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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먼저 불쑥 문을 열고 밖으로 나서려 하자, 코치님이 나를 붙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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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사옥 구조는 알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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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요. 눈 감고 다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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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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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 알고 있으면 안 되는 거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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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옥 투어는커녕 어디에 뭐가 있는지도 안 알려줬는데 들떠서 먼저 튀어 나가는 모습에 다들 의아한 눈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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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그게. 제가 ST 유튜브도 많이 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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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옥 투어 영상 보셨구나! 그거 진짜 편집할 때 공개된 부분이랑 아닌 부분이랑 나누느라 고생했는데 이렇게 알아주시는 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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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행히 자신의 노고를 알아준 촬영팀 직원분들이 감격한 눈치라 적당히 넘어갈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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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그렇게 도착한 연습실은 의외로 사람이 그리 많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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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로 여긴 ST의 1군들은 별도의 연습실이 따로 있고, 여기는 아카데미생들부터 그랜드 리그 선수들까지 섞여서 솔로 랭크만 돌리는 연습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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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들 점심 먹으러 갔나 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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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다섯 시가 넘었는데도 점심이라는 표현을 써주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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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 하루에 먹는 첫 끼면 아침이고, 두 번째면 점심이고 그런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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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해봐서 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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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전 스크림(13:00)—따위의 인지부조화 오는 일정들조차 프로게이머들 사이에선 일상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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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초에 프라우드가 스크림을 빼고 올 수 있을 리가 없으니, 아까부터 점심시간이라는 것 정도는 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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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재훈 코치님야 1부팀부터 3부팀까지 ST 전체를 관리하는 책임자 느낌이라 일찍 올 수 있었던 거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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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사람이 아예 없지는 않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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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2랑 ST3는 지금 솔랭 돌리는 자율 시간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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확실히 모든 팀 일정이 같지는 않았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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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 그래도 그 덕에 반가운 얼굴은 하나 더 찾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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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연습실에 들어서자마자 정면으로 보이는 녀석에게 자연스레 발걸음을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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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R 낀 사람을 어떻게 깨웠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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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원을 꺼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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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 시간을 너무 끌면 그림이 이상해지는 터라 그냥 포기하고 자연스레 옆에 앉아서 프라우드랑 게임이나 할까 싶었는데, 다행스럽게도 얼마 안 가 녀석은 기기를 스스로 벗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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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이 인간들은 왜 거기서...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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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탑 챌린저이자, 내가 알아본 바로는 현재 ST3의 탑 라이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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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루크가 한숨을 푹푹 내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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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훌륭한 탑이 되어가고 있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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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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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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탑은 원래 흥하든 망하든 가져다 박고 결과 잘 나오면 본인 덕이고, 못하면 팀 탓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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괜히 망나니 소리 듣는 게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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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깐. 넌 왜 여기 있어. 아니, 그보다 다들 왜 여기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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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 3군 선수가 솔랭 돌리다 화나서 끄고 자리에서 일어났는데, 보이는 게 촬영팀에 코치님, 거기에 더해 팀의 전설인 프라우드랑 학교 친구면 나라도 화들짝 놀랄만하긴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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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야. 내가 ST3 미드라이너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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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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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음표 핑의 형상화란 저런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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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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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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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랑 자유 랭크 돌릴 때가 엊그제 같을 텐데, 직장에서 만나면 어색할 만도 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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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치님, 진짜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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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 이번에 동운이 나가고 이 친구가 들어오기로 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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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데 팀원들끼리 인사도 안하고 바로 연습시키는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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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나 프라우드 선수랑 일대일 하려고 왔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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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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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됐다. 네가 관전 좀 맡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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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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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연하게도 녀석이 반박 따위를 할 수 있을 리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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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나니랑 백정은 원래 초반부터 자아를 죽여 놔야 말을 잘 듣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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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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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는 익숙한 부유감과 함께, 나는 프라우드의 앞에 서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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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사이에 커다란 책상 두 개와 컴퓨터가 앞을 가로막고 있었지만, 대화에 문제는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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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싶은 챔피언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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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픽은 주셔야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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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까 전의 패기는 어디 갔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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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배를 좀 위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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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답잖은 대화와 함께, 애초에 상대 챔피언 보고 뽑을 생각도 없었던 우리는 그냥 밴픽창이 올리기가 무섭게 동시에 챔피언을 골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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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기 프라우드 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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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그러시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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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시 양심이란 게 없으신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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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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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미호 전설을 기반으로 만든 챔피언이자, 본인의 대표적인 시그니처 픽을 3부 리그 데뷔도 안 한 연습생한테 꺼내는 게 맞나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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협곡의 정의가 무너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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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헌터도 없는 일대일 라인전인데, 트루 선수 쪽이 유리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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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로 내가 뽑은 챔피언은 오리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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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계 구체 하나로 공격부터 보호막, 이동 속도까지 올려주는 대표적인 라인전 강한 챔피언 중 하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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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순히 라인전 구도로만 보면 전 구간에서 내가 유리한 편이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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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는 아무리 뒤틀린 숲에서 튀어나오는 헌터—예전에는 정글이라고 불렀다나 뭐라나—가 없다지만, 일대일 상황에서 이 인간이 대체 무슨 짓을 할지 모른다는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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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나 단순히 키보드랑 마우스만 쓰는 게 아니고, 일인칭 시점이라는 커다란 변수가 생겼으니까 더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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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내 불평과 별개로 시간은 흘렀고, 우리는 어느새 협곡에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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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딱 10분 하는 거고, 킬을 내거나 cs 90개 이상 먹으면 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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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전 옵저버 역할을 맡은 지환이 녀석이 규칙을 다시금 상기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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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미드 라인에서 서로 감정표현을 하며 미니언을 기다리던 우리는, 곧 라인전을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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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ide in bush -> ST Tru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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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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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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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게 죽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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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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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인전 초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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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레벨부터 4레벨까지의 모습은 둘이 차이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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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트루 선수가 신인이라고 초반에는 봐주시나 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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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면으로 경기를 지켜보던 직원들은 현재 말을 걸 수 있는 사람 중 게임에 대해 가장 잘 아는 안재훈 코치에게 상황을 물어왔지만, 그들의 예상과는 전혀 다른 대답이 그의 입에서 튀어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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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쟤 지금 진심으로 하고 있는 거 같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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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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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프라우드를 상대로, 그것도 프라우드의 시그니처픽을 상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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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리 챔피언 상성이 있다지만 신인이 보여줄 수 있는 퍼포먼스로는 최상급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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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킬 피하고. 오. 트루도 어지간하면 다 피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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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로가 서로의 움직임을 베끼고 있는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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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루가 어지간히도 프라우드 연구를 많이 했나 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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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래도 인터뷰 때 프라우드의 모든 경기를 안다고 했던 건 빈말이 아니었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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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생각하고 있던 와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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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변이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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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분의 시간이 거의 끝나갈 무렵 프라우드가 승부수를 던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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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로 체력바는 반절 이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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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로의 딜 교환이 끝났다고 생각하는 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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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인칭 시점으로의 순간적인 전환과 동시에 오리애나의 구체를 무빙으로 완벽하게 피한 뒤 모든 스킬을 맞춰 넣고 사이사이에 평타까지 야무지게 우겨 넣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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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연히 트루 또한 최대한 스킬을 피하려 했으나, 이미 심리전에서 지고 들어간 싸움인 데다 일인칭 모드에서의 숙련도 차이는 유감스럽게도 감출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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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Hide in bush -> ST True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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팽팽하게 이어지던 흐름은 저 킬 로그 하나에 깨져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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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식간에 게임이 끝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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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 그래도 가르칠 게 없으면 어떡하나 했는데. 월급 값은 하겠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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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그 월급 값을 하는 기간조차 그리 길지 않을 듯하지만, 아무튼 그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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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소녀가 프라우드와 이렇게까지 시간을 끌었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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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어쩌면 서로에게 킬각이 나왔기에 프라우드가 한발 앞서 움직였다는 사실이 그를 한없이 기쁘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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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이래서 이 짓을 못 끊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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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재훈 코치는 사람 좋은 미소를 지으며 VR 기기를 벗은 트루에게 다가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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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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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판 더 할까 했지만, 이내 말하는 건 그만두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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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적으로 게임 시스템, 그러니까 일인칭 부분에 대한 이해도가 부족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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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나 다를까, 안재훈 코치님이 다가와 내가 생각한 것과 비슷한 걸 물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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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겪어보니까 어때? 스스로도 아직 부족한 부분이 있어 보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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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놓친 게 좀 있더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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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시 수박 겉핥기로는 좀 힘든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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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장 챌린저 승격할 때 만났던 필리독도 무빙과 별개로 골드 차이로 찍어 누른 부분이 없잖아 있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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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들의 움직임 디테일은 따져보고 배울 부분이 있어 보이긴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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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그런 모든 것들을 제쳐두고 내가 가장 크게 오판한 건 딱 하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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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인간 너무 건강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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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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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아무리 프라우드에게 배웠다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은퇴한 후의 프라우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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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현역인 데다, VR 기기 덕분에 최소한 게임 할 때 만큼은 언제나 전성기의 생생한 손목을 가지고 있다는 걸 간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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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잘했네요. 나름 진심으로 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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옆자리에서 일어난 프라우드가 내게 그렇게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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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판 더 하자고 하면 안 해주실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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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하. 저도 밥은 먹어야 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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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언제 시간 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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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의도적으로 가까이 다가오자, 프라우드는 일정 거리를 유지하며 말을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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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 마스터 리그 우승하시면 다시 붙어드릴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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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그렇게 말하며 왔던 때처럼 혼자 휑하니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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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 아직 나보다 못하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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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말은 안 했지만, 악질적으로 웃는 저 모습을 보니 마음속이 훤히 들여다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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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라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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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의미로나 나쁜 의미로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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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설은 언제나 그 자리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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