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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라우드가 은퇴하고 난 뒤의 시즌이자.
내가 ST의 주전 미드라이너가 된 첫 시즌.
[ST 게이밍이! 결국 4강에서 탈락합니다!]
[프라우드의 빈자리는 너무나 높고, 너무나 깊었나요! 트루 선수 마지막까지 분전해보지만 여기서 그대로 넥서스—파괴가 됩니다!]
거짓말해서 뭐 할까.
ST는 그 시즌을 통으로 말아 잡숴 먹었다.
리그는 물론이고, 초청 국제전이나 LOC 월드컵까지.
4강 언저리까지는 도달했지만, 우승이랑은 연이 없었던 시즌이었다.
—해체해 씹1련들아
—프라우드 없는 ST는 그냥 다른 팀이 맞다
—이번 시즌 무관 뭔데
—하...진짜 다 애매해
—트루가 나쁘진 않은데...
—그냥 팀 전체가 개불안해
—저딴 게 프라우드님 후계자?
—ㅋㅋㅋㅋㅋㅋ걍 허탈하누
—LOC의 예정된 종말이다 개새들아
—팩트는 ST만 ㅈ된거라는 거임
—ㄹㅇㅋㅋ
프라우드와 영광을 같이했던 선수들이 연달아 은퇴한 건 둘째 치고, 팀 내에서 그가 맡고 있던 역할이 너무나도 많았다.
나는 아직 신인이었고, 당연히 그의 반도 채 해내지 못했다.
그렇게 시즌이 끝나고 한숨만 푹푹 내쉬며 휴가도 반납한 채 경기를 복기하고 있었을 무렵.
“시즌도 끝났는데 집에 안 갔어?”
은퇴하고 한 시즌 내내 인터뷰도 없고 코치로 온 것도 아니고, 어디 갔는지도 몰랐던 프라우드가 돌아왔다.
대뜸 사라지고, 뜬금없는 타이밍에 나타난 그에게 내가 할 수 있는 말은 정해져 있었다.
“뭐 하다 이제 왔어요?”
내가 그에게 맡겨둔 게 있을 리가 없었지만, 당시에는 저렇게 퉁명스럽게밖에 말하지 못할 정도로 팀의 상태나, 내 상태나 여러모로 좋지 못했다.
“미안, 나도 나름대로 정리할 시간이 필요했거든.”
“......그렇게 말하면 제가 나쁜 놈 되는 거 알죠?”
“뭘 새삼스레. 이미 팬들한테는 죽일 놈 다 됐더만.”
“커뮤니티 안 보고 산다면서 진짜 다 보고 사시네.”
“나 이제 선수 아니잖아?”
“.....에라이.”
저 때만큼은 선수 프라우드가 아닌, 개인으로서의 그의 장난스러운 모습이 더 잘 보이는 순간이었다.
물론 듣는 사람 입장에서야 심성이 뒤틀리는 기분이었지만.
“트루야, 그거 아냐?”
“뭐요.”
“난 네가 있어서 은퇴할 수 있었던 거다. 다른 녀석이었으면 결승전 때 내가 내려가지도 않았어.”
“......”
보통 팀에서의 식스맨은 선수로서 없는 사람 취급이거나, 신인의 경험, 혹은 분위기를 위해 데려가는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그는 그 사건이 벌어졌던 날, 깍두기라고 해도 모자랄 수준의 내게 믿음을 주었다.
뭐, 이미 그 믿음은 저버렸고, 한 시즌 내내 또다시 저버리긴 했지만.
“난 지금까지 이 게임에 관한 건 틀린 판단을 한 적이 없고, 그건 너에 대한 내 생각도 마찬가지야.”
“......”
“넌 내 뒤를 이을 능력이 있어.”
한 치의 거짓도 없는 눈빛에 나는 차마 대꾸를 할 수 없었다.
“물론 아직 미흡한 것도 맞고, 플루크나 다른 녀석들에 비하면야 경험도 부족한 건 사실이지.”
그는 그렇게 말하면서 텅 비어있던 내 옆자리에 앉아 자연스레 컴퓨터 전원 버튼을 눌렀다.
“그렇지만, 내가 그럼에도 널 고른 이유는.”
—나와 가장 닮았으니까.
그것 하나면 충분했다.
미디어룸의 분위기가 달라졌다.
“은설이 완전 굳었네.”
사진사 분께서는 내가 사진 찍을 때도 안 짓던 표정과 굳어버린 동작에 피식 웃으며 내게 일단 저쪽으로 가보라고 손짓했다.
눈앞에 보이는 프라우드의 모습은 내 기억과 전혀 달라지지 않았다.
물론, 평소에 차고 다니던 손목 보호대마저.
“제가 어째 방해한 거 아닌가 모르겠네요.”
“아뇨! 아뇨! 절대 아니에요! 어서 들어오세요, 프라우드 선수!”
메이크업 담당부터 브이로그 찍던 카메라 담당 직원까지.
ST의 화신이 이곳에 강림하자 혼비백산했지만, 나름 각자의 자리에서 능력 있는 사람들이라 그런지 각자 할 일은 또 빠릿하게 했다.
그렇게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나는 어느새 의자 두 개 놓여진 빈 공간에서 프라우드와 함께 미니 인터뷰를 하는 꼴이 됐다.
참고로 사회자는 부모님 드릴 ST 굿즈들을 바리바리 싸 들고 오신 안재훈 코치님이 맡았다.
“이렇게까지 안 해주셔도 되는데...”
무슨 3군팀 신인 한 명 영입한다고 이렇게 거창한 건지 모르겠다.
“무슨 소리를 그렇게 해. 유명인을 영입했는데 우리도 영상 거리 하나라도 더 뽑아내야지.”
“...제가 유명인이에요?”
“듀랑 방송 나가고 너 언제부터 팀에 들어오냐고 사람들이 엄청 많이 물어봤어.”
아무래도 그 때의 파급력이 생각보다 컸나 보다.
챌린저에, 메카닉도 좋고 심지어 예쁘장하게 생긴 여중생이 ST에 입단한다.
‘...그럴만할지도?’
다시 생각해보니 영상팀 쪽에서 영상 한 네 다섯 개는 뽑아낼 소재 같긴 했다.
“그럼 프라우드 선수도 저 때문에 부른 거예요?”
“아니. 쟤가 어디 부른다고 올 앤 줄 아냐. 아주 제멋대로에 장난은 또 얼마나 많은데. 쟨 그냥 오고 싶어서 온 거야.”
그 말에 프라우드가 옆에서 코치님을 장난스레 툭 쳤다.
“하하. 너무 우상에 대한 동심을 깼나?”
코치님은 멋쩍은 웃음을 지었지만, 나는 저 말에 천 번, 만 번이고 동의할 수 있었다.
한 자리에서 최고에 오른 인간들은 나사 한 군데는 빠져 있다는데, 틀린 말 없다.
“아무튼, 진행해보자. 어차피 자연스럽게 찍는 영상이고 필요하면 다 편집할 거니까 마음 편하게 얘기해.”
사실 내 앞에 있는 카메라를 고려해도 내가 이보다 더 편할 수는 없었다.
저들은 나를 처음 보겠지만, 나는 아니니까.
“음, 그럼 우선 인사부터 드릴게요. 이번에 ST3 미드라이너로 뛰게 된 트루라고 합니다. 나이는 중학교 3학년이에요. 잘 부탁드립니다!”
의자에 앉아서 꾸벅 고개를 숙인다.
다행히 잘 정돈된 머리카락은 적당히 흘러내렸다.
“어, 신입 후배가 각이 아주 잘 잡혀 있어서 보기 좋네요.”
프라우드는 웃음을 참으며 그렇게 말했다.
“그러고 보니까 프라우드 선수는 여기 어떻게 알고 찾아오셨나요?”
카메라를 잡고 있던 직원분이 문득 물어오자, 프라우드는 태연하게 답했다.
“ST 관련 일정은 다 외우고 있습니다.”
“역시 팀에 애정이 많으시네요. 비슷한 맥락에서 신인 선수 기를 북돋아 주려고 오신 거죠?”
“뭐...비슷합니다.”
흠.
아무리 봐도 저렇게 웃는 모습을 볼 때마다 뭐가 있었는데.
“트루 선수는 프라우드 선수 플레이, 많이 보셨나요?”
“아무 경기나 보여주셔도 언제 누구랑 했는지 알 수 있을걸요.”
프라우드를 따라잡기 위해.
팬들이 말하는 그 전설적인 실력의 꼬리라도 붙들기 위해 내가 분석하지 않은 경기는 하나도 없었다.
게다가 당시에는 옆에 플레이 의도를 설명해줄 수 있는 당사자를 끼고 살 수 있었으니 더 그랬다.
“그렇게까지...?”
“정답지가 있는데 참고하지 않을 이유가 없으니까요.”
그 말에 프라우드가 다시 입을 열었다.
“전 트루 선수 플레이 방식 좋아합니다.”
“어머, 트루 선수 게임하는 거 보셨어요?”
“재훈이 형이랑 좀 봤습니다. 잘하더라고요. 제가 오늘 여기 온 것도, 그 플레이하는 모습이 계속 떠올라서 온 거거든요.”
“실력 확실한 선수라는 뜻이죠?”
“네. ST3를 확실하게 강팀으로 만들어주지 않을까. 전 그렇게 생각합니다.”
그의 말 하나에, 방 안에 있던 이들 모두가 놀랐다.
“야, 새로 온 선수한테 너무 부담 주지 말랬지. 얘 신인이야.”
“신인이면 트루 선수처럼 플레이 못 해요.”
“게임 말하는 거 아닌 거 네가 제일 잘 알잖아.”
“재훈이 형, 저 친구를 봐요. 긴장이라도 한 것 같아 보여요?”
나는 그 말에 재빨리 몸가짐을 바로 했지만, 다들 피식 웃는 걸 보면 영상에는 이미 다 담긴 모양이었다.
“프라우드 선수 들어올 때는 긴장 엄청 하시더니.”
“뭐, 다들 친근하게 다가오셔서 좀 풀렸나 봐요.”
애초에 프라우드를 다시 만났다는 것에 잠시 굳은 거지 그를 대하는 게 어려워서 긴장한 건 아니니까.
“그래서, 프라우드 선수님.”
“예?”
나는 이참에 영상팀이 기쁜 비명을 지를 수 있도록 말을 덧붙였다.
“여기까지 온 이유가 있으시겠죠? 설마 제 얼굴 보러 오셨다는 말은 마시고요.”
내 외모가 가지는 파괴력은 이미 충분히 알고 있다.
이렇게까지 말하면 저 능글맞은 인간도 본론을 바로 꺼낼 수밖에 없을 터였다.
물론, 나는 그 잠시마저 기다려줄 생각이 없었다.
“여기까지 오셨는데, 잠시 저랑 게임 한 판 하실래요?”
“...같은 팀으로요?”
“아뇨. 일대일이요.”
역시.
괜히 이곳까지 행차한 게 아니었다.
숨길 수 없는 호승심은 그가 여기 왜 왔는지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었다.
‘나’에 가장 가까운 플레이를 하는 신인.
그 어떤 프로가 참을 수 있을까.
“재미있네요. 사실 저도 그러려고 오늘 여기 온 거였거든요.”
더 이상의 겉치레는 필요 없어 보였다.
바뀌어버린 세상 속에서도 프라우드는 여전히 최강이었지만.
나는 아직 그를 겪어보지 못했다.
“그럼 가실래요?”
내게 있어 LOC라는 게임의 기준을 다시 세울 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