨는 이제 어떤 목표를 가져야 할까요?”

그녀의 유일했던 길과, 목표가 사라졌다.

차마 인지하고 있지 않았던 사실을 마주하자, 설유월의 표정이 굳었다.

나는 그 텅 빈 호수 같은 눈동자에, 마지막 돌을 던졌다.

“유월씨가 하고 싶은 것은 무엇입니까?”

천천히 덧붙였다.

“어릴 적 품었던 작은 꿈이어도 좋고, 앞으로 새롭게 하고 싶은 일이어도 좋습니다.”

그리고, 나도 모르게, 손이 움직였다.

허공을 가로지른 내 손이 차갑게 식어 가늘게 떨리고 있는 그녀의 손 위로 내려앉았다.

그리고.

  • 꼬옥.

나는 그 작은 손을 천천히 감싸 쥐었다.

충동적인 행동이었다.

목표를 잃어 위태롭게 무너져 내리는 그녀를 붙잡아 주어야 한다는, 상담사로서의 본능이었을까.

내 손길에, 설유월의 텅 비었던 눈동자가 맞닿은 손을 내려다보았다.

그리고, 아주 느리게 다시 나를 향했다.

[ ฅ(՞៸៸> ᗜ

나는 늘 그렇듯, 그녀의 시선을 피하지 않았다.

그리고 오늘의 가장 중요한 단어를, 다시 한번 그녀에게 속삭였다.

“자유롭게.”

설유월 스스로.

“그 누구의 생각도 기대도 아닌, 오직 유월 씨 스스로. 이제부터 자유롭게 생각해 보는 겁니다.”

치료적 의존의 방식이 아니어도 괜찮다.

그녀는, 또 다른 의존의 대상을 필요로 하는 것이 아니다.

그저 스스로의 힘으로 일어설 아주 작은 발판이 필요할 뿐.

다시 한 번.

“유월씨가 하고 싶은 일은 무엇입니까?”

내가, 그 발판이 되어주면 그만이다.


“…….”

의원님이 나갔다.

설유월은 푹신한 침구 위에 인형처럼 멍하니 앉아 있었다.

머릿속에서는 그가 남기고 간 마지막 말들이 폭풍처럼 휘몰아치고 있었다.

‘이 세계에는, 무림맹이 존재하지 않습니다.

‘이제 유월 씨가, 하고 싶은 것은 무엇입니까?

‘자유롭게.

사실, 알고는 있었다.

이곳에는 자신이 목표로 삼을 무림맹도, 천마신교도 예전과 같은 모습으로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하지만 그 사실을 인정하는 것은, 그녀의 삶 전체를 부정하는 것과 같았다.

그리고.

  • 꼼지락.

그녀의 손가락이 천천히 맞은편 손등을 쓸었다.

당시에는 인지하지 못했으나.

아까 그 접촉은….

태어나서 처음이었다.

어머니는, 늘 언제나 남성과의 모든 접촉을 분리시켰다.

따라서 외간 남성의 접촉을 허용한 것 자체가 이번이 처음이었다.

다르긴 했다.

당희란이나 여타 다른 여성 무인들의 손길과는….

그가 자신의 손을 감쌌을 때의, 단단하고 커다란 감촉.

이상한 일이었다.

눈앞의 의원은, 마음만 먹으면 손가락 하나로 제압할 수 있을 만큼 약했다.

무인인 자신의 기준으로 보면 한없이 연약하다.

하지만 그의 단단한 손길이 자신의 손을 감쌌을 때, 그녀의 몸은 그 어떤 반항도 못하고 굳어버렸다.

그것은 힘의 문제가 아니었다. 뭐랄까··· 몸에 각인되어 있는 듯한···.

그리고 그가 남기고 간 희미한 온기.

그 온기가 차가운 방 안에서 서서히, 사라져 가는 것이 이상하게도 신경이 쓰였다.

설유월은, 그것이 사라지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생애 처음으로 무언가를 바랐다.

이건 그녀도 인지하지 못하고 있던 사실이다.

바로 그 순간.

하나의 생각이 스쳤다.

아.

월병.

그가 자신을 위해 직접 구워준 과자.

의원은 그것을 봉투에 담아 두었다. 언제든 먹으라고 했다.

어쩌면 아직은, 온기가 조금이라도 남아있을지 모른다.

설유월은 침대에서 거의 굴러떨어지다시피 다급하게 거실로 향했다.

그리고 식탁 위에 놓인, 하얀 종이봉투를 떨리는 손으로 집어 들었다.

그녀는 봉투 바깥으로 조심스럽게 손을 데었다. 손끝에, 종이 너머 둥근 과자의 감촉이 닿았다.

“…….”

하지만 기대했던 온기는 어디에도 없었다.

손에 잡힌 봉투는 방 안의 공기처럼, 손처럼, 차갑게 식어 있었다.

그녀는 차가운 봉투를 든 채 텅 빈 거실 한가운데 우두커니 섰다.

그리고 아주 작은 목소리로 속삭였다.

“… 추워.”

온기가 머물렀던 손끝도.

눈앞의 월병도.

그리고.

그녀도 마찬가지였다.


오늘의 상담은 꽤나 괜찮게 흘러갔다.

설유월의 배경을 확인하고.

또 내면을 확인했고.

그녀에게 스스로 새로운 목표를 생각하게끔 유도했다.

그리고 그것은 내가 그녀에게 내준 숙제이기도 했다.

마침 내일은 휴일이다.

휴일 동안 부디 그녀 스스로 잘 생각하기를 바라겠다.

사실, 처음에는 걱정이 많았다.

만약 그녀가 일반적인 치료가 통하지 않는 중증이라면.

결국 치료를 위해 의존의 대상 전이를 해야 하는 건가 했는데….

다행히 그 방법까지는 가지 않아도 될 것 같았다.

“고생 많으셨습니다. 월요일에 다시 뵙겠습니다.”

나는 나를 배웅하는 팀장에게, 가볍게 고개를 숙였다.

아직 퇴근하기는 좀 이르다.

다음 행선지는 나의 상담소.

상담소를 너무 오랫동안 비워놨다.

어제 엘리스에게 맡겼던 열쇠도 회수해야 하고, 정리도 좀 할 겸.

내 공간으로 돌아가야겠다.

나는 상담소 문 앞에 섰다.

엘리스에게 일러둔 대로, 발판 밑에 손을 넣자 차가운 열쇠 꾸러미가 잡혔다.

  • 끼익.

문을 열자마자, 코를 간지럽히는 이질적인 향기가 나를 맞았다.

“……?”

누군가 라일락 향 방향제를 뿌려놓은 모양이었다.

엘리스인가?

환기를 시키려 했는지 창문이 살짝 열려 있었지만, 그 향은 쉬이 가시지 않은 채 방 안 공기에 남아 있었다.

그리고 업무용 책상 위 올라가 있는 작은 화분.

생김새를 보아하니 라벤더 화분이다.

나는 그 작은 화분 앞에 섰다. 흙은, 방금 물을 준 것처럼 촉촉했다.

그리고 흙 위로 삐죽 솟아 나온 작은 나무 막대 하나를 발견했다.

막대에는, 돌돌 말린 작은 쪽지가 묶여 있었다.

나는 그 막대를 꺼내들었다.

막대에는 종이가 빙빙 둘러져 있다.

나는 조심스럽게 쪽지를 풀었다.

그 안에는 동글동글하고, 정성스러운 글씨가 오밀조밀 적혀 있었다.

[선생님! 케이크 너무 잘 먹었어요 ㅠㅠ 감사의 의미로 작은 화분 하나 놓고 가요.]

[앗 참고로 저는 루나입니다!! 엘리스가 바빠서 제가 왔어요. ₍ᐢ _ ᐢ₎]

이 이모티콘 설마 토끼인가?

“푸흐흐.”

닮긴 했네.

나는 피식 웃으며 그녀가 남기고 간 쪽지를, 서랍 안에 소중히 넣어두었다.

루나의 상태가 많이 좋아져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녀가 세상 밖으로 나오고 있다는 증거니까. 언젠가 진짜 모습을 모두에게 보일 수 있게 되기를 바란다.

아마, 모두 좋아할 것이다.

나는 의자를 끌어 자리에 앉았다. 이틀 만에 돌아온 내 공간.

“……?”

그런데, 어딘가 허전했다.

늘 의자 등받이에 걸어두는 내 하얀 가운이 보이지 않았다.

“… 어디 갔지?

나는 잠시 고개를 갸웃했다.

최근, 너무 정신없이 바쁘긴 했다.

집에서도 쪽잠밖에 못 잤고 신경 쓸 것이 많았으니까.

‘집에 두고 왔나.

세탁해놓고 까먹었을 가능성이 높았다.

아마 피곤해서 그랬을 것이다.

나는 별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고 컴퓨터의 전원을 켰다.

없어진 가운 따위는 잊어버린 채 컴퓨터 화면에 집중했다.

산더미처럼 쌓인 논문과 기록들.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나는 그렇게 한참을 열중했다.

“…….”

문득 고개를 들었을 때 창밖은 이미 해가 진 이후였다.

“벌써 시간이….”

뻐근한 어깨를 돌리며 이제 그만 집으로 돌아갈까, 하고 자리에서 일어서던 바로 그 순간이었다.

  • 똑똑.

누군가가 고요한 상담실의 문을 조용히 두들겼다.

나는 고개를 들었다.

오늘 상담소는 쉬는 날.

게다가 방문객이 오기에는 시간이 너무 늦었다.

누구지?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상담소의 문을 열었다.

“…….”

문을 여는 순간, 난초의 은은한 향이 코에 스며들었다.

그리고 바로 앞, 그곳에는 한 여인이 서 있었다.

“안녕하세요. 의원님.”

옥색 비단 장포가 어두운 조명 아래, 그녀의 몸의 곡선을 따라 은은하게 흘러내린다.

머리에 꽂은 비녀가 반짝인다.

분위기와는 다르게, 설유월과 키는 비슷하다. 내 가슴팍에 살짝 못 미치는 정도.

창천맹주, 이서령.

그녀는, 언제나처럼 온화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이서령이 천천히 입을 열었다.

“이 야심한 시각에 찾아와… 의원님께 대화를 청하는 무례를 용서해 주시겠습니까?”

나는 잠시 그녀를 바라보다, 무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들어오시죠.”

나 또한, 바라던 바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