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2-novel-agent/content/references/novelpia/363368/19.m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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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는 기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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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의문을 가지던 그때, 인이어에서 지휘 본부의 거의 비명에 가까운 다급한 외침이 터져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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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야! 저거 누구야!!
 
- 상담사님! 옆에 천마신교 소속의 이방인 자화연님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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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네. 괜찮습니다. 개인적으로 아는 사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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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인이어로 들려오는 그 호들갑에 침착히 대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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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그 한마디에 당황한 담당 직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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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네? 아는 사이요? 잠시… 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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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자화연은 그 어설픈 대응을 기다릴 생각이 없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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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 처리가 참으로 답답하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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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화연은 뒤를 돌아보며 나직하게 읊조렸다.
 
그리고는 아주 잠시 눈을 감았다.
 
그녀의 주변으로 아주 희미하게, 검붉은 기운이 아지랑이처럼 피어올랐다가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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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는 다시 눈을 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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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 이제 됐을 것이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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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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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그 말의 의미를 이해하려고 고민하던 중.
 
내 인이어에서 방금 전과는 다른 담당 직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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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 알겠습니다. 상담사님. 역장이 펼쳐진 이상 원칙적으로 외부인의 왕래는 불가능합니다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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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원의 목소리가 떨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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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방금, 자화연님께서 지휘 본부 전체에 ‘직접 본좌의 의원을 돕기 위함.’이라는 뜻을 전음으로 전해오셨습니다. 따라서… 현장 판단하에, 자화연 님의 동행을 임시로 허가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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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그랬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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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네… 부디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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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원도 당황스럽겠지.
 
그 당황스러운 마음 이해한다.
 
나도 많이 당황스러웠거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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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그들의 심정을 이해하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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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그렇게 셋이 되었고, 별 문제없이 중심지로 더욱 걸어들어갔다.
 
그러나 그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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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지지지지직… 저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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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괴한 소음과 함께, 저 너머 푸른빛으로 일렁이던 전이의 중심부가 격렬하게 뒤틀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중심에서부터 공간 자체를 잡아먹을 듯한 검푸른 역장이, 파도처럼 우리를 향해 덮쳐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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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꽈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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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을 본 엘리스가 반사적인 움직임으로, 내 몸을 자신의 품 안으로 꽉, 껴안아 감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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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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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내 옆에 서 있던 자화연은 코웃음을 치며 손을 한번 휙, 펼쳤다.
 
그녀의 손끝에서 피어난 검은 역장이, 우리를 감싸며 덮쳐오던 모든 공간의 뒤틀림을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 지워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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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풍경이 서서히 바뀌기 시작했다.
 
서울숲의 푸른 잔디가 메마른 바위들로 변하고, 주변의 빌딩 숲은 기괴한 형태의 산맥으로 변해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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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 괜찮아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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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네. 그런데 무슨 일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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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엘리스의 품에 껴안겨 허리가 활처럼 꺾인 채로 간신히 대답했다.
 
솔직히 말해, 보호를 받은 기분보다는 강력한 레슬링 기술에 당한 느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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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리스는 여전히 나를 풀어주지 않은 채, 굳은 표정으로 말했다.
 
그녀의 쫑긋했던 귀가 축 처져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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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래도… 전이 침식 같아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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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이 침식.
 
전이가 발생한 지역에, 이방인 뿐만 아니라 일시적으로 그 세계의 주변 환경까지 전이된 현상을 뜻한다.
 
일시적인 현상이라 이방인과 다르게 곧 사라지기는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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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방인의 강함이 수준 이상일 때만 나타나는 현상으로 알고 있다.
 
즉, 이번 이방인은 A급 보다는, S급에 가까울 가능성이 높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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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였다.
 
우리의 곁에 서 있던 자화연의 차가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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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쯧.”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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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는 나를 꽉 껴안고 있는 엘리스를 못마땅하다는 눈으로 위아래로 훑어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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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녀가 유별한 법인데. 좀 떨어지지 그러느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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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말에 엘리스가 후닥닥 속박을 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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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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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한결 자유로워진 몸으로 자화연에게 감사의 말을 전했다.
 
어찌 되었든 방금 전의 그 파동에서 우리를 무사히 지켜준 것은, 그녀의 검은 역장이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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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것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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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대답과는 다르게 내 감사에 자화연의 입꼬리가 씰룩씰룩 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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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지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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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귀의 인이어에서 날카로운 잡음이 터져 나왔다.
 
아무래도 전이 침식 공간 내부로 들어왔기에, 지휘 본부와의 모든 통신이 완전히 끊겨버린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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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주위를 둘러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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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방은 내가 한 번도 본 적 없는 기괴한 암석과 씁쓸한 향을 풍기는 풀들로 가득했다.
 
탁 트인 풍경을 보아하니, 아주 높은 바위 산맥의 고산지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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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은 무슨.
 
​아무래도 중원의 땅 어디인듯한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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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향을 가늠할 수가 없는 이질적인 공간 속에서 나는 잠시 길을 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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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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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그건 나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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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킁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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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리스는 눈을 감았다.
 
그녀의 쫑긋한 잿빛 귀가 파르르 떨리더니, 눈을 다시 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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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리스의 손가락이, 망설임 없이 한 방향을 가리켰다.
 
그와 동시에 자화연 또한 한 방향을 손가락으로 천천히 가리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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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손가락 모두 같은 방향을 가리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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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에여.”
 
“이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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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화연은 그런 엘리스를 힐끗, 곁눈질로 바라보더니 말을 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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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몸이 아는 장소다. 본좌의 예상이 맞은 듯 하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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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의 목소리에는 자신의 예상이 맞아떨어졌다는 만족감이 담겨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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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이야기가 빠르다.
 
자화연이 이곳에 온 게 다행스럽게 작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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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 그래여? 여기가 어딘데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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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리스가 호기심과 함께 물었다.
 
제국이 어떤 곳인지는 모르겠지만… 아마 이런 곳은 그녀에게도 낯선 풍경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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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화연은 저 멀리 안개에 잠긴 산맥의 정상을 바라보며, 차가운 목소리로 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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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곤륜산(崑崙山)의 한 자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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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는 비웃는 듯한 미소를 지으며 말을 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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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선자들이 도(道)를 논하며 하늘을 참칭하는, 역겨운 곳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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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그녀는 더 이상 우리의 의사를 묻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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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라오거라. 이 몸이, 직접 길을 알려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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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히 말하면 매우 감사한 이야기였다.
 
나는 아무 말 없이 그녀의 뒤를 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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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대열은 자연스럽게 자화연이 선두에 서고, 나와 엘리스가 그 뒤를 따르는 형태로 완성되었다.
 
뒤를 따르던 중 엘리스가 내 귀에 아주 작은 목소리로, 조용히 속삭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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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데… 저 사람은 대체 누구에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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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그녀의 귀에 똑같이 작은 목소리로 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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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내담자분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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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군여, 근데··· 캐릭터가 좀 웃기네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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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모르게 그 말에 동의할 뻔했지만.
 
눈앞의 자화연의 귀가 미세하게 움찔거리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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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사람 다 듣고 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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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엘리스를 향해 다급하게 눈짓을 보냈다.
 
그리고 이전보다 살짝 커진 목소리로 다시 속삭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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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아주 대단하신 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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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리스는 앞을 슬쩍 보더니, 모든 것을 파악한 듯했다.
 
그녀는 쿡쿡 웃으며 내 장단에 맞춰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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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게여~ 엄청 멋있으시네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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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자 자화연의 어깨가 미세하게 올라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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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 굳이 길잡이를 자처하는 사람을 놀릴 필요는 없었다.
 
모두가 행복하면 그걸로 된 거 아닐까.​
 
그렇게 우리는 몇십 분을 더 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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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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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터져 나오려는 거친 숨을 필사적으로 억눌렀다.
 
안 그래도 공기가 희박한 고산지대인데 경사까지 가팔라지니 폐가 타들어가는 듯 숨이 계속 모자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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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 제가 업어드릴 수도 있는데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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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리스는 그런 나를 놀리듯 등과 엉덩이를 톡톡 치며 웃었다.
 
그녀의 걸음걸이는 평지를 산책하는 것처럼 가볍고 경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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괜히 산토끼, 산토끼 하는 게 아니구나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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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괜찮… 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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되게, 매우 폭신해 보이긴 했으나 차마 상담사로서의 마지막 존엄성 때문에 그녀의 등에 업히지는 못했다.
 
대체 언제쯤 도착하는지에 대한 질문이 턱 끝까지 차오른 바로 그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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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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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두에서 걷던 자화연이 중얼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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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내 눈앞에는 거대한 절벽밖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엘리스 또한 눈치 챘는지, 눈을 가늘게 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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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뭔가 있긴 하네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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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뭔가가 아니라, 진법(陣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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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화연이 엘리스를 향해 입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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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그녀가 허공을 향해 손짓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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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우우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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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앞의 공간이 아지랑이처럼 일그러지기 시작했다.
 
바위 절벽의 풍경이 물감이 번지듯 서서히… 희미하게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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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그 너머로 이전에는 존재하지 않았던 거대한 동굴의 입구가 그 모습을 드러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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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짜 들어가기 싫게 생겼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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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치 괴물이 입을 벌리고 있는 것처럼 동굴의 입구를 종유석들이 장식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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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기도 거대하고, 그 끝도 보이지를 않는 느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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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분위기상 어차피 여기로 들어갈 것만 같아서 마음의 준비를 했다.
 
아니나 다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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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화연이 망설임 없이 그 입속으로 나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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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가야지.
 
어쩌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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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첫 임무부터 굉장히 피로함을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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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동굴의 내부는 의외로 쾌적했다.
 
내부의 넓이는 보통 입구의 크기에 비례한다던데 그 말이 사실인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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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이 뚝뚝 떨어지긴 하지만 습하거나 그러지는 않았다.
 
오히려 바닥의 물들이 고여 신비로운 분위기를 풍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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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우리는 어둠 속으로, 더 깊은 곳으로, 걸어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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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대체 얼마나 걸었을까.
 
길고 어두웠던 동굴의 끝에서, 마침내 푸른빛이 보이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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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그 끝에서 거대한 공간이 나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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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굴이라 보기는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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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장에는 수많은 광석들이 박혀 밤하늘의 별처럼 영롱한 빛을 내뿜고 있다.
 
그리고 벽면에 가득 피어난 이끼들이 그 빛을 받아, 발하며 이 거대한 공간을 비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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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그 얕은 호수의 한 가운데.
 
그곳에 한 여인이 서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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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치, 신선처럼.
 
아니지… 마치, 선녀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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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하얀 무복을 입은 여인이.
 
호수에 중앙에 선 채, 눈을 감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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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의 머리카락은, 칠흑 같은 검은색이지만 반은 눈처럼 새하얀 백색으로 바래, 등 뒤로 폭포수처럼 흘러내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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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비현실적인 모습에 내가 잠시 넋을 잃은 사이, 옆에 서 있던 자화연이 조용히 중얼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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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네년이 맞았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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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저 멀리 서 있던 선녀가 천천히 눈을 떴다.
 
얼음처럼 차가운, 푸른색 눈동자가 나와 정확히 마주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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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의 시선을 받으며 상담사로서의 본능에 따라 자연스럽게 능력을 활성화한, 바로 그 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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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메인 스탠스]
 
[자신의 폐관 수련동에, 무단으로 출입한 마인들이 눈앞에 보입니다.]
 
[적합 답변] [만족 적합률 100%]
 
[피하세요!!!!!!!!!!! 빨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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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시스템이 비명에 가까운 경고를 미친 듯이 띄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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뭘 피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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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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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생각이, 채 끝나기도 전이었다.
 
눈을 잠시 감았다 뜨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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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눈앞에는 어느새 엘리스의 뾰족한 구두 굽과, 자화연의 손에서부터 뿜어져 나오는 검붉은 강기가 검을 막아선 채 서로 뒤엉켜 있었다.
 
중요한 건, '검을 막아선 채' 라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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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명의 헌터가 동시에, 나를 지키기 위해 움직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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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한 건 머리색일뿐. 어찌 그 표독한 성정은 변한 게 하나도 없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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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화연이 비웃으며 선녀의 검을 가볍게, 쳐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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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그 모든 광경을 멍하니 바라보다가, 정신을 차리고 주머니 속에 손을 넣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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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손가락이 협회에서 지급한 비상 신호기의 버튼으로 향했다.
 
일단 ‘주의’를 알리는 버튼이라도 눌러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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찾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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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딸깍, 딸깍, 딸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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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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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내 깨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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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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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신 끊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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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결국 기능이 없는 플라스틱 덩어리를 마구 누른 셈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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