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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세트 시작 전.
밀키웨이 대기실.
“아니 쟤 신인 맞아? 진짜 말도 안 되게 잘하네.”
라인전부터 한타까지 무난하게 털리고 2대 0을 공언하는 세리머니까지 당한 필리독었지만, 처음에 비해 약간 툴툴댈 뿐 그다지 분노한 표정을 짓진 않았다.
“형. 저희가 그랬잖아요. 십 년 전이면 모를까 지금 형 피지컬로 트루 쟤랑 붙으면 라인전 털린다니까요.”
“야! 그래도 내가 그 정도는 아니...맞나?”
차마 아니라고 할 수 없는 1세트의 모습을 생각하니 말을 자제하게 되는 필리독이었다.
“뭐, 그래도 한 번 붙어서 대충 확인했잖아.”
“형이 솔킬 따인다는 사실이요?”
“에라이. 그거 말고.”
트루가 혼자 딜 차이를 이용해 밀어붙여서 그렇지, 그녀를 제외한 다른 선수들은 중간중간 록드컵 쓰리핏은 커녕 마스터 리그도 안 할 짓을 했었다.
소위 말하는 게임을 던지는 뇌절 플레이는 프라우드가 없는 ST에 여전히 잠재하는 요소였다.
“나 깔끔하게 인정할게. 쟤랑 칼 대 칼로 붙으면 1세트 꼴 나는거.”
트루의 트래시 토크에 완전히 평정심을 유지했냐고 묻는다면 당연히 아니다.
하지만 당면한 사실을 인정하지 못할 선수였다면 여기까지 오지도 못했다.
프라우드가 시대를 지배했지만, 그 속에서 악착같이 살아남아 자신의 흔적을 록 역사에 남긴 그는 이런 일 따윈 수도 없이 겪었다.
그리고 이런 상황에서 가장 쉽게 이기는 방법은, 안티캐리롤을 맡는 거다.
상대 미드를 집요하게 따라다니고, 집중적으로 마크한다.
누군가는 그런 식으로 후반을 가 팀 차이로 이기는 것을 탐탁찮아 하겠지만, 어차피 같은 1승이다.
그리고 팬들은 굳이 고르라고 한다면 언제나 재미있게 진 경기보단, 재미없게 이긴 경기를 바란다.
그게 라이벌팀 간의 대결이라면 더 그랬다.
“트루 어디 가면 바로바로 쫒아가줄 테니까, 우리 그냥 후반 보자.”
원래도 초반 주도권을 중요시하던 ST가 최근 그걸 더욱 중요시하는 이유는 후반 한타의 파멸적인 저점 때문이다.
그러니 강제로 그 모습을 꺼내게만 하면, ST는 자멸하게 되어 있었다.
“가자. 난 져도 팀은 이겨야지.”
“딸깍챔 하실거죠?”
“당연하지. 그리고 야쇼는 밴해야겠더라. 진짜 존나 잘해.”
앞의 팀들이 맞아가면서 만든 트루 전용 미드 5밴 카드에는 다 이유가 있었다.
“그걸 당해보셔야...”
“나 밀키웨이 지분 좀 많은데. 내년에 나 은퇴하면 안 볼 거 같지?”
“......”
언제나 그렇듯.
대기실은 평화로웠다.
한편, ST측 대기실.
“어제 프라우드가 왔다 갔다고요?”
웬일로 말을 잘 들어준 빌어먹을 선배들 덕에 편안하게 피드백을 하고 있던 와중, 엑소르가 그런 말을 꺼냈다.
내가 간식 가지러 간 사이에 후다닥 다녀간 걸 보면 그 인간도 참 바쁘게 산다 싶다.
“확인은 충분히 하지 않았냐면서 네 판단 믿으라더라.”
아니.
그럴 거면 좀 빨리 말 해줬으면 좋았을 것을.
‘...아닌가?’
시즌 극초반에는 프라우드도 본인 문제로 정신이 없었을 테고, 한두 경기 치르고 말해 봤자 저 인간들이 귓등으로도 안 들었을 테니 나름 적절한 타이밍이었을지도 모르겠다.
마침 경기도 ST 선수라면 절대 지면 안 된다고 세뇌에 가까운 소리를 듣는 밀키웨이전이라면 더 그럴 테고.
“그럼 우리 이번에는 아예 누워볼까요?”
이렇게까지 말하니, 얼마나 내 지시를 잘 들어줄지 궁금해진다.
“상대도 대놓고 누울 거 같은데?”
“그러니까 더 편한 거죠.”
보나마나 밀키웨이는 우리가 조급하게 덤비는 걸 상정하고 준비했겠지만, 우리 측 반응이 시원찮으면 오히려 상대의 계획이 어그러지기 마련이다.
“근데 쟤들 진짜 대놓고 눕는 밴픽 하려나?”
“방금 판은 저 시험해보겠다고 그쪽에서도 밴픽 느슨하게 했으니까 이번에는 밀키웨이 클래식 하겠죠 뭐.”
누구보다도 이론을 잘 실행하는 모습을 보여줬으니, 이제 필리독 성격상 굳이 자존심을 세우진 않을 거다.
프라우드처럼 자존심 하나는 강한 인간이지만, 표출 방식은 다른 부류니까.
프라우드가 도발을 정면에서 받아치는 성격이라면, 필리독 이 인간은 어떻게든 이기고 티배깅할 성격이다.
“필리독이 자주 쓰는 챔피언 목록 중에 딸깍 가능한 챔피언들 전부 밴하시죠.”
궁극기만 쓰거나, 스킬 사이클 한 번만 돌려도 1인분 혹은 그 이상이 가능한 챔피언들은 최우선 경계 대상이다.
그걸로 록드컵까지 우승한 인간을 얕볼 생각은 없었다.
“...이러면 미드에서 할 챔피언이 있으려나 모르겠다.”
감독님은 곧 있을 2세트의 밴픽 상태가 예상되는지 허탈한 웃음만 지으셨다.
“다 이기려고 하는 거죠 뭐.”
나는 웃으면서 그렇게 말하곤, 잠시 휴식을 취하기 위해 안대를 썼다.
“우리 은설이는 참 열정이 없는 건 아닌데 말을...”
“프라우드처럼 한다고요?”
“비슷해. 한 십 년은 이 판에서 구른 것처럼 말하는 느낌?”
누가 강팀ㅡ지금이야 5위긴 하지만ㅡ감독 아니랄까 봐, 통찰력 하나는 기가 막히게 좋으셨다.
이래야 록드컵 쓰리핏 감독이 되나 보다.
2세트 밴픽 시간이 왔다.
[야쇼를 첫 밴으로 가져가는 밀키웨이.]
[그래 인정! 너 잘한다! 그러니까 우리랑 싸울 땐 꺼내지 마! 이런 느낌이죠?]
[그렇습니다. 아마 밀키웨이 쪽은 다른 팀들이 그랬듯 트루를 공략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우리는 그에 대응해 니콥과 질리엄을 밴했다.
둘 다 필리독이 즐겨 쓰는 챔피언이다.
한타 포지션 잡는 것도 한세월인 우리가, 턴을 빼는 플레이가 가능한 챔피언을 세계에서 손에 꼽을 정도로 숙련도가 높은 선수에게 쥐어 주는 것만큼 멍청한 짓이 없다.
[어어...?]
[잠시만요, 이러면 설마 밀키웨이랑 ST 둘 다 양 미드 저격 밴인가요?]
어차피 현 메타에서 다른 포지션에는 OP 소리 듣는 챔피언이 최소 두세 개는 있다.
그러니 우리나 상대나, 아예 미드에서 밴 카드를 받아주며 각 포지션의 선수가 필요하거나 편한 챔피언을 가져갈 수 있도록 하고 있었다.
[아니 이거 진짜예요?]
[트루입니다!]
[미드 10밴! 아니 이러면 양 팀 미드 대체 뭘 하나요!]
필리독은 자신이 자주 쓰는 비주류 챔피언을 전부 밴 해버릴 줄은 몰랐는지, 꽤 고민하다 결국 배이가를 골랐다.
[이 친구도 나름 스택형 챔피언이죠?]
[그렇습니다. 후반 조합을 짜는 밀키웨이에게 아예 나쁜 챔피언은 아닙니다. 지역 장악도 가능하니까요.]
[단점은 이제 뚜벅이라는 거죠?]
[네. 스턴 스킬 빠지고 공격당하면 엄청 잘 크지 않는 한 한없이 밀립니다.]
레드 마지막 픽.
블루 사이드 첫 번째 픽처럼, 조합의 완성도를 결정하는 순간이다.
“카사딤 주세요.”
어차피 서로 버티는 거, 어디 한번 밸류의 끝을 보자.
[오와아아악! 초반에 터뜨리는 전략 안 해! 너희들이 누우면 나도 누울 거야!]
[ST가 어디 한 번 끝까지 가보자고 외칩니다!]
솔직히 미드가 다른 챔피언이었으면 오히려 힘들었겠지만, 배이가가 스택을 쌓기 위해 날리는 Q 스킬은 절대 안 맞을 자신이 있었다.
[자, 그럼 2세트 밴픽도 끝났고!]
[이제 선수들을 협곡에서 만나보시죠!]
경기 시작 후.
초반 15분은 평화롭다 못해 상대 헌터끼리 얼굴을 맞댄 적도 없었고, 오브젝트는 정확히 반반을 나눠먹으며 1세트와는 차원이 다른 고요함을 뽐냈다.
—?????
—아니 밀키웨이는 그렇다 치고
—ST가 이걸 참아?
—얘들아...우리 팀이 드디어 참는 법을 배웠어(울컥)
—ㅋㅋㅋㅋㅋㅋ
—그걸 왜 프로 데뷔한 지 최소 5년씩 되는 새끼들이 이제 깨달았냐고 물어보면 실례겠죠?
—닥쳐
—엄ㅋㅋㅋㅋ
—근데 얘들 왜 진짜 잘 사리냐?
—트루야 마침내 빠따를 들었구나
—역시 밀키웨이라도 프로게이머 레전드 리스펙은 트황
—ㅋㅋㅋㅋㅋㅋㅋㅋ
—이따가 ST 애들 일어설 때 종아리나 엉덩이 만지는 새끼들 유심히 봐라
—ㄹㅇㅋㅋ
혼란스러운 실시간 채팅을 뒤로하고, 누구는 평화로운 협곡과 반대의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아니 거기서 한 발자국도 더 나가지 말라고!”
미드에서 헌터의 갱을 세 번은 받아낸 채 살아가고, 탑과 바텀에게는 끊임없이 죽지 않을 각을 찾아 브리핑한다.
“여기 와서 대형 몬스터 먹고 빼.”
“나 두꺼비만 먹고—”
“그냥 좀 와!”
“알겠어...”
말을 안 듣는 거 같으면서도 미묘하게 다들 반응 하나는 전보다 빠른 걸 보면, 프라우드가 언질한 게 효과가 없지는 않았다.
애초에 상대 조합도 후반을 바라봐야 해서 무는 힘—이니시를 거는 힘—이 강하지 않은 조합이라, 오더 후 이 정도 시간 차로 죽을 일은 없었다.
[아니 ST, 안정적입니다?]
[사실 몇 번 고비가 있긴 했는데, 그래도 먹을 오브젝트는 먹고, 누울 땐 자리를 보고 눕고 있습니다.]
[오히려 지금 모습을 보면 밀키웨이가 조급해 보이는군요.]
그렇게 20분이 넘게 흘러도 킬 스코어 0대 0 동률을 유지하고 있자니, 밀키웨이가 좀이 쑤신 모양이다.
[어? 이거 밀키웨이가 남작 둥지 근처 시야를 잡습니다!]
[다섯 명이 오면 물러나는 게 예의죠! 순식간에 ST측 시야 어두워집니다.]
“나 바텀 라인 먹으러 갈게.”
“...저거 시야 다시 안 잡아?”
“저 짓 한 세 번은 더 해야 칠까 말까야.”
물론 만약의 상황을 대비해 나는 텔레포트 주문을 들고 있고, 에레도 뒤틀린 숲 상층, 그러니까 남작 둥지 근처에서 몬스터를 잡고 있긴 했다.
하지만 굳이 그 이상으로 신경을 쓰진 않았다.
[아니 ST, 시야가 보이나요?]
[안 보이는데 왜 제 할 일 하나요! 이거 남작으로 OX 퀴즈를 내려던 밀키웨이가 당황할 정도로 쿨한 반응입니다!]
[그리고 실제로 안 치는 밀키웨이. 이러면 라인 손해가 좀 큰데요?]
남작을 먼저 치는 순간 체력바는 우리보다 낮아질 수밖에 없다.
그리고 그 한 틱이 후반 조합 많은 한타에서 얼마나 큰 영향을 끼치는지 생각해 보면, 밀키웨이는 절대로 남작을 함부로 칠 수 없다.
그렇게 한 두 번 정도 그 짓을 반복한 밀키웨이는.
결국 참지 못했다.
[어? 어?]
[이번에는 친다아아아아! 진짜로 친다!]
[망원 렌즈로 확인했어요! 밀키웨이 남작 사냥 중!]
대신 그 대가는, 스스로가 치러야 한다.
“이번에는 다 와.”
방금 망원 렌즈를 이용해 보인 남작의 체력바 다는 속도를 봤을 때, 설령 텔레포트를 타고 와서 포지션을 잡아도 그것의 채 반도 못 깔 시간이다.
[여유롭게 도착한 ST!]
[일단 부르긴 불렀는데...이거 그래서 어쩌죠?]
[이쯤 되면 밀키웨이는 라인 손해가 너무 커서 무조건 사냥해야 합니다!]
[버스트! 버스트!]
“나 들어가는 순간에 같이 들어가서 강타 써줘.”
“오케이.”
“엑소르는 지금 궁극기!”
내 말은 들은 엑소르가 궁을 시전하고, 징키의 폭탄 미사일이 둥지 방향으로 날아온다.
이 순간부터 굳이 언제 들어갈지 말할 필요는 없었다.
저게 도달하기 직전에 동시에 들어가면 되니까.
나는 토르의 망원 렌즈로 다시금 확인한 둥지로 궁극기를 이용해 거침없이 진입했다.
[홀로 미드와 바텀 두 라인 먹은 트루의 카사딤인데! 그럴 만도 했어요! 이거 대미지가 이상해요!]
[반응할 새도 없이 둥지 안에 있던 밀키웨이 선수들 체력 훅훅 깎이고!]
[그리고 동시에 진입한 에레의 세주가 카사딤의 궁극기 딜과 징키의 궁극기에 맞춰서 강타 사용했습니다!]
[아니 무슨 삼천쯤 남아 있던 남작 체력바가 싹 사라졌어요!]
[ ST Ere 님이 남작 몬스터를 처치했습니다 ]
이 순간.
게임은 끝났다.
“다 잡아!”
둥지에 갇힌 적을 쓸어 담고, 그들의 위에 설 시간이다.
[으아아아악! 밀키웨이 비사아아아앙!]
[사이렌 안 울리셔도 됩니다. 이거 그냥 끝났어요.]
[아니 20분까지 0대 0으로 팽팽하던 이 게임이! 이렇게 순식간에 넘어갑니까!]
남작 몬스터를 먹고 킬도 먹었다.
코어 아이템을 뽑아낸 순간부터, 상대 밸류는 우리에 비하면 반딧불이었다.
[이렇게! 남작 버프를 이용해 억제기에 이어 넥서스까지 밀면서!]
[지지—!]
[ST가 밀키웨이를 잡아내고! 승패패승패패승! 대칭을 완성합니다!]
나는 승리 직후.
자리에서 일어서자마자 방송에서 약속한 대로 바닥에 놓아둔 물병을 쥐었다.
[오? 오오?]
[트루 선수가 물병을 집어 들고 동료들에게 향합니다?]
[그리고 물병을 검처럼 내리긋습니다!]
[이거 야쇼 궁극기군요!]
[아니 진즉에 좀 이렇게 하지! 이렇게 말하는 듯한 트루 선수의 세리머니!]
마음 같아서는 진짜로 물병을 내려치고 싶었지만, 오늘은 잘했으니 봐주기로 했다.
나는 세리머니를 끝내고 근접 촬영을 위에 스테이지에 올라온 중계 카메라 앞에서 당당하게 유니폼에 박힌 ST의 로고를 가리키고선 다시금 손으로 2 : 0을 만들어 보였다.
[내가 한 말은 내가 지킨다!]
[트루 선수가 오늘 대어인 밀키웨이를 잡아내며! 본인이 왜 ST의 미드라이너인지 다시금 증명합니다!]
필리독의 표정이 참 볼만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