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Add 3 AI agents (writing, revision, story-continuity specialists) - Add 4 slash commands (rovel.create, write, complete, seed) - Add novel creation/writing rules - Add Novelpia reference data (115 works, 3328 chapters) - Add CLAUDE.md and README.md 🤖 Generated with [Claude Code](https://claude.com/claude-code) Co-Authored-By: Claude Opus 4.5 <noreply@anthropic.com>
313 lines
12 KiB
Markdown
313 lines
12 KiB
Markdown
|
||
VR 기기를 낀 순간.
|
||
|
||
‘이런 느낌이구나.’
|
||
|
||
몸이 붕 뜨는 느낌이 잠시 들더니, 이내 피시방이 아닌 단출한 방 한 칸으로 이동해 있었다.
|
||
|
||
그 와중에 익숙한 입력 인터페이스인 마우스와 키보드는 방 한가운데 놓인 책상 위에 고이 모셔져 있다.
|
||
|
||
모니터가 없다는 사실에 약간 의아해하긴 했지만, 곧이어 켜진 스크린 화면같은 방 한쪽을 가득 채운 화면을 보니 더 이상의 불안감은 없었다.
|
||
|
||
언제나처럼 화면 속에 놓여있는 LOC의 아이콘을 더블클릭하고, 들어가기 전 알아뒀던 학교 친구들의 음성 채팅 채널에 접속했다.
|
||
|
||
[아이디는 True#Silver ]
|
||
|
||
물론 길게 말하진 않았다.
|
||
|
||
내가 한마디 하면 저쪽에서 십수 문장은 내뱉을 게 분명했으니까.
|
||
|
||
일면식도 없는 여자애가 게임 하자는 말에 홀랑 넘어가서 게임하는 녀석들에게 자제력을 바라는 건 무리다.
|
||
|
||
물론 그렇다고 저 상태로 놔둘 생각은 추호도 없었지만.
|
||
|
||
‘원래 실력이 전부지 뭐.’
|
||
|
||
프로든 인터넷 방송이든 하다못해 지금처럼 친구 사이에서조차, 게임 내에서는 게임 잘하는 녀석이 왕이다.
|
||
|
||
아무튼, 마우스와 키보드 감도 조절을 마치니 어느새 나는 자유랭크 5인큐에 초대되어 있었다.
|
||
|
||
방장은 당연히 랭크가 가장 높은 정지환이었다.
|
||
|
||
물론 나는 저 녀석을 다른 이름으로 기억한다.
|
||
|
||
‘...플루크.’
|
||
|
||
LOCK(League Of Champions Korea), 그러니까 한국 1군 리그 5회 우승, 시즌 중간에 있는 초청전 형식의 국제전 2회 우승과 더불어 MVP를 밥 먹듯이 받던 녀석.
|
||
|
||
하지만 사람들이 그에게 붙인 수식어는 그 성적과 영 딴판이었다.
|
||
|
||
—플루크(뽀록) 시즌조차 없는 새끼.
|
||
|
||
본인 입장에서야 플루크라는 닉네임 자체를 광어의 영문명에서 따왔다고 하지만, 뽀록으로 일컬어지는 플루크랑 같은 스펠링이라 반박할 구멍도 없었다.
|
||
|
||
물론 저렇게 어지간한 저주보다 나쁜 수식어를 달게 된 이유야 당연하게도.
|
||
|
||
‘LOC 월드컵이 없으니까.’
|
||
|
||
정확히는 결승전은 한 세 번 갔다.
|
||
|
||
두 번은 중국팀한테 떨어지고, 나머지 한 번, 그러니까 업데이트 중지 공지 직전 열린 마지막 월드컵에서 나한테 패배해 평생 LOC 월드컵과는 인연이 없게 되었었다.
|
||
|
||
LOC의 역사에서 비운의 선수는 많았지만 굳이 말하자면 마지막 비운의 선수라고나 할까.
|
||
|
||
추억에 잠겨 있다 보니 큐는 금세 잡혔다.
|
||
|
||
화면이 벽 한 면을 가득 채우는 만큼, 상대방의 솔로 랭크 티어와 전적을 바로 확인할 수 있는 프로그램도 밴픽창 옆에 딸려 있었다.
|
||
|
||
우리는 탑부터 그랜드마스터, 다이아, 실버, 다이아, 다이아.
|
||
|
||
참고로 나는 당연하게도 실버를 맡고 있다.
|
||
|
||
랭크 게임을 아직 안 돌려봤으니 선수 덕질에 빠져 있던 시절의 내가 받은 배치 티어를 가지고 있는 게 그리 이상한 일은 아니었다.
|
||
|
||
아무튼, 상대는 다이아, 다이아, 마스터, 다이아, 마스터다.
|
||
|
||
“...상대 미드 마스터 아니야?”
|
||
|
||
“지환 너 때문에 MMR 조정한다고 상대 개 빡세잖아!”
|
||
|
||
“지랄.”
|
||
|
||
팀 수준의 총량을 맞추기 위해서인지, 나는 뜬금없이 마스터가 잡혀버렸다.
|
||
|
||
“...너 진짜 미드 할거야?”
|
||
|
||
지환이는 내가 라인전 싸움부터 탈탈 털릴까 봐 바꾸는 걸 제의했겠지만,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을 테니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
||
|
||
“내가 너보다 미드 잘해.”
|
||
|
||
삼만이 넘는 관중들 앞에서 검증된 사실이니 믿어도 된다.
|
||
|
||
“실버가?”
|
||
|
||
“......곧 탈출할 거거든?”
|
||
|
||
탈출이 아니라 아예 로켓 쏴서 챌린저까지 쭉 내달릴 거다.
|
||
|
||
당연하게도 저 녀석은 내 말을 믿지 않았으나, 어차피 곧 있으면 알게 될 일이었다.
|
||
|
||
그러니 바로 박았다.
|
||
|
||
[저거 맞냐?]
|
||
|
||
[은설님님님께서 하고 싶으시다고 하셨어.]
|
||
|
||
[저거랑 어울리는 서포터 추천좀.]
|
||
|
||
내 픽창에 뜬 건 머리를 깔끔하게 올려묶은 여자 암살자 챔피언.
|
||
|
||
소위 말하는 피지컬과 판단이 중요한 칼챔 중 하나다.
|
||
|
||
“나 VR 끼고 하는 첫판이니까 좀 익숙해지게 다들 반반만 가줘.”
|
||
|
||
음성 채널이 픽을 했을 때보다 퍽 시끄러워졌다.
|
||
|
||
[첫판이라면서 암살자 챔을 박아?]
|
||
|
||
[난 모르겠다 그냥 즐겨.]
|
||
|
||
[반반?]
|
||
|
||
[지환이한테 하는 말이겠지.]
|
||
|
||
[하긴.]
|
||
|
||
애초에 탑 대결이 성립이 안 되는 티어 차이다.
|
||
|
||
마음만 먹으면 저 녀석이 상대방을 말려 죽일 수도, 그냥 간식 꺼내먹듯 킬 할 수도 있는 수준인 만큼, 탑차이로 게임이 터지는 건 원하지 않았다.
|
||
|
||
“그러니까 넌 그냥 든든한 거 해.”
|
||
|
||
“......캐리 안 해줘도 돼?”
|
||
|
||
“그럴 거면 게임 왜 해?”
|
||
|
||
“......”
|
||
|
||
다행스럽게도 아직 그 길고 긴 건 없으니 든든한 거라고 하면 진짜 든든하기만 하고 딜은 없는 탱챔들이 전부였다.
|
||
|
||
지환은 내가 뭘 어떻게 하나 보기라도 하려는 건지, 더 이상 말하지 않고 그냥 잠자코 내가 시키는 대로 픽을 했다.
|
||
|
||
그리고 나머지야 뭐. 어차피 각자 라인의 티어가 비슷비슷해서 딱히 추가로 말하지는 않았다.
|
||
|
||
그렇게, 게임이 시작되었다.
|
||
|
||
* * *
|
||
|
||
당연하다면 당연하게도, 게임이 시작한 순간부터 목적은 승리다.
|
||
|
||
물론 트롤들의 목적은 다를 수도 있겠으나, 일단 5인큐를 돌린 시점에서 팀에 트롤은 없을 테니까.
|
||
|
||
‘...아닌가?’
|
||
|
||
지환이 보기엔, 실버인 은설이 무슨 자신감인지 마스터 티어 미드 라이너한테 딜 교환을 거는 것부터 사실상의 트롤이라 봐도 무방하지 않나 싶긴 했다.
|
||
|
||
‘도와줄 수도 없고.’
|
||
|
||
사실 상대의 무빙만 보더라도, 그가 무슨 챔피언을 하든지와 관계 없이 상대를 찍어 누르고 어디든지 돌아다닐 수 있긴 했다.
|
||
|
||
하지만 그러면 은설의 말을 어긴 게 된다.
|
||
|
||
‘...게임 넘어가기 전까지만 지켜본다 진짜.’
|
||
|
||
손쓸 수 없는 시점이 되기 이전에 수습해 이긴다면, 그녀도 나름 이 게임에 대해 본격적인 흥미를 붙일 수도 있고 자신도 승리를 얻으니 나쁘지 않을 터였다.
|
||
|
||
그리고 그런 생각은 4명 모두 비슷했다.
|
||
|
||
[퍼스트 킬!]
|
||
|
||
분명 그랬을 터였는데.
|
||
|
||
[True -> 집가고싶다]
|
||
|
||
게임 시작한 지 채 오 분도 되지 않아 뜬 킬로그는, 지환을 포함한 4명의 생각과 전혀 다른 방향이었다.
|
||
|
||
* * *
|
||
|
||
LOC라는 게임에 인생을 바친 만큼, 첫 킬로그를 확인한 순간 전율이 들었다.
|
||
|
||
‘움직임이 가벼워.’
|
||
|
||
쿼터뷰 시점에서 전투 진입 직전 1인칭으로 바꾸자, 말 그대로 나는 뒤틀린 협곡의 미드 라인에서 상대와 대치하고 있었다.
|
||
|
||
굳이 스킬 버튼을 누를 필요도 없이, 생각만 하면 쿨타임이 남아있지 않는 한 곧바로 움직이는 몸, 그리고 움직임에 있어 더 유연하고 부드러움이 느껴졌다.
|
||
|
||
클릭으로는 사실상 불가능한 곡선형 움직임도 너무나 유려하게 가능했다.
|
||
|
||
‘일단 스킬 쓸 때 움직임 보정은 확실하고...회피 한정으로는 이쪽이 반응하기 편하네.’
|
||
|
||
논타겟 스킬을 맞출 때는 하늘 위에서 보는 쿼터뷰 시점이 편할 때도 있다.
|
||
|
||
그렇지만 회피는 좀 다른 경우였다.
|
||
|
||
스킬 회피를 위해서는 반응속도와 예측이 중요하다.
|
||
|
||
그런데 1인칭 시점은 키보드나 마우스를 거치지 않고 뇌에서 바로 이동한다는 신호를 보내는 만큼 반응 속도도 빨랐고, 예측까지 갈 것도 없이 상대가 스킬을 쓰려는 전조 동작을 1인칭 시점으로 보니 회피조차 너무나도 쉬웠다.
|
||
|
||
‘프로들은 그럼 전부 이 정도 반응은 한다고 봐야겠고...’
|
||
|
||
남은 건 쿼터뷰 시점과 1인칭 시점의 빠른 전환과 혼용에 대해 익숙해지는 것뿐이다.
|
||
|
||
물론 그걸 대신해 줄 허수아비는 눈앞에 있는 상대 챔피언, 방패병이었다.
|
||
|
||
[True -> 집가고싶다]
|
||
|
||
그렇게, 그는 채 십 분이 지나기도 전에 안전한 후방으로의 빠른 이동을 몇 번이고 시전했다.
|
||
|
||
물론 자의는 아니었다.
|
||
|
||
* * *
|
||
|
||
그렇게 빠른 항복을 받아내며 연달아 두세 판을 이겼고, 나는 록을 껐다.
|
||
|
||
여기서 더 하기엔 각자 시간이 부족했다. 다들 뭐 학원을 빠져도 된다고들 하던데, 그건 내 양심에 찔렸다.
|
||
|
||
“아니 진짜 실력 뭐야?”
|
||
|
||
“나랑 듀오 해줘!”
|
||
|
||
“제발 마스터 가게 해주세요...”
|
||
|
||
대충 몰려드는 녀석들은 여자 친구들 방패로 쳐내고 기지개를 켰다.
|
||
|
||
평소보다 이상하게 몸이 찌뿌둥했다.
|
||
|
||
“나머지는 집 가서 연습해보면 되겠다.”
|
||
|
||
“잘 놀았어?”
|
||
|
||
“우리 학교 애들 록 나름 잘하던데?”
|
||
|
||
같이 해준 애들 들으라고 한 말 맞다.
|
||
|
||
녀석들은 뭔가 이게 아닌데—따위의 표정을 짓다가도, 내 말을 듣자 금세 헤실거렸다.
|
||
|
||
어디까지나 딱 아마추어 기준이지만, 그래도 처음에 내 고집에 어울려줬으니 이 정도 칭찬이야 몇 번이고 해줄 수 있었다.
|
||
|
||
[True#Silver : 28/0/7]
|
||
|
||
나는 마지막 판의 결과창을 닫고선 그대로 자리에서 일어나려다—
|
||
|
||
“어?”
|
||
|
||
그대로 다시 주저앉았다.
|
||
|
||
“남자애들 불러 모아서 게임 하더니, 이젠 몸개그도 해?”
|
||
|
||
큭큭대며 웃는 은채의 말에, 나는 다시금 자리에서 일어나려 시도했지만 몸에 힘이 잘 안 들어갔다.
|
||
|
||
“......너 진짜 록 처음 하는 거구나.”
|
||
|
||
그리고 그런 내 모습을 본 지환은 충격받은 얼굴로 내게 물어왔다.
|
||
|
||
“정확히는 이거 머리에 끼고 하는 게 처음이지.”
|
||
|
||
“알아. 너 지금 몸 상태 보니까 그런 것 같아.”
|
||
|
||
“내 몸 상태가 뭐?”
|
||
|
||
“너 저 VR 기기 주의 사항 안 읽었지?”
|
||
|
||
“...아마?”
|
||
|
||
일단 기억에 없었다.
|
||
|
||
빠르게 아직 시간이 남은 컴퓨터에서 검색창을 켜고 VR 기기 주의 사항을 쭉 읽어 내려갔다.
|
||
|
||
“체력이 부족한 상태나 기타 특수 이유로 과도한 사용 시...근육통 및 전신 통증?”
|
||
|
||
이건 또 뭐야.
|
||
|
||
“기기가 온몸에 전기 자극을 주거든.”
|
||
|
||
복잡한 과학 이론은 넘어가고 간단히 말하자면.
|
||
|
||
기초 근력과 체력이 충분한 상태에서 플레이를 하면 몸이 전기 치료 받은 것 마냥 조금씩 튼튼해지고, 몸 상태가 저질이면 내 꼴이 난다는 소리였다.
|
||
|
||
“...씁.”
|
||
|
||
나는 문득 내 몸을 훑었다.
|
||
|
||
하얀 피부, 가느다란 다리, 말랑말랑한 살, 들어갈 데 들어가고 튀어나올 데 튀어나온 몸.
|
||
|
||
하지만 유일하게 코빼기도 안 보이는 하나.
|
||
|
||
“프로 지망하고 싶으면 근력이랑 기초 체력부터 길러.”
|
||
|
||
"......"
|
||
|
||
아무래도 아빠한테 사 달라고 가장 먼저 졸라야 하는 건 최신형 VR기기가 아니라 운동 장비인가 보다.
|
||
|
||
어쩐지 경기 직관 할 때 프로게이머들 체격이 내 기억이랑 다르더라니.
|
||
|
||
“그리고 너 진짜 프로 하려고?”
|
||
|
||
“너 탑 설설 하면서 내 라인전 내내 구경했으니 알 거 아니야?”
|
||
|
||
“......그럼, 관심 있으면 여기 한 번 연락해 봐.”
|
||
|
||
지환은 잠시 고민하더니 속 주머니에서 명함 하나를 내게 건넸다.
|
||
|
||
“밀키웨이 S......”
|
||
|
||
“담당 스카우터 명함이야. 너 정도면—”
|
||
|
||
나는 채 말이 끝나기도 전에 명함을 녀석의 주머니 안에 다시 쑤셔 넣었다.
|
||
|
||
“절대. 안. 가.”
|
||
|
||
최고의 선수가 있을 곳은 ST 뿐이다.
|
||
|
||
언제나.
|
||
|
||
“그러니까 너도 거기 가지 말고 그냥 ST 아카데미 탑으로 와.”
|
||
|
||
“뭐?”
|
||
|
||
“LOC 월드컵. 우승 시켜줄게.”
|
||
|
||
최소한 지금보단 가능성이 높을 거다.
|
||
|
||
내가 있을 테니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