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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유성은 동굴에 진입하자마자 숨을 들이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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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섯 번째 뿌리, 그 내부에 존재하는 적들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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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천히 몰려드는 수는 총 여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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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유성은 전방으로 기감을 흘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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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들의 등급을 파악하기 위해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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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위계 급만 여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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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위하듯 서서히 거리를 좁혀오는 여덟 마리의 최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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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감으로 확인된 그들은 전부 6위계 급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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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전의 다섯 번째 뿌리처럼, 회복을 담당하는 피통 역할의 개체도 없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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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을 가로막는 장애물도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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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숫자에서 오는 압박감은 분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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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엔 좀 간단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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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 이네르의 목소리가 한유성의 귓가에 계속 흘러들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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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자 네 놈씩 맡으면 되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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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유성은 옆에 선 반을 바라보며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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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그렇게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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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벅차? 내가 두 마리쯤 더 맡아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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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냐. 네 놈씩, 깔끔하게. 좋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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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을 끌수록 불리한 건 이쪽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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콰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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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유성은 남아있던 용혈의 혈청을 옆구리에 주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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곧이어 극한의 숨결까지 복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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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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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 이네르 역시 숨을 내쉰 뒤 극한의 숨결을 주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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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유성의 검에 백광이 맺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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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하얀 입자들이 허공에 흩날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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땅바닥을 강하게 즈려밟고 나아가는 한유성의 왼쪽 눈에는 변화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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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안(義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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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종의 의안이라고 볼 수 있는 장착형 렌즈 아티팩트가 한유성의 왼쪽 눈에 자리를 잡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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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라일 오큘러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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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대방의 약점을 군청색의 선으로 표시하는 아티팩트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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몬스터 뿐만 아니라, 사물이나 여타 생명체의 특이점도 알아낼 수 있는 아티팩트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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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척자 선배에게 차원 간 거래로 인해 받은 아이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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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개척자) 나도 등반자 너처럼 가진 게 없었던 상태에서 탑에 소환됐거든. 애초에 그냥 무역선 선원 출신이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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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개척자) 딱 죽기 좋은 상황에서 덕분에 살아남을 수 있었던 아이템이 스콜라의 눈이라는 아이템이거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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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개척자) 그걸 토대로 내가 직접 만들어낸 아티팩트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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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드 난이도 종결자인 개척자 선배가 전투와 전혀 무관한 삶을 살던 사람이라는 건 한유성으로서도 놀라운 사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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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개척자) 보일 약점이 한두 군데는 아닐 거야. 약점을 한 가지만 가진 몬스터는 생각보단 드물거든. 약점이 반드시 치명적인 약점인 것은 또 아니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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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개척자) 치명적 약점은 군청색 기류가 더 강렬하게 흐르는 것처럼 보일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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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개척자) 발동 조건은 극소량의 마력을 티라일 요큘러스에 주입하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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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유성은 개척자 선배의 말대로 의안에 마력을 불어넣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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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 최흉들의 약점이 눈에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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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핑으로 인한 효과로 몸의 감각은 끝점을 향해 달려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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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유성의 왼발이 최흉의 오른발을 강하게 짓눌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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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체를 제어하는 힘을 잃은 최흉의 몸뚱이가 앞쪽으로 쏠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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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전처럼 쏘아진 한유성이 검으로 최흉의 허리를 베고 그 기세로 머리통까지 날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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핏방울이 비처럼 쏟아져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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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 이네르도 한유성과 마찬가지로 극한의 숨결을 주입한 채 적의 멱을 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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촤아아아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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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은 거의 같은 속도로 적들을 도륙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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츠츠츠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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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은 마력을 나선으로 휘감은 검지로 관자놀이를 꾹 눌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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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체 혈류 가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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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디오퓨리(CardioFu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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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단계 중 3단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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으저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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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뚱이가 비명을 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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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의 벽안에 핏발이 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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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디오퓨리의 3단계를 사용하는 건 가문 내에서도 사용하는 걸 극도로 꺼리는 최종단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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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투 중에 전조 증상도 없는 '탈진' 상태에 돌입하는 경우가 빈번하게 일어났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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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하나 꼼짝할 수 없는 정지의 상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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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전투가 아주 과열되고 길어지는 상황에서 일어나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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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홀로 전투하는 중에 3단계를 쓰면 모순적이게도 혈류 가속 상태에 진입하기 전에는 위협조차 되지 않았던 적에게 죽을 위험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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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3단계에 돌입하는 건, 탈진 상태에 이르러도 옆에 있는 한유성이 자신을 도와주리라는 확신이 있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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써거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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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육음이 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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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유성과 반은 끝없이 움직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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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엔 망설일 필요가 없었다. 지난 다섯 번째 뿌리와 다르게 도중에 회복이 되는 최흉이 없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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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통을 끊으면 그대로 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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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마리를 죽였을 때 레벨이 올랐다. 52에서 53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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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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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유성은 티라일 오큘러스가 알려주는 약점의 위치대로 검로를 이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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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새, 남아있는 최흉은 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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벽 같은 게 없음에도 단번에 여섯 번째 뿌리를 노릴 수 없는 이유도 수문장처럼 철벽같이 뿌리의 앞을 지키고 있는 저 두 최흉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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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흉들이 으스러진 펼쳐진 난장판 속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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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유성과 반 이네르는 동시에 발걸음을 멈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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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유성이 입가를 비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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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시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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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섯 번째 뿌리 앞에 있는 최흉 중 권역을 쓸 줄 아는 최흉이 아예 없다는 점은 안 그래도 한유성이 의아해하고 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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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은 두 최흉의 발아래에 드넓은 원형이 퍼져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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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원에서 퍼져나가는 폭력적인 기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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뚜두둑- 뚜두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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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안 그래도 거대하고 근육질인 최흉의 몸뚱이가 더 부풀어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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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유성은 마치 강맹한 맹수와 곤충을 뒤섞어놓은 듯한 기괴한 이족보행 괴물, 최흉을 보며 검에 백광의 검기를 다시 맺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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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포심이 아예 들지 않는다고 하면 거짓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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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투쟁심이 그 공포심을 완전히 짓눌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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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두 놈을 반드시 꺾어야만 뿌리를 격퇴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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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이 입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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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형적인 강화형 권역 같네. 육체 강화와 마력 증폭 중심의 영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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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유성은 동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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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것 같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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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유성은 두 최흉이 권역을 전개한 뒤에도 '티라일 오큘러스'로 보이는 약점이 변화하지는 않는 걸 확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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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명적 약점은 똑같이 뒤쪽 목덜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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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목덜미의 안쪽에 깊이 박혀있는 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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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덜미 깊이 있는 핵? 알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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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유성의 설명을 들은 반은 고개를 끄덕이더니, 오른발을 강하게 내디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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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의 몸이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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촤아아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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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졌던 신형은 곧 다시 모습을 드러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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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대한 팔의 위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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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단한 팔의 껍질과 육신을 검으로 베고 상체를 올라타고. 어느새 등 위까지 올라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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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유성은 눈을 부릅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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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명은 미리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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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단계 카디오퓨리를 사용할 거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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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신이 으스러져도 이상하지 않을 한계 너머로 향하는 기술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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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데 저 정도로 신속하고 날카로워질 줄은 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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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이 턱 끝까지 차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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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 반은 멈출 생각이 없었다. 최흉의 목 아래로 검을 들이민 반은 팔을 들어 올리며 최흉의 목 반절을 잘라 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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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뒤쪽 목덜미를 향해 검을 내리찍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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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퍼런 벼락이 목을 파고들고 핵을 깨부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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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는 그 직후였다. 수문장 둘 중 하나를 죽인 반 이네르가 땅으로 제대로 착지하지 못하고 곤두박질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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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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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유성은 다급히 땅을 박차고 튀어 나가 떨어지는 반을 받아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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콰아아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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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남은 한 마리가 내리찍은 회색 철퇴를 피하기 위해 몸을 바로 뒤로 내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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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몸이 피와 땀에 절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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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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옅게 내쉬는 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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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흐려진 동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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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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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유성은 이게 반이 말했던 카디오퓨리 3단계 중 겪을 수 있는 탈진 상태라는 걸 알아차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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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칭과 달리, 체력 소진으로 인한 탈진 상태는 아니었다. 혈류가 꼬여서 일어나는 일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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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진 상태에서 벗어나게 하는 방법은 카디오퓨리의 시작점인 좌측 관자놀이의 반대편인 우측 관자놀이에 마력을 옅게 휘감은 검지를 누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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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유성은 마력을 섬세하게 휘감은 검지를 반의 우측 관자놀이에 눌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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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유성은 반 이네르의 몸을 조심스럽게 땅에 내려놓으며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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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녀올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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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이 고개를 살짝 끄덕이며 옅게 웃는 게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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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유성은 그대로 앞으로 달려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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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은 이번에도 제 몫을 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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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머지 한 마리는 자신의 몫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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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티팩트, 티라일 오큘러스의 능력으로 보이는 마지막 최흉의 취약한 약점을 모조리 타격 타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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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최흉도 가만히 있지는 않았다. 최흉의 공격을 피해내면서 최흉에게 공격을 먹여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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촤아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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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을 날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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콰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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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리를 꺾어, 무릎을 완전히 꿇렸다. 그리고 뒷목을 향해 백색 검기를 내리찍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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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라악! 키르악! 쾅! 콰앙! 콰아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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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흉의 울음과 발버둥이 멎을 때까지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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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유성은 최흉이 더는 움직이지 않는 걸 확인하고 여섯 번째 뿌리에 신성의 돌을 찍어눌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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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층 스테이지를 클리어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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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이 상승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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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v.53 → Lv.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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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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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저앉은 채, 친근한 얼굴로 손을 들고 있는 반 이네르가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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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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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유성도 오른손을 들고서 그 말에 화답하려는 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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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아아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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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하얀 빛이 한유성의 시야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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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동굴 전체를 뒤덮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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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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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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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야를 가득 뒤덮었던 빛이 완전히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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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유성은 상황을 파악하기 위해 주변을 빠르게 둘러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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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앞에 있는 건 투명한 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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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13층 스테이지에서 단 한 번도 마주한 적이 없는 괴상한 존재가 서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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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야, 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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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상적인 사람과는 거리가 먼 덩치의 머리 부분에는 마치 수십 바늘로 꿰맨 것 같은 기이한 천으로 뒤덮여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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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너머에는 또다시 투명한 벽이 있었고. 그 안에는 반 이네르가 서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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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체불명의 존재는 한유성의 앞에 있는 불투명한 벽 앞에 서서 입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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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아, 반갑습니다. 저는 탑의 2급 관리자 플레셰크라고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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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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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레셰크는 한유성의 물음에 고개를 끄덕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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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습니다. 2분 뒤부터 플레이어님이 치르셔야 할 결투에 관해 설명해드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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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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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유성은 미간을 와락 구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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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체 이 플레셰크라는 존재가 무슨 소리를 하는 건지 감조차 잡히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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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희 관리자들은 매 기수마다 최상층부에서 [리뉴얼]에 대한 명령을 하달받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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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뉴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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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유성 플레이어님께서 알아듣기 쉽게 설명해드리자면, 몇몇 층계의 [밸런스 패치]나 새로운 [컨텐츠 공급]이 필요할 때, 그게 리뉴얼로 이루어지는 것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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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명은 길게 이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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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간혹 그런 [오류]가 있는 층계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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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번이라도 [클리어]를 하지 않으면, [리뉴얼]이 불가능한 오류가 있는 층계가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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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현재 [13층]의 난이도는 겪으셨다시피, 혼자서 클리어할 수 있는 수준의 난이도를 월등히 상회하고 있습니다. 판데모니엄 난이도에 걸맞은 플레이어가 13층에 도달한다고 해도 혼자서는 절대 클리어할 수 없다는 판단을 내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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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지난 분기에서 가장 높은 최대 기록을 세웠던 [반 이네르]. 지난 기수에서 사망한 그녀를 저희의 능력으로 현재 층계, [13층에서만 살아있는 존재]로 만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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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존재의 활성화는 지금처럼 13층에 다른 등반자가 진입했을 때만으로 한정됩니다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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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쨌든, 두 명의 플레이어가 13층 스테이지를 진행하도록 만들어야 했습니다. 반드시 이 층계가 공략되길 바랐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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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유성은 플레셰크가 무슨 소리를 지껄이고 있는지, 이제야 그 개요를 알아들을 수는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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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드는 의문은 당연한 의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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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는 혼자 공략 할만 했는 줄 아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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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껏 몸소 경험한 바로는 이 판데모니엄에 혼자 원활하게 진행할 수 있는 층계 따위는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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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 한 층계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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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레셰크는 뒤통수를 긁적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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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긴, 그 말씀이 맞죠. 사실을 고하자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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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리셰크의 말이 잠시 텀을 두고 덧붙여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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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13층 리뉴얼의 명령을 내린 것도. 그 오류의 수정을 위해서 필요한 공략 성공의 확률을 높이기 위해서라며 지난 기수의 플레이어인 반 이네르 님을 조건부 부활 시킨 것도. 이 [판데모니엄 탑]이 직접 내린 결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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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리셰크는 또다시 알 수 없는 소리를 내뱉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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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희도 놀랐죠. 탑이 적극적 의사표현을 하는 건 지극히 드문 경우인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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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리셰크는 당연하다는 듯 말하는 것이. 한유성의 머릿속으로는 잘 이해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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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같은 일개 관리자가 최상층부도 쩔쩔매는 탑의 자체적인 결정을 어떻게 거부하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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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레셰크는 그 말 직후, 갑자기 대뜸 고개를 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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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본론으로 돌아가서, 두 분은 훌륭하게 공략을 해내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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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저희 관리자는 이 골치 아픈 13층을 클리어해준 반 이네르 님과 한유성 님에게 진심 어린 경의를 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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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 같아선, 두 분이 함께 판데모니엄의 등반을 하실 수 있게 만들고 싶지만 그건 불가능한 상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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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유성은 플례셰크의 입에서 튀어나올 다음 말이 뭔지 알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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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 이네르 님께서 완전히 플레이어로서 부활하고 14층에 올라가기 위해선, 한유성 님이 죽으셔야합니다. 반드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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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상대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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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희가 동의도 없이 육체를 다시 일으켜 세운 반 이네르님에 대한 무례를 최대한 갚기 위해, 며칠 전에 이런 사실을 먼저 알려드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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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테이지를 끝낸 직후에 스테이지에서 한유성 플레이어님을 죽이거나, 지금 이곳. 결투장에서 죽여야 한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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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유성은 투명 벽의 너머, 텅 빈 공간 뒤. 또 다른 투명 벽 뒤에 서 있는 반 이네르를 바라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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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반 님께서 스테이지를 끝낸 직후, 한유성 님이 아무런 예상도 하지 못했을 때 죽이는 걸 추천해 드렸습니다만. 그러지 않으시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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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유성을 마주보고 있는 반 이네르는 옅게 웃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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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 이제 1분이 남았군요. 1분 뒤에는 양쪽 투명 벽이 걷히고. 지금 양측의 좌측에 있는 촛불을 먼저 끄는 쪽이 승리하는 겁니다. 물론, 상대방의 촛불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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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유성은 좌측을 바라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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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앞에 있는 투명 벽과 유사하게 생긴 사각형 안에 초가 들어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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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이 붙어있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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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 다 올라갈 방법은 정말 아무것도 없는 거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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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유성의 말에 플레셰크가 고개를 내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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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연적입니다. 반드시 이 자리에서 두 분 중 한 명이 죽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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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말이 한유성은 증오스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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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레셰크에게 주먹을 뻗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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콰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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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명 벽에 가로막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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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투가 시작되고 10분 안에 승자가 가려지지 않으면, 저희가 상흔의 정도나 타격 성공 횟수 등등을 토대로 승자를 가려낼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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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말을 끝으로 플레셰크는 공간의 가운데로 걸어가더니, 정좌 자세로 가만히 앉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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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유성은 벽 너머에 있는 반 이네르를 바라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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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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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유성은 소리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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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 이네르의 이름을 계속 외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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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그 소리는 투명 벽을 넘어서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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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광의 검기를 집결시킨 검으로 투명 벽을 내리쳐도 벽에는 흠집조차 생기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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벽 바깥에 있는 플레셰크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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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벽을 부수려면 위계를 더 올리셔야 합니다. 지금 듣고 계시다시피, 제 목소리는 벽의 법칙을 무시할 수 있지만 저도 벽을 부수지는 못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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쾅! 콰아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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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게 이 신성 결투장의 법칙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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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란한 소리만 벽 안에서 울려 퍼질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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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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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 이네르는 한유성을 바라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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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금 막 이번 일에 대해 알게 된 한유성과 다르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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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은 며칠 전부터 이 사실을 알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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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당신은 강합니다. 반 이네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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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당신은 다섯 번째 뿌리에서 죽지 않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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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섯 번째 뿌리는 카디오퓨리의 3단계를 발동, 적들의 공격을 회피하며 벽을 부수고 뿌리를 마비시키는 데 성공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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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당신이 죽은 건 여섯 번째 뿌리죠. 사인은 탈진 상태에서 맞은 일곱 번의 치명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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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당신은 강합니다. 저자를 죽이고 온전한 부활을 하여 14층에 충분히 올라갈 수 있습니다. 이 플레셰크는 당신을 경외하며, 응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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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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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레셰크의 말을 듣고 계속 고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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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을 쏘면서 고민을 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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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유성과 캐치볼을 하면서도 고민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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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민은 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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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도 살고 싶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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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시간이 사라질수록, 깊어졌던 고민의 결론은 손쉽게 내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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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입장에서는 꽤나 이기적인 선택일지도 모르겠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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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유성의 의견을 들을 생각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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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이기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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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화해도 답은 나오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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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 탑은 그런 곳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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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굴을 맞대고 대화를 하면 삶에 대한 욕심이 생길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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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친구와 같이 올라가고 싶은 생각이 강해질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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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 이네르는 그렇게 확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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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살고 싶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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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고 해서, 살기 위해서 한유성을 죽일 수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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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단호해질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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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에게 이 대결에 관한 이야기를 해주고 사라졌던 플레셰크가 한 번 더 앞에 모습을 드러냈을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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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가지 조건을 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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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 목숨줄과 같은 촛불은. 언제부터 끌 수 있는 건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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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투명 장막이 내려가면 전투가 시작되면서 초를 둘러싼 장막도 내려갑니다. 그때부터 건드릴 수 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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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결투 시작 전, 대기 시간에 초를 건드리게 해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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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 하하, 저도 반 이네르 님께 최대한 편의를 맞춰 드리고 싶습니다만…그런 식의 특혜를 드릴 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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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유성 초 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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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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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 초를 건드리게 해달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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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의 오른손이 초를 둘러싼 장막을 투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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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를 오른손으로 든 반 이네르는 자신의 앞에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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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유성은 앉아있는 플레셰크를 가리키며 무언가를 외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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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명 장막 때문에 아무런 소리가 들리지 않았지만, 예상은 쉽게 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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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도, 함께 힘을 합쳐서 저놈부터 죽여보자. 뭐 그런 내용이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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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도 처음 플레셰크가 눈앞에 나타났을 때, 죽여버리려고 검을 뽑았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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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절 죽이셔도 이 결투에 대한 변화는 없습니다. 제가 죽어도 결투의 진행은 이어질테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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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그런 방식으로 해결될 일이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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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썩 이기적이지만, 이해를 해줬으면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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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둘 다 살아서 올라가는 일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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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회는 없어. 나는 너랑 다르게 고민을 정말 오래 했거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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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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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 이네르는 자신의 앞에 있는 투명 장막 앞에 도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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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막이 올라가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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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투가 시작되어버리기 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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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정한 대로 해야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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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유성은 초를 든 채 자신을 바라보는 반 이네르를 마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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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유성은 반의 이름을 외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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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우성에 대한 반의 반응은. 검지를 입술에 갖다 댄, 조용히 하라는 수줍은 손동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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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 이네르의 입이 천천히 움직이는 게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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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살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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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 모양만으로 무슨 말을 하는지 유추가 될 정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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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 맞다. 한유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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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은 말하는 내내 웃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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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 캐치볼이란 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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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환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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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말 재밌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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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소가 조금 더 짙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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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너랑 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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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은 그 말을 끝으로 몇 걸음 뒤로 물러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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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이 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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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 이네르의 입에서 흘러나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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촛불이 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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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권 발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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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유성은 무너지듯 천천히 쓰러지는 반 이네르를 멍하니 바라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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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레이어' 반 이네르, 결투를 포기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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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레이어' 반 이네르, 사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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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레이어' 한유성, 5초 후 자동으로 14층 층계 대기실로 이동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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