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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Authored-By: Claude Opus 4.5 <noreply@anthropic.com>
2025-12-14 21:31:57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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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먼저 불쑥 문을 열고 밖으로 나서려 하자, 코치님이 나를 붙잡았다.

“그, 사옥 구조는 알아요?”

“그럼요. 눈 감고 다녀도...”

아.

이미 알고 있으면 안 되는 거였지.

사옥 투어는커녕 어디에 뭐가 있는지도 안 알려줬는데 들떠서 먼저 튀어 나가는 모습에 다들 의아한 눈치였다.

“아니, 그게. 제가 ST 유튜브도 많이 봐서.”

“사옥 투어 영상 보셨구나! 그거 진짜 편집할 때 공개된 부분이랑 아닌 부분이랑 나누느라 고생했는데 이렇게 알아주시는 분이...!”

다행히 자신의 노고를 알아준 촬영팀 직원분들이 감격한 눈치라 적당히 넘어갈 수 있었다.

아무튼, 그렇게 도착한 연습실은 의외로 사람이 그리 많지 않았다.

참고로 여긴 ST의 1군들은 별도의 연습실이 따로 있고, 여기는 아카데미생들부터 그랜드 리그 선수들까지 섞여서 솔로 랭크만 돌리는 연습실이다.

“다들 점심 먹으러 갔나 보네요.”

“지금 다섯 시가 넘었는데도 점심이라는 표현을 써주네?”

“원래 하루에 먹는 첫 끼면 아침이고, 두 번째면 점심이고 그런 거죠.”

내가 해봐서 안다.

오전 스크림(13:00)—따위의 인지부조화 오는 일정들조차 프로게이머들 사이에선 일상이니까.

애초에 프라우드가 스크림을 빼고 올 수 있을 리가 없으니, 아까부터 점심시간이라는 것 정도는 안다.

안재훈 코치님야 1부팀부터 3부팀까지 ST 전체를 관리하는 책임자 느낌이라 일찍 올 수 있었던 거고.

“그래도 사람이 아예 없지는 않네요.”

“ST2랑 ST3는 지금 솔랭 돌리는 자율 시간이니까.”

확실히 모든 팀 일정이 같지는 않았었지.

뭐, 그래도 그 덕에 반가운 얼굴은 하나 더 찾았다.

나는 연습실에 들어서자마자 정면으로 보이는 녀석에게 자연스레 발걸음을 옮겼다.

...VR 낀 사람을 어떻게 깨웠더라.

전원을 꺼볼까.

여기서 시간을 너무 끌면 그림이 이상해지는 터라 그냥 포기하고 자연스레 옆에 앉아서 프라우드랑 게임이나 할까 싶었는데, 다행스럽게도 얼마 안 가 녀석은 기기를 스스로 벗었다.

“아니 이 인간들은 왜 거기서...하...”

현재 탑 챌린저이자, 내가 알아본 바로는 현재 ST3의 탑 라이너.

플루크가 한숨을 푹푹 내쉬고 있었다.

“훌륭한 탑이 되어가고 있구나.”

“뭐?”

아무렴.

탑은 원래 흥하든 망하든 가져다 박고 결과 잘 나오면 본인 덕이고, 못하면 팀 탓이지.

괜히 망나니 소리 듣는 게 아니다.

“잠깐. 넌 왜 여기 있어. 아니, 그보다 다들 왜 여기까지...?”

뭐, 3군 선수가 솔랭 돌리다 화나서 끄고 자리에서 일어났는데, 보이는 게 촬영팀에 코치님, 거기에 더해 팀의 전설인 프라우드랑 학교 친구면 나라도 화들짝 놀랄만하긴 했다.

“그야. 내가 ST3 미드라이너니까?”

“......?”

물음표 핑의 형상화란 저런 걸까.

그래 그래.

이해한다.

나랑 자유 랭크 돌릴 때가 엊그제 같을 텐데, 직장에서 만나면 어색할 만도 하지.

“코치님, 진짜로요?”

“응. 이번에 동운이 나가고 이 친구가 들어오기로 했어.”

“근데 팀원들끼리 인사도 안하고 바로 연습시키는 거예요?”

“아니, 나 프라우드 선수랑 일대일 하려고 왔는데.”

“뭐?”

“잘됐다. 네가 관전 좀 맡아.”

“......”

당연하게도 녀석이 반박 따위를 할 수 있을 리가 없었다.

망나니랑 백정은 원래 초반부터 자아를 죽여 놔야 말을 잘 듣는다.


이제는 익숙한 부유감과 함께, 나는 프라우드의 앞에 서 있었다.

우리 사이에 커다란 책상 두 개와 컴퓨터가 앞을 가로막고 있었지만, 대화에 문제는 없었다.

“하고 싶은 챔피언 있어?”

“후픽은 주셔야죠.”

“아까 전의 패기는 어디 갔대.”

“후배를 좀 위해주세요.”

시답잖은 대화와 함께, 애초에 상대 챔피언 보고 뽑을 생각도 없었던 우리는 그냥 밴픽창이 올리기가 무섭게 동시에 챔피언을 골랐다.

“...저기 프라우드 씨?”

“왜 그러시죠?”

“혹시 양심이란 게 없으신가요?”

[ 미호 ]

구미호 전설을 기반으로 만든 챔피언이자, 본인의 대표적인 시그니처 픽을 3부 리그 데뷔도 안 한 연습생한테 꺼내는 게 맞나 싶다.

협곡의 정의가 무너졌다.

“그래도 헌터도 없는 일대일 라인전인데, 트루 선수 쪽이 유리하죠.”

참고로 내가 뽑은 챔피언은 오리애나.

기계 구체 하나로 공격부터 보호막, 이동 속도까지 올려주는 대표적인 라인전 강한 챔피언 중 하나다.

단순히 라인전 구도로만 보면 전 구간에서 내가 유리한 편이랄까.

문제는 아무리 뒤틀린 숲에서 튀어나오는 헌터—예전에는 정글이라고 불렀다나 뭐라나—가 없다지만, 일대일 상황에서 이 인간이 대체 무슨 짓을 할지 모른다는 거다.

특히나 단순히 키보드랑 마우스만 쓰는 게 아니고, 일인칭 시점이라는 커다란 변수가 생겼으니까 더 그렇다.

물론 내 불평과 별개로 시간은 흘렀고, 우리는 어느새 협곡에 있었다.

[딱 10분 하는 거고, 킬을 내거나 cs 90개 이상 먹으면 끝입니다.]

관전 옵저버 역할을 맡은 지환이 녀석이 규칙을 다시금 상기시켰다.

그렇게 미드 라인에서 서로 감정표현을 하며 미니언을 기다리던 우리는, 곧 라인전을 시작했다.

[Hide in bush -> ST True]

그리고 죽었다.

“아.”

이게 죽네.


라인전 초반.

1레벨부터 4레벨까지의 모습은 둘이 차이가 없었다.

“...그래도 트루 선수가 신인이라고 초반에는 봐주시나 보네요.”

화면으로 경기를 지켜보던 직원들은 현재 말을 걸 수 있는 사람 중 게임에 대해 가장 잘 아는 안재훈 코치에게 상황을 물어왔지만, 그들의 예상과는 전혀 다른 대답이 그의 입에서 튀어나왔다.

“쟤 지금 진심으로 하고 있는 거 같은데...?”

“진짜요?”

그 프라우드를 상대로, 그것도 프라우드의 시그니처픽을 상대로.

아무리 챔피언 상성이 있다지만 신인이 보여줄 수 있는 퍼포먼스로는 최상급이었다.

“스킬 피하고. 오. 트루도 어지간하면 다 피하네.”

서로가 서로의 움직임을 베끼고 있는 듯했다.

“트루가 어지간히도 프라우드 연구를 많이 했나 보네요.”

아무래도 인터뷰 때 프라우드의 모든 경기를 안다고 했던 건 빈말이 아니었나 보다.

그렇게 생각하고 있던 와중.

이변이 생겼다.

10분의 시간이 거의 끝나갈 무렵 프라우드가 승부수를 던졌다.

서로 체력바는 반절 이하.

서로의 딜 교환이 끝났다고 생각하는 순간.

일인칭 시점으로의 순간적인 전환과 동시에 오리애나의 구체를 무빙으로 완벽하게 피한 뒤 모든 스킬을 맞춰 넣고 사이사이에 평타까지 야무지게 우겨 넣는다.

당연히 트루 또한 최대한 스킬을 피하려 했으나, 이미 심리전에서 지고 들어간 싸움인 데다 일인칭 모드에서의 숙련도 차이는 유감스럽게도 감출 수 없었다.

[ Hide in bush -> ST True ]

팽팽하게 이어지던 흐름은 저 킬 로그 하나에 깨져버렸다.

순식간에 게임이 끝났다.

“뭐, 그래도 가르칠 게 없으면 어떡하나 했는데. 월급 값은 하겠네.”

물론 그 월급 값을 하는 기간조차 그리 길지 않을 듯하지만, 아무튼 그랬다.

저 소녀가 프라우드와 이렇게까지 시간을 끌었다는 것.

아니, 어쩌면 서로에게 킬각이 나왔기에 프라우드가 한발 앞서 움직였다는 사실이 그를 한없이 기쁘게 했다.

‘내가 이래서 이 짓을 못 끊지.

안재훈 코치는 사람 좋은 미소를 지으며 VR 기기를 벗은 트루에게 다가갔다.


한 판 더 할까 했지만, 이내 말하는 건 그만두기로 했다.

기본적으로 게임 시스템, 그러니까 일인칭 부분에 대한 이해도가 부족하다.

아니나 다를까, 안재훈 코치님이 다가와 내가 생각한 것과 비슷한 걸 물어왔다.

“겪어보니까 어때? 스스로도 아직 부족한 부분이 있어 보이지?”

“제가 놓친 게 좀 있더라고요.”

역시 수박 겉핥기로는 좀 힘든가 보다.

당장 챌린저 승격할 때 만났던 필리독도 무빙과 별개로 골드 차이로 찍어 누른 부분이 없잖아 있었으니까.

프로들의 움직임 디테일은 따져보고 배울 부분이 있어 보이긴 했다.

물론, 그런 모든 것들을 제쳐두고 내가 가장 크게 오판한 건 딱 하나였다.

“저 인간 너무 건강해요.”

“......?”

내가 아무리 프라우드에게 배웠다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은퇴한 후의 프라우드였다.

아직 현역인 데다, VR 기기 덕분에 최소한 게임 할 때 만큼은 언제나 전성기의 생생한 손목을 가지고 있다는 걸 간과했다.

“그래도 잘했네요. 나름 진심으로 했는데.”

옆자리에서 일어난 프라우드가 내게 그렇게 말했다.

“한 판 더 하자고 하면 안 해주실 거죠?”

“하하. 저도 밥은 먹어야 해서.”

“그럼 언제 시간 되세요?”

내가 의도적으로 가까이 다가오자, 프라우드는 일정 거리를 유지하며 말을 덧붙였다.

“음. 마스터 리그 우승하시면 다시 붙어드릴게요.”

그는 그렇게 말하며 왔던 때처럼 혼자 휑하니 떠났다.

—너 아직 나보다 못하잖아.

그렇게 말은 안 했지만, 악질적으로 웃는 저 모습을 보니 마음속이 훤히 들여다 보였다.

“...에라이.”

좋은 의미로나 나쁜 의미로나.

전설은 언제나 그 자리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