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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Authored-By: Claude Opus 4.5 <noreply@anthropic.com>
2025-12-14 21:31:57 +09:00

13 KiB

거울 앞에 서서 넥타이를 정돈한다.

“교복 다 입었지?”

“입었어.”

“그럼 가자. 우리 딸.”

고등학교 입학식.

협곡을 오가며 피 튀기는 혈전과 관중의 환호성 속에서 지내다 현실로 뚝 떨어지니, 이건 이것대로 신선했다.

“핏이 딱 사네. 역시 학생은 교복을 입어야지.”

“난 유니폼도 좋은데...”

솔직히 뭔가 낯설다.

중학교 때 입었던 편한 체육복 비스무리한 교복이 아닌 흔히들 생각하는 교복의 정석을 채택한 학교에 입학한 탓에, 언젠가 LOCK 어워드에 참여했었을 때 입었던 타이트한 정장을 입은 기분이었다.

특히 특정 부위가 좀 낑겼다.

교복 맞춘 지 몇 주 지났다고 이러는지 모르겠다.

단추를 슬쩍 풀고 있자니, 나만의 일일 운전수께서 말을 덧붙이셨다.

“너희 팀 유니폼은 나쁘진 않은데, 솔직히 너무 튀는 색이잖니.”

“......”

새빨간 토마토색이라는 댓글이 머릿속에 맴도는 건 기분 탓이 아니리라.

“...그래도 팬들은 내가 입은 거 보고 좋다고 했어.”

“그건 우리 딸이 너무 예뻐서 그런 거고.”

장 여사는 조수석에 앉은 내 볼을 쓰다듬고선 차에 시동을 걸었다.

“그나저나 차에서 내리자마자 은설이 너 보겠다고 사람들 우르르 몰려드는 거 아니야?”

“설마.”

남고도 아니고, 남녀공학이다.

어차피 지금까지의 빅데이터로 미루어 봤을 때 내게 무작정 접근할 수 있는 남자는 없다고 봐도 무방했고, 여자애들은 중학교 때부터 알고 지낸 친구들 아니면 굳이 내게 접근할 이유가 없었다.

“꺄아아악!”

“트루님 싸인해 주세요!”

“나 진짜 트루 실물 봤어!”

분명 그랬어야 했는데.

지금 몰려드는 인파는 대체 뭐지.

“인기 좋네 우리 딸. 엄마는 차 대고 천천히 갈 테니까 고등학교 구경 좀 해!”

고등학교 정문에 차를 잠시 세워서 나를 떨군 장 여사는 그대로 쌩 하니 근처 공공 주차장 쪽으로 사라지셨다.

그렇게 덩그러니 남겨진 나는, 주변에서 맴도는 남학생들과 동성이라는 이점을 이용해 무작정 돌진하는 여학생들에 끼어버렸다.

사람 살려.


결국 선생님들과 주변에서 입학식이라고 순찰하던 경찰관들의 도움을 받고 나서야 상황이 정리됐다.

“힘들지?”

내 새로운 담임 선생님은 해맑게 웃으시면서 내가 지낼 반을 안내해 주셨다.

“프로게이머 하는 친구들이 의외로 방에서 살아서 그런가 본인이 어느 정도 위치인지 체감을 잘 못하더라고.”

“많이 보셨어요?”

“그럼. 고등학생 중에 프로게이머 지망생이 요즘 얼마나 많은데. 우리 학교도 몇 명 있었으니까 잘 알지.”

“누구요?”

이 학교에 누가 있었나.

“유명한 사람만 말해보자면 프라우드랑 필리독 정도? 이름 모를까 봐 닉네임으로 말했는데 아니?”

“...그 둘이 여길 나왔어요?”

이것 또한 게임사가 VR을 낸 나비효과인지, 아니면 전생과 다르게 바뀐 수많은 것들 중 하나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졸지에 LOC의 전설들의 후배 타이틀도 달게 됐다.

“그럼. 내가 그 애들 국어 선생이었지. 물론 다들 중퇴했지만.”

“아하.”

“그리고 지난 시즌에 록드컵 우승한 원딜도 우리 학교였고. 그 애는 내가 수업 안 해서 기억은 잘 안 나는데 그 친구도 엄청 유명했지.”

일반고 주제에 어지간한 IT, 게임 특성화 고등학교보다 록드컵 우승이 많은 신기한 고등학교다.

그나저나 필리독이야 밀키웨이니까 그렇다 치고, 프라우드 이 인간은 이 학교 나왔으면서 연락도 없다.

진짜 푹 쉬고 있나 보다.

“자, 도착했다. 반 친구들 이름 외울 시간도 없겠지만, 그래도 인사 한 번씩은 하고.”

아무튼 그렇게 선생님께선 나를 일단 반에 집어넣고 입학식 준비를 하러 휙 사라지셨다.

“어?”

“저거 트루 아니야?”

“진짜네.”

“개같이 사인받으러 간다면서.”

“나 따위가 가도 되는 건지에 대한 허락을 받을 수 있을까에 대한 회의가 든다.”

“말 꼬였어 새끼야.”

흠.

LOCK 아레나에서 팬들이 보내는 시선과 어딘가 다른, 조금 더 적나라하면서도 풍부한 감정이 느껴졌다.

뭐, 그래도 이 정도는 록갤의 새벽에 비하면 귀엽다.

“지금부터 사인이랑 셀카 찍어드릴 테니 앞에 줄 서세요.”

빠릿빠릿한 거 하나는 ST1 선수들보다 나은 걸 보니 담임 선생님은 복 받으신 분인가보다.

그렇게 나는 태블릿부터 종이, 심지어 토마토색 ST 바람막이—밖에서 입은 사람은 처음 봤다—에 끊임없이 사인하고 카메라를 향해 웃어 보였다.

“...뭐하냐?”

“자. 너도 여기 옆에 앉아서 사인하고 사진 찍어.”

“......”

플루크 녀석은 마스크까지 낀 채로 중무장을 하고 뒤늦게 왔다가 교실 밖으로 늘어선 줄에 경악했지만, 이내 내게 붙잡혀 사인 제조기 2호가 되었다.

덕분에 여자애들이 꽤 분산되니 확실히 좀 편해지긴 했다.

그리고 나는 경력직인 만큼 할 일을 하면서도 옆에서 죽어라 팬 응대 중인 플루크에게 말을 걸 여유 정도는 있었다.

“ST2 잘 나가던데?”

“제발 돌아와...”

“흠. 그 정돈가. 잘 버티던데.”

“......”

나를 보는 플루크의 시선이 전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불쌍해 보였다.

예전보다 다크서클과 더불어 그늘이 짙어진 얼굴을 보니 확실히 고생을 많이 한 모양이었다.

“근데 내 앞에서 그런 말 하는 법 있어?”

“넌...아니다. 고생해라.”

마침내 선배들이 나를 도와주었다.

이걸 도움이라고 해야 할지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그랬다.


LOCK에 와서 달라진 점 중 하나는 방송 환경이다.

“네. 오랜만에 온 트루입니다.”

선수들에게 하나씩 제공되는 개인 방송실은 여러모로 편리하긴 했다.

스폰받은 음료수 냉장고부터 시작해서 필요하면 언제든 방송실 문 앞까지 배달해주는 사소한 서비스, 그리고 해먹 침대까지.

경기나 스크림만 없었어도 하루 종일 방송실에서 가끔 환기만 시키며 살아도 괜찮은 수준이었다.

아무튼.

오랜만에 방송으로 목소리를 들려주자 시청자들의 반응이 퍽 좋았다.

—캬

—드디어

—왔구나왔구나왔구나왔구나

—고난의 시간이 끝났다

—넘모힘들었어

—ㄹㅇ;;

—ST1 이겼으니 됐다...

—기분 좋게 달려온 트루면 개추

—교복 근데 뭐임?

—와 여고생

—극

—락

—극

—락

—극

“저요? 오늘 입학식 했죠.”

대체 내가 왜 중학교 졸업 축사에 이어 고등학교 입학 축사를 하게 됐는지는 모르겠지만, 어찌 됐든 잘 끝내고 왔다.

—입학식 영상 뜬 거 보고온 트붕이들이면 개추

—어디있음?

—(영상_링크)

—ㅗㅜㅑ

—[블라인드 처리된 채팅입니다]

—사람 ㅈㄴ몰렸네

—아니 교실에 사인회를 열었누...

—트루야 저번에 게릴라 사인회 하면서 알고는 있었지만 저렇게 인기 있는 모습 낯설다

—나작트는 없어

—ㅋㅋㅋㅋㅋㅋ

—아니 근데 기강 잡기 뭔데

—남녀 상관없이 교복입은 꼬꼬마들 쫙 줄서는거 ㄹㅈㄷ네

—역시 기강잡기는 트황

—ST1 기강은 아직 못 잡았다고 하면 안 되겠죠?

—크아악

—그것도 빨리 잡아줘...

“에이, 제가 기강잡은 게 아니라 반 친구들이 착해서 제 말을 잘 들어준 거죠.”

—그럼 ST1 선배들은 안 착하다는 거지?

—트루/논란

—ㅋㅋㅋㅋㅋㅋ

—딱 걸렸다

—본심 나왔으면 개추

—고로시하려고 대기 중이던 새끼들 존나많네

—ㅋㅋㅋㅋㅋㅋ

“무슨 이상한 소리를. 팀원들 제 말 잘 들어줘요.”

듣고 안 따라서 문제지, 일단 듣고 알았다고는 따박따박 잘 말한다.

“그리고 피드백 열심히 해주면서 나아지고 있어요. 실제로 지난 FOX전도 이겼잖아요.”

건전한 대화는 언제나 좋은 법이다.

—피드백?

—엄

—뭔 소리 했을지 안 봐도 예상되면 개추

—ㄹㅇㅋㅋ

—아니 근데 신인이 피드백을 해준다고?

—ㅋㅋㅋㅋㅋㅋ

—ST의 미래가 존나게 밝다

—플루크랑 옥스 말로는 트루 피드백 칼날비라는데

—내 무습다

—인방처럼 선배한테 욕박으면 안된다...

“에이, 피드백할 때 욕하면 그냥 감정싸움이죠.”

나는 팩트만 말한다.

심지어 스킬샷 아쉬운 건 말하지도 않고, 단지 한타 때의 전체적인 상황을 종합해서 더 나은 선택지를 제공할 뿐이다.

—그게 더 무서운데?

—아니 그보다 그걸 다른 팀원들이 납득한다는 거 아님?

—록드컵 쓰리핏한 인간들도 인정하는 트루

—ㄷㄷㄷㄷㄷ

—아니 개념 배울 시간이 얼마나 있었다고 피드백이 되냐

—지리네

“뭐, 그런 거죠. 선배들 다 착해요.”

여기서 더 깊숙이 가 봐야 좋을 게 없는 관계로, 나는 주제를 다시 바꿔 입학식 이야기를 더 꺼냈다.

마침 채팅도 내가 한 입학식 축사 링크를 올리면서 알아서 잘 눈치 있게 위험할 수도 있는 부분을 넘겨주고 있었고.

“아, 축사하라고 할 때는 좀 의외긴 했는데 그냥 경험이다 싶어서 했어요. 경기 끝나고 인터뷰 같은 것도 비슷한 맥락에서 하는 거니까 어렵진 않더라고요.”

감독님이 승리할 때나 패배할 때나 항상 나를 옆에 데리고 다녔다.

덕분에 주장도 아닌 내가—참고로 지금 주장은 니케다—아나운서나 기자들의 질문 한두 개씩 받는 경우가 있었다.

그래서 그런지 내가 한 발언들은 유튜브든 어디든 꽤 많이 퍼져 있었다.

“근데 여러분들은 어차피 그렇게 공식적인 발언보다는 지금 방송에서 하는 말 듣고 싶으신 거죠?”

요즘 패배만 해서 자주 못 켰으니, 이렇게라도 달래줘야지.

아니나 다를까, 채팅창의 반응은 퍽 우호적이었다.

—시청자 니즈 파악은 역시 트황

—ㅋㅋㅋㅋㅋ

—공식 인터뷰나 공식 발언같은 건 트루가 아님

—ㄹㅇㅋㅋ

—여기가 진짜지

—가식 없는 참트루

—ㅋㅋㅋㅋㅋㅋㅋㅋㅋ

—인터뷰 너무 능숙해서 개노잼인거시에오

—좀 그 뭐냐 팀원도 빡세게 갈구시고...예?

—엄ㅋㅋㅋㅋㅋ

—솔직히 쓴소리 해도 뭐라 할 사람 없는데

—미션으로 걸면 다음 경기 때 욕 시원하게 박아줌?

—겠냐

—어림도 없지

“미션이요?”

—왜 고민함?

—설마 진짜 해줄거야?

—ㄱㄱㄱㄱㄱ

—가즈아

—ㅋㅋㅋㅋㅋㅋ

“그, 욕은 당연히 안 되는데, 그래도 오랜만에 이겨서 기분 좋으니까 세리머니 정도는 정하게 해드릴게요.”

물론 지금 ST 상태로 봐서는 그걸 언제 하게 될지는 모르겠다만.

[ 바람은언제바나나 님이 1,500,000 원 후원 ]

[다음 매치에서 팀원 상대로 야쇼 궁극기 시전하기]

—현찰박치기ㄷㄷㄷ

—요즘 트루방송 왤케 큰손 많냐

—해외유입 + ST 유입이 큰 듯...

—원주민들 생존권 보장하라!

—꼬우면...아시죠?

—ㅋㅋㅋㅋㅋㅋㅋㅋ

—어차피 못 떠나는 트붕이들이면 개추

—ㄹㅇㅋㅋ

—아니 근데 팀원 상대로는 뭐야

—솔직히 이기고 세리머니하는 것보다 지고 나서 하면 개꿀잼일 듯

—뭣

—여기서 더 지는 건 안 된다

—크아악

—하지만 재미는 확정이죠?

—트루)다

“야쇼 궁극기요? 일단 접수해둘게요.”

나는 그렇게 메모장에 경기장에서 할 일을 적었다.

키보드는 경기장에 없고, VR 기기는 의자랑 연결되어 있어 따로 쭉 뺄 수가 없으니 작은 물병이라도 들고 가야겠다.

아무튼, 그렇게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하루가 지나가던 와중.

갑자기 헤드셋 너머로 문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

—??????

—아니 형이 왜 여기서 나와

—무야

—뒤에 프라우드 뭔데.

—역시 도방도 GOAT

—이 할아버지 살아계셨구나

—ㅋㅋㅋㅋㅋ

—프라우드 숨 쉰 채 발견

—ST 사옥에서 생존신고 완료

“트루 파이팅.”

“......?”

그 말을 끝으로 프라우드는 문을 닫고 그대로 사라져버렸다.

분명 응원하고 간 건데.

왠지 모르게 놀림당한 기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