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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12-14 21:31:57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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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앙!
팡!!
덕수 투구장에 울려 퍼지는 그물망 소리. 나와 리동혁, 핫산, 박찬준 4인방은 각각 레인에 서서 힘차게 피칭을 하고 있다.
“흐읍…!!”
퍼엉!
“흡!!”
파앙-!!
“…….”
멀리서 별 관심 없다는 듯 흔들의자에 앉아 신문을 읽는 마덕수 할배.
그러나 난 알고 있다.
그가 관심 없는 척하면서, 이쪽을 힐끔힐끔 보고 있다는 사실을.
‘아무렴, 슬슬 할배 몸이 근질근질할 때가 됐지.
실력이 아직 채 여물지도 않은 고삐리들이 우글우글 공을 던져댄다. 저 꼬장꼬장한 노친네가 이걸 오래 참을 수 있으리라 생각하지 않는다.
내가 혼자서 훈련할 때도, 컨셉을 깨면서까지 써클 체인지업을 전수해줬으니 말이다.
촤라락!!
“금성묵, 이 쌍놈의 자식…. 기껏 돌아와서 좀 쉬려 했건만.”
읽던 신문을 강하게 접어버리곤 자리에서 일어난 덕수 할배. 그는 곧 어디론가 발걸음을 옮겼는데, 바로 핫산의 뒤였다.
“핫삼, 네 이 녀석…!!”
“예, 예…!?”
“사내새끼가 뭐 그리 투기가 없어? 그따위로 던질 거면 꼬추 떼라 인마…!”
“헛된…!!”
화들짝 놀라는 핫산.
말의 어조가 상당히 강하지만, 본인도 의식하고 있던 문제니 만큼 꽤 진지하게 받아들이는 모양이다.
핫산은 지금 눈앞의 할아버지가 뭐 하는 사람인지 전혀 모른다. 하지만 성묵이 했던 의미심장한 말도 신경 쓰였고, 막막한 심정인 지금은 누구의 조언이든 간절한 상황이기에 공손하게 물었다.
“할버지, 저는 어떻게 하면 됩니까…?”
“그 글러 먹은 정신머리부터 고쳐야지. 근데 그게 당장 어떻게 할 수 있는 문제도 아니고, 어디 보자….”
잠시 고민하는 듯하더니, 야구공을 쥔 핫산의 손가락을 쥐는 덕수 할배. 그리고는 손가락을 이리저리 주무르며 여러 형태를 시도해본다.
“흠, 손가락이 길진 않으니 이건 버려, 이건 시간이 너무 오래 걸리니 기각, 기각, 기각…!!”
“할, 할버지…!?”
“좋아, 이거다!!”
이내 흡족한 표정을 지으며 손을 떼는 덕수 할배. 그가 핫산의 손 위에 완성한 것은, ‘투심’ 그립이다.
“할아버지, 이건…?”
“그대로 던져봐.”
그 말을 남기곤 뒷짐을 진 채 몇 걸음 물러나는 덕수 할배. 핫산은 얼떨떨했지만 일단 와인드업하며 공을 뿌렸다.
쉬리릭!!
맹렬한 파도가 치듯 휘어나가며 뻗는 공. 핫산은 자기 손가락에서 뻗어나간 공을 보며 깜짝 놀란 반응이다.
“이, 이건…!!”
“뭣 하냐, 기껏 알려줬더니 금방 까먹으려고? 손에 익을 때까지 던져…!!”
“옙!!”
방금 할배가 쥐여준 그립대로 쭉 공을 던지는 핫산. 대관령고 전에서 4피홈런 8실점을 하며 우울해 보이던 핫산의 얼굴에 오랜만에 미소가 맺혔다.
‘짜식, 신났구만.
지금 핫산이 잡고 던지는 건 일반적인 투심 그림은 아니다. 초보인 핫산도 던질 수 있도록 어느 정도 어레인지가 들어간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도 저 정도 위력이라니. 과연 레전드의 지도는 다른 것인가. 연륜에 시스템의 보정까지 더해지자 선수가 받아들이는 흡수력 자체가 달라진다.
‘투심이라면 덕수 할배의 주무기 중 하나, 핫산이 저걸 다 익힌다면….
작대기 직구와 스플리터밖에 무기가 없던 핫산에게 큰 힘이 될 거다. 녀석에게 유의미한 제 3구종이 필요하다고 생각하긴 했다.
그런데 때마침 덕수 할배의 지도를 받게 되다니, 이보다 더 좋을 수는 없으리라.
조만간 자기가 배운 투심이 레전드 투수의 주무기였단 걸 알게 되면 아마 까무러치게 놀라겠지.
“자, 다음은 거기. 차박구!”
“…아아, 넵!!”
자기를 부른지 모르고 얼타던 박찬준이 손을 들며 답했다. 덕수 할배는 꽤 성이 난 채로 말했다.
“네 녀석은 나이를 똥구멍으로 쳐먹은 게냐…!! 나이를 서른 가까이 쳐먹은 녀석이 투구폼이 왜 그따위야!!”
“…할아버지.”
“뭐 인마!”
“그렇게 안 보이실 수도 있지만, 저 스무살이에요….”
“……뭣이!?”
화들짝 놀라는 덕수 할배.
저 동글동글한 체형에 덥수룩한 아저씨 수염, 한창 진행 중인 M자 탈모를 보면 충분히 오해할 수 있긴 하다만.
‘아니 할배, 애초에 내가 서른살 아저씨를 여기 왜 데려오냐고….
편견이 없어도 너무 없는 거 아닌가.
“크흠…!”
갑자기 머쓱해진 듯한 할배.
그는 급속도로 목소리가 차분해지며, 빠르게 태세를 전환했다.
“젊은 친구가 풍파를 많이 겪었나 보고만…? 아무튼 뭐, 네가 마냥 구린 투수라는 건 아니다. 어디 길바닥에서 주워다 배운 개잡종 폼으로 영점을 잡은 건 칭찬받을만한 일이지.”
“쿨럭…!”
칭찬인지 팩폭인지 모를 일격에 각혈하는 박찬준, 할배의 본격적 조언은 이제 시작이다.
“니놈 폼은 사실 굳이 건드릴 필요가 없어. 너클이랑 시너지가 꽤 잘 맞거든. 지금도 얼추 밸런스 자체는 맞아.”
“오…!?”
“끝까지 들어 인석아! 다른 건 몰라도, 상하체가 따로 노는 건 무조건 고쳐야 해. 지금 넌 공에 힘을 전부 못 싣고 있어, 너클볼이라고 구위가 안 중요하다? 야구의 야자도 모르는 머저리 놈들이나 할 법한 소리지.”
“아…!”
조언을 듣자마자 바로 납득하는 박찬준. 본인도 나름 의식 정도는 하고 있던 문제점인 모양이다.
콧김을 내뿜고는 박찬준에게 달라붙는 덕수 할배, 본격적으로 그의 피칭을 어루만져줄 모양이다.
“상체가 먼저 덤비니 힘이 실릴 리가 없지. 네 엔진은 여기, 이 토실토실한 궁뎅이다.”
찰싹!
“…!”
어우씨, 할배요.
그런 시각 테러는 제발 깜빡이 좀 켜고 들어오십쇼…!
“궁뎅이가 돌고, 허리가 따라 돌고, 그 힘으로 상체가 채찍처럼 돌아가야 하는 게다. 궁뎅이를 플레이트 쪽으로 강하게 밀어 넣는단 느낌으로 던져봐.”
“이, 이렇게요…?”
파앙!
“음, 훨씬 낫네. 그 다음은 상체다. 너는 지금부터 상상하는 거다, 나는 공을 던지는 게 아니라 벽을 민다, 라고 말야.”
“벽을 민다…?”
“네놈 몸 전체로 홈플레이트 방향의 보이지 않는 벽을 민다고 생각하는 게다. 뒷다리로 땅을 박차 그 힘으로 몸 전체를 앞으로 보내고, 팔은 거기에 따라가는 부산물 같은 걸로 생각하면 쉽다."
“…한 번 해볼게요!”
파앙!
“이 돌대가리 자식, 내 말을 뭘로 들은 게냐…!!”
“헙…!!”
하드하게 박찬준을 들들 볶는 덕수 할배, 찬준햄은 대략 50구 정도를 던지고 나서야 어느 정도 감을 잡은 듯 보였다.
“쯧, 이제야 좀 쓸만하네. 오늘 알려준 거 잊지 마라, 난 했던 말 또 하는 걸 세상에서 제일 싫어하니깐.”
“넵, 가르침 감사합니다…!!”
직각으로 연거푸 허리 숙여 감사를 표하는 박찬준, 할배는 아닌 척하면서도 그럭저럭 기쁜지 입꼬리가 스윽 올라갔다.
“대단하군요, 역시 마덕수 선수입니다.”
“…아씨, 깜짝이야!”
갑자기 뒤에서 튀어나온 익숙한 목소리, 그 주인공은 우리 팀의 주전 포수인 석운강이었다. 아무래도 우리들 소식을 듣고 훈련을 도우러 온 모양.
“마, 마덕수…?”
내 옆에서 같이 박찬준 티칭을 지켜보던 리동혁은 깜짝 놀라서 되물었다.
“저 노인이 부산 컵스의 전설적인 투수, 마덕수 선수란 말이오?”
“그렇습니다, 처음에는 못 알아봤지만 마덕수 선수가 확실해 보입니다. 금성묵 시주, 그렇지요?”
“…불교에선 사람 꿰뚫어 보는 능력이라도 배우냐?”
어디 사신의 눈이라도 지니고 있는 걸까.
비결이 궁금했는데, 운강은 그리 대단한 게 아니라는 듯 말했다.
“소림사는 인터넷이 잘 터지지 않습니다. 그래서 저희는 과거의 경기 영상을 보며 지식을 쌓는 게 일상이었지요. 마덕수 선수의 영상 역시 많이 공부가 되기에 수백번 정도는 반복해서 봤습니다. 그 영상보다 나이가 꽤 들기는 했지만, 크게 달라지지 않았더군요. 그래서 알아봤습니다.”
“……….”
소림사는 대체 어떤 곳일까.
인터넷도 안 되는 곳에서 같은 영상을 수백번씩 돌려봐야 한다니. 저 정도면 해병대 저리 가라 할 정도의 악기바리라고 해도 무방하지 않을까.
“금성묵 시주의 비밀도 알게 되었군요. 저를 패배시켜 세상 밖으로 끌어오게 만든 그 써클 체인지업, 마덕수 선수에게 배운 것이었군요.”
“그래, 아마 그거 안 배웠으면 지는 건 내 쪽이었겠지.”
“마덕수 선수에겐 감사를 표해야겠군요, 그 덕에 이렇게 좋은 동료들을 만났으니 말입니다.”
“…짜식.”
말 하나는 참 이쁘게 한단 말이지.
석운강은 리동혁 쪽으로 슬그머니 시선을 돌리더니, 사뭇 진지한 표정으로 물었다.
“리동혁 시주, 한 번 가르침을 청해보는 건 어떻습니까. 대관령 전에서 싱커가 일취월장했는데, 더 발전할 방법이 있는지 말입니다.”
“…아니, 내 ‘인민의 싱커’는 우리 리씨 가문의 비급. 그 누구의 조언도 받지 않을 거고, 받을 수도 없소.”
“야야, 너 지금 그게 뭔….”
갑자기 고집을 부리는 리동혁.
시건방 부리는 거 같아 한 마디 해주려 했는데, 나름대로 융통성이 있는 고집이었다.
“하지만 다른 구종이라면 이야기가 다르지, 언제든 허리 숙여 가르침을 청할 준비가 되어있소.”
그리 말하고는 쑥 튀어 나간 리동혁.
넙죽 허리를 숙이며 부탁한다.
“어르신, 저에게도 가르침을 주실 수 없겠습니까.”
“굳이? 넌 괜히 건드렸다가 죽도 밥도 안 되는 수가 있다. 그냥 적당히 만족하는 게 좋을 텐데?”
코를 팽 풀며 그리 말하는 덕수 할배.
하지만 리동혁의 눈은 이글거리고 있었다. 더 높은 곳을 바라보며 말이다.
“반드시 이겨야 할 상대가 있습니다. 가르침을 주시지요, 반드시 제 것으로 만들어내 보이겠습니다.”
“흐음.”
“설령 실패해 흐트러진다 해도, 절대 어르신의 탓을 하지 않겠습니다.”
녀석이 말하는 ‘반드시 이겨야 할 상대’는 아마도 그의 형들, 김정홍과 김정철 둘을 이야기하는 것이겠지.
훗날 녀석이 한국 야구팀에서 뛰게 된다면, 필시 수차례 싸우게 될 상대니만큼 그 간절함이 남다를 수밖에.
그런 모습이 마음에 든 것일까.
덕수 할배는 흡족한 표정으로 리동혁의 어깨에 손을 탁 짚었다.
“끌끌, 사나이가 그 정도 향상심은 있어야지…!”
그리 말하고는 아까 핫산에게 한 것처럼, 리동혁의 손가락을 조물딱 거리며 여러 그립을 재현해보는 할배.
리동혁은 그 결과물을 쥐고는, 다소 얼떨떨한 표정을 지었다.
“…이대로 던지면 되는 겁니까?”
“의심하는 표정인데? 불만 있으면 때려치거라. 난 아쉬운 거 없으니.”
“…아닙니다, 죄송합니다.”
심호흡하고 자세를 잡는 리동혁, 도움을 주겠다며 석운강이 그의 앞쪽으로 걸어가 포구 자세를 취했다.
“흡…!!”
그렇게 던져진 공.
곧 이 자리에 있는 모두는 놀란 눈을 뜰 수밖에 없었다.
후욱!!
“………!!”
갑작스런 공의 변화에 공을 놓칠 뻔한 석운강. 그가 그런 모습을 보이는 건 결코 자주 있는 일이 아니다.
“바, 방금…?!”
“솟구쳤어?!”
리동혁이 지금까지 보여준 적 없는, 전혀 새로운 공.
과거 메이저 리그에서 엄청난 모습을 보여줬던 모 한국인 잠수함 투수가 애용했던 구종, 업슛(Up Shoot)이 등장하는 순간이다.
“……….”
본인이 던지고도 놀란 듯한 녀석.
여러 번 던지며, 서서히 제 것으로 만들어가는 모습이다.
후욱!!
직구처럼 다가오다가 훅 솟아오른다. 마치 땅속에 몸을 숨겼다 훅 튀어나오는 독사처럼 말이다.
“어떻게 이런 공을 그리 간단한 지도로….”
“끌끌, 당장은 내가 옆에서 짚어주니 그럴 듯해 보이지만 실전에서 쓰려면 멀었다. 부지런히 노력하도록.”
“감사합니다, 어르신. 진심으로 탄복했습니다.”
“오냐.”
넙죽 허리 숙여 인사하는 리동혁.
이제는 내가 어필할 차례인가.
“…덕수 할배.”
“뭐, 인마.”
“이거 한잔 드시죠.”
조금 전 화장실에 가는 척하며 슬쩍 사 온 나의 뇌물, 노인들이 환장한다는 음료수 ‘솔의 눈’이다.
“흠, 센스가 아주 없지는 않군.”
꿀꺽, 꿀꺽…!
흡족한 표정으로 마시는 할배.
예전에 덕수 투구장에서 단독 훈련할 때, 쓰레기통에 할배가 마신 솔의 눈 캔이 여럿 들어있던 걸 본 적이 있다.
이제 한번 밑밥을 던져볼까.
“할배, 저도 신구종 하나만 가르쳐 주시죠. 기왕이면 쌈빡한 걸로….”
깡!!
“켁븝…!”
괜히 회초리로 얻어맞았다.
아이고, 억울하다.
뇌물까지 바쳤는데…!!
“이 쌍눔 새키, 기껏 알려준 써클 체인지업 하나도 제대로 못 다루는 게 신구종? 이 늙은이 속 터져 뒈지라고 아주 재롱을 떠는구나!"
“끙….”
솔직히 할 말이 없다.
아직도 써클 체인지업은 할배에게 배울 때와 똑같이, A등급인 그대로니까.
“할배, 뾰족한 수가 있을까요.”
“없어, 인마.”
“예…??”
“그 정도까지 익혔으면 이젠 내 손을 떠났어, 더 나아가려면 너만의 느낌을 찾아야지.”
“……!!”
눈이 번쩍 뜨였다.
할배는 무신경하게 툭 던진 말일지도 모르지만, 뭔가 시야가 확 넓어지는 기분이 들었다.
‘…게임 시스템에 지나치게 의지하고 있었을지도 모르겠어.
이 게임은 분명 현실에 비해 과장된 부분도 많고, 그 차이에서 오는 꿀 빠는 법 또한 존재했다.
게다가 태양신맥이라는 사기적인 스킬까지 손에 넣다 보니, 그런 부분들에 매몰되어있었던 것 같다.
‘피칭의 본질이란…?
더 빠르게, 좀 더 꺾이게, 더욱 정확하게 던지기 위해 한 명의 조각가처럼, 스스로를 깎아나가는 과정 아니던가.
“후우….”
시스템은 뇌리에서 지운다.
이미지화하는 것은 과거의 나.
메이저리그를 지배하던 그때의 나는, 같은 변화구더라도 꽤 다양하게 변형한 공을 던지곤 했다.
‘조금 더 힘을 빼보자.
퍼엉!!
‘릴리스 때 손목을 잠가볼까.
퍼엉…!!
‘이번엔 더 깊이 쥐어서…!
퍼엉!!
어느덧 주변에서 아무것도 들리지 않는다. 오직 포수 미트만이 눈앞에 보이고, 나는 반복해서 공을 던질 뿐이다.
퍼엉!
펑!!
퍼엉-!
시간이 얼마나 지났을까.
나는 머릿속에 울리는 시스템 소리에 정신을 차렸다.
[써클 체인지업 스텟이 A -> A+로 강화됩니다!]
“…굿 샷.”
오랜만에 느끼는 성장의 쾌감.
시스템에 의지하지 않고 얻은 이 성과에, 나는 전에 없는 짜릿함을 느꼈다.
#####
깜깜한 밤.
나는 덕수 투구장을 나와 홀로 걷고 있다.
같이 길을 걷던 동료들은 박찬준을 제외하면 전부 기숙사에 살고 있기에 학교 쪽으로 갔고, 찬준햄도 적당히 걷다가 갈라졌다.
“…흐, 오늘 훈련 상당히 알찼지.”
투수들 모두가 꽤 큰 걸 얻어갔다.
나조차도 정체됐던 써클 체인지업이 벽을 뚫어버렸다. 물론 S등급 이상부터는 태양신맥으로 강화가 안 되는 모양이지만, 그럼 다른 스텟을 강화하면 그만이다.
‘내일 한 번 물어나 봐야겠다, 한청고 전에서 일일 코치를 해줄 수 없냐고.
존재만으로 투수들에게 큰 도움이 될 거다. 이젠 덕수 할배가 개처럼 땅바닥을 기라고 해도 의심 없이 할 정도로 투수들에겐 무한한 신뢰감을 얻은 그니까 말이다.
‘내일은 빠듯하겠구만, 일단 한청고 레포트 도착하는 대로 달달….
퍼억!
“…윽!”
“꺄읏…!!”
생각이 많은 채로 길을 걷다 갑자기 누군가와 부딪혔다. 그리고 들려오는 여성의 가느다란 비명. 그런데 목소리가 익숙하다?
“올리비아…!?”
“서, 성묵씨?”
화들짝 놀라는 올리비아.
얼굴이 꽤나 붉다.
한아름 들고 있던 식재료들을 땅바닥에 널브러져 있는데, 꽤 많은 양을 들고 걷다 보니 시야가 가려져서 잘 보이지 않았던 모양이다.
“이거, 내 도시락 재료야?”
“네, 맞아요….”
고개를 주억이고는 쓱 눈을 피하는 그녀. 뭔가 필사적으로 다른 곳을 보려는 것 같은데?
‘그러고 보니, 최근에 뭔가 제대로 이야기해본 적이 없지 않나?
뭔가 밥만 얻어먹고, 친구로서 진득한 이야길 나눈 게 꽤나 옛날 일인 것 같은 기분이 든다. 나는 그녀가 떨군 식재료를 빠르게 쓱쓱 줍고는 물었다.
“올리비아, 잠깐 시간 있어?”
“네…!?”
화들짝 놀라는 그녀.
우물쭈물하더니 고개를 끄덕인다.
“그럼 잠시 이야기 좀 할까?”
“어디서요?”
“……음.”
그건 생각 안 해봤는데.
나는 근처를 쓱쓱 둘러보다 괜찮아 보이는 장소 하나를 짚어 말했다.
“저기 놀이터는 어때?”
말해놓고도 조금 아닌가 싶었지만, 그녀는 수줍게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요.”
그리고는 도도도 걸어서, 그네에 착하고 앉는 그녀. 뭔가 동심으로 돌아가 기쁜 듯한 표정이다.
“올리비아, 그런 표정도 지을 수 있었구나.”
“…지금 놀리시는 거죠?”
“아닌데? 그냥 신기해서 그런 거지.”
“성묵씨도 옆에 앉아요.”
“그래, 나도 오랜만에 어릴 적 추억이나 한번 되짚어볼까.”
그렇게 나는 품 안에 든 식재료를 벤치에 내려두고는, 그녀의 옆 그네 쪽에 앉았다.
“달, 예쁘네요.”
“그러게 말야.”
마침 딱 기분 좋게 불어오는 바람.
동그랗게 뜬 달을 함께 보며, 나는 올리비아와 꽤 많은 대화를 나눴다.
여러모로 꽤 괜찮은 하루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