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Add 3 AI agents (writing, revision, story-continuity specialists) - Add 4 slash commands (rovel.create, write, complete, seed) - Add novel creation/writing rules - Add Novelpia reference data (115 works, 3328 chapters) - Add CLAUDE.md and README.md 🤖 Generated with [Claude Code](https://claude.com/claude-code) Co-Authored-By: Claude Opus 4.5 <noreply@anthropic.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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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라우드가 은퇴하고 난 뒤의 시즌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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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ST의 주전 미드라이너가 된 첫 시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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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 게이밍이! 결국 4강에서 탈락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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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라우드의 빈자리는 너무나 높고, 너무나 깊었나요! 트루 선수 마지막까지 분전해보지만 여기서 그대로 넥서스—파괴가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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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짓말해서 뭐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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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는 그 시즌을 통으로 말아 잡숴 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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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그는 물론이고, 초청 국제전이나 LOC 월드컵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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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강 언저리까지는 도달했지만, 우승이랑은 연이 없었던 시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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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체해 씹1련들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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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라우드 없는 ST는 그냥 다른 팀이 맞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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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시즌 무관 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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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진짜 다 애매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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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루가 나쁘진 않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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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팀 전체가 개불안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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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딴 게 프라우드님 후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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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ㅋㅋㅋㅋㅋㅋ걍 허탈하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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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OC의 예정된 종말이다 개새들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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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팩트는 ST만 ㅈ된거라는 거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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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ㄹㅇ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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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라우드와 영광을 같이했던 선수들이 연달아 은퇴한 건 둘째 치고, 팀 내에서 그가 맡고 있던 역할이 너무나도 많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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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아직 신인이었고, 당연히 그의 반도 채 해내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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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시즌이 끝나고 한숨만 푹푹 내쉬며 휴가도 반납한 채 경기를 복기하고 있었을 무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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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즌도 끝났는데 집에 안 갔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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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퇴하고 한 시즌 내내 인터뷰도 없고 코치로 온 것도 아니고, 어디 갔는지도 몰랐던 프라우드가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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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뜸 사라지고, 뜬금없는 타이밍에 나타난 그에게 내가 할 수 있는 말은 정해져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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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 하다 이제 왔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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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그에게 맡겨둔 게 있을 리가 없었지만, 당시에는 저렇게 퉁명스럽게밖에 말하지 못할 정도로 팀의 상태나, 내 상태나 여러모로 좋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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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안, 나도 나름대로 정리할 시간이 필요했거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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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말하면 제가 나쁜 놈 되는 거 알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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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뭘 새삼스레. 이미 팬들한테는 죽일 놈 다 됐더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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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뮤니티 안 보고 산다면서 진짜 다 보고 사시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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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이제 선수 아니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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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라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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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때만큼은 선수 프라우드가 아닌, 개인으로서의 그의 장난스러운 모습이 더 잘 보이는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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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듣는 사람 입장에서야 심성이 뒤틀리는 기분이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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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루야, 그거 아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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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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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네가 있어서 은퇴할 수 있었던 거다. 다른 녀석이었으면 결승전 때 내가 내려가지도 않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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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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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통 팀에서의 식스맨은 선수로서 없는 사람 취급이거나, 신인의 경험, 혹은 분위기를 위해 데려가는 경우가 많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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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그는 그 사건이 벌어졌던 날, 깍두기라고 해도 모자랄 수준의 내게 믿음을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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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 이미 그 믿음은 저버렸고, 한 시즌 내내 또다시 저버리긴 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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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지금까지 이 게임에 관한 건 틀린 판단을 한 적이 없고, 그건 너에 대한 내 생각도 마찬가지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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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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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넌 내 뒤를 이을 능력이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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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치의 거짓도 없는 눈빛에 나는 차마 대꾸를 할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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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아직 미흡한 것도 맞고, 플루크나 다른 녀석들에 비하면야 경험도 부족한 건 사실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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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그렇게 말하면서 텅 비어있던 내 옆자리에 앉아 자연스레 컴퓨터 전원 버튼을 눌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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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지만, 내가 그럼에도 널 고른 이유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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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와 가장 닮았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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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 하나면 충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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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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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룸의 분위기가 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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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설이 완전 굳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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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사 분께서는 내가 사진 찍을 때도 안 짓던 표정과 굳어버린 동작에 피식 웃으며 내게 일단 저쪽으로 가보라고 손짓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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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앞에 보이는 프라우드의 모습은 내 기억과 전혀 달라지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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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평소에 차고 다니던 손목 보호대마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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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어째 방해한 거 아닌가 모르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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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뇨! 아뇨! 절대 아니에요! 어서 들어오세요, 프라우드 선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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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이크업 담당부터 브이로그 찍던 카메라 담당 직원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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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의 화신이 이곳에 강림하자 혼비백산했지만, 나름 각자의 자리에서 능력 있는 사람들이라 그런지 각자 할 일은 또 빠릿하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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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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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어느새 의자 두 개 놓여진 빈 공간에서 프라우드와 함께 미니 인터뷰를 하는 꼴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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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로 사회자는 부모님 드릴 ST 굿즈들을 바리바리 싸 들고 오신 안재훈 코치님이 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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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까지 안 해주셔도 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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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슨 3군팀 신인 한 명 영입한다고 이렇게 거창한 건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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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슨 소리를 그렇게 해. 유명인을 영입했는데 우리도 영상 거리 하나라도 더 뽑아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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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유명인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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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듀랑 방송 나가고 너 언제부터 팀에 들어오냐고 사람들이 엄청 많이 물어봤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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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래도 그 때의 파급력이 생각보다 컸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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챌린저에, 메카닉도 좋고 심지어 예쁘장하게 생긴 여중생이 ST에 입단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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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럴만할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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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생각해보니 영상팀 쪽에서 영상 한 네 다섯 개는 뽑아낼 소재 같긴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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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프라우드 선수도 저 때문에 부른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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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쟤가 어디 부른다고 올 앤 줄 아냐. 아주 제멋대로에 장난은 또 얼마나 많은데. 쟨 그냥 오고 싶어서 온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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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말에 프라우드가 옆에서 코치님을 장난스레 툭 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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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하. 너무 우상에 대한 동심을 깼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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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치님은 멋쩍은 웃음을 지었지만, 나는 저 말에 천 번, 만 번이고 동의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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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자리에서 최고에 오른 인간들은 나사 한 군데는 빠져 있다는데, 틀린 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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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진행해보자. 어차피 자연스럽게 찍는 영상이고 필요하면 다 편집할 거니까 마음 편하게 얘기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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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내 앞에 있는 카메라를 고려해도 내가 이보다 더 편할 수는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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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들은 나를 처음 보겠지만, 나는 아니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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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 그럼 우선 인사부터 드릴게요. 이번에 ST3 미드라이너로 뛰게 된 트루라고 합니다. 나이는 중학교 3학년이에요. 잘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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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자에 앉아서 꾸벅 고개를 숙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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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행히 잘 정돈된 머리카락은 적당히 흘러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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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 신입 후배가 각이 아주 잘 잡혀 있어서 보기 좋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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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라우드는 웃음을 참으며 그렇게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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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고 보니까 프라우드 선수는 여기 어떻게 알고 찾아오셨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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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메라를 잡고 있던 직원분이 문득 물어오자, 프라우드는 태연하게 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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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 관련 일정은 다 외우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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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시 팀에 애정이 많으시네요. 비슷한 맥락에서 신인 선수 기를 북돋아 주려고 오신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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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비슷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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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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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리 봐도 저렇게 웃는 모습을 볼 때마다 뭐가 있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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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루 선수는 프라우드 선수 플레이, 많이 보셨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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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 경기나 보여주셔도 언제 누구랑 했는지 알 수 있을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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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라우드를 따라잡기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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팬들이 말하는 그 전설적인 실력의 꼬리라도 붙들기 위해 내가 분석하지 않은 경기는 하나도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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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다가 당시에는 옆에 플레이 의도를 설명해줄 수 있는 당사자를 끼고 살 수 있었으니 더 그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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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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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답지가 있는데 참고하지 않을 이유가 없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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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말에 프라우드가 다시 입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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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트루 선수 플레이 방식 좋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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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 트루 선수 게임하는 거 보셨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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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훈이 형이랑 좀 봤습니다. 잘하더라고요. 제가 오늘 여기 온 것도, 그 플레이하는 모습이 계속 떠올라서 온 거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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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력 확실한 선수라는 뜻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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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ST3를 확실하게 강팀으로 만들어주지 않을까. 전 그렇게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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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말 하나에, 방 안에 있던 이들 모두가 놀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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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 새로 온 선수한테 너무 부담 주지 말랬지. 얘 신인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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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인이면 트루 선수처럼 플레이 못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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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 말하는 거 아닌 거 네가 제일 잘 알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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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훈이 형, 저 친구를 봐요. 긴장이라도 한 것 같아 보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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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그 말에 재빨리 몸가짐을 바로 했지만, 다들 피식 웃는 걸 보면 영상에는 이미 다 담긴 모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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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라우드 선수 들어올 때는 긴장 엄청 하시더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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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 다들 친근하게 다가오셔서 좀 풀렸나 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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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초에 프라우드를 다시 만났다는 것에 잠시 굳은 거지 그를 대하는 게 어려워서 긴장한 건 아니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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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프라우드 선수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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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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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이참에 영상팀이 기쁜 비명을 지를 수 있도록 말을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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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까지 온 이유가 있으시겠죠? 설마 제 얼굴 보러 오셨다는 말은 마시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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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외모가 가지는 파괴력은 이미 충분히 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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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까지 말하면 저 능글맞은 인간도 본론을 바로 꺼낼 수밖에 없을 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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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나는 그 잠시마저 기다려줄 생각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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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까지 오셨는데, 잠시 저랑 게임 한 판 하실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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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팀으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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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뇨. 일대일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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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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괜히 이곳까지 행차한 게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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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길 수 없는 호승심은 그가 여기 왜 왔는지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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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 가장 가까운 플레이를 하는 신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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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어떤 프로가 참을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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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미있네요. 사실 저도 그러려고 오늘 여기 온 거였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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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이상의 겉치레는 필요 없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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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뀌어버린 세상 속에서도 프라우드는 여전히 최강이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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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아직 그를 겪어보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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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가실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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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게 있어 LOC라는 게임의 기준을 다시 세울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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