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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12-14 21:31:57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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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유성은 동굴에 진입하자마자 숨을 들이켰다.
여섯 번째 뿌리, 그 내부에 존재하는 적들이 보였다.
천천히 몰려드는 수는 총 여덟.
한유성은 전방으로 기감을 흘렸다.
적들의 등급을 파악하기 위해서였다.
6위계 급만 여덟….
포위하듯 서서히 거리를 좁혀오는 여덟 마리의 최흉.
기감으로 확인된 그들은 전부 6위계 급이었다.
이전의 다섯 번째 뿌리처럼, 회복을 담당하는 피통 역할의 개체도 없고.
길을 가로막는 장애물도 없었다.
하지만 숫자에서 오는 압박감은 분명했다.
“이번엔 좀 간단하네.”
반 이네르의 목소리가 한유성의 귓가에 계속 흘러들어왔다.
“각자 네 놈씩 맡으면 되겠지.”
한유성은 옆에 선 반을 바라보며 웃었다.
“그래, 그렇게 하자.”
“왜, 벅차? 내가 두 마리쯤 더 맡아줄까?”
“아냐. 네 놈씩, 깔끔하게. 좋네.”
시간을 끌수록 불리한 건 이쪽이었다.
콰득!
한유성은 남아있던 용혈의 혈청을 옆구리에 주사했다.
곧이어 극한의 숨결까지 복용했다.
“후우….”
반 이네르 역시 숨을 내쉰 뒤 극한의 숨결을 주사했다.
한유성의 검에 백광이 맺혔다.
새하얀 입자들이 허공에 흩날렸다.
땅바닥을 강하게 즈려밟고 나아가는 한유성의 왼쪽 눈에는 변화가 있었다.
의안(義眼).
일종의 의안이라고 볼 수 있는 장착형 렌즈 아티팩트가 한유성의 왼쪽 눈에 자리를 잡고 있었다.
티라일 오큘러스.
상대방의 약점을 군청색의 선으로 표시하는 아티팩트라고 했다.
몬스터 뿐만 아니라, 사물이나 여타 생명체의 특이점도 알아낼 수 있는 아티팩트라고 했다.
개척자 선배에게 차원 간 거래로 인해 받은 아이템.
- 개척자) 나도 등반자 너처럼 가진 게 없었던 상태에서 탑에 소환됐거든. 애초에 그냥 무역선 선원 출신이었고.
- 개척자) 딱 죽기 좋은 상황에서 덕분에 살아남을 수 있었던 아이템이 스콜라의 눈이라는 아이템이거든.
- 개척자) 그걸 토대로 내가 직접 만들어낸 아티팩트야.
하드 난이도 종결자인 개척자 선배가 전투와 전혀 무관한 삶을 살던 사람이라는 건 한유성으로서도 놀라운 사실이었다.
- 개척자) 보일 약점이 한두 군데는 아닐 거야. 약점을 한 가지만 가진 몬스터는 생각보단 드물거든. 약점이 반드시 치명적인 약점인 것은 또 아니니까.
- 개척자) 치명적 약점은 군청색 기류가 더 강렬하게 흐르는 것처럼 보일 거야.
- 개척자) 발동 조건은 극소량의 마력을 티라일 요큘러스에 주입하는 것.
한유성은 개척자 선배의 말대로 의안에 마력을 불어넣었다.
적, 최흉들의 약점이 눈에 보였다.
도핑으로 인한 효과로 몸의 감각은 끝점을 향해 달려가고 있었다.
한유성의 왼발이 최흉의 오른발을 강하게 짓눌렀다.
육체를 제어하는 힘을 잃은 최흉의 몸뚱이가 앞쪽으로 쏠렸다.
섬전처럼 쏘아진 한유성이 검으로 최흉의 허리를 베고 그 기세로 머리통까지 날렸다.
핏방울이 비처럼 쏟아져 내렸다.
반 이네르도 한유성과 마찬가지로 극한의 숨결을 주입한 채 적의 멱을 노렸다.
촤아아아악!
둘은 거의 같은 속도로 적들을 도륙했다.
츠츠츠츠…!
반은 마력을 나선으로 휘감은 검지로 관자놀이를 꾹 눌렀다.
신체 혈류 가속.
카디오퓨리(CardioFury).
3단계 중 3단계.
으저적!
몸뚱이가 비명을 질렀다.
반의 벽안에 핏발이 섰다.
카디오퓨리의 3단계를 사용하는 건 가문 내에서도 사용하는 걸 극도로 꺼리는 최종단계였다.
전투 중에 전조 증상도 없는 '탈진' 상태에 돌입하는 경우가 빈번하게 일어났기 때문이다.
손하나 꼼짝할 수 없는 정지의 상태.
특히, 전투가 아주 과열되고 길어지는 상황에서 일어나곤 했다.
그래서 홀로 전투하는 중에 3단계를 쓰면 모순적이게도 혈류 가속 상태에 진입하기 전에는 위협조차 되지 않았던 적에게 죽을 위험이 있었다.
지금 3단계에 돌입하는 건, 탈진 상태에 이르러도 옆에 있는 한유성이 자신을 도와주리라는 확신이 있었기 때문이다.
써거걱!
파육음이 일었다.
한유성과 반은 끝없이 움직였다.
이번엔 망설일 필요가 없었다. 지난 다섯 번째 뿌리와 다르게 도중에 회복이 되는 최흉이 없었기 때문이다.
숨통을 끊으면 그대로 죽었다.
세 마리를 죽였을 때 레벨이 올랐다. 52에서 53으로.
푹!
한유성은 티라일 오큘러스가 알려주는 약점의 위치대로 검로를 이행했다.
어느새, 남아있는 최흉은 둘.
벽 같은 게 없음에도 단번에 여섯 번째 뿌리를 노릴 수 없는 이유도 수문장처럼 철벽같이 뿌리의 앞을 지키고 있는 저 두 최흉 때문이었다.
최흉들이 으스러진 펼쳐진 난장판 속에서.
한유성과 반 이네르는 동시에 발걸음을 멈췄다.
한유성이 입가를 비틀었다.
'역시나.'
여섯 번째 뿌리 앞에 있는 최흉 중 권역을 쓸 줄 아는 최흉이 아예 없다는 점은 안 그래도 한유성이 의아해하고 있던 것이다.
남은 두 최흉의 발아래에 드넓은 원형이 퍼져나갔다.
그 원에서 퍼져나가는 폭력적인 기세.
뚜두둑- 뚜두둑!
그리고 안 그래도 거대하고 근육질인 최흉의 몸뚱이가 더 부풀어 올랐다.
한유성은 마치 강맹한 맹수와 곤충을 뒤섞어놓은 듯한 기괴한 이족보행 괴물, 최흉을 보며 검에 백광의 검기를 다시 맺었다.
공포심이 아예 들지 않는다고 하면 거짓말이었다.
하지만 투쟁심이 그 공포심을 완전히 짓눌렀다.
저 두 놈을 반드시 꺾어야만 뿌리를 격퇴할 수 있었다.
반이 입을 열었다.
“전형적인 강화형 권역 같네. 육체 강화와 마력 증폭 중심의 영역.”
한유성은 동의했다.
"그런 것 같네."
한유성은 두 최흉이 권역을 전개한 뒤에도 '티라일 오큘러스'로 보이는 약점이 변화하지는 않는 걸 확인했다.
치명적 약점은 똑같이 뒤쪽 목덜미.
그 목덜미의 안쪽에 깊이 박혀있는 핵이었다.
"목덜미 깊이 있는 핵? 알았어."
한유성의 설명을 들은 반은 고개를 끄덕이더니, 오른발을 강하게 내디뎠다.
반의 몸이 사라졌다.
촤아아악!
사라졌던 신형은 곧 다시 모습을 드러냈다.
거대한 팔의 위에서.
단단한 팔의 껍질과 육신을 검으로 베고 상체를 올라타고. 어느새 등 위까지 올라왔다.
한유성은 눈을 부릅떴다.
설명은 미리 들었다.
3단계 카디오퓨리를 사용할 거라고.
육신이 으스러져도 이상하지 않을 한계 너머로 향하는 기술을.
근데 저 정도로 신속하고 날카로워질 줄은 몰랐다.
숨이 턱 끝까지 차올랐다.
하나, 반은 멈출 생각이 없었다. 최흉의 목 아래로 검을 들이민 반은 팔을 들어 올리며 최흉의 목 반절을 잘라 내버렸다.
그리고 뒤쪽 목덜미를 향해 검을 내리찍었다.
시퍼런 벼락이 목을 파고들고 핵을 깨부쉈다.
문제는 그 직후였다. 수문장 둘 중 하나를 죽인 반 이네르가 땅으로 제대로 착지하지 못하고 곤두박질쳤다.
쾅!
한유성은 다급히 땅을 박차고 튀어 나가 떨어지는 반을 받아냈다.
콰아아앙!!
그리고 남은 한 마리가 내리찍은 회색 철퇴를 피하기 위해 몸을 바로 뒤로 내뺐다.
온몸이 피와 땀에 절어 있었다.
"하아…."
옅게 내쉬는 숨.
그리고 흐려진 동공.
'탈진.'
한유성은 이게 반이 말했던 카디오퓨리 3단계 중 겪을 수 있는 탈진 상태라는 걸 알아차렸다.
명칭과 달리, 체력 소진으로 인한 탈진 상태는 아니었다. 혈류가 꼬여서 일어나는 일이라고 했다.
탈진 상태에서 벗어나게 하는 방법은 카디오퓨리의 시작점인 좌측 관자놀이의 반대편인 우측 관자놀이에 마력을 옅게 휘감은 검지를 누르라고 했다.
한유성은 마력을 섬세하게 휘감은 검지를 반의 우측 관자놀이에 눌렀다.
한유성은 반 이네르의 몸을 조심스럽게 땅에 내려놓으며 말했다.
"다녀올게."
반이 고개를 살짝 끄덕이며 옅게 웃는 게 보였다.
한유성은 그대로 앞으로 달려나갔다.
반은 이번에도 제 몫을 해냈다.
나머지 한 마리는 자신의 몫이었다.
아티팩트, 티라일 오큘러스의 능력으로 보이는 마지막 최흉의 취약한 약점을 모조리 타격 타격했다.
물론 최흉도 가만히 있지는 않았다. 최흉의 공격을 피해내면서 최흉에게 공격을 먹여야 했다.
촤아악!
팔을 날리고.
콰직!
다리를 꺾어, 무릎을 완전히 꿇렸다. 그리고 뒷목을 향해 백색 검기를 내리찍었다.
크라악! 키르악! 쾅! 콰앙! 콰아앙!!
최흉의 울음과 발버둥이 멎을 때까지 계속.
한유성은 최흉이 더는 움직이지 않는 걸 확인하고 여섯 번째 뿌리에 신성의 돌을 찍어눌렀다.
[13층 스테이지를 클리어하셨습니다.]
[레벨이 상승했습니다!]
[Lv.53 → Lv.56]
"여."
주저앉은 채, 친근한 얼굴로 손을 들고 있는 반 이네르가 보였다.
"잘했어."
한유성도 오른손을 들고서 그 말에 화답하려는 순간.
화아아악─
새하얀 빛이 한유성의 시야를.
아니, 동굴 전체를 뒤덮었다.
***
"……."
시야를 가득 뒤덮었던 빛이 완전히 사라졌다.
한유성은 상황을 파악하기 위해 주변을 빠르게 둘러보았다.
눈앞에 있는 건 투명한 벽.
그리고 13층 스테이지에서 단 한 번도 마주한 적이 없는 괴상한 존재가 서있었다.
"뭐야, 넌?"
통상적인 사람과는 거리가 먼 덩치의 머리 부분에는 마치 수십 바늘로 꿰맨 것 같은 기이한 천으로 뒤덮여 있었다.
그 너머에는 또다시 투명한 벽이 있었고. 그 안에는 반 이네르가 서있었다.
정체불명의 존재는 한유성의 앞에 있는 불투명한 벽 앞에 서서 입을 열었다.
"아아, 반갑습니다. 저는 탑의 2급 관리자 플레셰크라고합니다."
"관리자…?"
플레셰크는 한유성의 물음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습니다. 2분 뒤부터 플레이어님이 치르셔야 할 결투에 관해 설명해드리겠습니다."
2분.
한유성은 미간을 와락 구겼다.
대체 이 플레셰크라는 존재가 무슨 소리를 하는 건지 감조차 잡히지 않았다.
"저희 관리자들은 매 기수마다 최상층부에서 [리뉴얼]에 대한 명령을 하달받습니다."
리뉴얼.
"한유성 플레이어님께서 알아듣기 쉽게 설명해드리자면, 몇몇 층계의 [밸런스 패치]나 새로운 [컨텐츠 공급]이 필요할 때, 그게 리뉴얼로 이루어지는 것이죠."
설명은 길게 이어졌다.
"그런데 간혹 그런 [오류]가 있는 층계가 있습니다."
"한 번이라도 [클리어]를 하지 않으면, [리뉴얼]이 불가능한 오류가 있는 층계가 말이죠."
"그런데 현재 [13층]의 난이도는 겪으셨다시피, 혼자서 클리어할 수 있는 수준의 난이도를 월등히 상회하고 있습니다. 판데모니엄 난이도에 걸맞은 플레이어가 13층에 도달한다고 해도 혼자서는 절대 클리어할 수 없다는 판단을 내렸습니다."
"그래서 지난 분기에서 가장 높은 최대 기록을 세웠던 [반 이네르]. 지난 기수에서 사망한 그녀를 저희의 능력으로 현재 층계, [13층에서만 살아있는 존재]로 만들었습니다."
"물론, 존재의 활성화는 지금처럼 13층에 다른 등반자가 진입했을 때만으로 한정됩니다만."
"어쨌든, 두 명의 플레이어가 13층 스테이지를 진행하도록 만들어야 했습니다. 반드시 이 층계가 공략되길 바랐으니까요."
한유성은 플레셰크가 무슨 소리를 지껄이고 있는지, 이제야 그 개요를 알아들을 수는 있었다.
그리고 드는 의문은 당연한 의문이었다.
"…언제는 혼자 공략 할만 했는 줄 아냐?"
지금껏 몸소 경험한 바로는 이 판데모니엄에 혼자 원활하게 진행할 수 있는 층계 따위는 없었다.
단 한 층계도.
플레셰크는 뒤통수를 긁적거렸다.
"하긴, 그 말씀이 맞죠. 사실을 고하자면-."
플리셰크의 말이 잠시 텀을 두고 덧붙여졌다.
"이 13층 리뉴얼의 명령을 내린 것도. 그 오류의 수정을 위해서 필요한 공략 성공의 확률을 높이기 위해서라며 지난 기수의 플레이어인 반 이네르 님을 조건부 부활 시킨 것도. 이 [판데모니엄 탑]이 직접 내린 결정입니다."
플리셰크는 또다시 알 수 없는 소리를 내뱉기 시작했다.
"저희도 놀랐죠. 탑이 적극적 의사표현을 하는 건 지극히 드문 경우인지라."
플리셰크는 당연하다는 듯 말하는 것이. 한유성의 머릿속으로는 잘 이해되지 않았다.
"저같은 일개 관리자가 최상층부도 쩔쩔매는 탑의 자체적인 결정을 어떻게 거부하겠습니까."
플레셰크는 그 말 직후, 갑자기 대뜸 고개를 숙였다.
"다시 본론으로 돌아가서, 두 분은 훌륭하게 공략을 해내셨습니다."
"그래서 저희 관리자는 이 골치 아픈 13층을 클리어해준 반 이네르 님과 한유성 님에게 진심 어린 경의를 표합니다."
"마음 같아선, 두 분이 함께 판데모니엄의 등반을 하실 수 있게 만들고 싶지만 그건 불가능한 상황입니다."
한유성은 플례셰크의 입에서 튀어나올 다음 말이 뭔지 알 것 같았다.
"반 이네르 님께서 완전히 플레이어로서 부활하고 14층에 올라가기 위해선, 한유성 님이 죽으셔야합니다. 반드시."
예상대로였다.
"저희가 동의도 없이 육체를 다시 일으켜 세운 반 이네르님에 대한 무례를 최대한 갚기 위해, 며칠 전에 이런 사실을 먼저 알려드렸습니다."
"스테이지를 끝낸 직후에 스테이지에서 한유성 플레이어님을 죽이거나, 지금 이곳. 결투장에서 죽여야 한다고."
한유성은 투명 벽의 너머, 텅 빈 공간 뒤. 또 다른 투명 벽 뒤에 서 있는 반 이네르를 바라보았다.
"저는 반 님께서 스테이지를 끝낸 직후, 한유성 님이 아무런 예상도 하지 못했을 때 죽이는 걸 추천해 드렸습니다만. 그러지 않으시더군요."
한유성을 마주보고 있는 반 이네르는 옅게 웃고 있었다.
"음, 이제 1분이 남았군요. 1분 뒤에는 양쪽 투명 벽이 걷히고. 지금 양측의 좌측에 있는 촛불을 먼저 끄는 쪽이 승리하는 겁니다. 물론, 상대방의 촛불 말입니다."
한유성은 좌측을 바라보았다.
눈앞에 있는 투명 벽과 유사하게 생긴 사각형 안에 초가 들어있었다.
불이 붙어있는.
"둘 다 올라갈 방법은 정말 아무것도 없는 거냐…?"
한유성의 말에 플레셰크가 고개를 내저었다.
"필연적입니다. 반드시 이 자리에서 두 분 중 한 명이 죽어야 합니다."
그 말이 한유성은 증오스러웠다.
플레셰크에게 주먹을 뻗었지만.
콰앙!
투명 벽에 가로막혔다.
"결투가 시작되고 10분 안에 승자가 가려지지 않으면, 저희가 상흔의 정도나 타격 성공 횟수 등등을 토대로 승자를 가려낼 겁니다."
그 말을 끝으로 플레셰크는 공간의 가운데로 걸어가더니, 정좌 자세로 가만히 앉았다.
한유성은 벽 너머에 있는 반 이네르를 바라보았다.
"반─!"
한유성은 소리쳤다.
반 이네르의 이름을 계속 외쳤다.
하지만 그 소리는 투명 벽을 넘어서지 못했다.
백광의 검기를 집결시킨 검으로 투명 벽을 내리쳐도 벽에는 흠집조차 생기지 않았다.
벽 바깥에 있는 플레셰크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 벽을 부수려면 위계를 더 올리셔야 합니다. 지금 듣고 계시다시피, 제 목소리는 벽의 법칙을 무시할 수 있지만 저도 벽을 부수지는 못하죠."
쾅! 콰아앙!
"그게 이 신성 결투장의 법칙입니다."
요란한 소리만 벽 안에서 울려 퍼질 뿐이었다.
***
반 이네르는 한유성을 바라보았다.
방금 막 이번 일에 대해 알게 된 한유성과 다르게.
자신은 며칠 전부터 이 사실을 알고 있었다.
- 당신은 강합니다. 반 이네르.
- 당신은 다섯 번째 뿌리에서 죽지 않았습니다.
- 다섯 번째 뿌리는 카디오퓨리의 3단계를 발동, 적들의 공격을 회피하며 벽을 부수고 뿌리를 마비시키는 데 성공했습니다.
- 당신이 죽은 건 여섯 번째 뿌리죠. 사인은 탈진 상태에서 맞은 일곱 번의 치명상.
- 당신은 강합니다. 저자를 죽이고 온전한 부활을 하여 14층에 충분히 올라갈 수 있습니다. 이 플레셰크는 당신을 경외하며, 응원합니다.
결투.
플레셰크의 말을 듣고 계속 고심했다.
활을 쏘면서 고민을 했고.
한유성과 캐치볼을 하면서도 고민을 했다.
고민은 길었다.
자신도 살고 싶었으니까.
하지만 시간이 사라질수록, 깊어졌던 고민의 결론은 손쉽게 내려졌다.
'네 입장에서는 꽤나 이기적인 선택일지도 모르겠네.'
한유성의 의견을 들을 생각이 없었다.
그래서 이기적이었다.
대화해도 답은 나오지 않는다.
이곳, 탑은 그런 곳이니까.
얼굴을 맞대고 대화를 하면 삶에 대한 욕심이 생길 뿐이다.
저 친구와 같이 올라가고 싶은 생각이 강해질 뿐이다.
반 이네르는 그렇게 확신했다.
'나도 살고 싶지만.'
그렇다고 해서, 살기 위해서 한유성을 죽일 수는 없다.
그래서 단호해질 수 있었다.
자신에게 이 대결에 관한 이야기를 해주고 사라졌던 플레셰크가 한 번 더 앞에 모습을 드러냈을 때.
한 가지 조건을 붙였다.
- 그 목숨줄과 같은 촛불은. 언제부터 끌 수 있는 건데.
- 투명 장막이 내려가면 전투가 시작되면서 초를 둘러싼 장막도 내려갑니다. 그때부터 건드릴 수 있죠.
- 결투 시작 전, 대기 시간에 초를 건드리게 해줘.
- 예? 하하, 저도 반 이네르 님께 최대한 편의를 맞춰 드리고 싶습니다만…그런 식의 특혜를 드릴 수는.
- 한유성 초 말고.
- 예?
- 내 초를 건드리게 해달라고.
반의 오른손이 초를 둘러싼 장막을 투과했다.
초를 오른손으로 든 반 이네르는 자신의 앞에 들었다.
한유성은 앉아있는 플레셰크를 가리키며 무언가를 외치고 있었다.
투명 장막 때문에 아무런 소리가 들리지 않았지만, 예상은 쉽게 할 수 있었다.
아마도, 함께 힘을 합쳐서 저놈부터 죽여보자. 뭐 그런 내용이겠지.
자신도 처음 플레셰크가 눈앞에 나타났을 때, 죽여버리려고 검을 뽑았으니까.
- 절 죽이셔도 이 결투에 대한 변화는 없습니다. 제가 죽어도 결투의 진행은 이어질테니까요.
하지만 그런 방식으로 해결될 일이 아니었다.
'썩 이기적이지만, 이해를 해줬으면 해.'
결국, 둘 다 살아서 올라가는 일은 없다.
'후회는 없어. 나는 너랑 다르게 고민을 정말 오래 했거든.'
저벅-
반 이네르는 자신의 앞에 있는 투명 장막 앞에 도달했다.
장막이 올라가고.
전투가 시작되어버리기 전에.
결정한 대로 해야만 했다.
***
한유성은 초를 든 채 자신을 바라보는 반 이네르를 마주했다.
한유성은 반의 이름을 외쳤다.
아우성에 대한 반의 반응은. 검지를 입술에 갖다 댄, 조용히 하라는 수줍은 손동작이었다.
반 이네르의 입이 천천히 움직이는 게 보였다.
- 살아.
입 모양만으로 무슨 말을 하는지 유추가 될 정도로.
- 아, 맞다. 한유성.
반은 말하는 내내 웃고 있었다.
- 그 캐치볼이란 거.
아주 환하게.
- 정말 재밌었어.
미소가 조금 더 짙어졌다.
- 너랑 해서.
반은 그 말을 끝으로 몇 걸음 뒤로 물러났다.
바람이 불었다.
반 이네르의 입에서 흘러나온.
촛불이 꺼졌다.
[기권 발생.]
한유성은 무너지듯 천천히 쓰러지는 반 이네르를 멍하니 바라보았다.
['플레이어' 반 이네르, 결투를 포기했습니다.]
['플레이어' 반 이네르, 사망.]
['플레이어' 한유성, 5초 후 자동으로 14층 층계 대기실로 이동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