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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똑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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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와는 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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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더 이상 상담실의 강화유리 너머에서 그녀를 부르지 않았다. 그녀가 머무는 방문 앞에 서서, 직접 문을 두드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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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 이 시간에 방문한다고 이야기는 해 놨기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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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도 아마 일어났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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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유월 소저, 들어가도 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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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문 너머로, 조심스럽게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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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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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답은 없었다. 하지만 문 바로 너머에서, 옷깃 스치는 소리와 함께 인기척이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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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 앞에 있는 것 같기는 한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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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조금 더 기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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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참을 기다려도 문이 열리지 않자, 나는 고개를 갸웃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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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다 문 안쪽에서 아주 작은 낑낑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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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거… 어떻게 열어야 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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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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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제가 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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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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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내 카드 키를, 도어록에 가져다 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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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기본적인 설명도 안 해줬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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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현대의 문물이 익숙하지 않을 수 있다. 뭐, 진짜 알려주지 않았을 수도 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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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이 바깥쪽으로 부드럽게 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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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바로 그 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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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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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언가 푹신한 것이, 내 가슴팍으로 콩, 하고 부딪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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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개를 내리자 흑과 백이 섞인 익숙한 머리카락의 정수리가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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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을 열기 위해 바짝 붙어 서 있던 설유월이, 그대로 내 품에 얼굴을 박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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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유월은 그 즉시 후닥닥 떨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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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의 얼굴이 새빨갛게 달아올랐지만, 나는 그 모습을 못 본척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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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연하게 안으로 들어서며, 일상적인 아침 인사를 건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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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밤은 평안하셨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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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유월은 시선을 바닥에 둔 채, 작게 대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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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구도 푹신하고… 방 안은 고요한 것이, 괜찮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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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요하고 푹신한 걸 좋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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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체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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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자연스럽게, 다음 질문으로 넘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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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사이, 혹시 불편하게 한 사람은 없었습니까? 예를 들면, 갑작스러운 방문객이라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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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설유월에 대한 접근 금지를 요청한 이상, 협회에서 누군가를 들여보냈을 리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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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 창천맹주의 행위에 대한 확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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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설유월은, 그저 고개를 저을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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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요. 아무도… 없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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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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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타리는 꽤나 튼튼했던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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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그녀를 데리고, 거실을 지나 주방으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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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그곳 식탁 위에, 뚜껑조차 열지 않은 도시락이 차갑게 식어있는 것을 발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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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사는… 아직이셨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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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말에 설유월은 고개를 끄덕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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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처를 알 수 없는 음식이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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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이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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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또한 고개를 끄덕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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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적으로 상담은, 내담자의 안정된 상태를 유도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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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와의 마지막으로 가장 좋았던 기억은 아무래도… 탕후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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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이번에는 조금 다르다. 방향성은 유지하지만 색다르게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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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설유월이 아침을 먹지 않았을 것이라 예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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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는 타인이 지급하는, 게다가 만드는 과정이 확인되지 않은 음식을 먹을 리가 없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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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준비해온 것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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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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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름달을 닮은 둥근 과자. 그 안을 달콤한 팥소로 가득 채운 그녀의 세계에도 존재하는 음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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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월병을 직접 만드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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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라서 나는 차선책을 꺼내 들었다. 월병과 가장 비슷하게 생긴, 이 세계의 음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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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풀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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좀 어설프다 생각할 수는 있어도, 이게 최선이었다. 그녀에게 있어 최대한 익숙한 모양이면서 달달한 음식이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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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가방에서 가정용 풀빵 기계를 꺼내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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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유월의 눈이, 난생처음 보는 기묘한 철판 덩어리에 동그랗게 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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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익숙하게 기계의 전원을 연결하고, 가방에서 반죽과 팥소를 꺼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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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치이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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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궈진 틀 위로, 하얀 반죽이 부어지며 고소한 냄새와 함께 익어가는 소리가 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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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그 위에 달콤한 팥소를 한 숟갈 올리고, 다시 반죽을 덮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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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계 뚜껑을 닫자, 이내 달콤한 빵 냄새가 방 안을 가득 채우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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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유월은, 아무 말 없이, 그 모든 과정을 넋을 잃고 바라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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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의 푸른 눈동자에, 작은 호기심의 피어오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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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긴 것이… 꼭 작은 월병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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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그래도 알아봐 주셔서 다행입니다. 이 세계의 월병이라 생각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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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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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쾌한 알림음과 함께, 나는 뚜껑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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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름달처럼, 혹은 활짝 핀 국화처럼 생긴 풀빵이 모습을 드러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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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그것을 조심스럽게 꺼내, 포크로 찍어 그녀의 앞으로 내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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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뜨거우니 조심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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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주방으로 가 작은 유리컵에 우유를 따라 워머에 넣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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풀빵만 먹으면 목이 멜 테고, 그렇다 하더라도 빈속에 찬 우유는 좋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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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따뜻하게 데워진 우유를 그녀의 앞에 내려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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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의자를 빼 앉으며 부드럽게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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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먹으면서 이야기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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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유월은 잠시 망설이다 아주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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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맛에 맞으실지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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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는 아기 새처럼 풀빵을 조심스럽게 한 입 베어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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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잠시, 눈을 동그랗게 떴다가, 이내 아작아작 뺨이 볼록해지도록 빵을 씹어 넘기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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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 중원의 월병보다 훨씬 맛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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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의 발전된 기술은 요리에서도 그 능력을 발휘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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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말부터 시작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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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통의 내담자들은, 스스로 짊어진 마음의 짐을 내려놓기 위해 나를 찾아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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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은 자신의 문제를 인지하고 있고, 그 아픔을 내게 먼저 토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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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설유월의 경우는 다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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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먼저 발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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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스로 무엇이 잘못되었는지조차, 인지하지 못하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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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처는 분명 존재하지만, 정작 본인은 그것이 상처인 줄조차 모르는 상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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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상처를 직접 들여다보게끔 만들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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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TSD를 유발하겠다는 뜻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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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르고 살고 있던 감각들을, 하나씩 깨닫게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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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 이야기가 될 순간의 첫 단추를 끼울 때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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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풀빵을 오물거리는 그녀를 보며, 부드럽게 입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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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으로 설유월 소저를, 유월 씨라고 부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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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가 놀란 듯 나를 보자, 나는 웃으며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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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세계에서는, 소저라는 호칭보다는 그편이 더 자연스러울 겁니다. 앞으로의 생활을 위한, 작은 연습이라고 생각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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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그녀에게 선택지를 돌려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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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월 씨는 저를 편한 대로 부르시면 됩니다. 의원도 좋고, 상담사님도 좋습니다. 자유롭게 정하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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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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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그 단어에, 힘을 주어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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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롭게. 우리는 이 단어를 앞으로 계속 기억할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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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가 조용히 고개를 끄덕이는 것을 확인하고, 나는 본론으로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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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첫 번째 질문을 시작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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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유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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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인 스탠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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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병과 닮은 것은 눈이 크게 뜨일 만큼 맛있었지만, 눈앞의 의원이 무슨 이야기를 시작할지도 궁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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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합 답변] [만족 적합률 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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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님의 면회를 거절하신 이유가 무엇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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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합 답변] [만족 적합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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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아, 머릿결이 또 엉망이 되었구나. 이리 와 무릎에 앉거라. 아비가 빗어주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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능력은 내가 생각한 것과 동일한 선택지를 제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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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머지 하나는 이해가 가지 않기는 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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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월아도 아니고, 월아다 월아. 누가 보면 진짜 아빠라도 되는 줄 알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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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논문이 생각나기 때문에 저 길을 걷지는 않을 것이다. 아니, 설령 걷더라도 저 멘트는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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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찌 되었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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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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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이서령과의 면담을 거절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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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이 그녀의 감정을 들여다보는 첫 단추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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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풀빵을 마저 씹어 삼키는 그녀를 기다려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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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나직하게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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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월 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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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유월씨는, 어머님과의 면회를 원치 않는다고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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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라는 단어가 나오자마자, 설유월의 동공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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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지금은 물러설 때가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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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왜 거절하셨는지 그 이유를 말씀해 주실 수 있으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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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그녀의 푸른 눈동자를, 부드럽게 마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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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는 필사적으로 시선을 피하려 애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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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내 시선은, 그녀가 어디로 도망치든 그녀를 기다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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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침내, 설유월은 모든 것을 포기한 듯, 떨리는 입술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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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죄송…스러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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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점이, 그렇게 죄송스러웠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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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님의 기대에… 부응하지 못한 것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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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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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그 단어를, 머릿속으로 되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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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통의 부모라면, 생이별 후 몇 년 만에 다시 만난 자식에게 가장 기대하는 것은 무엇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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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식의 안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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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이 모든 부모들이 가장 기대하는 점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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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저 살아있어 주는 것만으로도 감사하고, 눈물을 흘리며 끌어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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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 기대에 부응하지 못했다고 책망할 부모는 세상에 그렇게 많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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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그녀는, 기대에 부응하지 못했다는 이유로 부모와 만나는 것을 꺼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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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대에 부응하지 못했다는 압박감이, 부모를 만나는 반가움을 누르고 있다는 소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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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 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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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많은 정보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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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군요. 답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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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그녀가 위축되지 않도록, 화제를 살짝 돌리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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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를 묻는 게 아닌, 그녀가 살아오는 삶을 그려보기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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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례가 되지 않는다면, 유월 씨에 대해 조금 더 알려주시겠어요? 아주 사소한 것이라도 좋습니다. 좋아하는 것, 하고 싶은 일, 혹은 출신. 어느 것이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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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질문에 설유월은 잠시 나를 바라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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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고는, 마치 면접이라도 보는 사람처럼 순서대로, 아주 건조하게 답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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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아하는 것은…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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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싶은 일은… 차기 맹주가 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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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신은 무림맹주님의 외동… 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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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아무 말 없이, 그녀의 대답을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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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의 예시로 든 것들에 대해 정확히 물어본 것만 대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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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얻은 것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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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 답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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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기 맹주가 되기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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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부드럽게 미소 지으며, 그녀가 내뱉은 단어를 되짚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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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기 맹주… 멋있는 목표인 것 같습니다. 그건 유월님의 목표였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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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저는 무림맹주가 되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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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질문에, 그녀는 단 한순간의 망설임도 없이 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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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치 무언가를 외우듯이 빠르게, 감정 없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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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그 위화감을 놓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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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유월은, 무림맹주가 자신의 목표라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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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의 어머니인 이서령이 이 세계에 넘어온 이후, 무림 맹주의 자리는 공석이 되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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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이후, 그녀는 목표를 이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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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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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머릿속에서, 조각난 단서들을 맞추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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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한 가지의 답에 도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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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번째, 그녀는 어미의 기대에 부응하지 못해 죄송하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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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 그녀의 목표는 공석이 된 맹주의 자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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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두 개의 명제는 하나의 결론으로 귀결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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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유월은 비어 있는 옥좌에 오르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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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이, 그녀가 말하는 실패의 실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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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보통 자신이 세운 목표를 실패했을 때, 스스로에게 실망하고 좌절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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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설유월은 죄송하다고 했다. 마치 명령을 수행하지 못한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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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가 기계처럼 뱉어낸 자신의 목표는, 처음부터 그녀의 것이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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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초부터 설유월의 입을 빌려 말하는, 이서령의 목표였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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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고개를 천천히 끄덕거리며, 그녀에게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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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월 씨는 외동딸이라 하셨습니다. 하나뿐인 금지옥엽이자, 세상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보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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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연 어머니가 그런 딸이 기대에 조금 미치지 못했다는 이유만으로 실망하실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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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질문에 설유월의 푸른 눈동자가 다시 길을 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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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이번에는 길을 헤매는 기색이 아니었다. 그 푸른 눈동자가, 서서히 침잠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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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 후, 그녀가 아주 담담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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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망하실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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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지 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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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는, 제 친어머니가 아니시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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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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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순간적으로 대답할 말을 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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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유월은 그런 나를 상관하지 않은 채 천천히 읊조리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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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어렸을 적, 길거리에서 구걸하던 고아였습니다. 이름도, 집도 없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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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저의 재능을 알아보고 거두어주신 분이, 저의 어머니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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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는 제게 설유월이라는 이름을 주고, 지금의 설유월로 키워주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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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는 마치, 세상의 당연한 이치를 말하듯 결론을 맺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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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 그 은혜에 보답하는 것이 마땅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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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의 존재 이유는 그것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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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어머니에게 제 가치를 증명해야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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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내 앞에 그녀의 상태가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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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유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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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인 스탠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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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가 말해주신 모든 것은 옳습니다. 어머니가 제시해 준 길이 제 길입니다. 저는 그것을 따라 완벽히 이루어내야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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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유월은,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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