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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을 잠시 돌려서.
그랜드마스터를 찍은 다음 날 아침.
“할 얘기가 있다고?”
어차피 주말이니만큼 느지막히 일어나 거실에서 과일을 깎던 부모님을 내 방으로 반쯤 끌고 왔다.
“우리 딸, 또 티어 자랑하려고?”
“대충 비슷해.”
물론 그것때문만은 아니지만.
나는 능숙하게 아이디와 비밀번호를 입력하고 게임에 접속해 화면에 내 랭크를 띄웠다.
[ 그랜드마스터 - 514p ]
챌린저까지 얼마 남지 않은 점수.
아니, 그것보다는 그랜드마스터라는 티어 그 자체.
저게 무슨 뜻인지 조금 더 빨리 이해한 아빠는 내 얼굴과 화면을 번갈아 쳐다보며 허탈한 웃음을 지었다.
“......아니, 벌써?”
“응.”
“아니, 와...우리 딸이...?”
나름 내 원래 티어보다 높으셨던 만큼, 저 휘장이 무슨 의미인지 그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으셨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엄마가 잘 모른다는 건 아니었다.
“프로, 지원해줄게.”
우리 장 여사께서는 내가 아직 챌린저가 아님에도 그렇게 말했다.
여러 가지로 알아보시면서 중학생이 이 티어에 있다는 게 무슨 의미인지 알고 계신 듯했다.
“엄마가 뭐부터 해주면 될까? 그 무슨 아카데미 같은 것부터 알아봐야 할까?”
“그거 좋네. 우리 딸이 ST 좋아하니까 거긴 어때? 중학생인데 저 점수면 테스트도 필요 없이 받아줄 텐데.”
꼭 공부가 아니더라도.
부모님은 내가 프로게이머를 하고 싶다는 말이 단순 일탈이 아니라는 걸 깨닫자, 재능 있는 아이들을 보며 호들갑을 떨면서 좋아하는 일반적인 부모님의 모습 그 자체였다.
“엄마, 아빠.”
나는 더 이상의 설득은 필요 없어 보였기에 가지고 있던 테블릿에 다운로드 받아둔 계약서를 보여주었다.
[ ST 프로 계약서 ]
“나 이미 제안 받았어. 그랜드마스터 찍은 직후에.”
부모님의 눈이 아이의 재능을 발견한 기쁨에서 점차 경악으로 물들어갔다.
물론 그 경악이 꼭 나쁜 의미만은 아니었지만.
“아니 은설이 너 그러면 우리한테 미리 말을 해줬어야지!”
“그치만 챌린저 꼭 찍어야 한다고 했잖아. 이것도 프로 제의가 와서 오늘 엄마 아빠한테 티어 보여준 거란 말이야.”
“그건 엄마가 걱정돼서 한 소리고, 이러면 얘기가 전혀 다르지!”
대체 왜 이런 중요한 걸 진즉에 얘기하지 않았느냐며 우리 여사님은 내게 핀잔을 주었다.
게임만 한다고 받는 핀잔보다야 백 배는 낫긴 했다.
“엄마 바보 아니야. 맨날 프로들 보고 사는 스카우터들이 너한테 접근한 건데 내가 무슨 보는 눈이 있다고 조건을 걸겠니. 일찍 보여줬으면 진즉에 더 빨리 도와줄 수 있었을 텐데.”
“괜찮아. 지금도 많이 도와줬잖아.”
솔직히 게임에 재능이 있는지도 없는지도 모르는 와중에, 곧 있으면 중학생 가는 딸이 갑자기 게임에 빠지면 정신머리를 고칠 생각을 하지, 기다려줄 생각하는 부모는 많지 않다.
나를 기다려준 것만 해도, 부모님은 할 일을 충분히 하셨다.
“아, 근데 엄마랑 아빠가 하나는 더 도와줘야 해.”
“뭔데?”
“오늘 계약서 쓰기로 했거든. 나 미성년자라 혼자 못 가.”
“그럼 당장 가야지! 당연히 ST 사옥으로 가는 거 맞지?”
어째 아빠가 더 신나 보이는 건 기분 탓이 아니리라.
“안재훈 선수!”
“하하. 네. 맞습니다. 아버님이 제 선수 시절을 기억하시는 건 의외네요.”
“어떻게 잊겠습니까. 저 그때 결승전도 보러 간 사람입니다.”
맨날 록에 대해서는 적당히 아는 척만 하던 아빠는, ST 사옥에 들어오자마자 만난 코치님의 모습에 심리적 방벽이 녹아내렸다.
“아빠 저번에 경기장 갈 때는 프라우드 이름도 제대로 몰랐으면서 왜 이렇게 자세히 알아?”
“...모르는 척 좀 한 거지. 아빠가 관심 많다고 했어 봐라.”
하긴, 그랬다간 나 데리고 경기장 데려가는 게 주말 일과가 됐을지도 모르겠다.
게다가 내가 땡깡 부리는 건 둘째 치고, 우리 장 여사의 눈초리는 점점 따가워졌을 게 분명했을 거고.
“그래도 이제는 우리 딸이 뛰어난 덕에 숨길 필요 없어졌으니 잘 됐지 뭐.”
아빠는 내 볼을 살짝 꼬집고선 다시 안재훈 선수에게 붙었다.
“요즘 어디 계시나 걱정했는데, 코치로 계셨었네요?”
“그나저나 선수 소리도 오랜만에 듣네요. 최근에는 코치 소리만 들었는데.”
“에이, 그런 말씀 마시죠. 팬들한테는 영원한 황제니까요.”
“감사합니다.”
저것만 보면 계약하러 온 사람은 내가 아니고 아빠다.
아무튼, 계약은 일사천리로 진행됐다.
단년 계약에, 이상한 옵션 없이 연봉이랑 우승, 승리 수당 약간.
‘...응?’
그런데 연봉이 좀 이상했다.
내가 아카데미에서 3군으로 처음 승격하고 받았던 연봉의 세 배는 됐다.
전생과 현생의 게임 시장 규모를 감안해도 지나치게 많았다.
“숫자 하나 잘못 붙이신 거 아니에요?”
“아니, 그거 맞아.”
안재훈 코치님은 고개를 저으며 내게 미소를 지었다.
“난 개인적으로 네가 ST2까지는 무조건 올라갈 거 같거든. 간단하게 말하자면 미리 포섭하려는 거지.”
선수 시절의 날카로운 기세를 아직 버리지 않은 그는, 마치 내게 묻고 있는 듯했다.
—아직 보여줄 게 더 남았지?
팀 게임은 솔로 랭크와는 다른 환경임에도, 그는 내게 정답이 정해진 질문을 던지는 듯했다.
저렇게까지 얘기하면, 대답해주는 게 예의다.
“그럼 계약을 일 년이 아니고, 육 개월만 해요.”
“왜?”
“이번 시즌 끝나면 더 뜯어낼 거니까요.”
“그게 무슨 뜻인지는 알아?”
“ST3, 우승시킬게요.”
“......”
내 말에 그 자리에 있던 모두가 할 말을 잃었다.
계약한 뒤로 챌린저도 찍고, 방송 출연도 하면서 이것저것 하다 보니 시간은 퍽 빨리도 지나갔다.
"슬슬 가야지?"
"그러려고."
계약 당일 나중에 찍는다고 했던 입단 기념 사진이랑 영상을 촬영하는 날이 바로 오늘이었다.
“일만 아니면 엄마라도 같이 가주는 건데.”
“괜찮아. 많이 가 봤어.”
“그럼 사진 찍고 엄마한테도 보내줘? 우리 딸 제대로 꾸미는 건 또 처음이잖니.”
“알았어.”
선수 시절에 화장을 한 적이 없진 않지만, 여자 화장은 잘 모르는데 어떨지 궁금하긴 했다.
‘뭐, 오래 걸리진 않겠지.’
내가 아이돌도 아니고.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버스를 타고 사옥 앞에 도착하니, 익숙한 얼굴이 나를 맞이했다.
“우리 예비 우승자 오셨네.”
안재훈 코치님은 입단 사진과 영상을 찍으러 온 내게 손을 흔들었다.
“...코치님이 이렇게 시간 널널해도 돼요?”
“내가 애들 솔랭까지 신경 써줄 순 없는 노릇이잖아?”
그는 휘파람을 불며 나를 미디어실로 안내해 주었다.
“거기 과자 있으니까 먹으면서 기다...이미 찾았니?”
“여기가 확실히 편하네요.”
역시 집이 최고다.
내가 사옥에 머물렀던 기간을 생각하면, 사실 이 건물 자체가 내 홈그라운드나 다름없었다.
그렇게 잠시 기다리고 있었더니, 대충 봐도 메이크업 담당하시는 분이구나—하는 느낌이 팍 드는 직원 한 분이 내게 다가왔다.
“네가 은설이구나?”
“안녕하세요.”
그녀는 미디어룸 한쪽에 있는 화장대에서 이것저것 꺼내며 말을 이었다.
“일단 유니폼으로 옷은 갈아입고, 혹시 화장은 하고 온 거 있니?”
“아니요. 그냥 맨살이에요.”
“진짜? 피부 엄청 하얗다 얘. 머릿결도 좋고. 이러면 할 수 있는 게 많아지는데...”
왠지 모르게 의욕을 활활 불태우는 모습이 어째 전처럼 간단하게 끝나지는 않을 것만 같았다.
“일단 저 유니폼 입고 나서 화장대 앞 의자에 앉아 볼래?”
“네.”
“이 언니한테 맡기면, 진짜 잘 해줄게. 내가 요즘 남자애들만 하다 보니까 실력 발휘를 못해서 슬펐는데, 마침 또 이런 친구가 프로로 오는구나...!”
그렇게, 나는 장장 한 시간 동안 화장대 앞에 앉아있어야 했다.
“내가 했지만, 완벽해.”
한 시간 동안이나 붙잡혀 있었기에 어지간하면 그 말에 반박하고 싶었으나, 거울 속의 모습을 보니 차마 반박할 수 없었다.
‘...다르긴 하네.’
맨날 부스스한 머리를 하고, 화장은 로션 빼곤 아무것도 안 한 상태로 학교에 갔다가 운동 좀 하고 랭크 게임만 돌리느라 외모에 신경 쓸 시간이 없었는데, 이렇게 보니 말끔함을 넘어선 무언가였다.
검은 머리는 약간의 웨이브를 줘서 옆으로 넘기고, 앞머리에는 살짝 빨갛게 염색된 붙임머리를 브릿지 머리 하듯 덧대 유니폼과 색을 맞췄다.
그리고 얼굴에는 고양이처럼 보이는 붉은 눈화장과 더불어 눈썹 정리, 그리고 하얀 피부를 더 하얗게 만드는 파우더까지 발랐다.
이 정도면 한 시간이 걸릴 만도 했다.
“바로 프로 데뷔한다고 했지?”
“네.”
“은설이 인기 엄청나게 많아지겠다.”
“...매일 이렇게 메이크업하고 경기 뛰어야 하는 건 아니죠?”
“에이. 그건 아니지. 나는 보통 특별한 날에만 이렇게 하거든. 평소에는 언니가 말하는 것만 사서 발라. 은설이는 원판이 좋아서 괜찮아.”
어느새 아그니에 이어 내 언니가 늘어난 것 같지만, 기분 탓이겠지.
“자, 그럼 이제 입단 기념 사진 찍으러 가자.”
“아깐 그러려니 했는데, 일어나서 움직이려니까 유니폼이 좀 껴요.”
“...이것보다 더 크면 너무 부해 보여서 어쩔 수 없어. 자, 가자.”
그녀는 말을 돌리며 나를 사진사에게 안내했다.
“...근데 이런 것도 영상으로 남겨요?”
“그럼. 다 스포트라이트고 조회수니까.”
그 와중에 옆에서 브이로그 찍고 계신 분도 있었다.
예전에는 이런 적이 없었던 거 같은데, 여러모로 신기하다.
“자, 그럼 여기 보시고, 찍습니다!”
그렇게 사옥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며 컨셉 사진도 찍고, 미디어룸의 하얀 배경에서 합성하기 좋은 사진도 몇 개 찍고 있던 와중.
“여기 트루 선수 있나요?”
“...어?”
익숙하고 또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