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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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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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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수 투구장에 울려 퍼지는 그물망 소리. 나와 리동혁, 핫산, 박찬준 4인방은 각각 레인에 서서 힘차게 피칭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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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흐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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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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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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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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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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멀리서 별 관심 없다는 듯 흔들의자에 앉아 신문을 읽는 마덕수 할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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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난 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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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관심 없는 척하면서, 이쪽을 힐끔힐끔 보고 있다는 사실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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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렴, 슬슬 할배 몸이 근질근질할 때가 됐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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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력이 아직 채 여물지도 않은 고삐리들이 우글우글 공을 던져댄다. 저 꼬장꼬장한 노친네가 이걸 오래 참을 수 있으리라 생각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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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혼자서 훈련할 때도, 컨셉을 깨면서까지 써클 체인지업을 전수해줬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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촤라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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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성묵, 이 쌍놈의 자식…. 기껏 돌아와서 좀 쉬려 했건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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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던 신문을 강하게 접어버리곤 자리에서 일어난 덕수 할배. 그는 곧 어디론가 발걸음을 옮겼는데, 바로 핫산의 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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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핫삼, 네 이 녀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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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 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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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내새끼가 뭐 그리 투기가 없어? 그따위로 던질 거면 꼬추 떼라 인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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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헛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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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들짝 놀라는 핫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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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의 어조가 상당히 강하지만, 본인도 의식하고 있던 문제니 만큼 꽤 진지하게 받아들이는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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핫산은 지금 눈앞의 할아버지가 뭐 하는 사람인지 전혀 모른다. 하지만 성묵이 했던 의미심장한 말도 신경 쓰였고, 막막한 심정인 지금은 누구의 조언이든 간절한 상황이기에 공손하게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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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버지, 저는 어떻게 하면 됩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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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글러 먹은 정신머리부터 고쳐야지. 근데 그게 당장 어떻게 할 수 있는 문제도 아니고, 어디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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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 고민하는 듯하더니, 야구공을 쥔 핫산의 손가락을 쥐는 덕수 할배. 그리고는 손가락을 이리저리 주무르며 여러 형태를 시도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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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흠, 손가락이 길진 않으니 이건 버려, 이건 시간이 너무 오래 걸리니 기각, 기각, 기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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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 할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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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아, 이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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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내 흡족한 표정을 지으며 손을 떼는 덕수 할배. 그가 핫산의 손 위에 완성한 것은, ‘투심’ 그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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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아버지, 이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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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대로 던져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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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말을 남기곤 뒷짐을 진 채 몇 걸음 물러나는 덕수 할배. 핫산은 얼떨떨했지만 일단 와인드업하며 공을 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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쉬리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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맹렬한 파도가 치듯 휘어나가며 뻗는 공. 핫산은 자기 손가락에서 뻗어나간 공을 보며 깜짝 놀란 반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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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이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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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뭣 하냐, 기껏 알려줬더니 금방 까먹으려고? 손에 익을 때까지 던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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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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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금 할배가 쥐여준 그립대로 쭉 공을 던지는 핫산. 대관령고 전에서 4피홈런 8실점을 하며 우울해 보이던 핫산의 얼굴에 오랜만에 미소가 맺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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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짜식, 신났구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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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핫산이 잡고 던지는 건 일반적인 투심 그림은 아니다. 초보인 핫산도 던질 수 있도록 어느 정도 어레인지가 들어간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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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도 저 정도 위력이라니. 과연 레전드의 지도는 다른 것인가. 연륜에 시스템의 보정까지 더해지자 선수가 받아들이는 흡수력 자체가 달라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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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심이라면 덕수 할배의 주무기 중 하나, 핫산이 저걸 다 익힌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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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대기 직구와 스플리터밖에 무기가 없던 핫산에게 큰 힘이 될 거다. 녀석에게 유의미한 제 3구종이 필요하다고 생각하긴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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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때마침 덕수 할배의 지도를 받게 되다니, 이보다 더 좋을 수는 없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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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만간 자기가 배운 투심이 레전드 투수의 주무기였단 걸 알게 되면 아마 까무러치게 놀라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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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 다음은 거기. 차박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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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아, 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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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를 부른지 모르고 얼타던 박찬준이 손을 들며 답했다. 덕수 할배는 꽤 성이 난 채로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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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녀석은 나이를 똥구멍으로 쳐먹은 게냐…!! 나이를 서른 가까이 쳐먹은 녀석이 투구폼이 왜 그따위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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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아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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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 인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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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안 보이실 수도 있지만, 저 스무살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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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뭣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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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들짝 놀라는 덕수 할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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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동글동글한 체형에 덥수룩한 아저씨 수염, 한창 진행 중인 M자 탈모를 보면 충분히 오해할 수 있긴 하다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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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할배, 애초에 내가 서른살 아저씨를 여기 왜 데려오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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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견이 없어도 너무 없는 거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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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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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자기 머쓱해진 듯한 할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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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급속도로 목소리가 차분해지며, 빠르게 태세를 전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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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친구가 풍파를 많이 겪었나 보고만…? 아무튼 뭐, 네가 마냥 구린 투수라는 건 아니다. 어디 길바닥에서 주워다 배운 개잡종 폼으로 영점을 잡은 건 칭찬받을만한 일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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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쿨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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칭찬인지 팩폭인지 모를 일격에 각혈하는 박찬준, 할배의 본격적 조언은 이제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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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놈 폼은 사실 굳이 건드릴 필요가 없어. 너클이랑 시너지가 꽤 잘 맞거든. 지금도 얼추 밸런스 자체는 맞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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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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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까지 들어 인석아! 다른 건 몰라도, 상하체가 따로 노는 건 무조건 고쳐야 해. 지금 넌 공에 힘을 전부 못 싣고 있어, 너클볼이라고 구위가 안 중요하다? 야구의 야자도 모르는 머저리 놈들이나 할 법한 소리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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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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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언을 듣자마자 바로 납득하는 박찬준. 본인도 나름 의식 정도는 하고 있던 문제점인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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콧김을 내뿜고는 박찬준에게 달라붙는 덕수 할배, 본격적으로 그의 피칭을 어루만져줄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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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체가 먼저 덤비니 힘이 실릴 리가 없지. 네 엔진은 여기, 이 토실토실한 궁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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찰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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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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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우씨, 할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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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시각 테러는 제발 깜빡이 좀 켜고 들어오십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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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궁뎅이가 돌고, 허리가 따라 돌고, 그 힘으로 상체가 채찍처럼 돌아가야 하는 게다. 궁뎅이를 플레이트 쪽으로 강하게 밀어 넣는단 느낌으로 던져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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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이렇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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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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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 훨씬 낫네. 그 다음은 상체다. 너는 지금부터 상상하는 거다, 나는 공을 던지는 게 아니라 벽을 민다, 라고 말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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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벽을 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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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놈 몸 전체로 홈플레이트 방향의 보이지 않는 벽을 민다고 생각하는 게다. 뒷다리로 땅을 박차 그 힘으로 몸 전체를 앞으로 보내고, 팔은 거기에 따라가는 부산물 같은 걸로 생각하면 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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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번 해볼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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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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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돌대가리 자식, 내 말을 뭘로 들은 게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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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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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드하게 박찬준을 들들 볶는 덕수 할배, 찬준햄은 대략 50구 정도를 던지고 나서야 어느 정도 감을 잡은 듯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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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쯧, 이제야 좀 쓸만하네. 오늘 알려준 거 잊지 마라, 난 했던 말 또 하는 걸 세상에서 제일 싫어하니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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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넵, 가르침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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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각으로 연거푸 허리 숙여 감사를 표하는 박찬준, 할배는 아닌 척하면서도 그럭저럭 기쁜지 입꼬리가 스윽 올라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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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단하군요, 역시 마덕수 선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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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씨, 깜짝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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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자기 뒤에서 튀어나온 익숙한 목소리, 그 주인공은 우리 팀의 주전 포수인 석운강이었다. 아무래도 우리들 소식을 듣고 훈련을 도우러 온 모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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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 마덕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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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옆에서 같이 박찬준 티칭을 지켜보던 리동혁은 깜짝 놀라서 되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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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노인이 부산 컵스의 전설적인 투수, 마덕수 선수란 말이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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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습니다, 처음에는 못 알아봤지만 마덕수 선수가 확실해 보입니다. 금성묵 시주, 그렇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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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에선 사람 꿰뚫어 보는 능력이라도 배우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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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 사신의 눈이라도 지니고 있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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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결이 궁금했는데, 운강은 그리 대단한 게 아니라는 듯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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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림사는 인터넷이 잘 터지지 않습니다. 그래서 저희는 과거의 경기 영상을 보며 지식을 쌓는 게 일상이었지요. 마덕수 선수의 영상 역시 많이 공부가 되기에 수백번 정도는 반복해서 봤습니다. 그 영상보다 나이가 꽤 들기는 했지만, 크게 달라지지 않았더군요. 그래서 알아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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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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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림사는 대체 어떤 곳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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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도 안 되는 곳에서 같은 영상을 수백번씩 돌려봐야 한다니. 저 정도면 해병대 저리 가라 할 정도의 악기바리라고 해도 무방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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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성묵 시주의 비밀도 알게 되었군요. 저를 패배시켜 세상 밖으로 끌어오게 만든 그 써클 체인지업, 마덕수 선수에게 배운 것이었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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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아마 그거 안 배웠으면 지는 건 내 쪽이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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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덕수 선수에겐 감사를 표해야겠군요, 그 덕에 이렇게 좋은 동료들을 만났으니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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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짜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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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 하나는 참 이쁘게 한단 말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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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운강은 리동혁 쪽으로 슬그머니 시선을 돌리더니, 사뭇 진지한 표정으로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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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동혁 시주, 한 번 가르침을 청해보는 건 어떻습니까. 대관령 전에서 싱커가 일취월장했는데, 더 발전할 방법이 있는지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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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내 ‘인민의 싱커’는 우리 리씨 가문의 비급. 그 누구의 조언도 받지 않을 거고, 받을 수도 없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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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야, 너 지금 그게 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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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자기 고집을 부리는 리동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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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건방 부리는 거 같아 한 마디 해주려 했는데, 나름대로 융통성이 있는 고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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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다른 구종이라면 이야기가 다르지, 언제든 허리 숙여 가르침을 청할 준비가 되어있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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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 말하고는 쑥 튀어 나간 리동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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넙죽 허리를 숙이며 부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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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르신, 저에게도 가르침을 주실 수 없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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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굳이? 넌 괜히 건드렸다가 죽도 밥도 안 되는 수가 있다. 그냥 적당히 만족하는 게 좋을 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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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를 팽 풀며 그리 말하는 덕수 할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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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리동혁의 눈은 이글거리고 있었다. 더 높은 곳을 바라보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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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드시 이겨야 할 상대가 있습니다. 가르침을 주시지요, 반드시 제 것으로 만들어내 보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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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흐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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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령 실패해 흐트러진다 해도, 절대 어르신의 탓을 하지 않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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녀석이 말하는 ‘반드시 이겨야 할 상대’는 아마도 그의 형들, 김정홍과 김정철 둘을 이야기하는 것이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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훗날 녀석이 한국 야구팀에서 뛰게 된다면, 필시 수차례 싸우게 될 상대니만큼 그 간절함이 남다를 수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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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모습이 마음에 든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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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수 할배는 흡족한 표정으로 리동혁의 어깨에 손을 탁 짚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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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끌끌, 사나이가 그 정도 향상심은 있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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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 말하고는 아까 핫산에게 한 것처럼, 리동혁의 손가락을 조물딱 거리며 여러 그립을 재현해보는 할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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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동혁은 그 결과물을 쥐고는, 다소 얼떨떨한 표정을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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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대로 던지면 되는 겁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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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심하는 표정인데? 불만 있으면 때려치거라. 난 아쉬운 거 없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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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닙니다, 죄송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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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호흡하고 자세를 잡는 리동혁, 도움을 주겠다며 석운강이 그의 앞쪽으로 걸어가 포구 자세를 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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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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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던져진 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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곧 이 자리에 있는 모두는 놀란 눈을 뜰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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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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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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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작스런 공의 변화에 공을 놓칠 뻔한 석운강. 그가 그런 모습을 보이는 건 결코 자주 있는 일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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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 방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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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솟구쳤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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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동혁이 지금까지 보여준 적 없는, 전혀 새로운 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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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 메이저 리그에서 엄청난 모습을 보여줬던 모 한국인 잠수함 투수가 애용했던 구종, 업슛(Up Shoot)이 등장하는 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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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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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인이 던지고도 놀란 듯한 녀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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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 번 던지며, 서서히 제 것으로 만들어가는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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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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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구처럼 다가오다가 훅 솟아오른다. 마치 땅속에 몸을 숨겼다 훅 튀어나오는 독사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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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이런 공을 그리 간단한 지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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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끌끌, 당장은 내가 옆에서 짚어주니 그럴 듯해 보이지만 실전에서 쓰려면 멀었다. 부지런히 노력하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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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합니다, 어르신. 진심으로 탄복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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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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넙죽 허리 숙여 인사하는 리동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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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는 내가 어필할 차례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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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수 할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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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 인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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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거 한잔 드시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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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 전 화장실에 가는 척하며 슬쩍 사 온 나의 뇌물, 노인들이 환장한다는 음료수 ‘솔의 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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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흠, 센스가 아주 없지는 않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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꿀꺽, 꿀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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흡족한 표정으로 마시는 할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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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 덕수 투구장에서 단독 훈련할 때, 쓰레기통에 할배가 마신 솔의 눈 캔이 여럿 들어있던 걸 본 적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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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한번 밑밥을 던져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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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배, 저도 신구종 하나만 가르쳐 주시죠. 기왕이면 쌈빡한 걸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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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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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켁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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괜히 회초리로 얻어맞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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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고, 억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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뇌물까지 바쳤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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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쌍눔 새키, 기껏 알려준 써클 체인지업 하나도 제대로 못 다루는 게 신구종? 이 늙은이 속 터져 뒈지라고 아주 재롱을 떠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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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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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히 할 말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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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도 써클 체인지업은 할배에게 배울 때와 똑같이, A등급인 그대로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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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배, 뾰족한 수가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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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없어, 인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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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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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정도까지 익혔으면 이젠 내 손을 떠났어, 더 나아가려면 너만의 느낌을 찾아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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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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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이 번쩍 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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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배는 무신경하게 툭 던진 말일지도 모르지만, 뭔가 시야가 확 넓어지는 기분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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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 시스템에 지나치게 의지하고 있었을지도 모르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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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게임은 분명 현실에 비해 과장된 부분도 많고, 그 차이에서 오는 꿀 빠는 법 또한 존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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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다가 태양신맥이라는 사기적인 스킬까지 손에 넣다 보니, 그런 부분들에 매몰되어있었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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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칭의 본질이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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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빠르게, 좀 더 꺾이게, 더욱 정확하게 던지기 위해 한 명의 조각가처럼, 스스로를 깎아나가는 과정 아니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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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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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스템은 뇌리에서 지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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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화하는 것은 과거의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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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이저리그를 지배하던 그때의 나는, 같은 변화구더라도 꽤 다양하게 변형한 공을 던지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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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 더 힘을 빼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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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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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릴리스 때 손목을 잠가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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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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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엔 더 깊이 쥐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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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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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덧 주변에서 아무것도 들리지 않는다. 오직 포수 미트만이 눈앞에 보이고, 나는 반복해서 공을 던질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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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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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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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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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이 얼마나 지났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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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머릿속에 울리는 시스템 소리에 정신을 차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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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써클 체인지업 스텟이 A -> A+로 강화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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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굿 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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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느끼는 성장의 쾌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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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스템에 의지하지 않고 얻은 이 성과에, 나는 전에 없는 짜릿함을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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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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깜깜한 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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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덕수 투구장을 나와 홀로 걷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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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이 길을 걷던 동료들은 박찬준을 제외하면 전부 기숙사에 살고 있기에 학교 쪽으로 갔고, 찬준햄도 적당히 걷다가 갈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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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흐, 오늘 훈련 상당히 알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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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수들 모두가 꽤 큰 걸 얻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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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조차도 정체됐던 써클 체인지업이 벽을 뚫어버렸다. 물론 S등급 이상부터는 태양신맥으로 강화가 안 되는 모양이지만, 그럼 다른 스텟을 강화하면 그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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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 한 번 물어나 봐야겠다, 한청고 전에서 일일 코치를 해줄 수 없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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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재만으로 투수들에게 큰 도움이 될 거다. 이젠 덕수 할배가 개처럼 땅바닥을 기라고 해도 의심 없이 할 정도로 투수들에겐 무한한 신뢰감을 얻은 그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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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은 빠듯하겠구만, 일단 한청고 레포트 도착하는 대로 달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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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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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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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꺄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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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이 많은 채로 길을 걷다 갑자기 누군가와 부딪혔다. 그리고 들려오는 여성의 가느다란 비명. 그런데 목소리가 익숙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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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리비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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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 성묵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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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들짝 놀라는 올리비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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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굴이 꽤나 붉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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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아름 들고 있던 식재료들을 땅바닥에 널브러져 있는데, 꽤 많은 양을 들고 걷다 보니 시야가 가려져서 잘 보이지 않았던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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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거, 내 도시락 재료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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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맞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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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개를 주억이고는 쓱 눈을 피하는 그녀. 뭔가 필사적으로 다른 곳을 보려는 것 같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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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고 보니, 최근에 뭔가 제대로 이야기해본 적이 없지 않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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뭔가 밥만 얻어먹고, 친구로서 진득한 이야길 나눈 게 꽤나 옛날 일인 것 같은 기분이 든다. 나는 그녀가 떨군 식재료를 빠르게 쓱쓱 줍고는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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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리비아, 잠깐 시간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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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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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들짝 놀라는 그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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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물쭈물하더니 고개를 끄덕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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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잠시 이야기 좀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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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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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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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건 생각 안 해봤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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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근처를 쓱쓱 둘러보다 괜찮아 보이는 장소 하나를 짚어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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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기 놀이터는 어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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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해놓고도 조금 아닌가 싶었지만, 그녀는 수줍게 고개를 끄덕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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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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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는 도도도 걸어서, 그네에 착하고 앉는 그녀. 뭔가 동심으로 돌아가 기쁜 듯한 표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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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리비아, 그런 표정도 지을 수 있었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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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놀리시는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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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닌데? 그냥 신기해서 그런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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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묵씨도 옆에 앉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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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나도 오랜만에 어릴 적 추억이나 한번 되짚어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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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나는 품 안에 든 식재료를 벤치에 내려두고는, 그녀의 옆 그네 쪽에 앉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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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 예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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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게 말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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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침 딱 기분 좋게 불어오는 바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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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그랗게 뜬 달을 함께 보며, 나는 올리비아와 꽤 많은 대화를 나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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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모로 꽤 괜찮은 하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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