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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설이 오기 약간 전, 선수들은 스크림 전용 공간에서 잡담이나 하고 있었다.
"프라우드랑 반반을 갔다고?"
"결국에 솔킬 내줬잖아."
"그래도 무빙은 좋은데?"
어차피 양 팀이 준비한 밴픽이 따로 있었기에 밴픽 관련 이야기조차 할 필요가 없었던 관계로, 할 이야기라곤 오늘 온다는 새 미드라이너 얘기뿐이었다.
특히나 그게 ST가 영입한 첫 여성 게이머라면 더욱 그랬다.
"뭐, 결국에는 팀도 돈 벌어야 한다는 거지."
"화제성 하나는 장난 아니긴 하겠다."
"우리 경기할 때 아레나 다 차겠지?"
"걔 방송도 하던데, 그쪽 팬들만 모아도 오백 명은 껌일걸."
그래서 그런지 자연스레 대화 주제도 실력적인 측면보다는 다른 쪽에 쏠려 있었다.
당연히 챌린저를 소위 말하는 여왕벌처럼 꽁으로 따낸 게 아니라는 걸 그들도 알고 있는 터라 은설의 실력을 완전히 무시하지는 않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은설을 인정한 것도 아니었다.
"다물고 제 말에 따라오세요."
그렇기에 은설이 처음 저 말을 했을 때, ST3의 팀원 대다수는 벙쪘다.
"백정이...말대꾸?"
특히 대놓고 맞은 ST3의 헌터, 오창현은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AI와 싸운다는 장난 어린 말은 몇 번 들었어도, 저렇게 대놓고 하는 발언은 헌터라는 포지션에 대한 모욕이나 다름없었다.
저 외모에서 튀어나왔다고는 생각할 수 없는 비속어 섞인 거친 말과 더불어, 본인이 이곳에서는 최고라는 듯한 오만함.
'뭐 얼마나 잘하나 보자 진짜.‘
3부 리그 최하위권이라고 해도 챌린저에서는 놀이터처럼 뛰어 노는 그들이었기에, 자신보다 나이도 어린 신입의 말을 고분고분 들을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분명히, 그럴 생각이었는데—
[ ST True -> WD MERLOK ]
라인전에서 뜬금없는 희소식이 들려왔다.
"뭐야."
"잘하는데?"
"나 미니언 먹느라 무슨 상황인지 못 봤어. 뭐 어떻게 된 거냐?"
상대팀인 WD의 미드라이너는 나름 마스터 리그에서 한 시즌을 이미 해봤던 만큼, 반반 혹은 약 열세일지라도 괜찮은 수준이라고 생각했다.
이런 상황을 예측한 이는 아무도 없었다.
"자, 다들 좀 집중해요. 저희 아직 라인전 안 끝났잖아요."
팀에서 나이는 어리지만 라인전부터 한타까지 탈 3군 소리를 듣는 플루크의 말에, 다들 놀라움은 잠시 접어두고 다시금 게임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그건 아까 백정 소리 들었던 헌터, 오창현도 마찬가지였다.
그렇게 그가 열심히 뒤틀린 숲속에서 몬스터를 잡고 있던 와중.
"여기 갱 와. 지금."
거침없는 반말과 더불어 명령조의 말투.
설마 트루의 라인이 애매하게 걸쳐서 급한 상황이라 반말이 나왔나 싶어 화면을 돌려 미드 라인을 확인했는데, 그 반대였다.
'각이 너무 좋은데?'
한계까지 갈린 양 팀 미드라이너의 체력바.
그리고 의도적으로 한 건지 라인을 당긴 상태로 걸쳤다.
"플래시도 없고, 텔레포트도 없어."
"......오."
무엇보다도, 상대 미드라이너는 완벽한 무방비 상태였다.
이쯤 되면 지금 중요한 건 반말이 아니었다.
"천천히. 스킬 아끼면서 평타만."
그녀의 말과 더불어 상대의 모습이 너무나 먹음직스러웠던 헌터는 맡겨 둔 골드 주머니가 사라질까 봐 먹던 몬스터도 포기한 채 그대로 미드에 갱을 찔렀고, 날카로운 각이고 뭐고 간단하게 킬을 주워 먹었다.
"...오더 좋았다?"
"그대로 위쪽으로 돌아서 탑 쪽 몬스터 찔러. 상대 헌터 거기 있을 테니까."
그녀는 당연하다는 듯 바로 다음 지시를 내렸다.
"나 내려가서 내 진영 몬스터 먹어야..."
"그냥 좀 가. 가면 이기니까."
상대 헌터가 그곳에 없다고는 추호도 생각하지 않는 저 모습에, 그는 킬도 먹었겠다 한 번쯤은 어울려 주겠다며 위로 올라갔다.
[ 더블 킬! ]
[ ST FLUKE -> WD LONDO ]
[ ST FLUKE -> WD MACC ]
탑라이너들까지 내려와 벌어진 소규모 교전에서, 대승을 거뒀다.
그렇게 그는 상대 진영 쪽에 있던 뒤틀린 숲의 몬스터들까지 싹싹 털어먹으며 집으로 귀환했다.
’뭔데 이거.‘
고작 그녀의 말을 몇 번 들었을 뿐인데.
게임이 너무 쉬웠다.
프로에 발가락이라도 담근 뒤부터 하루 종일 골머리를 앓던 과거가 허무할 정도로, 게임이 지나치게 잘 풀리고 있었다.
“위쪽에 상대 헌터, 곧 상대 서폿 위로 올라가니까 깊숙이 오면 자르고, 아니면 바로 시야 걷어내.”
트루는 상대 헌터의 갱킹 루트부터 위치까지 전부 손쉽게 확인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기반이 되는 건, 은설의 압도적인 라인전이었다.
“상대 집 갔어. 미니언들 따라 오는 갱킹 조심.”
은설이 한 번, 그것도 체력도 괜찮지만 대형 몬스터 사냥을 위해 아이템을 맞추러 간 것에 비해 상대는 이미 집을 서너 번은 다녀왔다.
첫 솔로킬 이후 상대가 사리고 있다는 게 뒤틀린 숲부터 다른 라인까지 전부 체감이 안 될 수가 없었다.
그리고 그 뒤부터는 반말 따윈 문제가 되지 않았다.
특히 밥먹듯이 카정—상대 진영 몬스터를 빼먹는 것—을 가고, 심지어 적과 조우한다면 아무 생각 없이 들이 박아도 이기게 해주는 트루의 움직임은 헌터인 오창현에게 있어 신과 다름없었다.
“핑 찍은 데로 와서 기다려.”
그렇기에 그는 게임이 중반으로 접어든 시점부터 그녀의 말을 무조건적으로 우선시했다.
“그거 먹지 말고 바텀 가서 역갱 타이밍 봐줘.”
평소였다면 다른 미드라이너가 저렇게 말했을 때 일단 사냥 중이던 몬스터를 처리하고 갔겠지만, 이미 한 경기도 안 되는 짧은 시간 사이에 충분히 신뢰가 쌓인 그는 주저 없이 밑으로 내달렸다.
“아니 이 타이밍에 헌터가 왜 오는데?”
“그냥 빨아! 우리가 이겨!”
어차피 바텀이 반반을 간 상황에서, 헌터들 간의 성장 차이가 심대하다면 역갱을 받은 쪽은 쫄딱 망하기 마련이었다.
[트리플 킬!]
아니나 다를까, 레벨 차이와 더불어 완성된 아이템이 한 개는 차이 나는 수준인 만큼 전투라고 부르기도 민망한 일방적인 학살이 끝났다.
상체에서 이미 반쯤 끝난 게임에 마침표를 찍는 전투였다.
’......이게 말이 되나?‘
그리고 트리플 킬을 달성한 오창현은, 기뻐하기보단 얼떨떨하기만 했다.
솔로 랭크와는 차원이 다른 압박과 운영을 보여주는 스크림에서, 단 한 명이 오더 하나로 이렇게까지 영향을 끼칠 수 있다는 사실에, 어안이 벙벙하기만 했다.
“이제 끝내죠?”
어느새 탑에서 플루크와 함께 두 번째 타워를 깨고 유유히 빠져나가는 트루를 보며 비슷한 생각을 한 건 한둘이 아니었다.
“미안하다!”
스크림이 끝나고 가상의 대기실 공간으로 돌아오자, 팀의 헌터인 옥스—OX—오창현은 내게 대뜸 그렇게 말하며 고개를 숙였다.
저렇게 사과하는 이유야 대충 예상이 갔지만, 나는 모르는 척 한번 튕겼다.
“갑자기 왜요? 딱히 못 하신 것도 없으셨던데.”
태연하게 되묻자, 그는 얼굴이 새빨개져서는 할 말을 열심히 고르는 듯했다.
나는 잠시 뜸을 들이다, 가볍게 웃었다.
애초에 미안하다며 뒤 없이 사과를 한 것만 해도 나름대로 고쳐 쓸 수 있는 편이니 굳이 기싸움을 할 생각 따위는 없었다.
“괜찮아요. 신경 안 써요.”
“진짜로?”
갑자기 그의 얼굴이 밝아졌다.
“어차피 앞으로도 제가 시키면 뭐든 할 거 아니에요?”
“...어감이 좀 이상하지 않냐?”
“망나니는 혼자 가서 놀아.”
“......”
플루크 녀석을 뒤로 쳐내고, 나는 그렇게 정글의 무조건적인 지지를 등에 업을 수 있었다.
“그리고 플루크 말로는 바텀 분들도 저에 대해서 뭐라고 하셨다던데...”
일인칭 시점으로 플레이하다 보니 저 밑에 있던 팀원 목소리는 안 들리는데, 바로 옆에서 타워 깨던 플루크 녀석 목소리는 잘 들렸다.
내 말에 원딜인 스트라이크와 벨은 동시에 플루크 녀석을 째려봤지만, 그렇다고 내뱉은 말이 사라지진 않았다.
“돈 벌려고 팀에서 어그로...뭐였더라?”
“으아악! 미안해! 미안합니다!”
저걸 팀 내에서 발언하면 해프닝이지만, 내가 밖에다가 말하면 그대로 UFC 한판 찍는 거다.
당사자도 그걸 아는지, 아예 바싹 엎드려 잘도 빌었다.
“난 숟가락이 한 말에 동조해서 미안해.”
“이걸 나한테 넘긴다고?”
“원래 도구는 쓰는 사람 따라 다른 거지.”
흠.
’저게 바텀이지.‘
역시 숟가락—도구 듀오는 서로 믿음이 넘친다.
굳이 건들 필요는 없어 보였다.
“여기서는 왜 갑자기 방향을 틀었어?”
“은설이가 시켜서요.”
“이 장면은?”
“그것도요.”
“마지막 판단도 그럼...”
“그냥 전부 다 맞아요.”
“......”
안재훈 감독은 그저 허탈하기만 했다.
스크림 한 판 돌렸다고 옥스의 고질적인 문제가 해결됐다.
’아니, 감춰진 건가?‘
스스로의 무력을 믿고 몬스터 헌팅을 우선시하던 옥스가, 트루의 지시에 맞춰 움직이자 오히려 그 무력이 전보다 빛을 발했다.
’이렇게 되면 상체는 완성인가.‘
탑에는 상수인 플루크.
헌터는 마스터 리그 내에서 무력으로는 밀리지 않는 옥스.
그리고, 트루.
그에게 있어 수식이 굳이 필요하지 않은 선수는 몇 없었고, 아직 첫 시즌조차 치르지 않았지만 트루는 그 범주에 들어가 있었다.
’...아무리 봐도 여기 있으면 안 될 것 같은데.‘
그는 개막전에 스러질 유망주들에게 미리 유감을 표했다.
“자, 얘들아. 이번에는 밴픽을 좀 바꿔서 해볼까.”
사실 지금 중요한 건 딱히 밴픽이 아니었다.
트루의 움직임과 오더를 하나라도 흡수시키는 것.
감독인 그가 개막전 전까지 선수들에게 주입 시켜야 할, 단 하나의 과제였다.
그렇게 며칠 간의 스크림과 피드백이 이어지고.
그 고리의 끝은 다시 시작이었다.
[자, 이번 LOCK 산하 마스터 리그 개막전!]
[ST 대 DS 게이밍의 경기가 곧 시작됩니다!]
—개막전이 코앞으로 다가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